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이 길에 실패처럼 보이는 사역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들을 바보요 무능력자로 취급했던 자가 이제 그 바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어떤 가시적인 도움과 역사보다 이것이야말로 저에게 허락하신 가장 큰 은혜라고 믿습니다. 실력 있고 능력이 있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껏 나의 열심과 분투로 하나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그분의 답답한 마음에 시원함을 안겨드리고, 동시에 목회라는 수단을 통해 ...
더보기 어느새 이 길에 실패처럼 보이는 사역이 주어지더라도 그것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말없이 충성하는 사람들을 바보요 무능력자로 취급했던 자가 이제 그 바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어떤 가시적인 도움과 역사보다 이것이야말로 저에게 허락하신 가장 큰 은혜라고 믿습니다. 실력 있고 능력이 있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껏 나의 열심과 분투로 하나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그분의 답답한 마음에 시원함을 안겨드리고, 동시에 목회라는 수단을 통해 나의 능력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식한 인간입니다.
나의 가는 길,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보호와 인도함 받으며 전진하길 원합니다. 십자가 지신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존재하는 충성스러운 ‘막대기’로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일을 포기한 인생이 누리는 평강을 이 세상 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1부 목회 _ 본질에서 길을 찾다 ‘부끄러운 고백’ 중에
‘경배 아저씨의 외로움과 서러움의 현장에 제가 계속 서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라도 모든 아픔과 괴로움 뒤로하고 행복하십시오. 많이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은데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경배 아저씨를 향한 마음보다 저를 향한 경배 아저씨의 마음이 더 아름답고 깊었습니다.
“목사님, 밥 먹으로 가. 미국에 부흥회하러 가기 전에 내가 밥 사 드리려고 돈 모았어요. 해물탕 좋아하잖아.” 순간, 저의 수도꼭지는 완전 작살이 나버렸습니다. 견딜 수가 없어서 먼저 방을 나와 모퉁이에서 눈물을 연신 닦았습니다. 그렇게 따라나선 식당에서 그의 전 재산을 털어 준비한 밥을 먹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오기 전, 경배 아저씨는 저를 꼭 안고 속삭입니다. “목사님, 고마워요. 날 많이 사랑해 줘서. 미국 가서 설교도 잘하고, 건강하게 돌아오세요. 많이 그립고 보고 싶을 거예요.”
확신하건대, 저보다 더 행복한 목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순셋의 아저씨로부터 사랑을 고백받아 본 목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도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 큰 사랑을 배신해 마음을 팔아먹는 목사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부 사랑하는 사람들 _ 본질과 현상의 관계 ‘경배 아저씨’ 중에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주님 때문에 사생결단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진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로 헌신해야 할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직장과 가정을 거룩한 믿음의 전당으로 수호하고 지키는 자리로 부름을 받는 자들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잔소리와 짜증을 따뜻한 미소로 겸손하게 받아 내는 일은 죽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다. 남편의 발광을 인자함과 여유로운 이해로 수용하는 일은 순교만큼 힘든 것입니다. 순교는 일순간이지만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자 각자에게 맡겨진 신앙의 과제와 사명은 ‘그 누구는 더 어려운 일을, 그 누구는 더 쉬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3부 성도 _ 본질을 추구하다 ‘사소한 것을 온 마음 다해 감당하는 사람’ 중에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 있는 교회라고 자부하면서 그들의 선조가 증거한 내용과는 아주 다른 내용의 설교를 전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파악해서 복음의 정신 앞에 굴복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지 않고 그들의 심리의 향방을 간파한 후 더 재미있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패를 돌리는, 적당히 가공된 말씀을 곁들여 성공 비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교회는 종교 시장에 불과합니다. 종교 시장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좋은 시절은 좋은 시절대로, 힘든 시절은 힘든 시절대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교회 공동체, 과연 우리에게 유익할까요?
냉철하고 정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이삭줍기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성도로 채워진 그런 식의 부흥이 아닌, 진정으로 회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숙해 가는 경험을 가진 신자가 지금 우리 교회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습니까?
4부 교회 _ 본질로 돌아가다 ‘회심을 사람을 만나 본 적 있나요?’ 중에
첫째, 신학적인 방향을 잘 잡아라. 개혁주의 신학이니, 재 침례파 신학과 같은 것에는 귀도 기울이지 마라. 사람들 모으는 일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부흥시키려고 하는 의욕을 상당히 꺾어 버린다. 애당초 맛을 보지 마라. 잘못하다가 그쪽 분야의 대가들을 통해서 성경 중심적인 신학을 형성하게 되면 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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