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담주 일욜에 울집 김장하는대 엄마가 너랑 가치 놀러오래."
순식간에 비워낸 우동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남은 갑자기 생각난듯 말을 꺼냈다.
개념녀답지 못하게 우물쭈물하는 여자를 보며 한남은 말을 이어갔다.
"우리 엄마가 널 부려먹을까봐 그래?
우리 엄마 만나봐서 알자나...우리 엄마 조은 사람이다?
글공, 김장은 전날이 힘들지, 당일은 축제다 축제...
엄마랑 고모가 미리 절여놓은 배추에 속넣는 것만 좀 돕다가 보쌈이나 먹고 오는 거지."
한남은 보쌈먹을 생각에 신이 난 듯 침을 튀기며 말했다..
"울 집에 점수 딸 수 있는 조은 기회야.."
한남의 말에 개념녀는 마음이 흔들렸다.
"오늘 이쁘게 하고 왓네"
한남의 칭찬에 개념녀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한 보람을 느꼈다.
"근대 립스틱이 좀 진한 거 가태. 우리 엄만 수수한 스타일을 조와하는데."
한남의 본가가 있는 부산을 향해 아반떼는 이른 아침의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흰 눈 사이로~ 아반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허다~♬
운전대를 잡은 한남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때이른 캐롤을 불러댔다.
"허걱뚜! 무슨 우동이 하나에 삼천오백원이야!"
휴게소 벽에 빼곡히 적인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보던 한남은 기겁을 하며 말했다.
"대전역 앞 우동은 삼처넌이면 먹는댕..."
한남은 쓴디쓴 입맛을 다셨다.
립스틱 색깔이 진한 것 같다는 한남의 충고를 잊지 않은 개념녀는 휴게소 화장실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운전하느라 고생했지?"
"아이고, 우리 아들 얼굴이 반쪽이 다 됐네"
"개념녀야 오랜만이구나"
한남의 가족은 개념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화려한 색의 자수가 놓인 멋스런 청바지를 입은 한남의 고모님도 계셨다.
한남 어머니는 한사코 밥부터 먹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한남은 휴게소에서 먹고 왔다며 가볍게 물리쳤다.
곱게 깎은 과일이 담긴 접시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둘러앉았다.
결혼 말이 오간 후, 두어 번 만난 적이 있기에 이미 충분히 마친 호구 조사 대신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갔다.
앞선 만남으로 잘난 한남이의 짝이 되기엔 좀 부족해 보이지만 그럭저럭 괜찮다는 평가를 받은 터였다.
과일을 먹고 나자, 개념녀는 바로 김장 전선에 투입되었다.
어머니가 꺼내주신 몸빼로 갈아입고 나온 개념녀를 보고 한남은 제법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전날에 절인 배추를 찬물로 헹구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개념녀가 배추를 헹궈 넘기면, 고모님이 받아 물이 잘 빠지도록 체에 널어놓았다.
개념녀가 배추를 헹구는 모습을 탐탁치 않게 바라보던 한남의 어머니는 개념녀를 밀어내고, 자신이 배추를 헹군다.
요즘은 다들 절인 배추를 사서 쓴다는 고모님의 말에
절여서 파는 배추로 담근 김치는 쉽게 무른다며 한남의 어머니는 목소리를 높였다.
한남은 자신도 돕겠다며 쿰척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고춧가루가 든 플라스틱 통을 발로 차서 엎고 말았다.
한남은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고 거실로 물러났다.
개념녀에겐 쪽파, 마늘,생강,무등 양념에 들어갈 속재료를 다듬고 씻는 역할이 새로이 주어졌다.
이른 겨울에 채소들을 찬물에 씻고 있자니 손이 몹시 시려온다.
재료 씻기를 끝낸 개념녀는 곰돌이 채칼로 무를 썰어내기 시작했다.
안전 손잡이를 끼고 하니 생각만큼 잘 썰어지지 않는다.
결국 손잡이를 빼고 하다 어마무시한 칼날에 손가락을 베었다.
하얀 무채에 빨간 피가 스며든다.
"이그, 조심 좀 하지"
한남의 엄마는 안방 문갑 속에 있는 빨간약과 대일밴드를 가져오라며 한남을 부른다.
거실쇼파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일베를 하던 한남이 쿰척거리며 일어났다.
가스렌지 앞에서 찹쌀풀을 쑤던 한남의 어머니가 개념녀를 불러세웠다.
개념녀는 찹쌀풀의 적절한 농도에 대한 어머님의 말씀을 새겨 듣는다.
한남의 어머니는 노련한 솜씨로 양념을 배합했다.
빨간 다라이에 그득하게 쌓인 양념이 참으로 맛깔스런 빛깔을 갖추었다.
한남의 어머니가 양념맛이 어떤지 좀 보라며 한남을 불렀다.
배춧잎을 찢어 양념에 버무려 한남에게 건넨다.
한남은 엄지를 척 들어올리며 어머니의 손맛을 칭찬했다.
"근대 좀 짜긴 한 것 가타"
이성적인 한남은 객관적인 평가도 잊지 않는다.
한남의 엄마는 밥이랑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답을 한다.
맛감정을 마친 한남은 고추가 떨어질까봐 서둘러 부엌을 떠난다.
자칭 할말은 다하지만 그래도 뒤끝은 없는 성격이라는 한남의 어머니는 가끔 곤란한 질문을 했다.
개념녀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답했다.
활달한 성격의 고모님이 펼쳐놓는 농담에 가끔 웃음꽃이 핀다.
한남이의 엄마는 손이 커서 괜한 사람들까지 고생을 시킨다는 고모님의 말엔
많이 해서 나눠먹으면 더 맛있다는 개념녀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몇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산같이 쌓인 배추 속을 채우고 나니, 개념녀의 몸은 물먹은 스폰지처럼 축쳐졌다.
김치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김치통을 옮기는 일은 한남이 맡았다.
힘쎈 아들이 있으니 일이 수월하게 끝난다며 고모님이 한 마디 거든다.
한남의 어깨가 으쓱해진다.
개념녀가 온통 씨뻘건 양념이 묻은 그릇들을 설거지 하는 동안, 한남의 어머니는 수육을 삶았다.
수육 삶는 냄새가 풍겨오자 한남은 쿰척거리기 시작한다.
학원 일요일 특강에 갔다는 한남의 남동생이 다행히 시간맞춰 집에 돌아왔다.
겉절이와 수육으로 풍성한 한상이 차려졌다.
한남은 볼이 터져라 수육을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남의 어머니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른 듯하다.
경상도 상남자인 한남의 아버지와 동생또한 별 말없이 먹는데에만 집중했다.
얼추 식사가 끝나자 한남의 어머니는 개념녀가 사온 한라봉과 호두파이를 후식으로 내어놓았다.
얼마전 검강검진에서 한남의 아버지에게 당뇨가능성이 발견된 후론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이 곁들여졌다.
"아부지가 당뇨래?"
여전히 수육을 공략중이던 한남은 고개를 들어 금시초문이라는 듯 물었다.
그런 한남도 결혼만 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가 될 터였다.
한남의 아버지는 기껏 사온 선물을 가지고 뭐라한다며 역정을 냈다.
그 바람에 1:9가르마를 타서 곱게 널어놓았던 머리가 한 가닥 흘러내렸다.
상을 치운 후, 앞치마를 고쳐매고 싱크대에 다가서는 개념녀를 본 고모님이 설거지는 안 해도 된다며 밀어내었다.
한남이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며 일어선다.
한남의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남의 어머니는 손이 큰 사람답게 겉절이와 수육을 넉넉하게 담아 한남과 개념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한남의 손엔 두 개, 개념녀의 손엔 한 개의 쇼핑백이 들렸다.
"자기, 오늘 고생 만앗어"
돌아오는 아반떼 안에서 한남이 개념녀의 노고를 치하했다.
다정스런 한남의 말에 개념녀의 피로가 어느 정도는 풀리는 듯했다.
"근댕, 밥 먹을때 어른들께 좀 살갑지 못햇던 것 가태"
이어진 한남의 말에 개념녀는 울컥해서 한 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깟 김장하는게 얼마나 힘들다고 생색이냐?"
한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더 이상 말이 길어지면 오늘의 고생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생각한 개념녀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개념녀는 고개를 돌려 창 밖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김장하고 오는 길에 와랄랄라까지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구랴..
동사방에 어느 정도까지 수위가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소;
첫댓글 나한테걸렸으면 저한남 뼈도못추렸을텐데 ㅎㅎ
어휴 시발
하....울엄마같아서 눈물나
2...
와랄랄라까지ㅋㅋㅋㄱㄱㅋㅋㅋㅋㅋㅋ
고추 잡아뜯고 싶다
ㅅㅂㅋㅋㅋ
아 개빡쳐
ㅅㅂ
아..
결혼 전에는 자기 아빠 당뇨 있는지 없는지 노관심이면서 결혼하고 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