비온뒤 님이, 외로우려면 차라리 고독하라고 썼다.
그러면서 나보고 고독을 즐긴다 했는데(댓글)
그렇다면 외로움은 무어며 고독은 무언가...?
외로움인가 고독인가
쌀쌀한 일요일의 아침, 아내의 움직임이 바쁘다. 배낭을 챙기더니 이어서 옷가지들을 챙겨 넣는다. 한 댓 새 나들이를 한단다. 벌써 예고된 일이지만 갑작스러운 일로만 느껴진다. 노자라도 보태주며 흔쾌히 다녀오란 말은 준비되어 있으나 냉큼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해산한 큰 것이 친정에서 삼칠일을 보내고 어제 막 시집으로 갔으니, 이제 긴장된 몸도 조금은 쉬어야 하리라. 제 언니의 산후조리를 핑계로 밖에 머물고 있는 작은 것은 미동도 않는다. 어수선하던 어제는 모두 이렇게 흩어지고 남는 건 나 하나뿐이니 이 허전함은 무엇이더냐?
우리는 홀로 일 때 곧잘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시간이 허락하면 거리를 거닐고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해소하려 한다. 인간들의 외로움은 홀로의 몸에서 나타났다 군중 속에서 사라진다. 외로움은 공간적으로 홀로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취하는 것처럼 홀로 있을 땐 가까운 벗을 부르거나 군중 속에 파고들면 되기 때문이다.
고독은 정신적 존재만이 갖는 특권이라 한다. 따라서 동물은 인간과 달리 고독을 모를 것이다. 말하자면 동물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관계를 갖는 정신적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독이 인간의 특성이라는 것은, 인간은 정신적 능력을 갖고 스스로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고독은 이러한 지각과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을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삶이 있는 곳엔 언제나 고독이 자리 잡게 마련이다.
만일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고독에 빠질 이유가 없다. 물질적 가치만 추구하는 사람은 육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정신적 갈등을 알지 못할 것이며, 정신적 갈등을 알지 못하는 이는 고독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물질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독다운 고독은 지성을 동반한 사람에게만 나타난다고 한다. 지성은 지각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그 의미를 물으며 그 해답을 찾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은 스스로의 영적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관계에 실패한 고독한 영혼은 스스로의 분신(分身)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생각하는 사람을 조각한 로댕은 고독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은 고독이 극시 파우스트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적인 분신을 창조할 수 없어 만족할 수 없는 고독은 어찌해야 하는가? 테레사 수녀는 인도의 빈민지대에 숨어들어 그곳 빈민들과 아픔을 같이 하다 일생을 마쳤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쏟으며 말년을 보냈다. 이렇듯 고독은 사랑을 동반할 때 자신과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리라.
나의 시큰둥함은 외로움의 소산인가? 고독의 소산인가? 바삐 몸을 추스른 후 운전석 옆에 물병 하나 올려놓고 산골로 찾아든다. 나의 분신 마야(maya, 幻)를 오늘은 어찌 부르고 꾸밀까? 길 끝으로 터진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차게 보인다.
* 마야(maya, 幻) : 고대 인도의 종교에서 眞我에 대하여 幻影을 말함
나는 외롭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하다. 외로움과 고독이 어떻게 다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 둘을 뭉뚱그려 그저 늘 허전함을 느낀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카페에서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게 되는데, 각종 정모나 번개에 참여해 술마시고 노래하고 너스레를 떨며 대화하다 보면 육체적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수필방이나 삶의 이야기방에 간간 글을 써 올리는데, 그걸 공감하면서 행간의 의미까지 짚은 댓글이 달리면 정신적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노라면 때론 詩想까지 떠오르며, 이때에 진한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게 요즘 여기서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달래는 길이라 해야겠다.
첫댓글 나이 들어 갈 수록 정신적 허기를 더 심하게 겪는 이들이 많은데
그럴 떼 글 쓰고 읽고 댓글 달아 심정을 나누고 아주 좋은 공간이라 여깁니다
모임을 쫓아가서 먹고 대화하고 노래와 술 잔을 나누는 것은 이제
몸이 따라가지 않아요 그리고 길게 즐겁지도 않고요
쉬 지치기도 하지요 그러니 이젠 죽으나 사나 남의 글이나 읽고
댓글로 기분 좋게 해드리고 저 또한 그런 만족감 얻고
그러고 지내노라면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아요 이 얼마나
좋은 세월인지 진즉에 컴을 못배워 놓은 노년들이
불쌍하지요 종일 해바라기나 하다가 대포 한 잔 나누고
집으로 돌아 오시는 분들 석촌님의 일상은 아주 풍요롭지 않으십니까?
제가 볼때는 아주 잘 사시는 고독도 즐기시는 ㅎㅎ
네에 좋은말씀이에요.
그런데 체력과 기대의 언발란스
정신력과 소망의 언발란스
자신과 이웃의 언발란스
이런것들도 외로움과 고독의 원인인것 같데요.
외로움과 고독의 미묘한 차이를 섬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외로움이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에서 비롯되는 반면, 고독은 정신적 존재의 특권이며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만족할 수 없는 고독은
사랑을 동반할때 자신은 물론 인류를 구원하게 되는 것이란 말씀은 선배님의 깊은 통찰의
소산같습니다.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네에 좋은말씀 하셨습니다.
그런사랑은 아래로 임할때
이루어지는것 같아요.
80 세가 되어 혼자 잘 놀면,
3세 어린애가 혼자 놀고 있는 것처럼 신기하다고 하네요.^^
구십 세가 되어 혼자 걸어 다니면,
첫 돌 된 아이가 일어서 걷는 것처럼 신기하다고 하네요.^^
인생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라 하지요.
우리는 노후에 홀로 외로움을 체험하고 있나 봅니다. ~^^~
네에 그것도 좋은말씀이네요.
외로움에 시달린다기보다
그런 외로움을 체험한다는 말이
오히려 좋습니다.
저의 외로움과의 대화는 상대가 없고
저의 고독과의 대화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인생 여정에
아직도 남은 삶을 갈망 하고 싶고
남은 삶을 갈망 하는것은
아직도 남은 소망을 갈망하고 싶고
남은 소망을 갈망 하는것은
아직도 남은 그리움을 갈망하고 싶고
남은 그리움을 갈망 하는것은
아직도 가슴속에 사랑하고픈
마음을 간직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절창입니다.
여의하지 않으면 노래라도 부르며 사는거지요.
제가 한글 공부를 하면서 외로움하고 고독이 뭐가 다르냐고 어학원 선생님한테 여쭤봤던 생각이 나네요.
외로운건 보이고 고독한건 보이지 않는거 라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맞는거 같으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언어가 아날로그라서요
케이스마다 다르지요.
쓸쓸하다는 말도 하는데
언어생활을 함께 해야 공감대가 넓어지겠지요.
외로움과 고독이 무엇이 다른지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두 가지를 분석 하시는 석촌님의
지적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합니다.
석촌님에게서 배우는
문학적 소양이 교양과목 같아서
저에게는 얼마나 큰 소득인지
늘 감사드려요^^
부끄럽습니다.
그냥 이렇게 어울려 보는거지요.
오늘, 또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읊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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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고독, 머리 깨지라고 비교하지 말고
'거기서 거기', '오십보 백보'라고 말씸해 주세요. 석촌 형님!
네에 그렇기도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