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순경의 아내가 집을 나갔다. 아무 연락도 않고 행방불명이었다. 처음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주일이 되자 차순경은 걱정이 되었다.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차순경 처가에도 처형들에게 물어봐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했다. 처가 식구들은 되려 차순경을 추궁하고 꾸중했다. 도대체 처를 어떻게 대접했기에 집을 나갔느냐는 것이었다.
기가 차고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직장에 나가서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넋을 놓기가 일수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뿐 아니라 직장이고 가정이고 심지어는 차순경 자신의 인생까지 부질없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가 차순경 처가 쪽에 있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의 행방불명 신고를 관서에다 하려고 하니 차순경의 처가에서는 극구 반대를 했다. 장모는 눈에다 불을 켜 갖고서 차순경을 힐책했다. 조금더 기다려 보면 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언질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나 근심하는 빛이 전혀 없었다.
근래에 들어 부부의 이혼율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하지만 이 경우는 이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별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차순경으로서는 해괴하기가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차순경은 아내에게 지극히도 잘 해준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차순경에게 잘못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그런 건가? 문득 잡히는 것은 너무 잦은 잠자리 요구를 부드럽게 거절한 것이 몇 차례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차순경이 애무로서 그녀의 성욕을 달래 주었으므로 그때마다 그녀는 만족해 했던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방으로 헤집고 다니며 차순경은 아내를 찾다가 문득 차순경은 뇌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술집이었다. 결혼을 하고 서너달 되었을까 했던 때였다. 낯선 사내들이 차순경이 근무하는 직장으로 찾아와 돈 사백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처가 지난해 자기들이 경영하는 술집에서 접대부 노릇을 하였으며 그때에 사백만원을 차용했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호되게 맞았다는 소리를 절감케 했다. 결혼 전에 남자관계는 더러 있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술집에서 접대부 노릇을 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것은 과거의 일이었고 현재는 차순경의 사랑하는 아내가 아닌가!
정말 차순경은 아내를 사랑하고 있었다. 충격이 컸지만 차순경은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봉급 생활을 하면서 용돈을 아껴가며 저축해 두었던 사백만원을 차순경은 사내들에게 줘버렸다. 사백만원은 차순경에게 있어서 거금이었다. 돈이야 또 아껴가며 저축하기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차순경은 마음을 달랬다. 허지만 아내가 술집의 접대부였다는 생각은 쉽사리 지워지질 않았다.
그 사건이 있고 얼마동안 상처받은 차순경 가슴을 달래려고 퇴근 후면 꽤나 술을 마셔댔다. 마시고 또 마셨지만 술은 취하질 않았다. 그렇다고 취한김에 아내를 힐난할 수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것이 차순경은 아내에게 기대했던 뜻 밖의 어그러짐이었다. 정말 모를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차순경과 아내와는 처음 정구 코트에서 만났다. 키도 크고 몸이 매우 건강했다. 운동하는 사람답게 활달했고 씩씩했다. 마음 씀씀이도 자잘구레 하지 않고 남자처럼 대범하고 지혜로웠다.
그때에 차순경은 사진 에세이집을 출간했고 출간 두 달만에 초판 매진이라는 자랑스런 기쁨을 누리는 참이었다. 인연이 되려고 했던지 차순경의 아내는 정구 코트에서 차순경을 첫대면했을 때 이미 차순경의 그 사진 에세이집을 사서 읽었고 사진집에 박힌 차순경의 사진을 기억했으며 차순경을 얼른 알아 보았다. 퍽 존경스럽다는 첫마디였다. 차순경 역시 우쭐해지는 지경이었다. 두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 정구를 쳤고 스스럼없이 식사도 함께 했다. 자주 만나기를 시작하면서 두사람은 서로 사랑했다.
식당이나 다방 같은 데를 가면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혹시 TV 탤런트가 아니냐고 종종 묻는 걸로 봐서 상당한 미모도 갖췄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자동차 운전도 잘하여 차순경의 차는 거의 그녀가 운전을 하였다. 그녀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전국의 명승고적을 두루 구경 다녔다.
사랑을 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좋게만 보였다. 그런데 하나 엉뚱한 것은 그녀가 읽는 책은 항상 사주팔자니, 운명학이니 그러한 점술에 관한 불교서적계통이었다. 이러한 책들은 손에서 놓는 법이 없었다.
가출한 차순경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한 달하고도 열흘이 지난 때였다. 전화내용은 간단했다. 돈 사백만원을 온라인 통장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용도도 묻지 말고 거처도 아무것도 일체 묻지 말라는 단서가 붙었다. 자기를 다시 보고 싶으면 사흘 안으로 돈을 보내라는 엄포도 곁들여 있었다. 그때에 차순경은 주변사람들이 말하기를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아내의 걱정으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을 때였다.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 듯 반가워 주변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차순경은 아내가 살아 있다고 자랑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순경의 처가 식구들은 냉담했다. 건성으로 그거 좋은 소식이구나 할 뿐 이었다. 차순경은 여기저기에 손을 빌려 돈을 주었다. 그리고 전화가 온 이튿날 곧 바로 강원도 속초로 돼 있는 은행의 계좌로 송금했다.
어찌 돌아가는지 앞뒤를 분간키가 어려웠지만 아내가 당부한 대로 차순경은 아내의 신상의 주변 사정에 대해 알려고 하질 않았다. 그리고 보름 가량이 지났다. 어제나 저제나 하는데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차순경 아내의 글씨가 분명했고 발신지 우체국 소인은 역시 강원도 속초였다. 허겁지겁 뜯어서 펼친 편지내용은 아주 간략했다. 한눈에 편지를 읽은 차순경은 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차순경 눈에는 마냥 눈물만이 흘러 내렸다.
보내주신 사백만원은 감사히 잘 받았어요.
이 돈은 아마 부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실 것으로 믿어요.
저는 그 동안 신이 내려 신의 힘을 더 받으려고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왔어요.
속세에서의 인연 잊어 주셨으면 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첫댓글 가슴이 아프고 아립니다.차순경의 진심이 너무도 가슴아픕니다..
박선생 잘 지내시지요?지금도 수원서 사신가요!항상 건강하시고 신변에 조심하셔야되는게 경찰업무 아닌가 싶습니다,글잘읽었네요 수고하세요
박 병두님 반가워요. 이곳에서 님에글을 보니 반감습니다. 여행은 잘하셨는지요? 그럼.
이런 일도 있군요. 많이 힘이 되어 주실것으로 믿습니다. 건강하세요.
님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