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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정산은 아름답다.
적어도 연말정산 서류처럼 복잡하지 않아도 되고 별다른 증명서도 필요없다.
내가 한발자욱만 물러서면 얼마든지 그하고 예전처럼 이해가 가능 할지도 모르는것이다.
그렇지만 개도 안물어갈 자존심으로 굳어진 가슴은 연말 정산서류를 하러 뛰어 다니면서도 세금환급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인간관계의 정산은 눈에 어둡더라
사람이 살아가는힘은 등을 기대었을때 문득 전해지는 온기의 힘일지도 모르고 온기가 빠져나간 후의 허전함을 기억하는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추억 혹은 증오의 뭉치로 괴로운날 들도 실제로 행 할 수 있는 정산 서류의 보류 혹은 삭제보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훌훌 태워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한사람의 정산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정산해야할 사람의 주소를 모르는게 첫번째 이유고 정산해야할 사람의 영혼 값을 모르는게 둘째 이유다.
나는 스스로에게 그하고의 관계를 정산할 서류를 요구받았으며 스스로 만든 서류에 공란을 채워 넣는다.
주소 : 모름, 나이 : 모름, 부양가족 : 모름 ,월수입 : 모름 .
나는 모르는것 투성이의 그의 주소를 어처구니 없음으로 바라 보았다.
2.
정미는 나를 찾아 왔다. 정미하고 나는 알게된지가 육개월 정도 되어간다. 육개월의 물리적 기간은 사람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공유하였다라고 보기엔 다소 미흡하지만 어느 정도 친밀감을 유지하고 그녀의 생활 환경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작은 시간의 투자도 아니다. 대개 첫인상으로 사람을 파악하는데는 5분정도 걸린다고 하는 통설에 비추어보면 내가 아는 그녀와 실제의 그녀 사이의 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그녀 자신이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의 투영도 갭이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무의속에 분포하는 자신을 읽어내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사람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무의식에 숨은 타자에 대한 해석 역시 알아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법이다.
3. 정미는 나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공예교실에서 만난다. 나하고 정미는 공예교실의 수강생이고 우리는 서로의 직업이 다름에도 매주 화요일 저녁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있는 사이다. 나는 처음부터 정미야! 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로 사십이세가 되었고 나는 사십삼세 였지만 언니 동생이라고 선을 긋기에는 정미의 풍산스런 인생수업기간을 미루어 볼 때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나이에 비하여 세월의 중량감을 많이 맛본 정미로서는 한살위의 나를 대하는 것은 어린애 바라보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정미에게 정미씨라고 호칭을 했고 정미는 나를 임사장님 이라고 호칭했다.
4. 정미씨가 나를 찾아 내사무실로 온 것은 두 번째다. 나는 내사무실 한 켠에 있는 방문객의 쇼파에서 정미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었다. 정미씨도 낮시간에는 영업으로 바쁜사람 이었으므로 반가운 마음보다는 놀란 마음이 더 강하였다. 정미씨가 그날 나를 처음 찾은 것은 근처에 자신의 볼일이 있었던 것이고 가는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갈겸 겸사 겸사 들린것이라 하였다. 정미씨가 종이 가방을 끌러 조심스럽게 내놓은 것은 자신이 직접 구었다고 하는 초코 케익이었다. 케익속에는 아몬드와 해바라기 씨 호두 등이 잔뜩 들어있어 케익 한입을 먹을때 마다 고소함이 입안에 고였다. 정미씨는 커피도 보온병에 싸들고 왔다. 자신이 직접내린 커피라며 한잔을 권하였다. 커피숍에서 마실 수 있는 흔한 향이 아니었다. 기품이있는 커피맛이 어떤것인지 그날 맛본 셈이다. 커피의 쓴맛과 신맛,떫은맛의 조화로움은 꽃의 향기 이상으로 그윽함을 실내에 배여 들게 하였다. 아마도 모르긴 하여도, 정미씨를 기억하는 한 그날의 커피향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정미씨를 정미야로 호칭을 바꾸게 한날도 그날이었다.
5. 정미가 다시 나를 찾은 날은 봄비가 추적거리면서 내려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날이었다. 철쭉꽃도 피었다가 절반은 시들어 가고 라일락이 꽃 봉우리를 내밀면서 하늘을 향해 수동적으로 색채를 은근하게 내뿜던 날이다. 비가 그친 대지는 축축하고 희망은 가끔씩 회의로 변하여 절망과 기대가 교차하는 듯한 막연함에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던 날이다. 업무가 끝이 나서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나는 혼자남아 사업구상을 하다가 막연하게 밀려오는 감정의 흐름을 주체하지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가 사무실의 빈 공간을 몇 걸음씩 왔다 갔다 하는 반복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정미가 문을 노크하였다.
정미는 어두운색 옷을 입고 있었다. 늘 화사한 옷을 입고 있을 때 하곤 다른 분위기였다.
6. 정미의 얼굴은 어두었다. 주저주저 하면서 찾아온 목적을 쉽게 꺼내지 못 하였다. 그날은 정미의 일이 바쁜 날 이라 찾아 온 게 이상하여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임시휴업이라고 써 붙이고 가게문을 닫았다고 하였다. 검은색 바지에 검은 색 허리께까지 오는 얇은 망또식 상의를 걸쳤고 목에는 화이트 골드로 가는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평소의 대담한 장신구를 즐기는 그녀에 비하면 그날은 참한 처녀의 복장 같았다. 정미에게 옷의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하니까 “맞아요 오늘만큼은 이렇게 입어야 할 것 같아서요” 하고 눈을 내리 깔았다. 그녀의 시선은 사무실 책상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가가 축축해지는 것을 숨기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일단 뜨거운 차 한잔을 내놓았다.
7. 사무실에서 정미는 차를 마시고도 아무 말을 꺼내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사무실 근처 레스또랑에 갔다.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요즘애들은 이런 구식 음식점에는 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집은 돈가스를 잘 튀긴다고 하여 한때는 예약을 해야 식탁을 점유할수 있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던 집이지만 아웃백이 생기고 세월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이유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듯하였다.
메뉴판을 보고 식사하고 간단한 술을 주문한다. 정미나 나는 술을 전혀 못하는 축이지만 정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평소의 습관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8.공황에서 막 비행기를 내린 연지는 잠시 주춤했다. 지난번에 필협의 장례식에 다녀간 후로 재방문하는 것 이지만 서울로 향하기엔 뭔가 낯설었다. 고향을 멀리 떠나서 살던 사람의 촉수는 서울이 그리움과 낯설음의 감정을 동시에 자극을 해오므로 자신이 서울로 가야 할지 음성으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서울에 가면 남동생의 집에서 하루쯤을 묵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동생댁에게 한국에 다시 나온 이유를 설명하여야 했으므로 썩 내키지 않았다. 바로 음성으로 향하기에는 체력이 바닥나서 자신이 없었다. 하루를 묵어 음성에 가리라 생각한다. 할수없이 남동생 집은 포기하고 연지가 한국을 떠나기전에 친자매처럼 지냈던 동수네 집으로 가기로 한다. 동수네집은 영등포에 있었다.동수는 이미 성인이 되어 따로 살림을 낸 상태고 동수엄마는 아직도 그 집에 산다고 들었다. 동수네 집에 전화를 하여 동수 엄마하고 통화가 되었다. 동수 엄마는 연지의 목소리를 듣고 반색을 한다. 하루만 묵고 간다고 하니까 어서 빨리 오라고 재촉이다. 동수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 듯하였다. 동수엄마하고 다시 만나는 것은 십 여년 만이다. 하지만 전화로는 자주 소식을 주고 받았으므로 동수네 사정은 밥수저 몇 벌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동수네 집에 도착하니 동수엄마는 전에 이 동네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승이 엄마도 불러놓았다.
승이 엄마는 목동에서 사는데 동수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연지가 먹을 것 몇 가지를 만들어서 금방 도착하였다고 한다. 연지는 동수엄마하고 승이엄마하고 지난세월의 회포를 풀었다. 승이엄마하고 동수엄마가 기억하는 연지는 그 시절 세련되고 아이들 치맛바람이 세던 아줌마의 이미지와 남편과 뜻이 안 맞아 미국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은 두 종류의 이미지로 우리둘은 연지네를 이해하고 말고에 마음을 모아주었다. 연지는 자신이 왜 다시 한국에 왔는지를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용히 어떤 여자만을 만나고 갈 생각인 것이다.
9.
동수엄마가 해주는 아침을 먹고 연지가 길을 서두르자 동수엄마는 무척 서운해 했다. 이왕 나온 김에 민속촌이나 고향마을에라도 다녀오자고 동수엄마가 졸랐지만 연지는 시간이 없어 볼일만 보고 간다고 미안해했다. 동수엄마는 연지가 나이가 들어 고향이 그리워서 나온 것으로 추측하는 눈치다. 연지도 딱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고향이 그리웠지만 그렇다고 외국에서 보낸 이십년 이상의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이곳으로 온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 많은 동수엄마가 이직 건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지는 고마웠다. 올해 연지는 일흔넷이고 동수엄마는 일흔 여덟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동수엄마는 고속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였다. 그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연지도 차안에서 동수엄마를 바라보면서 가슴 한 켠이 씀벅거렸다. 사람은 늘 이별앞 에서는 나약한 것이다. 버스가 움직이고 동수엄마 얼굴이 작게 보이더니 이내 그녀의 형체는 차창 밖의 액자그림으로 바뀌었다.
10.
연지는 필협의 친구가 준 명함을 가방에서 꺼냈다. 필협의 친구 강욱의 말로는 그 여자는 음성읍에서 산다고 하였다. 강욱은 필협하고 그 여자를 몇 번 보았다고 한다. 이십오년전 연지가 마흔아홉되던 해에 연지는 필협과 다투고 이곳을 떠났었다. 영등포에 살다가 필협의 사업으로 음성에 내려온 것은 사십오세 무렵이다. 필협은 조경사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무를 키울 산이나 밭이 필요하였다. 밭에 심어놓은 묘목이 돈이 될 무렵 나무 도난사건이 있었다.
필협이 십년을 공들여 키운 금송과 수령이 팔년 되는 느티나무를 몽땅 누군가가 캐어간 것이다. 필협은 도난을 막기 위하여 음성에 있는 자신소유의 산과 밭에 간이 집을 짓고 나무도 관리하면서 조경사업을 확장하였다. 개발도상국의 싯점을 벗어나던 그몇해 동안 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아 가로수를 심는 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시절에는 조건도 까다롭지 않았고 대부분 수의계약이었으므로 돈버는 재미가 쏠쏠 하였다.
연지는 목동에서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를 했으므로 음성으로 내려온 남편과 자주 불화하였다. 아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자 아이들 밥을 해주겠다고 떠난 것이 마흔아홉살 나던 가을이었다. 필협은 연지에게 제발 돌아오라고 애원을 하였지만 연지는 얼굴이 검게 타서 사철 촌티 나는 남편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연애결혼 할때부터 문제가 있던 부부였다.
대학시절 퀸으로 뽑힐 정도의 미모를 자랑했던 연지에게 촌놈 그것도 세살 연하남이 달라붙자 연지네집에서는 반대를 하였지만 촌놈의 끈질긴 구애에 학을 떼었다. 그 무렵 연지네집은 연지 이모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을 갔다. 연지도 일년 후에 학교만 졸업하면 뒤따라 들어갈 예정이었다.
11.
졸업을 앞두고 사은회가 있었다. 연지는 필협을 피하여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회를 맡은 지수가 게임을 빙자하여 그들을 끌어내었다.
이미 술에 이성이 조금씩 마비되기 시작한 필협은 연지는 거들떠보지 않고 게임도 마다한 채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춘향전에 나오는 사랑가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불러 제꼈다.
연지는 삼수를 해서 학교에 다녔으므로 필협이 동생으로 느껴져서 도무지 감정에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필협은 ROTC장교로 군대에 갈 계획이 있었다.
술에 취하여 판소리를 부르는 필협에게 우수적 매력이 넘쳤는데 연지는 그 순간 이제 필협을 볼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필협의 존재를 부정하고 피해 다녔지만 그날만큼 사랑가를 부르는 필협의 걸걸하고 탁배기 같은 목소리가 연지가슴을 흔들었다.
장기자랑이 끝나고 자연스레 연지와 필협은 한 테이블에 동석을 했는데 술에 취한 필협이 연지에게 말했다. “내가 시골촌놈이라 아무도 나를 거들떠 보지않아. 나는 다음주에 군대를 갈거야. 너도 이제는 떠나겠지.” 필협이 뭐라고 말을 더 이을듯하다가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렸다. 술이 약한 필협이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사은회가 끝나고 강욱과 연지는 필협을 끌어당겨 택시를 태우고 필협의 자취방에 데려다 눕혔다. 그 순간 자정을 알리는 사이렌이 불었고 강욱과 연지도 필협의 바에서 밤을 보냈다. 강욱도 술김에 잠이들고 연지는 책상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필협의 일기장을 들쳐보고 필협이 연지에 대한 감정이 절절하게 적혀진 것을 보고는 다음날 아침에는 필협에게 군대에 면회를 가마하고 약속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12.
정미가 술이 들어가자 이야기를 끌어 내었다. 정미는 스물되던 해에 한 남자를 알았다 . 둘은 불나방 같은 화염이 사랑인줄 알았다. 그 남자는 서른세살 이었고 정미하고는 나이 차이가 좀 있었다. 그는 외항선을 타는 마도로스였고 정미는 항구의 다방레지였다. 그 남자하고 풋풋하게 타오르던 사랑의 기간은 아주 짧았던 거여서 정미는 그 사랑에서 얻은 것은 미혼모 딱지와 아들 하나였다. 외항선을 탔던 장수는 일년에 한번 꼴로 정미를 찾아왔는데 그나마도 정미는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딱 떨어지게 미모를 가진게 아니었으므로 두달에 한번정도로 다방을 바꾸어 영업을 해야 했다. 한곳에 정착하여 영감들을 끌어 당기는 마담이 된다는 것은 쉬운게 아니어서 객지에서 다방으로 전전하면서 아들를 키운다는 것은 벅찬일 이었다. 장수가 찾아오던 기간에는 그래도 몸은 팔지 않았다. 아들에게 부끄러운 어미가 되지않기 위함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장수가 돌아와서 그들 모자를 찾아 가정을 꾸릴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장수도 외항선을 타서 벌어 놓은 돈은 부쳐주곤 했기 때문에 궁핍은 면할수 있었다.
13. 장수에게서 돈도 오지 않았고 소식도 끊어지자 생활고에 지쳐 몸을 팔았지만 그 일도 오래하지 못하였다.외항선을 탔던 장수가 정미에게 성병을 옮겨주고 갔는데 번번히 건강검진에서 병으로 판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병명은 매독이었는데 매독은 다른 성병보다 치료가 더디었으므로 영업을 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연탄난로를 때고 살았는데 난로 근처에 줄을 매고 빨래를 널다가 빨래의 무게로 균형이 깨진 철사줄 때문에 난로가 기울더니 그 위에 올려둔 주전자의 펄펄 끓던 물이 정미의 등쪽으로 덮쳐 흉터가 흉측하게 남았다. 다행히 옷을 입은 부분은 흉터가 보이지 않았고 등쪽과 엉덩이부분만 흉터가 심하였다. 물에 데이던 날 바로 처치를 했어야 하는데 아들 저녁밥 때문에 데인자리의 화기를 빼는데 시간을 쓸 여가가 없었다. 화상을 입은 자리는 여러 날 짓무르더니 그예 사람들이 보면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흉하게 화인을 남겨 놓았으므로 매독을 고치고 나서도 영업을 하기에는 애를 먹었다.
14.
정미가 세들어 살던 안집 할머니가 아들을 맡아주어서 돈을주고 키우긴 하였어도 아이문제는 그나마 힘을 덜었는데 어느날 아이가 초록색 그림물감을 먹어 입술과 입안이 초록색으로 물들어 난리도 아니었다. 물감에 독소가 있는것도 걱정이 되었지만 아들이 무엇이던지 입에 넣는다는게 문제였다.
방의 문틈에 있는 흙은 손가락으로 후벼서 파먹은적도 있었고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 먹는일은 예사였다. 안집할머니가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무엇인가를 입에 넣었는데 뱉으라고 야단을 치면 입에있는 내용물을 순식간에 꿀꺽 삼키므로 살살 달래어서 조금이라도 덜 넘기게 하여야 했다. 할머니도 이런애는 첨 본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미가 매독에 걸려 아이를 낳았으므로 임신중에는 기형아를 낳을 까봐 전전긍긍했었다. 다방레지가 무슨 팔자로 애를 낳느냐면서 같이 일하던 다방 언니들은 정미를 구박하였지만 정미는 장수하고의 풋사랑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구한 정미 인생에 받아들인 첫 남자였던 것이다. “첫사랑? 웃기고 자빠졌네” 하면서 언니들은 껌을 딱딱 씹으면서 눈을 흘겼다.
15.
다방마담 언니는 돈을 벌어 고향집 오래비의 학비를 부쳐주고 있었는데 하루는 마담언니가 돈 모으는 법을 가르쳐 줬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아들을 위해서라도 건물하나 살돈을 만들어야 한다는게 마담언니의 충고였는데 하루하루 건설적 희망없이 살던 정미는 그때 자신의 빌딩을 하나 사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주어먹던 아들은 그예 회충감염이 심해서 목에서도 회충이 기어나와 정미가 입으로 손가락을 넣어 회충을 잡아당겨 빼내었고 똥에서도 회충이 무더기로 나왔다. 회충이 뇌를 통하면 죽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정미는 하늘이 노래서 약국으로 뛰어가 산토닌 이라는 약을 사먹였다.
정기적으로 회충약을 사먹여 회충은 사라졌지만 아들은 물감을 입에 짜 넣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다. 이미증 이었다.
처음에는 회충때문이 었지만 이제는 정신적인 문제로 그행동을 멈추지 못하는 거였다. 정미는 아들이 이야기를하면서는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나는지 자꾸만 물을 마셨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정미의 마음이 안정이 될때까지 조용히 있었다. 섣부르게 무슨 말을 붙일 수 가 없는 상황이었다.
16.
산토닌을 먹인 이후로 정미의 생활은 달라졌다. 부산을 떠나 음성으로 이사를 하였고 정미는 아들과 자신이 살아야 하므로 돈이되는 일은 무슨 일이던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일했다. 흉터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그만두고 잠시다방을 떠나서 할부책장사도 하고 보험영업직에도 뛰어 들었다. 하루는 날이 덥고 후텁지근하더니 잠시 비가 쏟아졌다.
지나가는 여우비 였다. 비를 피하려고 상가건물 출입구에 서있었는데 그때 비를 피하여 서있던 어떤 남자가 정미에게 말을 붙였다. 혹시 부산에 살지 않았냐는 것이다. 부산은 정미가 장수하고 잠시 살림을 차렸을 시절의 일이었으므로 정미는 한참 기억을 헤맸다. 그 남자는 정미가 일하던 다방에 자주오던 손님이었다. 그 남자의 직업은 생각이 나지 않았고 늘 다방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서류를 주고받았던 일이 얼핏 생각났다. 그 남자는 정미를 기억하고 있었다. 부산 영도다방시절의 일을 끄집어 내었다. 임신 칠개월 까지는 그 다방에서 허드렛일을 하였는데 그 남자는 그때 배가 불렀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방레지를 하다가 주방을 보았는데 그 남자는 아마도 그 다방의 단골손님이었던 모양이다. 그 아들이 지금은 초등학생이에요 하자 그 남자는“ 고마운 일 이야! 고마운 일이야!” 를 연거푸 말했다.
17.
그 남자는 초로의 신사가 되어 있었다. 영도다방시절은 그 남자가 아마도 오십 부근의 나이였을 것이다.
그 남자는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면서 자신의 사무실에 들려주었으면 한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정미는 무엇엔가 홀린 기분 이었다. 스무살에 임신하여 이제는 서른 나이에 열 살짜리 아들이 있는 정미였다. 하루하루 살기는 팍팍하였지만 언젠가는 빌딩하나를 산다는 목표를 희망봉 삼아 아들과 힘겨운 고비를 넘는 중이었다. 그 남자에게 보험 영업을 해볼까하고 하루는 그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명함에 적힌대로 전화를 하고 그가 일러주는 길을 찾아간 것이다. 그 남자는 정미에게 생명보험을 하나 들었다. 서류를 만들면서 보니까 그 남자는 나이는 육십이었다. 나이가 많아 월 보험료도 상당하였다.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쓸쓸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그가 운영하는 조경회사는 규모가 큰편이라고 하였다. 그는 가끔 정미에게 고객을 소개해 주었다. 고마운날들 이었다. 남자의 나이는 아버지뻘이었고 일찍 부친을 잃은 정미는 부성결핍으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해졌다. 가족들은 모두 미국에 가있고 그는 여기서 돈을 벌어 생활비만 남겨두고 미국으로 송금하고 있는 중 이었다.
18.
필협과 정미가 몸을 나누었을때 필협은 정미를 보고 울었다. 정미등에 있는 흉터를 보고 필협은 그흉터를 자꾸만 쓰다듬었다.
필협은 아직도 연지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연지는 필협의 땔 나뭇꾼 같은 분위기를 피하여 도망쳤지만 필협에게 있어 여자는 인생에 연지 딱 한명뿐이라고 하였다. 연지가 도망치듯 떠난 후에 연지는 여러번 이혼을 요구하였고 호적을 정리하고자 하였지만 필협은 연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오직 가적만을 위하여 돈을 벌었다고 하였다.
필협에게 돈은 생활의 수단에 불과하였지만 그의 가족에게는 생명 줄에 다름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살았다고 하였다. 필협은 여자를 멀리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틈만 생기면 필협에게 여자를 붙여주곤 하였는데 이틑날이 되면 화대를 받은 여자들이 화를 내었다고 한다. 도무지 필협은 여자를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필협이 고자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필협은 어떤 소문이던 개의치 않았다. 그대신 술은 말술을 먹고 호방하게 놀기를 즐겼다 한다.
가끔 미국에 있는 자녀들은 아비를 보러 일삼아 들어오곤 했지만 워낙 일찍 아비를 떠난 탓인지 아이들도 속 깊은 정을 필협에게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필협과 정미가 몸을 나눈날은 필협의 환갑날이었다. 환갑날에 자식들로부터 전화만 받은 필협은 그들에게 받는 주린 애정으로 몹시 힘들어 하였다. 가족만이 소중한 인생의 지침이었던 필협은 연지가 떠난지 그날 처음으로 여자를 안았던 것이다.
그런 필협의 성정으로 고단한 삶으로 서른 젊디 젊은 나이에 육체가 망가진 정미를 보고 눈물을 보인 것은 당연한 거였다. 정미는 흉터를 개의치 않는 필협의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자신의 육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다. 정미에게 있어 사내란 생활비를 구하기 위한 도구 일뿐이었고 남자들은 연지의 몸을 훑어 내리는 순간 어떤 배려도 없이 자신들의 욕정을 쏟아 붓는 하수구 이상의 의미도 두지 않았다.
19.
그들은 5년정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이 아직 어렸으므로 살림을 차릴 엄두는 내지 못하였고 정미에게 필협은 예전처럼 물장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물론 사업비는 필협이 대는 조건이었다.
정미는 운영을 맡아서 하기로 했고 필협은 일체 그 일에 관여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정미아들의 문제가 있었으므로 물장사에서 선회하여 레스토랑 하나를 인수 받았다. 목이좋은곳 이었다. 조경사업을 하는필협은 실내용 수목을 구해와서 인테리어를 했는데 실내정원이 있는 근사한집이라고 인기가 좋아 한번 왔던 손님들에게 금방 입소문을 타게 되어서 장사는 잘되었다. 거기서 5년을 보내는동안 정미는 빌딩을 사서 자신이 자신에게 하였던 약속을 지킬수 있었다.
20.
이제 정미의 이야기는 막바지로 치닫는 느낌이다. 정미는 이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술을 더시켰다. 빌딩도 사고 생활도 안정이 되어갈 무렵 필협에게 병이 왔다. 혼자 보낸 세월이 많았던 필협에게 가족들을 그리워 하는 병은 정미하고 있다고 하여도 풀리지 않았다. 필협은 서서히 시들어가는 나무처럼 아주 서서히 망가져 갔다. 정미가 필협의 병을 발견한 후로 필협에게 정성을 들였던 일로 필협의 주변 친구들 모두 감동을 먹었다. 정미가 필협을 살리고자 할수록 필협은 미국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 했는데 그들은 형식적으로 두어번 방문객의 자격으로 다녀갔을 뿐이었다.
21.
필협이 70세가 되던해 생일날 필협은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고 정미의 곁을 떠났다. 가족을 만나고나면 돌아올수도 있고 아니면 거기에서 정착할수도 있다고 하여 필협의 거취를 궁금해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본부인을 찾아간 남정네를 어디서 다시 찾아온다는 말인가? 필협이 떠난 것을 야속해 하면서 정미는 자신 소유의 빌딩에서 나오는 돈으로 일부는 사회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다가 작년에 필협이 사실은 미국에 간 것이 아니고 강원도 심산유곡 조용한 암자에서 정양중이라는 소식을 강욱에게 들었던 것이다. 필협은 사십갓 넘은 정미에게 새길을 열어주고 싶어서 정미의곁을 떠난거였다.
필협의 소식을 듣고 정미는 필협이 좋아하던 명란젓을 한통 싸가지고 필협을 찾아갔다. 절 부속 건물로 있는 암자는 절하고는 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암자에는 고시생들 몇 명과 필협이 함께 어울어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필협은 그곳에서 소일 삼아 작은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필협은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몸의 쇠잔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정미를 보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는 여기 군기반장이야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22.
정미가 그곳을 다녀간후에 필협의 건강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강욱에게 연락이왔으므로 강욱이 필협을 찾았을때는 거의 임종직전 이었다. 필협의 머리맡에는 정미가 다녀갈 때 두고간 명란젓이 놓여 있었다.
"강욱이 자네 아나? 나는 정미가 두고간 명란젓을 먹지 않았다네. 저것은 명란젓이 아닐세. 저것은 정미 자신이지. 정미가 두고간 유일한거야. 내가 이 암자에 와서 무엇을 느꼈는 줄 아나? 나는 정미하고 살았을때는 가족이 몹시 그리웠다네. 그래서 정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네 .그래서 정미곁을 떠날 때 정미가 다른사람에게서 행복을 찾기를 바랬지. 그런데 아직도 정미가 혼자라는군. 그런 여자는 내가 처음 만나보네. 나도 그여자를 은애하나 보이.혹여라도 내가 숨을 거두면 정미에게는 알리지 말게나. 정미가 힘들어 할거야. 혹여라도 정미가 내소식을 물어보면 미국에서 나를 데리고 갔다고 전해주게. "
23.
필협의 장례식에 연지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모두 참석 하였다. 정월이 지나 날씨는 풀렸지만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었다. 산에서 수목장을 지낸 후에 연지는 필협과 가장 가까웠던 강욱에게 그동안 필협이 어찌 살았는가를 물었다.
강욱은 정미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그들의 사이를 말해 주었다. 연지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애들 아빠가 마지막에는 그나마 행복했나 보네요. " 연지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를 하는 듯 무심하게 말을 뱉었다.
연지로서는 이혼도 안해 주고 버틴 필협의 처신 때문에 원망도 많은 세월이었다. 연지도 이제는 늙어 필협을 불쌍하게 바라보았지만 불쌍한 세월을 보낸 것은 연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24.
연지는 음성으로 내려가서 정미를 만났다 .정미는 한눈에 연지를 알아보았다 필협의 지갑에서 보았던 여자였다. 늙기는 했지만 젊을때의 미모가 헤아려지는 외양이었다. 연지가 정미를 뜷어져라 바라보았으므로 연지는 고개를 숙였다. 지은죄 없이 무거운 마음이었다. 자신이 버리고 간 남자하고 정을 나누었다고 이제와서 이럴 것은 뭐야? 하는 야속함이 용솟음 쳤다. 정미는 설움에 복받쳐서 손수건을 꺼내들고 그예 훌쩍였다.
연지는 그런 정미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딸 또래의 여자다. 강욱에게 정미가 고생을 많이한 여자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수수한 외모에 기품 있는 모습은 정미가 한때 몸으로 생활비를 벌어 쓴 여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정미가 고개를 들었을때 두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연지가 정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두달전에 필협이 자신이 가꾼 나무들 곁에서 수목장을 한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정미는 며칠전에 강욱에게 들었다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산소에 함께 가겠냐고 묻자 정미는 이내 미안한 기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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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가 정미의 손을 이끌고 필협이 고요하게 잠자고 있는 나무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는 연지 가방에서 무엇인가 꺼내는데 통장이었다. "이것은 전에 내 앞으로 들어 놓았다는 생명보험료 에요. 서류정리 하다가 나온건데 아무래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닐지 싶네요. 이것으로 가끔씩 여기에 와서 술 좀 부어 주세요. 필협이 외롭지 않게요." 정미도 먹고 살만하므로 그 돈은 사양하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연지의 간곡한 눈빛에 정미는 그만 지고 말았다.
26.
그곳에 다녀오느라고 옷을 검은색으로 입었노라고 정미는 말을 하면서 울먹거렸다. 나는 정미에게 할말을 잊었다.
나 역시 최근에 어떤 사람과 결별을 예감하였다. 우리는 그들처럼 지고지순 하지 못하였다 .다소 치기스럽고 에고에 차있었으며 매사에 자존심이 선행하는 짜증스런 만남 이었다. 일회성의 인스탄트식 사랑에 절어있는 흔하디흔한 만남을 감히 그들 앞에서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죽은 자는 사랑의 절치부심에 대하여 말이 없고 산자는 앞으로도 사랑에 목이 메고 다시는 따뜻한 체온을 만질수 없음을 절절하게 그리워하면서 살아야한다.
봄비가 내려 밤공기가 축축하였다. 나는 정미와 헤어져서 한참을 걸었다.
나도 이제 그하고 어떤 결정의 선상에 선 듯한 느낌이다. 우린 너무 오래 끌었다. 우유부단 ,지지부진 격절의 미움도 표표한 자존심의 향방도 짓 물린 상태였다. 시든 사랑에 목을 매고 있는 처량함을 당신은 아는가? 거짓으로 사랑을 교묘히 포장하는 외로움을 당신은 아는가?
가슴속에서 고름이 넘쳐흐르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향하여 도도하게 목을 빼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던 목련꽃이 땅에 떨어져 누렇게 시들어 품위를 잃고 자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밤이라 다행 이었다 .목련꽃의 낙화는 배신을 은유하였다.
27.
나는 정미의 사람이었던 필협을 생각하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나무에 뭔가를 피워 올리고 싶었다. 향을 사르는 기분으로 정미의 그 사람에게 글을 썼다.
밤새 먹을 갈아 한지에 몇 자 적었다. 정미도 기뻐할 것이다.
산다는 것, 사랑을 품고 사랑을 은애하며 사랑을 끌어안는다는 것의 한스러움이 밀려왔다.
천지사방이 검은 빛의 소용돌이에서 한참을 나뒹굴더니 안개가 심하게 끼여 나무들은 형체도 구별하기 어려울정도로 시야가 두터웠다. 한지를 둘둘 말아 소지종이 태우듯 하늘로 손을 올려 가면서 태웠다. 소지종이는 안개의 자락에 밀려 어디론가 떠나갔다. 소지종이에는 아래의 시가 적혀 있었다.
민들레 풀씨가 부유하면서
하늘을 떠돌면
혼이 떠도는 것처럼 슬퍼지더라.
그리고 한축이오더라
마음이 추워 덜덜 떨면
하늘에서 흔들리던 풀씨하나
나에게 슬며시 다가서더라.
결핍으로 만든 집 결핍으로 부수리니
그동안 즐거움이 즐거움뿐 이었겠는가?
아픔은 아픔뿐 이었겠는가?
혼재된 기억의 갈피 속에서
일일이 골라내어 가르려 하지마라
서두르지 않아도 풀씨는 땅에 도달하고
떠돌던 혼은 하늘로 향하리니
그대 걱정은 거두시게
편히 가시게!
....... 끝........
첫댓글 정갈한 글 많이 보게 될 것 같아 기뻐요. 좋은문학의 깊이를 더해 주시길..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