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영재 교육을 다녀와서...
하양여자고등학교
안소진
항상 변함없는 나날이었다. 같은 시각에 울리는 알람시계와 싸우며, 시간에 맞춰 등교를 하고, 짜여진 수업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날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웃는 법을 잃어버렸다. 내 마음은 높은 하늘을 보며 좋아하지만 나의 머리는 하늘을 보며 웃을 시간이 없다면서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 버리곤 한다. 그런데 몇 일전, 아무런 기대도 없이 참가했던 '문학영재 특별 교육'에서 웃는 법을 되찾았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2003년 12월 26일, 나는 모처럼의 외출을 하였다. 휴식을 위해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모처럼 만의 외출이라 그런지 기분이 들떴다. 행선지는 안동이었다. 2시간이나 걸리는 거리 때문에 어머니와 나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서툰 어머니의 운전솜씨에 어머니와 나는 안동에서 조금 길을 해 메고 10시가 조금 넘어서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처음으로 마주하는 얼굴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조용했다. 11시가 되어 우리는 ‘안동 지례 문화 예술촌’에 출발할 수 있었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니, 말로만 들었던 ‘안동 지례 문화 예술촌’이 나타났다. 몇 년전 TV에서 소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어떻게 이루어진 곳인지 궁금했었다. 우거진 숲 속에 있는 단아한 고택에 어쩐지 마음이 편안했다.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숙소배정이 이루어졌다. 내가 배정 받은 숙소는 ‘주사’라는 곳이었다. 낡고 좁은 방이 옛날에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식사를 했다. 구수한 동태찌개와 할머니들의 손맛이 가득한 나물무침들이 나의 식욕을 북돋았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처음 우리에게 강의를 해 주신 분은 이기철교수님 이었다. 인자한 모습이 친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할만큼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기철교수님의 작은 목소리 톤 때문에 우리는 교수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야 했다. 강의를 듣는다기 보다,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 따뜻한 분위기였다. 그분은 아직 우리들에게 문학에 대한 심층적인 강의를 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시며 우리가 너무 일찍 만난 거 같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렇게 강의가 시작되었다. ‘문학은 사치가 아닙니다.’ 이기철교수님의 강의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은 말이다. 이 말은 명예나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글은 멋진 글을 쓰기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거짓없는 글, 솔직한 감정으로 진솔한 표현을 하는 것이 우리는 문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알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기철 교수님의 강의가 끝나고 곧바로 강의가 이어졌다. 소설가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최학교수님 이었다. 최학교수님의 동그란 눈이 어쩐지 맑아 보였다. 이 분이 나에게 이야기해 주신 것은 구체적이고 솔직하지 못한 글은 죽은 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다 모범답안에 익숙해 져서 진솔한 답안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그 동안 너무나 모범답안에 충실해 왔던 내 글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4시간동안의 긴 강의가 끝이 났다. 벌써 강의실 밖은 어두워져 있었고 저녁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방을 쓰는 언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잠깐 동안의 산책을 했다. 그 곳의 밤하늘은 유난히 까맣고, 별들은 유달리 반짝거렸다. 그렇게 문학 캠프의 첫째날이 지났다.
다음 날, 새벽부터 산새들이 지저귀며 노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눈을 부비며 밖으로 나와 크게 기지개를 피며 하늘을 보았다.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높은 푸른 하늘이었다. 상쾌한 아침공기가 답답했던 내 가슴속을 뚫어내는 것 같았다. 둘째날 역시 강의가 많았다. 오전에는 김원길 시인과 이상호 하회탈춤기능보유자의 강의가 있었고, 오후에는 서정윤 시인과 율강 전병규 국악인, 김지연 소설가의 강의가 있었다. 많은 강의 중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김지연 소설가의 강의였다. 깔끔한 옷맵시에 곱게 넘긴 머리,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진 아름다움이 김지연 소설가에게 있었다. 내가 김지연 소설가에게 끌렸던 것은 비단 아름다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김지연 소설가의 젊은 시절, 기자로도 활동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기자를 꿈꿔왔었다. 그런데, 나의 꿈을 이룬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에 내 가슴이 떨려 왔다. 김지연 소설가가 우리들에게 강의한 내용은 ‘문학에 나타난 성묘사’였다. 여성 소설가가 청소년들 앞에서 ‘성(性)’에 대해 강의한다는 것에 어쩐지 얼굴이 뜨거웠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촌스러운 생각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김지연 소설가는 문학은 인간의 삶의 의미를 캐내거나 인간 삶의 가능한 이야기를 담는 예술로서 성(性)은 당연히 문학 속의 주제가 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해 주었다. 그녀는 지금 명작을 꼽히는 많은 작품들이 그 시대에는 외설로 알려지기도 하였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의 의미를 살리는 범위 안에서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강의하기 민망하고 낯뜨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당당히 서서 이야기하는 김지연 소설가의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밤늦도록 이어진 강의들이 김지연 소설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날도 안동 하늘의 수 없이 많은 별들은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문학캠프의 마지막날이 되었다. 추운 날씨와 낡은 숙소에 이제 적응되려 하는데 어느새 이별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들은 짐을 챙겼다. 오늘은 이문열 소설가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이문열 소설가의 강의를 직접 듣는 다는 것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우리들은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이문열 소설가의 집이 있는 영양을 향하였다. 영양을 향하는 길의 풍경을 너무나 아름다웠다. 안동을 떠난 지 2시간이 못 되어 우리는 이문열 소설가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통 한옥으로 꾸며진 대저택의 웅장함에 순간, 내 몸이 움츠려 들었다. 이문열 소설가는 우리들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해 주었다. 나는 한국, 최고의 작가인 이문열씨가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지 대단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문열 소설가가 우리들에게 주문한 것은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이문열 소설가가 우리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문학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아야하고 그 삶과 닿아 있어야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배우고 있는 것들은 모두 삶과 맞닿아 있는 것들입니다. 그 삶을 배우기 위해 여러분은 지금 공부를 해야합니다.”
정말 가슴으로 와 닿는 말이었다. 문학은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인데, 작가가 그 삶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면 우리는 문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에 최선을 다 해 갈 때 그 삶이 문학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문학캠프는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것 같다. 한없이 넓고 푸른 자연 속에서 나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고, 내 마음이 나에게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볼 수도 있었다. 또 소설가, 시인, 국악인들의 주옥같은 말씀 하나 하나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큰 주춧돌의 역할을 할 것이다. 벌써부터 안동의 별빛이 그리워진다. 그곳의 하늘이 그리워진다
첫댓글 오호라~ 그래 문학도 생각하고 착하게 살자구나~
우와!! 소진이 언니 글 진짜 잘 쓰시네요!!^ㅡ^ 멋져요!!
저도 글 잘쓰면 정말 좋겠는데ㅠ.ㅠ 애들이 저 보고 이과가길 다들 잘했다네요 ㅋㅋ 언니한테 좀 글 쓰는거 배워야 겠어요^^
좋은 경험인데 잘 간직하고 자신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해라.. 그리고 언제 한턱 내나?
와~~ 언니 글 멋져요.. 전 언제 이렇게 쓸련지..글은 못써도 이렇게 길게라도 써 봤으면 좋겠어요.
ㅋ1ㅋ1 채털리 부인의 사랑...므흣~ ㅡㅡ;;
언니~ 좋으셨겠어요!! 문학영재 >_ <ㆀ
우와! 언니 좋으셨겠어요T_T문학캠프♥[무지부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