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의 뉴스 셰프] ○…정운찬 전 총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그는 경기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설이 돌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한 신문이 전화 인터뷰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답니다.
“(생각할) 여력이 없다. 당이나 청와대에서 (출마하라는) 통보를 받은 바도 없다.” 이를 두고 어느 언론은 “청와대에서 통보 받은 바 없다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출마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언론은 이런 해석을 달았습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부 관계자들이 정 전 총리 공천을 주장하는 건 차기 대선 예비주자 중 친이명박계를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 놓자는 의도에서다.”
여러분은 이 기사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뭐가 문제냐구요? 공천은 특정정당의 일입니다. 특히 후보 공천은 선거 전략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선거 전략의 핵심인 후보공천에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누구를 낙점하거나 통보하는 것은, 청와대가 특정정당의 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우리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통과된 노무현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서 가운데 한 대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국가원수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특정정당을 위한 불법선거운동을 계속해 왔고…자숙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경고를 무시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거법에 관계없이 특정정당을 공개지원 하겠다고 하여 민주헌정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초헌법적이고 초법적인 독재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러한 법치주의 부정 사태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나라를 운영할 자격과 능력이 없음이 극명해졌으므로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게 된 것”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몇 가지를 시비 걸어 탄핵까지 밀어부친 게 한나라당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청와대가 전직 총리에게 특정정당 후보로 나가라고 통보를 했다, 아직 안 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게 놀랍습니다. 당내 논의절차나 경선도 없이 청와대가 특정인을 전략공천하다는 것인데,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요. 청와대와 전직 총리, 언론들의 ‘후안무치’ ‘무식’ ‘당당함’ 앞에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한나라당 친이계 강명순 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친박 진영이 발끈해 강 의원의 발언을 반박했습니다. 민주적인 정당에서 이런 비판이나 논쟁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논쟁과 다툼, 그 자체가 아닙니다. 논쟁과정에서 드러난 집권 여당 국회의원들의 국어수준과 논리수준입니다. 강 의원의 발언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유신헌법으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라도, 유신시절 호의호식한 박근혜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나와 남편은 빈민운동을 하느라 고생했는데 박 전 대표는 청와대에서 잘 먹고 잘 지낸 만큼 나는 빚 받을 게 있다”
“박 전 대표가 맞춤형 복지를 하려면 아동복지 부문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그래야 빚이 제대로 갚아진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이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하다가 유신헌법 때문에 10년 징역을 받았다가 작년에 무죄가 됐다. 유신헌법이 잘못됐다. 나는 이화여대, 박 전 대표는 서강대를 같은 해에 졸업했다. (박 전 대표에게)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헌법 개정 논의에 나오라고 한 것이다.”
이 분, 속칭 ‘이대 나온 여자’시군요. 그런데 해도 너무 하십니다. 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논거는 빈약하고 그러다 보니 논리의 비약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결국은 억지결론으로 끝나는 얘기들입니다. 논술로 치면 0점짜리 수준입니다. 자신과 남편 자랑하다가, 박 전 대표와 비교하다가, 느닷없이 개헌 얘기로 건너뜁니다. 찢어진 신문의 이 기사 저 기사를 마구 짜깁기해 늘어놓은 듯합니다.
제대로 말하려면 차라리 이렇게 해야 웃음거리가 안 되지요.
“저는 과거 유신헌법에 맞서 싸웠던 사람입니다. 유신헌법은 독재시대 통치수단이지 정상적인 법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헌법 내용 가운데는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또 지금의 헌법은 지금 우리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도 못합니다. 헌법은 국민들의 모든 실생활을 좌우합니다. 최근 국민적 관심사인 복지문제도 헌법에 반영돼야 합니다. 저는 그런 차원에서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당의 중요한 위치에 계신 박근혜 전 대표는 아무 입장표명이 없습니다. 묵언수행중이십니까? 지도자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고 책임 있게 정치를 하셔야 합니다. 태도를 분명히 해서 개헌논쟁에 나오시길 바랍니다.”
한편 강 의원 비판에 버럭 화를 낸 박 전 대표 최측근 이학재 의원의 발언도 수준이 떨어지기는 오십보백보입니다. 그의 발언내용입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이 오늘날 우리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의 70%가 존경하는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 편안하게 잘 지냈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마치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한 것처럼 얘기한 것이다.”
공격이나 방어의 수준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품격이 있지요.
“밀어부치기식 개헌추진이 날림이라는 건, 이를 추진하는 의원들의 논리에서도 드러난다. 무엇을 위해, 왜, 개헌을 하자는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안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유신시절 호의호식했으니 개헌을 하라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유신시절 기업에서 호의호식했기 때문에 빚을 갚는 마음으로 개헌하고 있다는 얘기인가. 논거와 비전과 절차와 방법을 보다 책임 있고 설득력 있게 내놓아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 않겠나.”
보다 못해 하는 얘기입니다.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개헌을 갖고 다툼을 벌이기 전에 국어공부와 논술공부부터 하면 좋겠습니다. 논술 공부하는 아이들이 뉴스 볼까 겁납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국내 기름 값이 적정한지) 직접 회계장부를 분석해 보겠다.”고 말했답니다.
최 장관은 10일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실무진이) 일단 기름 값 원가 구성요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다”며 “오래간만에 (회계사무소) 단기 개업한다는 마음으로, 자료가 나오면 원가 구조를 직접 계산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유치한 이벤트요, 개인 홍보에 눈이 먼 가벼운 언행입니다. 기름 값은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물가정책의 핵심입니다. 제가 경제를 잘 모르지만, 기름 값은 그 동안 원가계산이 안 돼 비쌌던 게 아닙니다. 정유사들의 담합과 유통구조, 그리고 기름 값에 붙는 세금 때문에 비싼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기름 값을 치킨 원가 따지듯이 접근하는 인식이 유치하고 안이합니다.
최 장관은 아마도 자신이 회계사 출신임을 자랑하고 싶어 그리 말했겠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면, 대한민국 지식경제부가 지금껏 기름 값 원가 구성요인조차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 양반 제 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 해 봐서 아는데” 식의 이명박 정부 18번 레파토리 그대로입니다. 자기 자랑하려고 자신의 부처를 그리 깎아내리는 장관은 처음 봅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그대로 받아 적는 언론이나 한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언론 참모를 확충했습니다. 이번 인선은 안 대표의 대 언론 활동을 보좌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란 게 안 대표 측 설명입니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인선이 안 대표의 잇단 설화가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안 대표는 지난해 ‘보온병’ ‘자연산’ 발언 등으로 잇따라 곤경에 처했고, 이 과정에서 당 대표의 언론 보좌 기능이 취약하다는 주장이 나왔었다는 것입니다.
의문이 듭니다. 언론 보좌기능을 강화한다고 해서 설화가 없어질까요. 말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인식과 사고와 철학의 반영입니다. 스스로 돌아보고, 사색하고, 성찰의 결과로 개인이 바뀌어야 설화가 주는 것이지, 누구의 도움을 받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설화를 줄이기 위해 언론인 출신 참모를 기용했다면, 그 저의는 문제발언을 ‘마사지’ 하거나 ‘언론플레이’로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봐야 합니다. 갖다 붙이는 논리조차 참 궁색하고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