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19일째인 27일 밤 10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철도 경쟁 시대가 열렸다"고 발표했다. 코레일 자회사 운영 면허를 내주는 과정은 ①코레일이 자회사 설립에 드는 돈을 비용 처리한다고 법원에서 인가받고 ②법원에서 법인 설립 등기를 받은 뒤 ③국토부 장관이 면허를 발급해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모든 과정이 이날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코레일 자회사 설립, 한고비 넘겨
27일 법원이 코레일에 자회사 설립에 대한 비용 인가를 해주자 코레일은 곧바로 법인 설립 등기를 신청했다. 이어 이날 오후 8시 30분쯤 법원이 등기를 내주자 국토부는 수서발 KTX 자회사에 면허를 내주기 위한 내부 결재 3~4단계를 30분 만에 밟아 이날 밤 9시쯤 면허를 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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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이날 밤 브리핑에서 "(수서발 KTX 운영 면허는) 독점을 유지하면서 막대한 적자를 내는 철도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국민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질을 높이고, 만성 적자에 들어가던 국민 혈세를 줄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경욱 국토부 철도국장은 면허 발급을 서두른 데 대해 "개통 전 준비 단계에만 24개월이 걸려 더는 미룰 수 없었다"며 "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면허 발급 중단을 내세웠는데 이제 파업의 초점이 없어져 파업 사태 진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이날 투쟁 지침을 통해 "서울시청 광장에서 28일 열리는 철도 민영화 저지 상경 투쟁에 총력 결합하라"고 알리는 등 민주노총과 예정대로 대규모 파업을 예고하며 긴장 수위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이날 중앙집행위를 열고 28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진 뒤에도 내년 1월 9일 2차 총파업, 16일엔 3차 총파업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파업 가담자에 '최후통첩'을 내리고 압박 수위를 올렸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이날 오전 "오늘(27일) 자정까지 돌아오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복귀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응하는 조치'는 파면·해임·정직 등 중징계를 의미한다고 코레일 측은 설명했다.
코레일은 허준영 사장 시절인 지난 2009년 철도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이자 파면 20명, 해임 149명 등 중징계를 내리는 등 모두 1만1588명에 대해 대규모 징계를 내린 바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원칙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스타일로 보아 2009년 이상의 대규모 중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또 지난 26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노조의 예금, 채권, 부동산 등 116억원 상당을 가압류 신청했다.
최연혜 사장의 최후통첩 이후 파업에서 복귀하는 노조원이 빠르게 늘어나 이날 하루 동안 254명이 복귀해 파업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날 밤 자정까지 복귀한 파업 참가자는 모두 1426명(복귀율 16.2%)이었다. 특히 그동안 복귀가 저조했던 기관사가 이날 하루 동안 35명 복귀해, 파업에 참여했다 돌아온 기관사는 총 62명(복귀율 2.3%)에 이른다.
◇나는 노조, 기는 정부
철도 파업이 장기화한 것은 정부·코레일 측의 초반 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코레일은 '파업 참가자 직위 해제'란 강경 카드로 파업이 일찍 끝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대규모 상경 집회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확산 등에 힘입어 파업 동력을 이어나갔다.
한 철도 전문가는 "철도노조는 초반부터 민주노총과 함께 대규모 상경 집회나 조계사 은신 등 전략적으로 움직였지만 정부와 코레일은 전략 없이 노조의 페이스에 끌려 다닌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직위 해제
특정 직위에서 배제해 인사 대기 발령을 내리는 것이다. 해당 직원의 직위만 박탈할 뿐 고용에는 변화가 없다. 수당은 주지 않고 기본급은 준다. 코레일은 파업 참가자 전원을 직위 해제했다. 파업 참가자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일한 날만큼만 기본급을 받는다.
☞중징계
파면·해임·정직(停職) 등 무거운 징계를 말한다. 직위 해제는 회사가 바로 할 수 있지만, 징계는 징계위원회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