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론강의안(최홍석교수vs김길성교수)
서론
제 1강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가?”
= 제 1강 “하나님의 존재(The Existence of God)” - 김길성 교수 강의안
제 2강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
= 제 2강 “하나님을 아는 지식(The Knowledge of God)” - 김길성 교수 강의안
제 3강 “신 존재 증명”
제 4강 “하나님의 존재(; 본체, Essentia)를 부인하는 여러 이론(반 유신논증)”
제 5강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제 6강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칭”
제 7강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제 8강 “삼위일체(The Holy Trinity)론과 성경적 근거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조”
김길성교수
제 9강 “하나님의 작정(Divine Decrees)” 개관
제 10강 “예정(Predestination)”
제 11강 “창조(Creation)”
제 12강 “창조(Creation)” - “영적 세계(Creation of the Spiritual World)”
제 13강 “창조(Creation)” - “세계의 창조(Creation of the Material World)”
제 14강 “섭리(Providence)”
제 15강 “특별 섭리와 이적(Extraordinary Providences and Miracles)”
제 16강 “변신론(Theodicy)”
서론
•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 하나님을 아는 것 : 중생하고 그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고 그의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구원의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게 되는 실존적이고도 경험적인, 직접적인 앎이다.
-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 : 지식적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으로 귀신들도 아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다.
• 바른 신지식 : 위의 둘 중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된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바른 신지식에 이르게 되어야 한다. 창 28장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 잘 알 수 있다(지성의 변화 - 감성의 변화 - 의지의 변화).
• 신학(Theologia) : 원래 신학은 신론이었다. 신론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적 논리의 우선성은 다음과 같은 순서의 우선성과 같다 : 신학서론 - 신론 - 인간론 - 기독론 - 구원론 - 교회론 - 종말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신앙 논리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다. 캘빈은 순환적 지식으로써 인간 실존의 근원적 관찰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 또한 나 자신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아브라함의 고백들은 전혀 계산적이지는 않았다. 아담의 범죄 이후 부패한 인간 본성으로는 전혀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 경험의 결과이다. 아브라함의 고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우리의 고민
1. 신학적인 면에서의 고민
A. 현대인들의 의식의 흐름
a. 양극화 현상
① 변증법을 통한 침식이 일어남으로 특수한 구속의 역사는 점점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음. 1960년대 세속화 신학의 영향으로 사신신학 이후 과정신학, 해방신학, 혁명의 신학… 등 그 이후 상대주의가 나타난다.
‣ 1960년대 이후 신학의 흐름 정리
1) 비신화화 : 불트만(18세기 영국 이신론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성경 저자들이 당시 세계관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주장함. 따라서 고대의 세계관(신화)을 제거해야 하며, 성경에서 종교적인 케리그마를 찾아 현대인들이 볼 수 있도록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 이러한 닫힌 세계관 속에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 할 수 없다.
2) 비종교화, 비신학화(De Theologization) : 본회퍼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산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필요할 때만 요청되는 신개념은 전혀 불필요하다는 것으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세상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이것은 계몽주의 사조의 극단적인 표현한 것이다.
3) 포스트 모더니즘 : 합리적 체계를 강조하는 현대를 탈피해서 이 세대와 연속적이면서 불연속적인 사고로 탈 구조적이다. 기존 가치 체게를 완전히 와해시켜 버림 ⇦ 질서가 없고, 상대주의가 강화 되어 혼합주의적 성향으로 나아가 신론에서도 매우 혼탁한 혼합주의적 성향이 나타나게 되었음.
4) 뉴에이지 운동 : 상대주의 운동과 혼합주의 성향의 결과
5) 종교 다원주의 : 뉴에이지 운동 이후에 여러 변화들이 있게 되었고, 종교 다원주의가 발흥함.
2. 신론의 방향성을 잡는 일의 중요성
3. 신학의 위기 상황
4. 이원론적인 신앙구조의 현실적인 문제들
5. 신학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들
제 1강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가?”
= 제 1강 “하나님의 존재(The Existence of God)” - 김길성 교수 강의안
1. 계시 접근 방법
A. 비교종교학적 방법 : 하나님의 관념을 초 자연계시적, 직관적, 이원적, 종합적 기원을 기초하여서 여러 관점에서(사회, 문화, 심리, 효용) 비교한 후 거기에서 우월성을 말하는 것으로써 상대주의에서 출발하고 또한 결론 역시 상대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독교가 우월함을 증명할 수 없다. 결론이 우월이 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B. 기독교 변증론적(Apologia) 방법 : 신학은 2세기 변증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헬라철학적인 방법으로 변증하여 했기에 약점이 있다. 이것은 성경을 근본적으로 아는 데에는 결코 바른 접근 방법이 될 수 없다. 변증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절대로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도, 하나님이 절대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증명할 수 없다. 이 방법은 이성의 능력을 크게 신뢰하면서 이성에 의해 증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계와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C. 특별계시 의존적인 신앙의 방법8) : 믿음, 즉 신앙이라는 것은 합리적 논증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는 기독교 사상체계를 논증하고 변증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신앙은 변증의 결과가 아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논증의 결과가 아니다. 신앙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논증하다가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 역시 그 과정에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논증 때문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론체계 그 자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 근거한, 그의 선택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고, 주신 것에 대하여 성령에 의하여 확신이 생김으로 신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이 직관적인가? 아니면 간접적인가?
우리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합리적 논증에 근거하지 않았다. 성령께서 내적인 증거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 인식의 직관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직관적이지만 직접적인 것은 아니요, 간접적인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직관적이나 간접적인 것이다. 우리에게 밝혀진 이성이나 자신의 통찰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신적인 증거의 권위9)에 의존한다. 즉 성경 계시의 권위에 의존하여 믿는다. 직관적이지만, 성경을 통하여(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함, 즉 성령은 말씀의 칼을 들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의해서) 믿게 되는 것이다.
‣ 신학자들의 견해
1. 헤르만 바빙크 (신앙 우위론적 경향)
개혁교의학 1권(p. 133 근처) : “왜 당신은 성경을 믿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유일한 대답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왜 믿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 질문에 대하여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객관적인 원리는 성경이고, 주관적인 성령에 의한 믿음이다.
2. 찰스 핫지(이성 우위론적 경향)
조직신학 1권(p. 50 근처) : 핫지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성이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이성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즉 그는 이성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판단하여 믿고, 안 믿고가 결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펠라기안 주의적인 ‘상식철학’10)이 보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 (R.L. Laymond '개혁주의 변증학' 3장에서도 비평됨.)
3. 박형룡(하나님을 아는 객관적인 원리는 성경이고, 주관적인 원리는 이성인데, 믿음에 대한 봉사의 위치에 있는 이성이다)
원리는 진위를 구별하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우리의 불완전한 이성이 이러한 원리는 될 수 없다. 그러나 수단일 수는 있다. 이성은 논리적이다. 때문에 체계를 세울 수 있는 본성이 그 안에 있다. 때문에 이성이 수단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이다. ⇨ 어거스틴, 안셀무스 모두 믿음의 우선성을 알고 있었다. 그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고 증거에 기초한, 성경에 기초한 것이다. 그 근거는 일차적으로 특별계시인 성경 속에서 발견되고, 이차적으로 자연 속에서 발견된다.
⇨ 결론 : 성경무오의 관점 ↔ 성경은 역사적 산물 (인간의 종교적 경험을 객관화한 18C 하르낙 같은 사람들의 관점)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성경 가운데 이성적으로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사실들도 있지만 우리는 믿는다. 우리의 밝혀진 이성이 그것이 참되다고 증거 하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계시인 성경이 말씀하시기에 믿고, 또한 성령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게 하기 때문에 믿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 속에 예정하신 자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고 믿게 하시기에 믿는 것이다. 조건을 보지 않고 주셨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로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은사요 선물이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은 그의 이성은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참되고 단지 제한적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 달라졌다. 타락 이후에 이성이 본래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고하고 기능하는 그 본래적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다. 왜곡된 이성은 또한 남아 있는 넓은 이미의 하나님의 하나인 종교성의 왜곡과 결합해서 우상을 향하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왜곡된 이성으로는 하나님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 자유의지(이성, 영성, 등이 서로 조화된 것)를 강조하면 죄 문제가 관련되어 인간의 책임이 강조된다. 그러니 인간의 죄 문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개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 그것은 5C의 펠라기우스 논쟁에 이른다. → 여기서 R.C.는 절충주의(Semi-Pelagianism)11)로 갔고, 알미니안 주의12)는 이 자유주의의 이론으로 생겨난 것이다.
반면, 터툴리안과 이레니우스는 언약개념으로써, 대표성의 원리를 통해 원죄를 강조하고, 모든 이들의 전적부패를 주장한다. 나중에는 어거스틴으로 발전된다. 이것은 신인식의 이중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개혁주의로 나오게 된다.
2.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인식의 세 가지 원리 : 계시에 의존하는 신앙
‣ R.C.의 낙관적 인간관을 기본으로 한 입장 : 이성에서 출발하여 논리적인 자연신학을 구축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때 알게 된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고, 그 지식은 참되다. 그리고 나아가 여기에서 비약하여 이성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에 의존하여 삼위일체, 성육신, 구원의 진리등... 초월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한다. ⇦ 이성의 건재성에 기반한 논리이며, 헬라 철학의 영향13)을 받았다. 이것은 이 둘의 관계를 단순한 기계적 관계로 보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은총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이러한 기계적 관계에서는 은총의 하부구조인 자연은 순수하게,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이성도 타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이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죄의 심각성, 즉 전적 부패를 근간으로 한 개혁신학적 입장 : R.C.는 이성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성은 타락 이후에 전혀 본래적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죄의 심각성을, 전적 부패를 이성은 벗어나질 못한다. 이성은 존재론적으로는 남아 있으나, 이성의 본래적 기능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는 전혀 이성이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서는 이성이 결코 그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구해야만 한다.
A. 본질의 원리 - 하나님 자신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원리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예외없이 하나님께 존재 원리를 의존하고 있다. 그는 존재의 원리일 뿐 아니라 인식의 원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참된 하나님에 대한 인시과 지식을 알려면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전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계시하려고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길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종교개역자들은 유한성의 한계와 죄의심각성을 들어 인간의 본질적 원리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즉 인간은 피좀ㄹ이요 유한성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창조주께서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려고 하실 때만 알게 되며, 전적으로 인간은 타락한 존재요 설령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해도 타락한 후, 인식이 심각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외에는 인식작용이 왜곡될 수 박에 없기에 인간의 본질적 원리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피조물에게 알리려고 할 때만 인가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절대적인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본질적 원리가 되며, 원리의 원인이 되신다.
B. 인식의 외적 원리 -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자의식의 전달 방법은 오직 계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계시는 세 가지로 전달된다.
첫째는 나타나심으로, 둘째는 말씀하심으로, 셋째는 행동하심으로 계시를 전달하신다.
C. 인식의 내적 원리 - 성령의 조명
결국 인식의 원리는 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자기 계시오, 실존 밖에 없다. 그러나 세 가지는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분리되지만, 삼위 하나님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 2강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
= 제 2강 “하나님을 아는 지식(The Knowledge of God)” - 김길성 교수 강의안
1. 바르트적인 경향 : 초절주의
2. 스콜라주의적인 경향
제 3강 “신 존재 증명”14)
1. 존재론적(본체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15) - 모든 유신론들 중에 특히 형이상학적 연역적 변론임.
이 변론은 하나님의 참된 객관적 존재가 하나님의 관념자체에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 주기로 의장된 것이다. 이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관념을 직각적으로 가진다고 주장한 다음에 그의 존재의 증명을 그 관념자체에서 발견하려고 시도했다.
‣ 안셀름(Anselm, 1033-1109)의 삼단논법 논증
“인간은 보다 더 큰 존재에 대한 관념이 있다. 완전무결한 존재란 존재한다는 속성을 지닌다. 즉 존재한다는 것은 완전의 속성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여러 성질이 있다. 즉 반드시 있어야 하는 속성이 존재한다는 속성이다. 그러므로 보다 더 큰이가 사유될 수 없는 존재는 존재 할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이러한 논리적인 증거가 가능할 것인가? 생각 속에 있다고 해서 실재로 존재하는 것인가? 우리 머리 속에 날개 달린 말이 존재한다면, 실제로 그러한 존재가 존재하는가?
⇨ 이 논증은 중세 실재론(Realism) 철학이 가지고 있는 전제16)를 가지고 있어야 성립되는 논증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적 논증 - 인과론적 논증이다. 이 논증은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받아들임.
“모든 만물은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한 결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최종 원인이 존재하는데, 그 최종원인은 더 이상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궁극적 원인, 제일 원인이다. 그 제일 원이니 바로 신이다”
⇦ 이것은 기계적 우주관이다. 기계적 우주관 일지라도 인과관계를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인과론을 부인한 사람이 있다. 영국의 데이빗 흄은 인과론은 연상 작용에 의한 것이지 실제로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한다.17)
⇨ 흄은 인과를 단순한 인간의 연상 작용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흄이 이렇게 인과론을 부인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우주를 모두 인과론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유의지 때문이다. 자유의지의 원인은 자기 자신 속에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의지에 원인이 있다고 말 할 경우, 자유의지 자체에 대한 부인이 된다.
3. 목적론적 논증 - 초월적 원리 : 정서론18), 설계론(또는 의장론, 意匠論)19)
존재 이유와 목적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준거점이 필요하다. 세계를 바라볼 때 얼마나 조화로운지 알 수가 없다. 피조 세계의 법칙, 모든 것들은 조화로운 목적이 있다. 이러한 조화로운 목적을 부여한 초월적인 존재가 존재하는데 그가 바로 신이다.
⇨ 세상에는 조화로움뿐만이 아니라 불합리한 것들도 있다. 이때 이 논증은 힘을 잃고 만다.
4. 도덕적 논증(The Moral argument) : 양심이 증거20), 도덕적 세계의 증거21)
칸트가 위의 세 가지 논증을 그 근거가 전혀 설 수 없도록 비평하지만, 이 도덕적 논증에서는 상대적인 가치를 인정했다. 칸트는 인간의 도덕적인 행위와 그 결과 사이의 불일치를 주목한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선한 자들이 오히려 그 수고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반대로 비윤리적이고 비 도덕적으로 사는 사람이 현세적 관점에서 번영을 누리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불합리하다. 부조리하다. 이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이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현세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내세가 있어야 한다. 이 현세에서 이러한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불의한 것을 판결해 줄 ‘의로운 중재자’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며, 이 의로운 중재자가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일 것이다라는 것이다.
⇨ 실존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로운 존재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의로운 중재자가 누구인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바로 이것이 이성에, 합리성에 근거한 신 존재증명의 한계성이다.
5. 다른 논증들
‣ 종교적 논증
‣ 심미학적 논증
‣ 인론적 논증
‣ 역사적 논증
* 여러 논증의 가치 :
⇨ 전체적인 평가 :
1) 긍정적인 면
2) 부정적인 면
a.
b.
c.
d.
3) 적용
제 4강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여러 이론(반 유신논증)”
1. 무신론(Atheism) - 존재론 절대 부인
A. 실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ts)
B. 이론적 무신론(Theoretical atheists)
1) Dogmatic(독단적) 무신론
2) Sceptical(회의적) 무신론
3) Critical(비평적) 무신론
4) 실천적 무신론
2. 불가지(Agnostic)론 - 잘못된 신지식
A. 불가지론자들의 근거
1) 하나님의 절대성에 근거
2)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
① 데이빗 흄
② 하나님을 인간처럼 묘사한 것 뿐, 실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함
③ 칸트
④ 윌리암 헤밀톤 : 불가지론자
B. 불가지론자들의 근거 분석
C. 불가지론자들의 논리에 대한 논평
1) 인간은 안다. 인식한다라는 개념에 대해서
-
2) 인간이 알기 위해서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대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인간이 그 무엇을 알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파악해야만 가능하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
3) 하나님에 대한 진술, 설명, 서술이 소극적이다. 그래서 이러한 소극적 서술로는 참된 지식에 이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
4)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인식의 주체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대상을 인식주체 속에 있는 인식능력, 즉 이성을 통해서 안다. 그러므로 대상이 존재하는 실재 그대로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지식은 대상 자체에 대한 실제적 지식일 수 없다. 너무나도 상대적인 지식이 된다. 똑같은 대상을 두고 바라보며 지식화 할 때 대상은 같다 할지라도 인간의 지식은 인식주체의 인식능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이성을 통해 파악한다고 할 때 대상의 실제 그 자체와는 다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
5) 전제와 관계된 문제
-
3. 범신론(Pan-theism) - 초월과 내재의 통합, 영원과 시간의 통합
4. 이신론, 자연신론 - 17C 데카르트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됨
5. 유한신론 - 다신론(Polytheism)
- 단일신론(Henotheism)
* 영지주의의 공통적 견해들
6. 추상적 관념 신론
‣ 루이스 벌콥의 견해
‣ 웨인 그루뎀의 견해
‣ 로버트 레이먼드의 견해
‣ 헤르만 바빙크의 견해
제 5강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1. 초월성과 관련되어서
A. 교부들
B. 스콜라주의 신학자들
C. 종교개혁자들
2. 내재성과 관련되어서
3. 역동성과 관련되어서
제 6강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칭”
1. 하나님의 이름
2. 하나님의 명칭
제 7강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1. 본질(Being22)) : 하나님을 논의할 때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신학자 중에 본질과 속성을 분리해서 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23) 반대로 나눌 수 없이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함께 논하려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24). 개혁주의는 두 번째 입장이다. 이 입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적이다고 평가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도식에서 형상과 질료는 서로 하나로 결합되어 존재한다. 모든 질료는 형상을 목적인으로 하여 발전해 간다. 그런데 발전해 가면서 질료 속에 형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두 접근 방법에 있어 차이는 없다. 보다 보편적인 방법이 후자일 뿐이다.
2. 본질과 속성과의 관계
A. 주의해야 할 점
B. 구별은 되지만 분리해서 생각하면 안 됨
‣ 세 가지 오해들
C. 예속된다고 말하면 절대로 안 됨
3. 하나님의 속성
A. 절대적 속성 ; 비공유적 속성(Incommunicable Attributes)25)(자존성, 불변성, 무한성26), 유일성27))
* 유일성 : 박형룡 박사는 하나님의 비 공유적 속성 가운데 유일성(Unitas : 하나됨, 통일성, 단일
성)이 있다고 말함.
* 단수성 :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 단순성 : 단순하다의 반대말은 혼잡, 복잡이다.
B. 보편적 속성 ; 공유적 속성(Communicable Attributes)28)(영적, 지성적29), 도덕적30), 주권성31))
제 8강 “삼위일체32)론과 성경적 근거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조”
- 삼위일체론 -
어떤 유비로 하나님을 설명하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완전한 것은 아니다.
아래의 두 이단설에 대한 것은 차영배 교수의 책들 참고할 것.
1. 양자론(養子論, Dynamic monarchianism = Arianism) ; 역동적 군주체제론, 단일신론
삼위를 말하기 위해 일체를 희생시킨 이론
A. Ebionity(에비온파)
B. Alogie - a logoi
C. 데오도투스
D. 사모사타의 바울
E. 루시아누스
F. 아리우스의 사상
2. 양자설의 유형별 분류
A. 종속설
B. 태초피조설
C. 선재 부인설
D. 수세, 부활후 성자 승격설
3. 양태론(樣態論)33) : 일체를 말하기 위해 삼위를 희생시킨 것.
2. 양태론의 유형별 분류
A. 성부 고난설
B. 성부 속성설
C. 계시 양태론
D. 양태론적 가속설 - 진젠도르프
E. 신지학적(Thosophisch) 양태론
F. 변증법적 양태론(범신론적 과정설)
- 삼위일체론의 성경적 근거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조34) -
* 목회자가 문제 생길 때 판단하는 근거 : 성경관,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근거함.
1. 구약의 근거
A. 하나님의 명칭인 ‘엘로힘’을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까?
B.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 복수로 말씀하심(창 1: 26; 11: 7; 3: 22, 사 6: 8)
C. 여호와의 천사에 대해 언급된 구절들(창 18; 19)
D. 민 6: 24-26의 축도
E. 삼위 하나님의 일체적인 사역을 시사하는 구절들(창 1: 1, 학 2: 5, 사 61: 1)
2. 신약의 근거
A. 창조사역에 관해 언급된 구절들(마 7: 11, 요 4: 21, 히 12: 9, 고전 8: 9, 요 1: 3, 고전 8: 6, 골 1: 15-17, 히 1: 3, 마 6: 30)
B. 구속 역사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엡 1: 3-14)
C. 세례 받는 광경에서(마 3: 16)
D. 그리스도의 교훈 속에서(눅 15, 요 1: 18 - 성부를. 마 11: 27, 요 5: 17 - 자신과 유독한 관계. 요 1: 14; 5: 26; 10: 30 - 영광과 생명과 권능에 있어서 동일하심. 막 1: 12, 눅 4: 1; 14, 요 3: 34 - 자신을 인도하시는 성령. 요 14:, 15:, 16: - 아버지께 받아 그가 우리에게 보내실 성령.)
E. 마지막 대 명령을 위임하실 때(마 28: 19).
F. 사도들은 구원의 삼중적 신적 원인을 말하였다(마 6: 13, 롬 8: 29 - 예지와 선택 왕권은 성부에게. 마 1: 21, 고전 1: 30, 엡 1: 10, 딤전 2: 5, 벧전 1: 2 - 중보직과 화해는 성자에게로. 요 3: 5; 14:, 16:, 롬 5: 5; 8: 15; 고후 1: 21 - 중생 성화 교통은 성령께.)
G.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성부나 성령과 나란히 동일 선상에 놓았다(고전 8: 6, 고후 13: 13, 살후2: 13-14, 엡 4: 4-6, 벧전 1: 2, 요일 5: 4-6, 계 1: 4-6).
3. 교리의 진술(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3절)
“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 The Father is of none, neither begotten nor proceeding; the Son is eternally begotten of the Father; the Holy Ghost eternally proceeding from the Father and the Son."
A. 하나님의 존재방식(Seinsweise)은 삼위(일체)로 계신다 : 신성의 단일성 속에 삼위가 계시나니(존재양식), 동일한 본질과 동일한 능력과 동일한 영원성을 가지신 삼위가 계시나니,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성령 하나님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시다. 아버지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으시고, 나시지도, 나오시지도 않으신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나신다.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다.
B. 각위의 본질이 동일하시다 : 삼위가 계신데 본질과 본성이 동일하다. 모두 동격으로 동등하게 존재하며, 속성 자체도 본질과 동등하다. 본질은 동일하다. 삼위는 현현 방식이 아니라, 존재방식으로 신조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삼위는 현현의 세 양식(양태론)이 아니다. 루이스 벌콥은 온전한 본질은 “세 인격 각자에게 동등하게 속한다”고 했다. 일체이신 삼위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신적인 본질이 세 인격과 병립된 존재가 아니며, 또한 이것은 세 인격을 떠나서 외부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사신론에 빠지게 된다.
현재 뿐 아니고 창조 이전에도 삼위로 계셨고, 재림이후에도 삼위로 계신다. 이것이 신조의 표현이고 성경적인 이해이다.
C. 삼위는 서로 구별되는 위적 속성을 가진다 : 위는 구별이지 분리가 아니다. 분리는 존재가 다름을 의미한다. 그러나 각 위는 분리될 수 없다. 삼위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다. 분리되면 삼신론이 된다.
명칭이 구별된다. 삼위의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명칭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삼위를 가리키는 독특한 명칭은 서로 교호적으로, 교체적으로 사용될 수 없을 만큼 구별된다. 성부는 성자일 수 없고, 성령은 아버지일 수 없다. 성자 또한 성령일 수 없다. 그만큼 명칭에 있어서도 구별 된다.
삼위는 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합쳐질 대 비로소 본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 자체, 아들 자체, 성령 자체가 완전한 신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격을 삼위일체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삼위로 계신다. 그런데 본질은 같다.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므로 일체가 된다. 그러나 그 삼위가 혼동될 수 없을 만큼 구별된다.
“삼위란 한 동일한 본질 안에 있는 삼중관계”라고 어거스틴은 말했다. 그 동일한 본질이 삼위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동일한 본질 안에 있는35) 삼중관계라는 것이다. 명칭에 있어서도 모두 하나님을 불리며, 그 속성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하나가 된다.
‣ 번역 비교36)
a. “하나님의 본체는 하나이시나 삼위로 계신다. 즉 한 본체와 한 권능과 한 영원성이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하나님, 성령으로서의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무슨 물질로 구성되거나 거기서 나오거나 그것에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성자는 영원토록 성부에게서 탄생하시고 성령은 영원토록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 - 총회교육부(통합측) 발행, 신앙고백집.
b. “신성의 단일성 속에 삼위가 계시나니, 동일한 본질과 권능과 영원성을 지니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시고, 아무에게서도 나시지 않으시며, 나오시지도 않으신다. 성자는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나오신다.” - 최홍석 교수.
* “나심” :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셨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성경에서 쓴 용어이며, 삼위 사이에 시간적 선후가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으로 성부가 먼저 있고, 아들은 후자라는 뜻이 아니고, 영원히 나신다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이다. 다만, 논리적인 순서, 성경이 말씀하는 논리적인 순서이다.
베르코프는 기독교 교리개요에서 나심은 과거에 이미 완성된 행위로 간주될 것이 아니고 그의 영원한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 없는 영원한 연속이며, 시간을 초월한 끊임없는 연속이며, 그러면서도 완성된 연속이다.
나시는 일은 영원히 지속되는 일이면서도 완성된 일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지속되는 일이면서도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모순되는 듯 하지만,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일을 인간의 말이나 생각으로 표현할 수 없다.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 “독생자” : 요한 서신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바울은 ‘독생자’라는 표현보다는 맏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수님은 맏아들이고 우리는 그의 밑에 있는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대표성의 원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아들들,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골 1; 15).
아버지의 의지에 의해서 나심이 아니다. 나심이란, 하나님의 필연적인 행위이시다. 성부의 영원한 행위이다. 초시간적 행위라는 표현이지만, 나신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적 실존의 나심이지 본체의 나심이 아니다. 본체의 발생이 아니다. 그것은 위적인 나심이다.
* “나오심” : 반출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오신다. 이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아들로부터”도 나온다. 소위 필리오케37) 교리를 받아들인다. 동방교회는 필리오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서방교회는 반대였다. 필리오케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들어가게 된다.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는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했고,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성부로부터 나오시는 주, 생명을 만드시는 주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했으며, 589년 3차 톨레도 회의에서 필리오케가 첨가되었는데, 동방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를 웨민 신경이 받아들인다.
‣ 동/서방 교회의 차이 : 동방교회는 종속론을 명백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동방교회는 삼위의 동등성을 인정한다. 동방교회는 성령과 성자의 일정한 관계도 받아들인다. 그래서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자를 ‘통하여(through) 나온다’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Out of 일 경우는 반대했다.’ 왜냐하면, 기원은 아버지로서 통일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로부터 나온다고 하면, 기원이 둘이 되어 통일성이 깨져버린다고 생각하여서 반대했던 것이다. 이렇게 동방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했다. 삼위의 통일성이 깨지는 것이 두려워서 필리오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방교회는 종속론적인 신관이 지배했던 것이다.
동방교회의 이론은 성령과 아들은 대등한 입장이 되어, 하나님은 계시하실 때 지성은 아들에게 계시하시고, 성령은 기쁨과 격정을 계시하신다고 생각하여 교리와 삶이 분리되게 할 수 있게 되어 극단적 신비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그리스도 없는 성령운동 : 몬타니즘).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나오는 것이 두 원리로부터가 아니라 한 원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Part Ⅱ : The Work of God
제 9강 “하나님의 작정(Divine Decrees)” 개관
1. 하나님의 작정의 정의
A. 신학에서의 정의 : 만사만물에 관계하는 넓은 범위의 하나님의 영원한 도모(계획)
cf.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 : 특별히 구원에 관계하는 좁은 의미의 하나님의 영
원한 계획
B. 성경에서의 정의 :
1) 구약 -
2) 신약 -
2. 하나님의 작정의 증명
A. 성경적 증명
1) 모든 사물의 작정
2) 특별한 사물, 사건들의 작정 ; 인간의 선하고 악한 자유행동들이 또한 하나님의 작정
에서 온다(행 17: 26, 슥 6: 1)
3) 구속사역의 작정
B. 합리적 증명
1) 신적 지혜에 의하여
2) 신적 예지에 의하여
3) 신적 불변성에 의하여
4) 신적 자선에 의하여
5) 자연 법칙에 의하여
6) 학문의 증언에 의하여
3. 하나님의 작정의 성질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님이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변들을 확실케 하시는 그의 계획이다. 신도계요 문 7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작정은 자기 의지의 도모〔계획〕에 의한 경륜이니 그는 이로써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무릇 되어가는 일을 선정하셨다”고 가르친다.
A. 하나님의 작정은 하나(; 단일한 행동)이다
B. 하나님의 지식과 작정의 관계 : 하나님 안에는 모든 일어날 수 있는 원인과 결과를 포함
하는 필연적인 지식이 있다.
C. 작정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 관계 한다
D. 행동하려는 작정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다 : 작정은 사건의 미래 발생을 확실하게 해주
는 신적인 속성들의 내적 현현이나 실행이지만, 하나님의 이러한 지성적 의지의 실현을
창조와 섭리와 구속에서 그 대상들의 실현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4. 하나님의 작정의 특징들
A.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 :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의 실현에서 나타난 지혜에 의해 추론된다.
B. 자유적, 자의적이다 :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의 계획에 따라 모든 일들을 지배하신다.
C. 영원하다 : 하나님의 작정은 전적으로 영원 속에 놓여 있다는 의미에서 영원하다.
D. 효과적이다 : 어떤 것도 그의 목적을 훼방할 수 없다
E. 불변적이다 : 하나님의 언약과 목적과 계획은 불변한다. 궁극적 목적은 감추어져 있고 사
람들이 보기에 변한 것 같으나(삼상 15: 11~38) - Anthropomorphism),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실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무지의 실수나 혹은 그
것을 실행할 수 없는 무능력 때문에 그의 작정을 변경하실 필요가 없다.
F. 무조건적이거나 절대적이다 : 작정은 그것의 영원성이나 불변성,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대한 배타적인 의존성으로부터 추론된다.
G. 보편적이거나 전포괄적이다 : 작정은 물리적인 영역에서든지 아니면, 도덕적 영영ㄱ에서
든지, 혹은 선하든지 아니면 악하든지간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H. 도덕적인 악에 관해서 하나님의 작정은 허용적이다 : 작정에 의하여 하나님은 유한한 의
지에 직접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인간의 죄악된 행동이 실현되도록 결정하지 않으시면서,
그 행동이 확실히 일어나도록 하셨다.
5. 작정 교리에 대한 반론들과 그에 대한 대답
A. 작정 교리는 인간의 도덕적인 자유와 상반 된다 : 인간은 이성적인 자기 결정 능력을 가진 자유로운 행위자이다.
B.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위한 모든 동기를 박탈 한다 : 신적인 작정은 행동의 규칙으로 사람들에게 제시되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규칙이 될 수도 없다.
C. 그것은 하나님을 죄의 조성자(Author)로 만든다 :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일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죄를 금하시는 하나님의 법으로 또 하나님의 거룩성으로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죄에 관한 작정은 (신적인 효능에 의하여 죄를 산출하시는 작정39)과는 구별되는)허용적인 작정이다.
6. 실용적 가치
‣ 웨인 그루뎀
(1)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2) 발생하는 모든 일로 인하여 감사하라
(3) 재수 혹은 운이란 없다 :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 그냥 발생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 찰스 핫지
(1) 하나님의 영광이 그분의 모든 작정들의 최종 원인이다
(2) 작정들은 하나의 목적으로 환원될 수 있다
(3)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하다
(4) 하나님이 작정은 불변적이다
(5) 하나님의 작정은 자유롭다
1) 하나님의 작정은 충분한 이유들에 근거한 합리적 결정이다
2) 하나님은 모든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벗어나 있는 무한히 높으신 분이다
3) 하나님의 작정은 절대적이고 또는 주권적이라는 의미에서 자유롭다
(6) 하나님의 작정은 확실히 유효적이다
(7) 하나님의 작정은 모든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다
1) 신적 작정의 보편성은 신적 목적들의 통일성으로부터 증명된다
2) 작정의 보편성은 하나님의 보편적 통치로부터 나온다
3) 작정도 다른 증거는 신적통치의 확실성으로부터 연원된다
(8) 자유행위들도 작정되어 있다
1)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의지의 계획에 따라 모든 일들을 지배하신다고 가르친다
2) 우연의 사건들, 즉 제비뽑기, 화살의 날아감, 참새의 추락, 우리의 머리털의 숫자와
우리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그 작용이 아무 미묘하고, 아주 신속한 원인들에 의존
하는 사건들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선언된다
3) 성경은 인간들의 자유행위가 미리 정해져 있다고 특별히 선언한다
4) 성경은 거룩한 행위들뿐만 아니라 죄악된 행위들도 작정하셨다고 가르친다
5) 이외에도 느부갓네살의 정복,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많은 다른 유사한 사건들은
예언되었고, 그래서 작정되었다
6) 전체 역사의 과정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들의 전개로서 표현된다
‣ 헤르만 바빙크
(1) 우리는 여전히 자기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
(2) 우리의 행동은 실제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사건의 진로를 변경시킬 수 있다
(3) 기도는 분명한 결과를 조래하고 사건의 진로를 변경시키는 가장 확실한 행동 중 하나이다
(4) 결론적으로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제 10강 “예정(Predestination)”
‘예정’이란 말은 대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의로운 유기를 말하는 타락한 인간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낸다. 성경은 예지 예정(= 조건 예정 : 미리 아시고 그것이 되도록 하셨다는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이미 죽었는데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1. 예정론의 역사
2. 예정론에 관한 용어들
A. 성경의 용어
B. 신학적 명사(박형룡 박사)
3. 예정의 창시자와 대상들
A. 창시자
B. 예정의 대상들
4. 예정의 부분들
A. 선택과 유기 교리40)에 대한 차이점
(1) 선택 :
(2) 유기 : 간과, 정죄
B. 선택이 근거 : 하나님의 은혜
유기의 근거 : 하나님의 공의
C. 선택
(1) 성경적인 선택 개념
(2) 선택의 특징들
(3) 선택의 목적
(4) 선택의 종류(박형룡 박사)
1) 민족적 선택
2) 은혜의 외면적 수단에 의한 선택
3) 직무적 선택
4) 구원을 위한 선택
D. 선택의 가르침의 목적
E. 선택 교리에 대한 반대들
(1)
(2)
(3)
(4)
(5)
(6)
F. 유기(Reprobation)
(1) 유기론의 진술
(2) 유기론의 증거
(3) 유기를 허락하신 이유
G. 전택설(타락 전 선택설)과 후택설(타락 후 선택설)
(1) 차이점
1) 적극적인 측면에서 차이점이 발생한다
① 예정의 범위
② 작정들의 논리적인 순서
a. 타락 전 선택설(Supralapsarianism)의 순서 : 베자(칼빈의 제자)가 이 방향으
로만 주장함.
b. 타락 후 선택설(Infralapsarianism)의 순서 : 바빙크, 벌꼽의 입장으로써 전 선
택설에 대해서도 열어 놓았음.
2) 타락전 선택설의 입장
① 지지하는 논증들
② 반대하는 논증들
3) 타락후 선택설의 입장
① 지지하는 논증들 : 전택설의 입장을 배격하지 않되, 도르트 신조와 웨신의 입장
을 기반으로 후택설을 취한다.
② 반대하는 논증들
(2) 다른 교파들의 예정관
1) 루터파의 교리
2) 알미니안 파의 교리 : 알미니우스(1610)의 제자들이 화란 정부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을 항론파 5개조41)로 정립하여 건의하고서 Dordt(1618-1619) 회의에서 칼빈
주의 5개조(T.U.L.I.P)42)로 인해서 정죄되었다.
3) 웨슬리파 알미니안주의의 교리43) : 알미니안 교리체계를 대폭 수정하고 복음적 알
미니안주의라고 명명한다.
4) 예정 교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3) 정리
타락 전 선택설 혹은 타락 후 선택설은 절대적인 반대 명제로서 간주할 수 없다. 양자가 다 성경에서 지지된다. 선택과 유기와 관련하여, 타락 전 선택설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구절들에서, 타락 후 선택설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강조하는 구절들에서 지지된다. 우리의 신앙 고백 표준들은 타락 후 선택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타락 전 선택설을 정죄하지 않는다.
타락 전 혹은 타락 후 선택설은 절대적인 반대 명제로서 간주할 수 없다. 양자가 다 성경에서 지지된다. 선택과 유기와 관련하여, 타락 전 선택설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구절들에서, 타락 후 선택설은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강조하는 구절들에서 지지된다.
우리의 신앙 고백 표준들은 타락 후 선택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타락 전 선택설을 정죄하니 않는다.
제 11강 “창조(Creation)”
사람의 삼분설은 ‘워치만 니의 이론’으로 우리가(개혁주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영과 혼을 ‘영혼’으로 해서 하나로 인정하며 나뉘지 않는 실존적 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창조론의 역사
• 아담은 약 B.C 4004년 으로 계산된다. 예수님 이후가 2008년이기에 빠진 역사를 계산하여
도 지구의 역사는 약 7,000년에서 10,000년 정도 될 수 있다.
* 근거 ① 이스라엘은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서 글자를 맞추는 경우가 있다.
② ben = 아들의 뜻이지만, 자손의 뜻도 있다. 열왕기 상하의 왕들의 족보가 마태복
음에 빠져 있다.
2. 창조론에 관한 성경의 근거
3. 창조론의 개념
(1)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행위이다
(2)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이다
(3) 창조는 하나님의 시간적인 행동이다
1) 이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
2) 창조론에 나타나는 문제점
3) 이 문제를 위하여 제안된 해결책 논의
a. 영원한 창조론
b. 시간과 영원의 주관성의 이론
4)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할 방향
(4) 창조는 어떤 것이 무로부터 생기게 하는 행동이다
1) 창조론은 절대적으로 독특하다
2) ‘창조하다’를 나타내는 성경적인 용어들
3) 무로부터의 창조론의 성경적인 근거
(5) 창조는 세계로 하여금 구별되면서도 항상 의존적인 존재를 부여한다
1) 세계는 독특한 존재이다
2) 세계는 항상 하나님을 의존한다
(6) 창조의 최종성
4.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1) 인간 혹은 인류의 행복
(2) 하나님의 선포적인 영광
1) 그것은 성경의 증거에 근거한다
2) 무한하신 하나님은 창조 안에서의 최고의 목적 이외에는 어떤 목적도 선택하시지 않
으며, 이 목적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3)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독립성과 주권성과 일치된 유익한 목적이다. 모든 사람은 그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나 사물에 의존한다.
4) 어떤 다른 목적도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방식들과 사역들의 진정한 목적이 될
만큼 충분히 포괄적일 수 없다.
5) 그것은 우주에서 실제적이고 완전하게 성취된 유일한 목적이다. 우리는 지혜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실패하도록 운명 지워진 목적을 선택하
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용 23: 13).
(3) 하나님의 영광이 창조론의 목적이라는 교리에 대한 반대 의견들
1) 그것은 우주의 체계를 이기적인 체계로 만든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자족성과 독립성에 모순 된다
5. 세계의 기원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
(1) 이원론(Dualism)
(2) 여러 형태의 유출설(Emanation theory)
(3) 진화론(Theory of evolution)
(4) 우주 영원설
제 12강 “창조(Creation)” - “영적 세계(Creation of the Spiritual World)”
1. 박형룡 박사44)의 견해
2. 루이스 벌콥의 견해
3. 찰스 핫지의 견해
4. 그루뎀의 견해
5. J. Oliver Buswell의 견해
6. 생각하기
제 13강 “창조(Creation)” - “세계의 창조(Creation of the Material World)”
1. 박형룡 박사의 견해
(1) 성경기사의 목적과 견지
1) 창조기사의 목적
2) 창조기사의 관점
3) 창조기사의 기원
4) 창 1: 1, 2의 원시적 창조
(2) 6일의 사역
(3)
(4)
(5)
(6)
2. 루이스 벌콥의 견해
(1) 창조에 대한 성경의 설명
1) 성경이 세계의 창조를 관조하는 관점 - 보이는 것들의 창조
2) 창조기사의 기원
3) 창 1: 1, 2의 해석
(2) 창조 6일의 사역
(3)
(4)
(5)
(6)
3. 그루뎀의 견해
(1) 우주의 기원에 관한 이론
1) 세속적인 이론들
2) 유신론적 진화론
3)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고찰
4) 창세기 1: 1과 1: 2 사이의 공백에 관한 이론
(2) 지구의 연륜 : 서론적인 고찰
(3) 오늘날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소지구설과 노지구설은 모두 유효한 이론들이다
(4) 지구의 연령에 대한 결론 - 지속적인 이해의 필요성
5. J. Oliver Buswell의 견해
(1) 물질적인 우주와 인간, 무로부터
(2) 특별한 창조
6. 결론
제 14강 “섭리(Providence)”
1. 섭리론의 역사
2. 섭리의 개념
(1) 보전(보존, Preservation)
(2) 협력(Concurrence)
(3) 통치(정치, Government)
3. 섭리의 성격에 관한 오해들
(1) 초연신론(Deism) : 창조 이후 하나님의 간섭은 없다는 입장
(2) 범신론
(3) 인본주의 섭리관
4. 신적 섭리에 대한 반론들에 대한 답변
제 15강 “특별 섭리 또는 이적(Extraordinary Providences and Miracles)”
1. 이적들의 성격
(1) 일반 섭리(Providentia ordinaria)
(2) 특별 섭리(Providentia extraodinaria)
2. 이적들의 가능성
이적은 초대교회 때에 복음에 대한 확증으로 주셨으며, 성경에 기록된 오늘날에 와서는 복음전파와 관계 되어서 나타남.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에 의존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고)기도의 응답으로써 일어날 수 있다(가능성을 열어둠, 박형룡 박사 주장).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적은 기도의 응답으로만 일어난다.
이적이 집중되는 시기는 모세와 엘리야, 엘리사 시대였다. 그 외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보면, 사모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초대교회처럼(고전 12장) 흔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단, 성경 기록과 관계되는 그런 은사는 끝났다. 정경은 이미 66권으로 표준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예언”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다르다. 오늘날에도 예언의 은사를 성경의 기록처럼 생각하여 주장하면 안 된다.45)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 주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다. 예언은 알아듣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46)이라는 말은 “조명”과는 다르다.
3. 성경의 이적들의 목적
• 방언 :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표적
(1) 성경기록과 관계된다는 주장
1) 통역 : 사도행전의 방언은 15개국 언어는 외국어이다.47) 왜냐하면, 이적적으로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48)은 “알아 듣는 자
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통역의 은사가 필요하다.
* 이런 경우 학자들의 입장 - 바울이 쓴 언어와 누가가 쓴 단어는 같은 단어이며 시
대적으로도 차이가 매우 가깝다. 그러면, 지금도 외국어 방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전 세계에 그런 증거는 없다. 오늘날의 통역도 역시 거짓으
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 통역은 있지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마귀의 장난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방언을 주셨기에 인정된다. 1988년 미국 남
장로교의 입장과 동일하게 합동측도 역시 “방언을 말리지도 말고, 권유치도 말
라”49)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2)
(2)성경기록과 관계되지 않는다는 주장
• 중보기도 : 총회가 쓰지 않기로 결의함
• 축도 : “... 있을지어다” 로 경의함
【웨인 그루뎀의 견해】
제 16강 “변신론(Theodicy)”
1) 메이천의 교회론 전공하심
2) 그가 마지막 임종시에 그의 침상에서 고백하기를 “저 많은 저가들이 도움이 되지 못하네, ... 오직 믿음만이 그 마지막 시간에 나를 구원하네”라고 했다.
3) 반틸에게 소개한 책(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을 읽을 수 있음으로).
4) 박형용 박사가 프린스톤에서 공부 이후에 이 책을 번역함. 벌코프는 바빙크의 영향을 받았고, 이 두 사람의 개혁주의를 박형용 박사의 책속에 담았다.
5) 삼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
6) 완료 되었으면서도, 영원히 진행될 일이며, 인간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용어이다.
7) 피조물과 관련되는 일
8) 마 11: 27, 요 1: 19, 요 5: 39; 14: 6, 고전 12: 3
9) “주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케 하셨다.” 라는 말씀처럼, 주어지는 계시에 의해서 신앙이 얻어짐으로 간접적이며, 직관적이다.
10) 상식이 모든 판단의 근거라고 한 그 시대, 그 지역의 영향을 받은 철학 시조 중에 하나.
11) 이성이 타락 이후에도 그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그 이성에 의해서 참된 하나님 지식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함.
12)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동화줄을 내려주면 끌어 올려 줄 수 있듯이 인간은 그 정도 부패한 것으로 이해함.
13) 자연과 은총의 관계를 이층구조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구조를 도용한 이성관에 기초한 것
14) 조직신학에서 이 부분이 먼저 나오는 것은 조직신학 자체가 변증적이기 때문이다.
15) 플라톤, 안셀름, 데카르트, 사무엘 클락, 구장(Victor Cousin) 등이 이 관념자체를 발견하려 했다.
16) 실재론의 전제 : 생각 속에, 우리의 이성에 있는 석은 실재로 존재한다. 이러한 실재론의 전재를 부인하게 되면 이러한 존재론적 논증은 부인된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존재를 이끌어 내려는 논증인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논증을 칸트가 불가능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칸트는 도덕적 논증과 목적론증 논증을 어는 정도 인정하지만, 존재의 유비르 통한 논증의 타당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17)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경험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필연적이지 않고 갱쳔적이다. 단지 확률적인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8) 질서에 의한 논증, 과학에 의한 예증
19) 자연계의 이 모든 적응성과 계획성은 아마도 신적 의장의 목적인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이론
20) 도덕율의 의식으로, 책임의 실감으로 만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여 권위의 음성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 후에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릴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양심의 이 판단과 주장은 그 자체의 법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를 대표하여 그의 고등한 법에 행함이라는 인상을 우리에게 준다.
21) 덕과 행복, 악과 불행의 사이에 있는 외면적 결속은 단절될 수 있으나 그 내면적 결속은 파상되기 불능하니 그것은 물질적 세계에 있는 어느 인과관계와도 마찬가지로 변역함이 없다.
22) 본체로 번역됨이 좋을 것임.
23) 아브라함 카이퍼(; 플라톤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되고 있음) 등...
24) 헤르만 바빙크, 베르코프, 박형룡, 찰스 핫지 등...
25) 범신론을 배격할 수 있음.
26) 하나님은 절대적인 완전성을 가지셨다 : 절대적 완전성, 영원성, 무변성, 편재성
27) 단수성, 단순성 : 루이스 베르코프도 이렇게 분류했다.
28) 이신론(;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 역사에 계입치 않고, 초월적으로 계신다는 입장)을 배격할 수 있음.
29) 지헤, 지식, 참됨
30) 선, 거룩, 의
31) 의지, 주권적 능력
32) 박형룡 박사 : “삼위이신 일체로 계시는 분, 혹은 일체이신 삼위로 계시는 분”으로 표현했음. 즉, ‘예수님과 성령과 아버지는 몸이 하나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33) “어떤 때는 아버지로 나타났다가, 어떤 때는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여서, 모습을 바꾸어서 나타난다고 표현 하는 방식임.
34) 하이델 베르그 신조 - 영국 청교도 신앙고백이 빠져 있고, 오직 개혁주의자들의 사상이 기초 되어 있다. 신앙적인 내용은 일치한다. 도르트 신조가 이 두 신조(웨신과 하신)에 영향을 미쳤다. 사상적 연속성이 있다.
35) * 비교 참고 : ‘본체론적(존재론적) 삼위일체’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속에 있는 관계를 성령에 근거하여 주목하면서 관계를 설명하려 하는 것.
‘경륜적 삼위일체(Ecomomic Trinity)’(엡 1장) = 일과 관련하여 삼위를 역할 분담하는 것.
36) 성도들에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교리의 이 부분을 분해하며 설명하는 것이 가장 최선일 것이다. 유비를 가지고 삼위를 설명하면 부작용이 더 많다. 유비를 가지고 성경을 통해서 그 유비가 잘 못 된 것임을 설명하면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요한복음 1장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삼위’를 설명할 수 있다.
37) “아들에게서도”라는 뜻으로써 동서방교회의 분열의 한 이유였다.
38) “후회하셨다” 는 뜻은 처음 계획을 바꾸셨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임.
39) 선악과(창 2장 16-17절)를 두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왜 두셨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단, 아는 것은 사람이 순종하기를 원하셨으나,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해서 영생을 얻지 못 했다.
40) 이 두 가지를 이중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함
41) 부분타락, 조건선택, 보편 속죄, 가항적 은혜, 택자의 타락(으로 인해 지옥 갈 수 있음)
42)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43) 성결교, 감리교의 근원으로써, 알미니우스자들이 추방당하여 영국으로 건너와서 웨슬리와 합친 파
44) 어거스틴 - 칼빈(1509-1564) -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들(존 머레이(1616-1683),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 - 미국 장로교(PCUSA. 1706~) - 〔구 프린스톤 신학교의 시기(1812-1929) : 아치올드 알렉산더(1812-) - 찰스 핫지(1822-1878) : 1872-73년에 조직신학 3권을 씀 - A. A. 핫지(1878-86) - B. B. 워필드(1886-1921) : 워필드가 죽은 2년 후 박형용 박사가 수학함 - 쟌 그레셤 메이쳔(1906-1929 : 프린스톤, 1929 - 1937. 1. 1. : 웨스트민스터) : 박윤선 박사가 수확함〕
45) A.D. 100년 경에 성경이 완성되었다. 66권 외에 다른 성경을 기록할 수 있다는 은사가 있다는 것은 이단이다. 지금도 예언을 성경의 기록과 관계되어 사용하고 있기에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46) ‘꿈을 통해 역사하심’, ‘임지를 인도하심’ ... 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짜일 경우가 많기에, 성경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주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성경과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47) 워필드, 서철원 교수의 입장임.
48) 박윤선 박사는 영적 방언으로서 영적으로 다른 질서가 있는 방언으로 주장하며, 공 예배에서 방해되지 않도록 할 것과 방언을 하라고 가르쳐서도 안 된다고 주장함.
49) 고린도 전서 14장 : 공 예배에서는 방언하면 안 된다는 교훈.
[출처] 신론강의안(최홍석교수vs김길성교수)|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