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北 회담의 빅딜:한국, 제2의 체코가 되다※
주한미군이 美中北 회담의 빅딜: 한국, 제2의 체코가 되다
2017년 12월20일-대한민국 최후의 날
美中, 美北 빅딜
한국이 자위적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核人從 세력(북한의 핵개발을 돕고 인권탄압을 방조하고 종북과 손잡았던 세력)은 갑자기 親美的으로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核 없는 세계 정책을 추진하는 데 이에 逆行하는 것이다.' 오바마의 체면을 봐주다가는 한국이 敵의 핵폭탄을 맞을 판이다. 미국은 정책이 달린 문제이지만 한국은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이미 미국 지도층에선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과 함께 이게 불가능할 경우에 대비, 美中빅딜, 美北빅딜 안이 논의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자는 이야기이다. 북한의 요구사항은 필연적으로 한미동맹 해체와 적화통일로 가는 여건 조성책이 될 것이므로 한국의 안전과 자유를 약화시키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美中빅딜, 美北빅딜은 협상과정에서 한국을 구경꾼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핵보유국들은 핵없는 한국을, 아무런 카드가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길 것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반대하였다. 미국은 그러한 한국을 배제하고 제네바에서 북한과 직접 담판을 지었다. 제네바 협약에서 한국은 봉이 되었다. 북한에 대한 原電 건설 등 부담을 거의 한국이 지고 말았다. 이는 군사적 조치를 반대하고 비굴한 평화를 선택한 代價였다. 제네바 합의가 북한 핵문제 해결 방식을 '협상'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결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허용하고 말았으니 한국으로서는 自業自得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갖지 않으면 중국 북한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한국을 무시할 것이다. 미국 지도부는 겉으론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자위적 핵무장도 할 수 없는 나라, 사드 배치도 질질 끄는 동맹국을 더 이상 고려해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은 이미 미국으로부터 경멸 받는 나라가 되고 있다.
체코와 조선의 운명
강대국은 힘 없는 나라는 버리고 힘 있는 나라는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체코의 독일인 거주 지역을 수복하기 위하여 쳐들어가겠다고 하니 유럽의 4대 강대국은 뮌헨에서 회담을 열어 체코의 운명을 결정하였다. 이 회담에 체코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동맹국인 프랑스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독일군이 체코를 공격해도 군대를 보내어 돕지 못하겠다고 통보하였던 것이다. 동맹국에 버림 받은 체코는 프랑스와 영국이 자신들을 독일에 넘기는 것을 구경만 했다. 미국에 버림 받은 한국이 이런 운명에 처해질지 모른다. 핵무기 없는 한국, 反美的인 한국, 분열된 한국, 親中化된 한국을 협조적인 일본처럼 아낄 리가 없다. 한국이 핵무장 카드를 포기하면 중국 북한은 물론 미국에 대하여도 압박 수단이 없어진다. 미국은 옛날 애치슨 선언에서 밝혔듯이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은 일본처럼 死活的인 중요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 반미정권이 들어서면 더욱 그런 계산으로 기울 것이다.
러일전쟁의 강화 회담을 주선한 이는 시오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일본 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신흥 아시아 강국을 좋아하였다. 미국 남성미의 상징인 루스벨트는 일본의 尙武정신을 존경한 듯하다. 미국이 주선하여 포츠머스에서 열린 회담에서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조약의 제1조는 이렇다.
<러시아 제국은 일본 제국이 조선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또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이 조약이 맺어지기 두 달 전인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密約을 맺어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양해하였다. 조선(대한제국)은 두 회담에 의하여 체코처럼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핵없는 한국은 북한의 인질이 될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소외된 美北, 美中 빅딜에서 한국의 國益은 치명적으로 희생될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중립화를, 북한은 주한미군의 중립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를 평화협정으로 공식화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인의 反美, 親中, 親北성향과 내부 분열성, 그리고 地政學的 조건 등을 종합하여 미국이 핵전쟁을 각오하면서까지 지키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그러면서도 얄미운 존재라고 판단할 것이다. '적이 핵무장하여도 자위적 핵무장도 못하고 더구나 우리가 배치하려는 미사일 방어망까지 반대하는 사람들을 왜 우리 젊은이들의 피로 지켜야 하나'라는 여론이 미국에서 형성될 것이다. 그럴수록 한미동맹은 형해화되면서 美日 동맹 강화를 서두를 것이다.
2017년 대선에서 핵인종 세력 후보가 한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한미동맹은 결정적으로 금이 갈 것이다. 두 나라 국민 사이, 정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면 핵 없는 대한민국은 핵무장한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북한의 인질로 전락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와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자유를 잃는 길에 접어들 것이다. 富國强兵에 실패하였던 조선, 동맹국에 배신당한 체코의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내년 大選은 굴종이냐 자유냐의 선택이 될 것이다. 2017년 12월20일은 대한민국 최후의 날이 될지 모른다.
미국, 한국을 따돌리다
지금부터는 假想 시나리오이다.
미국 정부(국무부와 국방부 인사들)는 2016년 들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본토의 안전이 위협 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나라이다. 더구나 북한정권과 같은 불량국가가 미국 등 유엔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모두 핵무장국이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은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북한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경제 제재, 특히 돈줄을 죄는 금융 및 무역 제재, 정보 유입 작전, 외교적 고립, 중국에 대한 추궁과 압박, 사드의 한반도 배치 등 방어망 건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론 이용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먹히지 않을 때는 쿠바 식 해상봉쇄나 예방 폭격 식의 군사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다.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의 군사적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서울이 문제가 된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내세우면서 군사조치를 반대할 경우 미국 단독의 對北공격은 어려워질 것이다. 군사적 해결책이 막히면 미국은 중국이나 북한을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이다. 이럴 경우 군사적 조치를 방해한 한국은 美北, 美中 담판에서 소외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國益이 희생되는 것을 뜻한다.
중국과 북한의 한반도 정책에서 利害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 내지 약화이다. 한국을 따 돌린 美中北 회담에선 그런 방향의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 핵의 완전 폐기라는 목표를 포기한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장거리 미사일 실험 및 실전 배치 보류, 핵물질 해외 확산 금지, 추가적 핵 실험 중지를 약속한다면 미국은 미북 평화협정을 논의하고 북한과 수교하며 경제 제재를 푸는 문제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다.
*북한은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논의하는 회담에 동의하지만 평화협정 논의엔 한국을 제외시킬 것을 逆제의, 미국이 수용한다.
*중국의 중재 하에 美北 회담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김정일이 한국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합의한 6·15 및 10·4 선언문을 내어놓고 이를 기초로 협상하자고 한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의 1, 2항을 인용, '한국도 통일문제를 외세의 개입 없이 해결하는 데 동의하였으므로 미국은 통일문제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다만 평화협정은 휴전협정 체결 당사국인 미국, 중국, 조선 3자가 논의하자'고 제의한다. 미국이 '한국군은 유엔군 소속이었으므로 휴전 당사자이며 평화협정 논의 자격이 있다'고 반론한다. 이에 북한은 10·4 선언의 4항을 들이민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북측은, '노무현 대통령도 3자 회담에 동의한 것인데 3자란 미국 중국 조선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중국과 북한은 3자간 평화협정 논의와 함께 '북한의 핵동결'과 주한미군 위상 변경을 맞바꾸자고 제안한다. 주한미군을 '對北 적대적' 성격에서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평화유지군' 또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균형자'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북한 측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포기한 주한미군이라면 통일 이후에도 잔류할 수 있다'고 한다. 북측 대표는 '주한미군 위상 변경은 2000년 6월 김정일 김대중 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다'고 당시의 자료를 제시한다.
중국, 한반도의 비핵화 및 중립화 제의
*법치와 합리성을 중시하는 미국 대표는 북측이 내던진 문서 자료에 당황하여 말문이 막힌다. 이 틈을 타서 중국 대표가 끼여든다.
'美北 사이의 異見을 해소하고 핵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방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비핵화 및 중립화 통일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등 그 어느 나라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으며 주변국은 중립화를 보장한다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남북한이 통일한 후 어떤 정치제도를 가질 것이냐 하는 문제는 남북한 주민들이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 한국의 중립화를 보장하기 위하여는 한미동맹 조약뿐 아니라 中朝우호조약도 파기할 용의가 있습니다.'
*미국 대표가 '이 문제에는 한국 정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 대표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민족 전체의 이익은 核을 가진 우리가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오만하게 나온다. 북한 노동당 정권이 한반도의 민족이익을 대표하는 유일한 정통세력인 것처럼 말한다. 중국 대표도 가세한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평화협정 논의 과정에서 배제하기로 한 것은 이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핵을 가진 우리 세 나라가 잘 알다시피 핵을 갖지 못한 나라는 이런 대전략 회의에선 발언권이 없는 것 아닙니까. 은행에 殘高가 없는 사람이나 주식을 갖지 못한 사람은 옆방에서 조용하게 있어야죠.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외교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외교의 경험을 가진 나라가 우리 중국 아니겠습니까. 우리끼리 합의하고 한국엔 통보만 합시다.'
*미국 대표는 '본국과 논의한 뒤 1주일 뒤 우리의 입장을 내어놓겠다'면서 며칠 간 시간을 번다. 그는 워싱턴에 중국과 북한의 제안을 보고한 뒤 外交史에 밝은 보좌관에게 자료 조사를 지시하였다. 다음 날 그의 책상 위엔 두 가지 보고서가 올라왔다.
스탈린과 아데나워
첫째 보고서는 스탈린이 던졌던 독일 중립화 통일 제안에 대한 요약이었다.
<1945년 5월 연합군에 항복, 美英佛蘇의 4대국 지배하에 들어간 독일은, 소련 점령하의 東獨과 美英佛 점령하의 線으로 나눠졌다. 冷戰이 격화되면서 한반도처럼 동서독은 통합이 어렵게 되었다. 美英佛 점령하의 서독 지역에서 지도자로 등장한 아데나워 수상은 한국의 李承晩 대통령처럼 서독을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독립시키려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아데나워는 主權 회복 과정에서 서독을 재무장,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시키고, 프랑스와 화해하여 유럽 공동체를 구성하는 노선을 추진하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를 구경만 하지 않았다. 서독의 주권회복에 즈음하여 유럽방위공동체(EDC) 조약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10일 스탈린은 서독을 관할하던 미영불에 '스탈린 노트'로 유명해진 覺書를 보냈다. 동서독을 통합한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의 핵심은 통일된 독일이 중립국으로 남아야 하며 그렇게 하면 국방에 필요한 정도의 재무장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중립화를 약속하고 동서독 통일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재무장도 허용하겠다는 소련의 제안은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아데나워는 스탈린의 음모를 간파하였다.
그는 美英佛 정부에 <서독은 스탈린의 제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 美英佛蘇 4대국이 서독을 무시하고 무엇을 결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서독 안에선 스탈린의 제의에 찬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집권 기독교 민주당 안에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는 여론이 일어났다. 스탈린의 제안은 통일을 중시하는 민족주의 파와 중립지향의 평화주의 파를 다 같이 노린 승부수였던 것이다. 아데나워는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독일의 중립화는 미군을 유럽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되면 유럽은 소련의 막강한 군사력에 종속되어 기독교 문명이 無神論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럽과 독일은 일체가 되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위하여는 통일의 꿈도 잠시 유보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의 아데나워로 불릴 만한 李承晩이 건국 과정에서 左右합작론을 거부한 논리와 비슷하다. 李承晩은 스탈린의 조종을 받는 남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합작하여 통일정부를 구성하면 한반도 공산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李承晩은 공산주의를, 상종할 수 없는 反문명 세력으로 보았고 아데나워도 소련 공산주의를 反유럽, 反기독교적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아데나워는 통일 지향의 민족주의 세력을 설득하기 위하여,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오델-나이세 선 印의 舊독일 영토를 포기하는 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동독은 소련의 압박에 따라 오델 나이세 線을 동독과 폴란드의 국경선으로 인정하는 조약을 폴란드와 맺었던 것이다. 아데나워는 자유를 통일보다 더 높은 가치로 수용하였지만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서독이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國力을 충실히해가는 과정에서 東獨을 자연스럽게 牽引, 흡수하는 장기적 전략을 썼다. 아데나워는 서독을 서방세계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음모에 말려들지 않았다. 중국은 韓美日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가 한국이라고 판단, 통일과 핵문제 해결을 미끼로 한국을 유혹, 동맹체제에서 탈퇴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북한이 합작한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은 '주한미군 중립화'와 한 짝을 이룬다. 그들은 한국내의 친중 친북파를 조종하므로 미국이 이를 받기만 하면 강력한 대중운동을 통하여 한국의 여론을 '중립화 통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본다.>
김대중-김정일의 주한미군 중립화 密約
동북아의 균형자?
미국 대표는 보고서를 읽고 생각에 잠긴다. 중국과 북한의 제안이 스탈린 노트의 한반도 판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약싹 빨라 얄미운' 한국을 거추장스럽다고 회담에서 배제하였더니 미국 혼자 힘으로는 중국 북한을 동시에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實感도 한다. 미국 대표는 두번 째 보고서를 읽어내려갔다. 보좌관이 한국 잡지에 난 기사를 밤새 번역한 것이었다. 기사 제목은 '김정일-김대중 음모'였다.
<國情院長(국정원장)이던 임동원씨는 2000년 6월4일 김대중-김정일 회담에 앞서 비밀방북하여 김정일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서 '남측은 북측의 적화통일과 남침위협에, 그리고 북측은 흡수통일과 북침 위협에 서로 시달리고 있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아래 제안을 하였다고 회고록에서 공개하였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서도 북측이 전향적으로 사고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북측은 흡수통일과 북침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김정일에게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북한정권이 내부통제용으로 선전하는 '北侵위협'을 임동원씨는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韓美동맹군이 北侵(북침)을 꾀한 사실이 있는가? 임동원씨의 말대로라면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게 된다. 南도 北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구경꾼의 입장에 선다는 것 자체가 背任(배임)이다. 주한미군의 중립화와 평화유지군化라는 發想(발상) 자체가 대한민국의 입장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이 敵(적)을 대함에 있어서 조국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대중이 임동원을 통하여 김정일에게 제안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란 말은 그 전에 북한군판문점대표부 이찬복이 한 말-“주한미군의 역할이 對北억제로부터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과 일치한다. 김대중씨는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無力化(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개발한 ‘균형자와 안정자 역할’이란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인 다음 이를 김정일에게 다시 던진 셈이다. ‘균형자와 안정자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아니고 對北억지력을 포기한 평화유지군이다. 남북한 사이의 중립군이다. 껍데기 군대이다. 더구나 미국은 그런 군대를 한국에 주둔시킬 이유가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군철수와 韓美동맹 해체로 이어진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김정일은 이렇게 和答(화답)하였다.
'김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주둔이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중략).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모든 안보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임동원과 김정일이 一瀉千里(일사천리)로 異見(이견) 없이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하여 事前조율을 하는 장면이다. ‘찰떡궁합’이란 표현이 생각난다.>
여기까지 읽은 미국 대표는 쓴 웃음을 지었다. 부시 대통령 때의 안보보좌관 및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사 라이스가 퇴임 후에 쓴 회고록이 생각 났던 것이다. 유명한 러시아 전공 교수 출신인 라이스를 만난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강의를 장황하게 한 것을 놓고 비꼰 대목이 기억 났다.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 사람들은 균형자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구나.'
김대중,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진 줄 몰랐다.”
미국 대표는 계속 읽어갔다.
<2000년 6월14일 김대중, 김정일이 평양에서 만났을 때 김정일-임동원 사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본 ‘주한미군 지위 변경’은 남북한의 최고 권력자 사이에서 하나의 密約(밀약)으로 굳어진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김정일은 김대중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하기로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임동원씨는 (김정일이) 미국측에 전한 말은 '미군의 지위와 역할을 변경하여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였다고 회고록에 썼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정상적인 국가관을 가진 이라면 駐韓미군의 無力化(무력화)를 요구한 김정일의 말을 듣고 화를 내든지 이렇게 말하였어야 했다.
'그런 평화유지군은 1개 대대로 족한데, 1개 대대로 어떻게 남북한 사이 전쟁을 막습니까? 미국 정부가 미쳤다고 그런 제안을 받습니까? 주한미군은 6·25 남침과 같은 재도발을 막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이 문제는 남북간에 논의할 성질이 아니고 한미간에 결정할 문제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최근 나온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김정일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지난번 김 위원장을 만나고 온 임동원 특사로부터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를 전해 듣고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민족문제에 그처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실 줄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군이 있음으로써 세력균형을 유지하게 되면 우리 민족에게도 안정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주한미군에 대한 견해’, 즉 韓美동맹 해체를 겨냥한, 敵將의 주한미군 중립화-無力化(무력화) 제안에 감동하여 '탁월한 식견'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김대중 회고록’은 그러나 임동원 회고록과는 달리 김정일이 이 자리에서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미군 주둔에 동의하였다는 대목이 빠져 있다. ‘김대중 회고록’만 읽어보면 김정일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통일 후까지 있어도 좋다고 한 것처럼 이해된다. 임동원 회고록의 기술이 더 정확한 것은 물론이다.
김대중의 同調(동조)에 기고만장해진 김정일은 '대통령과 제가 본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그런가, 어쩐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한 것입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묻자 김정일은 '전주 김씨'라고 대답하였다. 김 대통령은 '전주요? 아,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니오!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인 셈이지요'라고 했다.>
반역
미국 특사는 추리소설처럼 재미 있게 읽었다. 김대중의 노벨 평화상 뒤에 이런 스토리가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한민국의 언론 자유는 살아 있구나 하는 감회도 있었다. 권력자의 역적모의를 폭로하고도 무사한 언론이 있다면 그런 나라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도 지닌 게 아닐까? 미국 대표는 침 묻은 손가락으로 보고서를 넘기면서 읽기에 열중하였다.
<김대중은 이로써, 동맹군에게 알리지도 않고 敵前(적전)에서 동맹군을 無力化시키는 합의를 敵將(적장)과 몰래 한 我軍(아군)의 사령관이 된 것이다. 주한미군 無力化 합의는, 대한민국의 생명줄인 韓美동맹을 사실상 해체하자는 것이다. 국군통수권자를 겸하고 있는 대통령에 의한 이보다 더한 利敵(이적)행위는 人類(인류)역사상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그 1년 전(1999년 4월15일) 林東源 당시 외교안보수석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조찬강연에서 “駐韓美軍에 대해 북한의 태도변화 과정 등을 언급한 것이 마치 정부가 駐韓美軍의 지위 변경을 논의하려 하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져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었다. 1년 후 김대중과 김정일은 林씨가 부정하였던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을 논의하고 합의까지 한 것이다. 1년 전 김대중, 임동원의 ‘주한미군 지위 변경’ 관련 발언은 잘 계산된, 김정일에게 보낸 일종의 ‘同意書(동의서)’였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김용순이 미국측에 ‘주한미군 계속 주둔 용인’의 뜻을 전달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북한노동당 김용순 국제부장과 미국 국무부 아놀드 캔터 정무차관 사이의 회담은 1992년 1월22일 뉴욕에서 열렸다. 이 회담에서 김용순은 미국과의 관계를 改善(개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캔터 차관은 국제적인 위기로 치닫고 있던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하여 부시 행정부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 회담 직후 캔터 차관은 玄鴻柱(현홍주) 당시 駐美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 내용을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玄鴻柱 전 대사는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김용순 발언을 캔터 차관으로부터 전해 듣고 본국에 보고했다”고 한다. 퇴임한 아놀드 캔터씨에게 月刊朝鮮 기자가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된 일이라, 그리고 긴 이야기 중에 나온 것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한다. 김용순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Kim Yong Soon did not exclude the possibility of stationing of US troops in Korea following unification.)는 표현으로 정리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美北협상에서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제대로 된 만남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金大中 대통령은 김정일과 만나고 온 직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통일된 후에도 東北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북측에 설명했습니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한 저의 설명에 북측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면서 이것이 이번 평양방문의 큰 성과중 하나라고 말씀드립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의 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천명하고 싶습니다.”
김대중씨는 이 연설에서 김정일이 이해를 보인 주한미군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버린 중립군(또는 평화유지군)이란 사실을 생략하였다. 그럼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김정일이 지금의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도 좋다고 한 것처럼 이해하도록 誤導(오도)하였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김정일과 만나고 온 후 국내외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김정일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에 동의했다고 선전하면서 이를 최대 성과로 꼽았다.
2000년 9월3일 ‘방송의 날’ 기념 방송3社 공동초청 특별대담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南北 頂上회담時 자신과 金正日 사이에 駐韓美軍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다시 한 번 밝혔다.
“(김정일의) 답변이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金正日 위원장이 ‘나도 남쪽신문에서 대통령이 말씀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대통령이 나하고 똑같이 민족의 장래를 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큰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駐韓美軍이 있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이번에 북한에 가서 그 문제를 확실히 한 것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문제라든가 우리의 국가이익, 東北아시아의 안정 등 큰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은 여기서도 김정일의 조건부 발언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김대중씨가 은폐한 김정일의 본뜻을 정확히 전달한 이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었다. 그는 2001년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洪思德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하였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金正日 위원장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대통령께서 그런 주장을 하시는 것을 우리가 읽었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용순이 아놀드 캔터를 만나서 최초의 美北(미북) 고위급회담을 할 때 ‘주한미군은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는 점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敵對(적대)관계에 있는 미군이 있으라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미국과 북한 간에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敵軍(적군)으로서가 아니라 남과 북 사이에서, 또는 주변세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고······’, 그러니까 밸런싱 롤을 말하는 것 같아요. 또 안정의 역할, 스테이버라이징 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군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지정학적 위치가 어떻고 한참 이야기를 했어요.”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군대가 아니다. 오로지 북한군의 再남침을 저지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주한미군은, 범인을 잡으러 온 형사이지 범인과 피해자를 말리고 화해를 붙이는 거간꾼이 아니다. 김대중과 김정일은 평화, 안정, 균형자, 안정자 같은 좋은 말을 組合(조합)하여 인식의 혼란을 야기한 다음, 주한미군의 존재 목적을 거간꾼으로 전락시키려 한 셈이다.
6·15 선언 2항은 김대중식 연합제안과 김정일의 연방제안을 절충한 통일방안에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식 연합제안은 북한 연방제안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합의는 사실상 연방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 한다. 연방제안은 주한미군 철수용이다. 연방제를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해체에 합의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김대중, 김정일은 ‘주한미군 無力化(무력화)’ 密約(밀약)을 실천적 약속으로 만들기 위하여 6·15 선언 2항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의 폐기를 선언하지 못하였다. 韓美연합사 해체 합의는 시기를 연기시켰다. 남북한 좌익들은 ‘6·15 선언 실천’을 ‘미군철수와 赤化(적화)통일’의 同義語(동의어)로 쓰고 있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합작하여 대한민국을 함정으로 빠뜨린 게 ‘6·15 선언’인데 이의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이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김대중 密約(밀약)은 한국에서 代(대)를 이어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씨는 무슨 계산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오해이다. 그는 반공이 國是(국시)이던 1970년대부터 公言(공언)하여 왔던 ‘연방제-외군철수’ 약속을 대통령職(직)을 이용하여 실천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한국의 유권자를 믿을 수 없다."
다 읽은 미국 대표는 보좌관을 불렀다.
'아주 흥미롭게 읽었어요. 미국 민주당원들이 존경하던 김대중이 진정한 민주투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핵을 개발하는 적에게 4억5000만 달러를 주도록 한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traitor? patriot? 문제는 한국입니다. 敵이 좋아하는 사람을 골라서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국민들이 있으니까요. 한미동맹이 과연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속될 수 있는지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냉전 시절에 미국 대통령이 소련 서기장에게 몰래 NATO 해체를 약속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야 탄핵되거나 암살되었겠지, 뭐. 한국인들이 그럼에도 좌파정권 10년을 거친 뒤 각성하여 보수 정권 10년을 내세워 궤도 수정을 시도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韓美日 동맹은 경제적으론 막강합니다. 세계 1위, 3위, 11위 경제대국의 동맹체 아닌가요?'
'대표님,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이 韓美日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데 위험성이 있습니다. 親中사대주의 성향이 강한데다가 무조건적인 反日증세까지 있어서 한미일 삼각동맹까지 균열시켜요. 1950년 애치슨 선언이 생각 납니다.'
'보좌관, 그게 무슨 말이요?'
'애치슨 국무장관이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의 서태평양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켰지 않습니까? 스탈린과 김일성이 이 연설을 분석, 남침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겠다고 오판을 했고요.'
'아, 그 유명한 연설 말이군. 그런데 김일성의 남침 보고를 받은 트루먼이 욕설을 내뱉으면서 미군 파병을 결단했잖아요.'
'대표님, 사실 트루먼의 파병 결단은 전략적 계산을 무시한 獨斷이었습니다. 우리 합참은 그 1년 전에 이미 한국은 지킬 가치도, 지킬 이유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고 판단하여 주한미군을 철수시켰지 않습니까. 불안해진 이승만 정부가 군사지원을 요청해도 워싱턴은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한국을 포기한 거지요. 물론 한미동맹 조약도 없었고요.'
'그렇다면 트루먼이 잘못 한 건 가요? 그래서 15만 명의 미군이 죽거나 다치게 만든 것인가?'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전략적 타산을 한 게 아니라 위대한 도덕적 결단을 내린 겁니다. 힘 센 공산전체주의 국가가 힘 없는 주권국가를 집어삼키는 것을 방치하면 제2의 히틀러, 제2의 체코가 생기고 3차 대전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본 것이지요. 미국의 국가이익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자유, 인권, 평등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김일성이 그때 미국의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전면 남침을 하지 않고 월남식의 우회 침투 작전으로 나왔더라면 미국도 大軍을 보내는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大國의 자존심, 그리고 트루먼의 우직한 성격을 건드린 김일성이 실수한 거지요.'
'김정은이 장거리 핵미사일 실험으로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한 것도 그 할아버지의 全面남침과 같은 정면 도발 아닌가?'
'좋은 비유인데요, 오바마 대통령도 트루먼처럼 화를 냈지요. 그런데 문제는 역시 한국이었습니다. 미국이 군사적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한국의 협조를 구하였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아시잖아요?'
'정보가 새어나가니 한국의 언론과 국회가 전쟁 반대를 부르짖고 반미세력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당하고 한국 대통령까지도 武力 사용에 반대한다고 나왔지요. 한심하게도.'
'1950년엔 한국에 이승만이 있었지만 2018년의 한국엔 000가 있지요.'
'그 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요?'
'김대중 노무현 노선을 계승한다면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공약,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좌파 운동권 출신이죠. 당선된 뒤에 현실을 파악하고 상당히 우경화하였는데도 그 정도입니다. 이념적 전향을 했는지도 애매합니다.'
'중국과 북한이 던진 한반도 중립화 방안과 주한미군 위상 변경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해요?. 外交史 전공 학도로서.'
'대표님, 이건 전공자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트루먼이 동아시아 전문 학자였습니까? 이건 善과 惡의 문제입니다.'
'아니 외교관이 종교인처럼 이야기하네? 우리에겐 國益이 있을 뿐이에요.'
'트루먼이 대표님처럼 생각하였더라면 미군 파병은 없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한국은 한 달 안으로 공산군에 점령당하였을 것이고, 한반도는 소련이 잡은 短刀가 되어 일본을 위협, 항구적인 政情 불안으로 경제부흥은 불가능하였을 겁니다. 미국은 애치슨 선언에 따라 알류샨 열도~일본~필리핀 방어선을 강화하는 데 그쳤겠죠. 1950년 가을 대만은 중국에 점령당하였을 겁니다. 한국전이 일어나기 전엔 미국도 대만을 군사적으로는 지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이 문제이지요.'
'중국이 대만을 점령, 남중국해를 통제, 석유 수송로를 위협하므로 세계 무역 질서가 불안해져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거란 말인가?'
'그 이상이죠. 미국은 고립주의로 돌아가니 유럽까지도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갔을 겁니다. 서독이 親서방 노선에서 벗어나 중립화하든지 소련으로 기울었다면 유럽은 끝났지요. 트루먼이 한국전 파병을 결단하지 않았더라면 1991년 소련 해체는 없었든지 오래 걸렸을 겁니다.'
'소련이 무너진 건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부로 자유의 바람이 들어간 덕분이지.'
'대표님도 참, 한국의 자칭 평화주의자들처럼 이야기하네요.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들' 말입니다. 한국의 애국자들이 자위적 핵무장을 주장하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소련은 핵무기를 가졌지만 冷戰에서 스스로 무너졌다고. 그러니 북한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우리는 하지 말자고. 이게 말이 됩니까. 미국 공무원으로서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할 순 없지만 지금 이 3자 회담에서 한국이 소외된 것도 핵무기가 없어서 아닙니까? 만약 냉전 시절에 소련이 핵무장을 하였는데 미국이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공해서 망해가는 나라는 구제 불능
'그야 미국이 무너지든지 공산화되었겠지, 뭐. 핵전략의 상식 아닌가.'
'대표님, 이 회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2 대 1로는 안 됩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定義(정의)부터 정확히 내려야 합니다. 독재정권의 핵무기이고, 그것도 공산전체주의 세습정권의 핵무기 아닙니까. 악마의 핵무기라는 이야기입니다. 인도나 이스라엘 같은 민주국가의 핵이 아니잖아요? 善과 惡, 천사와 악마의 대결에서 타협이 됩니까? 한국이 다소 비열하고 게으르고 멍청하긴 하지만 인구의 3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 민주국가인 점은 부인할 수 없어요. 트루먼이 살린 나라를 우리가 버리면 천벌 받습니다.'
'보좌관, 실패한 나라는 구할 수 있지만 성공해서 망하는 나라는 살릴 방법이 없어요. 기억 안 나나요? 3년 전 한국의 애국자들이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이승만, 트루먼 동상을 세우는 운동을 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퇴임 직전에 방미중인 미국 대통령과 함께 두 전쟁 지도자 동상 제막식을 한 날을?'
'왜 그 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韓美 양국 대통령이 동상 제막식을 하는데 참석했던 친북 정당 국회의원들이 우~소리를 지르면서 일어나 '양키 고우 홈'을 외치고 퇴장하는 장면이 CNN으로 중계되어 미국에서 反韓 시위가 일어난 사건, 잘 알지요. 자기 나라를 살린 은인을 원수처럼 여기는 한국인을 혼내야 한다면서 로스앤젤레스 韓人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나 死傷者가 생기고 이게 미국의 강경한 對北정책을 방해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지금 평화롭게 잘 사는 게 자신들이 똑똑해서라고 믿어요. 솔직히 말해서 한국인의 수준이라면 말레이시아 정도가 고작이지요. 아니 그것도 과분합니다. 트루먼, 이승만, 박정희 같은 위인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으로 살력보다 더 잘 산다는 감사의 마음이 없는 나라에요.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이런 감정이 이런 회담에 영향을 끼치면 안 되는데, 나도 조심해야지...'
'대표님, 그래도 한국을 버리면 후회합니다. 일단 이 판을 깨야 합니다. 3자 회담은 안 됩니다. 선과 악 사이에서 중립은 안 됩니다. 이승만이 이야기했다고 하잖아요. 공산주의는 호열자와 같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휘테카 챔버스나 조지 오웰 같은 知性이 한 이야기도 같잖아요.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다. 이들과 싸울 때는 닮아가면 안 된다. 우리는 머리를 써야 한다고. 핵을 든 악마에게 굴복하는 것은 미국의 건국정신이 아닙니다.'
'보좌관, 수고했어요. 좋은 세미나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은 어때요? 그들의 운명이 그들의 참석 없이 결정되려 하는데, 술렁거리지 않아요? 무슨 소식 없어요?'
'조용합니다. 회담 기사보다는 한국판 월드 시리즈가 더 큰 뉴스에요. 국회에선 무엇이 가장 큰 문제가 되어 시끄러운지 아십니까?'
미국 대표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엇다.
'뭔데요?'
'국방장관이 국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면서 비서와 잡담을 했는데 그것을 엿들은 야당 대표가 발언 취소를 요구하면서 斷食 농성을 하고 있답니다.'
'한국다운 사건이네요, 그런데 무슨 잡담을 했는가?'
'젊은 것들한테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김정은의 핵폭탄을 맞는 게 낫겠다고 농담 비슷한 말을 하였다나요.'
'잘 살면서도 자주국방을 포기한 나라는 머리부터 타락하는 법입니다. 어려운 건 우리한테 맡겨놓고 사소한 데 목숨 거는 정치를 하는군. 그러니 성공해서 망하는 나라는 살리기 힘들 다니까. 하느님도 벌을 줄 때는 알면서 못된 짓을 한 자들을, 몰라서 나쁜 짓을 한 사람보더 더 세게 치신다고 하셨어요. 한국인들은 죽어봐야 죽는 줄 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당해 봐야 합니다.'
'대표님, 핵무기는 당하면 끝입니다. 정신 차릴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그들의 운명이겠지.'
주한미군이 美中北 회담의 빅딜: 한국, 제2의 체코가 되다
이 조약이 맺어지기 두 달 전인 1905년 7월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密約을 맺어 일본이 조선에 대하여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양해하였다. 조선(대한제국)은 두 회담에 의하여 체코처럼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국무부와 국방부 인사들)는 2016년 들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본토의 안전이 위협 당하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나라이다. 더구나 북한정권과 같은 불량국가가 미국 등 유엔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모두 핵무장국이다)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은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먹히지 않을 때는 쿠바 식 해상봉쇄나 예방 폭격 식의 군사적 조치를 검토할 것이다.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경우 북한의 군사적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서울이 문제가 된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내세우면서 군사조치를 반대할 경우 미국 단독의 對北공격은 어려워질 것이다. 군사적 해결책이 막히면 미국은 중국이나 북한을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설 것이다. 이럴 경우 군사적 조치를 방해한 한국은 美北, 美中 담판에서 소외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國益이 희생되는 것을 뜻한다. *중국과 북한은 3자간 평화협정 논의와 함께 '북한의 핵동결'과 주한미군 위상 변경을 맞바꾸자고 제안한다. 주한미군을 '對北 적대적' 성격에서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평화유지군' 또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균형자'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북한 측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포기한 주한미군이라면 통일 이후에도 잔류할 수 있다'고 한다. 북측 대표는 '주한미군 위상 변경은 2000년 6월 김정일 김대중 회담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다'고 당시의 자료를 제시한다.
한국의 아데나워로 불릴 만한 李承晩이 건국 과정에서 左右합작론을 거부한 논리와 비슷하다. 李承晩은 스탈린의 조종을 받는 남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합작하여 통일정부를 구성하면 한반도 공산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李承晩은 공산주의를, 상종할 수 없는 反문명 세력으로 보았고 아데나워도 소련 공산주의를 反유럽, 反기독교적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주한미군의 위상에 대해서도 북측이 전향적으로 사고해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북측은 흡수통일과 북침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김정일에게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북한정권이 내부통제용으로 선전하는 '北侵위협'을 임동원씨는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韓美동맹군이 北侵(북침)을 꾀한 사실이 있는가? 임동원씨의 말대로라면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게 된다. 南도 北도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안보 책임자가 구경꾼의 입장에 선다는 것 자체가 背任(배임)이다. 주한미군의 중립화와 평화유지군化라는 發想(발상) 자체가 대한민국의 입장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이 敵(적)을 대함에 있어서 조국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주둔이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중략). 미국과 관계정상화가 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모든 안보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겁니다.' 김대중의 同調(동조)에 기고만장해진 김정일은 '대통령과 제가 본은 다르지만 종씨라서 그런가, 어쩐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한 것입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본관이 어디냐'고 묻자 김정일은 '전주 김씨'라고 대답하였다. 김 대통령은 '전주요? 아, 그럼 김 위원장이야말로 진짜 전라도 사람 아니오! 나는 김해 김씨요. 원래 경상도 사람인 셈이지요'라고 했다.> 반역 <김대중은 이로써, 동맹군에게 알리지도 않고 敵前(적전)에서 동맹군을 無力化시키는 합의를 敵將(적장)과 몰래 한 我軍(아군)의 사령관이 된 것이다. 주한미군 無力化 합의는, 대한민국의 생명줄인 韓美동맹을 사실상 해체하자는 것이다. 국군통수권자를 겸하고 있는 대통령에 의한 이보다 더한 利敵(이적)행위는 人類(인류)역사상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김용순이 미국측에 ‘주한미군 계속 주둔 용인’의 뜻을 전달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북한노동당 김용순 국제부장과 미국 국무부 아놀드 캔터 정무차관 사이의 회담은 1992년 1월22일 뉴욕에서 열렸다. 이 회담에서 김용순은 미국과의 관계를 改善(개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캔터 차관은 국제적인 위기로 치닫고 있던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하여 부시 행정부의 의지를 전달했다. 이 회담 직후 캔터 차관은 玄鴻柱(현홍주) 당시 駐美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 내용을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玄鴻柱 전 대사는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김용순 발언을 캔터 차관으로부터 전해 듣고 본국에 보고했다”고 한다. 퇴임한 아놀드 캔터씨에게 月刊朝鮮 기자가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50주년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통일된 후에도 東北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북측에 설명했습니다.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한 저의 설명에 북측도 상당한 이해를 보였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면서 이것이 이번 평양방문의 큰 성과중 하나라고 말씀드립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의 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천명하고 싶습니다.” 6·15 선언 2항은 김대중식 연합제안과 김정일의 연방제안을 절충한 통일방안에 합의한 것이다. 김대중식 연합제안은 북한 연방제안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 합의는 사실상 연방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봐야 한다. 연방제안은 주한미군 철수용이다. 연방제를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해체에 합의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김대중, 김정일은 ‘주한미군 無力化(무력화)’ 密約(밀약)을 실천적 약속으로 만들기 위하여 6·15 선언 2항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한 6·15 선언의 폐기를 선언하지 못하였다. 韓美연합사 해체 합의는 시기를 연기시켰다. 남북한 좌익들은 ‘6·15 선언 실천’을 ‘미군철수와 赤化(적화)통일’의 同義語(동의어)로 쓰고 있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합작하여 대한민국을 함정으로 빠뜨린 게 ‘6·15 선언’인데 이의 폐기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정당이 없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김대중 密約(밀약)은 한국에서 代(대)를 이어 실천되고 있는 셈이다. 김대중씨는 무슨 계산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다. 이는 오해이다. 그는 반공이 國是(국시)이던 1970년대부터 公言(공언)하여 왔던 ‘연방제-외군철수’ 약속을 대통령職(직)을 이용하여 실천한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그는 기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대표님,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이 韓美日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데 위험성이 있습니다. 親中사대주의 성향이 강한데다가 무조건적인 反日증세까지 있어서 한미일 삼각동맹까지 균열시켜요. 1950년 애치슨 선언이 생각 납니다.' '좋은 비유인데요, 오바마 대통령도 트루먼처럼 화를 냈지요. 그런데 문제는 역시 한국이었습니다. 미국이 군사적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한국의 협조를 구하였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아시잖아요?' '중국과 북한이 던진 한반도 중립화 방안과 주한미군 위상 변경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해요?. 外交史 전공 학도로서.' '중국이 대만을 점령, 남중국해를 통제, 석유 수송로를 위협하므로 세계 무역 질서가 불안해져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거란 말인가?' '대표님도 참, 한국의 자칭 평화주의자들처럼 이야기하네요.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들' 말입니다. 한국의 애국자들이 자위적 핵무장을 주장하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소련은 핵무기를 가졌지만 冷戰에서 스스로 무너졌다고. 그러니 북한이 핵무장을 하더라도 우리는 하지 말자고. 이게 말이 됩니까. 미국 공무원으로서 한국의 핵무장을 지지할 순 없지만 지금 이 3자 회담에서 한국이 소외된 것도 핵무기가 없어서 아닙니까? 만약 냉전 시절에 소련이 핵무장을 하였는데 미국이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공해서 망해가는 나라는 구제 불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