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는 한족이 통치했던 한나라와 명나라때 보다 이민족이 중원을 정벌하고 한족을 통치하던 시기에 중국문화가 크게 꽃피었던 것을 볼 수 있다.그 중 에서도 만주족으로 개명한 여진족이 통치했던 청나라때 국토가 가장 넓어지고 문화가 꽃피었으며 대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를 중국 역사에서는 강건성세 라고 한다.청 4대 강희제 부터 옹정제 건륭제까지의 133년의 통치기간을 말한다.강희와 건륭의 치적에 가려 옹정제의 업적과 불심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만주족과 만주족의 황제 들은 체두변발을 하였다.앞 머리만 삭발하고 뒷 머리만 길러 세 갈래로 땋고 끝 자락에 댕기를 매었다. 절반만 삭발한 것을 두고 오랑캐 풍속 운운하지만 만주족 들은 자기 들은 문수 보살의 아들.딸이며 반승반속. 반은 중이고 반은 속인이라고 주장하였다.절반만 머리 깍은 이유이다.
청나라의 황제들은 앞머리는 삭발하고 목에는 108염주를 걸었다.108염주 동서남북에는 불상을 모신다.염주알은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채취한 진주로 만든다.만주족의 고향인 백두산의 후예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황제의 모자에는 관세음보살이 이마위에 아미타불을 모시듯이 금불을 모시고 있다.모자 상륜에는 가장큰 압록강 진주로 오중탑을 모신다.
옹정은 아버지 강희제가 조성해준 원명원 정원 이름을 따서 원명거사를 법명으로 사용하였다.
원만하니 입신이요. 밝으니 널리 비치도다. 원이입신 명이보조의 줄인 말이다.
북경의 유명한 라마사원 옹화궁은 옹정제의 생가이다.
청 태조인 누르하치가 세 여진을 통합하고 후금을 세웠다.명나라를 정벌하고 중원에 진출하면서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민족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꾸게 된다.만주란 문수보살의 뜻으로 인도말 만주수리를 줄인 말이다.여진족들은 문수보살처럼 지혜롭고 용맹하다는 뜻이다.
삭발한 모습으로 부처 만자를 이마위에 받들고 명상에 든 인물은 청5대황제 옹정제이다. 옹정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부지런하고 뛰어난 학자였으며 불경을 해독하고 선정을 체험하고 많은 어록과 불경해설서를 편찬하였다.
옹정제는 불심이 깊고 고승들과 교류를 많이 하였다.그는 재위기간중 관치를 혁신하고 당쟁을 진정시켰으며 국고를 충실하게 채웠다.강희제에게 황위를 물려받을 당시 청나라의 국고는 은 8백만냥 정도였다.옹정 6년만에 청의 국고는 4천만냥으로 늘어났다.그는 건륭제에게 2천만냥의 국고를 물려주었다.
건륭제는 옹정제가 물려준 충실한 국고와 청렴한 관리제도를 바탕으로 단숨에 은 5천만냥의 국고를 만들었다.그는 충실한 재정을 바탕으로 타이완.미얀마.베트남.네팔을 평정하는등 십전노인의 공적을 이룩한것도 옹정제의 공이 큰것이다.
당나라 고승 황벽은 14수의 예언시를 남겼다.
한 진인이 있어 옹주에 태어나니 할미새는 언덕에서 구슬프게 우는구나 비범한 법의 심오함을 알아야 하니 백호가 일세에 그침을 탄식하누나.‥
첫구절은 옹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깨달음을 얻은 진인으로 표현한다. 두째 구절은 위기속에서 형제가 서로 구해준다는 것이다. 셋째 구절은 옹정제의 업적은 후대에 물려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넷째 구절은 옹정의 제위가 단지 한바퀴(12년)에 그친것이 애석하다는 것이다.
양무제를 불심천자라 하고 청 옹정제를 재가승려 원명거사라고 부른다.
보살은 청량한 달과 같이 항상 필경공에 노니나니 수없이 긴 세월 소원 이루기 위해 앞으로 호탕하게 나아가노라.
옹정제의 게송이다.
금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이다.50만의 만주족이 263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던 비밀과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ᆢ
요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만들어 지는 역사드라마는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권력다툼과 인간의 욕망만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