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나는 막연히 스페인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래선지 마드리드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슴이 설레였다.
첫날은 마드리드를 둘러보았다. 쁘라도 미술관에 들어서자 현지 가이드 K선생이 거기 걸린 그림을 한 점 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야, 벨라스께스, 삐까소, 엘그레꼬 등 낯익은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책에서만 보다가 미술관에서 실제 작품을 보니까 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듯했다. 스페인 문화는 투우와 정열적인 집시들의 춤인 플라멩고만 연상했는데 그 나라에 가보니 과거에 번성했던 대왕국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곳곳에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스페인은 지중해와 대서양사이에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한 나라로 기원전 2세기 로마가 침입하기 전까지 여러 민족이 거쳐 갔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의 지배 속에 기독교가 전래되고, 8세기부터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전쟁에서 기독교가 승리한 후 15세기에 이르러 스페인 통일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계기로 해외로 진출하여 세계 각지를 식민지로 확보하면서 황금기를 맞았으나, 16세기에 들어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과의 계속된 전쟁과 여러 차례의 내전으로 인해 국력이 쇠약해져 갔으며 이로 인해 근대화가 다른 유럽에 비해 뒤처졌다고 한다. 국가의 역사를 말하는데도 우리네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일행은 쁘라도 미술관을 나와서 현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광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돈키호테 동상과 산쵸 판자를 보자 마치 세르반테스의 소설 속의 주인공 돈키호테를 실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책으로만 익숙해 있던 돈키호테의 동상을 보다니 정말 기뻤다. 동상 앞에서 각자 기념 사진을 찍은 후에 팔라시오 왕궁으로 향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왕궁은 지금도 왕실 공식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3000여개의 방이 있는 왕궁내부는 이탈리아풍으로 장식되어 무척 화려했다.
마드리드에서는 무엇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특히 소매치기는 4명이 한 조로 다니면서 관광객의 핸드백을 낚아채간다고 K선생은 틈만 나면 주의를 시켰다. 이성간의 성애도 개방적이어서 공원에서는 물론이고, 거리 아무 곳에서나 서로 부둥켜안고 몸을 부비고 있는 것이 민망하다기 보다는 도리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처럼 감정표현에 자유롭다보니 어쩌면 예술 감각도 뛰어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국내에서 에스파냐어를 보급해려고 답사 겸해서 갔는데, 가서 보니 단지 언어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 곳곳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값진 예술품들은 가슴 속에 불꽃을 지피듯 나의 잠재된 예술혼에 격정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 일행은 왕궁에서 나와 푸에르타 델 솔광장을 둘러본 후에 호텔로 와서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그라나다로 출발하면서 나는 스페인에 꼭 다시 오리라고 다짐했다. 스페인 문화를 좀 더 깊이 향유하고 싶어서였다. 그라나다는 유럽에서 아랍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슬람 문화의 걸작인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하이라이트였다.
나는 문득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기타 연주가 생각났다. 가슴을 쓸고 들어와 마음 속을 온전히 뒤집어놓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 같은 강렬한 선율, 힘이 있는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이 배어나오던 연주였다. 더욱 알함브라 궁전의 스카이라인은 시에라네바다의 눈덮힌 산들을 배경으로 떠있었다. 그라나다를 떠나오면서 나는 그 눈덮힌 산봉우리를 몇 번이나 뒤돌아 보았다.
남부지방 세비야로 갈 때는 거친 황야를 지나, 거대하게 펼쳐진 올리브 나무밭을 지났다. 얼마를 더가자 이번에는 펄프나무 밭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벌판이었다. 나는 불현듯 그 황무지를 정처없이 걷고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 안에 걸쳐진 오만과 이기심을 다 털고 싶었기에.
세비야에 도착하자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 위로 겨울 햇살이 수정처럼 반짝였다. 강변의 노천카페는 연인들을 위한 낙원처럼 낭만적으로 보였다. 벨라스께스의 고향, 비제의 <까르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모짜르트의 <돈후안>의 무대가 되었던 곳, 엑스포를 치렀던 곳, 그리고 세르반테스가 감옥살이를 했던 곳으로 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한다.
세비야성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성당이며, 진귀한 보물이 가장 많이 있다고 한다. 더구나 만국박람회장은 세계 각국의 대표적 주거 양식을 재현하여 건축되었고, 그당시도 각국의 대사관 등으로 사용 중이라고 하니 ‘엑스포93’이 개최되었던 대전의 도룡동 엑스포단지와는 너무도 비교되었다.
나는 돈후안이 커피를 마셨다는 레스토랑 건물 앞 노천카페에 앉아 같이 간 친구와 뜨거운 커피를 한 잔씩 주문해서 마셨다. 유럽 어디든 그렇기는 하지만 좁은 골목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면서 그 지방 토산품을 구경하는 것 또한 별스런 재미인데, 세비야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구도시의 좁은 골목을 다니면서 그림엽서도 사고, 그 고장 토산품인 세라믹으로 된 플라멩고 액자도 샀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도 많이 걸었던지 저녁이 되자 피곤이 몰려왔다. 밤에 ‘플라멩고 클럽’의 VIP석을 예약했기에 어쩔 수없이 갔지만 잠이 쏟아져서 공연 내내 졸다가 나왔다. 비싼 입장료도 아깝지만 플라멩고 춤의 본 고장인 세비야에서 플라멩고를 못본 것이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도 아쉽고 속상하기만 하다.
스페인 여행 7일 중 마지막 여행지는 똘레도였다. 1988년 유네스코에서'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똘레도. 저녁나절 도착해선지 풍경 사진을 역광으로 찍은 것처럼 석양에 물든 똘레도는 자못 환성을 지르게 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글판 똘레도 관광책을 한 권 구입했다. 긴 여정에 피곤해선지 더 이상 K선생의 안내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그날 밤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K선생은 우리가 갔던 곳을 차례로 상기시켰다. 10년 전, 미대를 졸업한 후 스페인이 좋아서 무작정 유학을 갔다가 계속 머물게 되었다는 조각가인 K선생, 그가 조금씩 이해되었다. 그는 예술이 좋아서 결혼은 아예 염두에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 돌아오는대로 생필품이라도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어쩌다보니 지금껏 제 때에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 못 보냈다. 이글을 마치는 대로 K선생에게 크리스마스 성탄 카드를 보내야겠다. 스페인의 거장들처럼 멋진 작품소식 기대한다는 말과 함께.
세빌랴의 강
미루나무
올리브 나무
플라멩고 춤
Classical/guitar, Jim Greeninger, Recuerdos de la Alhamb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