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5월 6일 한국 순교자 103위를 성인에 올리는 역사적인 시성식이 거행되었던 제단 자리이다.
그 제단이 있던 여의도공원 잔디마당에 그날을 기념하는 '한국순교자 103위 시성터' 표석을 세웠다.
그날 성인에 오른 한국 순교자 103위 그분들의 모범을 따르며, 온 민족과 누리에 그들의 신앙이
이 민족의 희망의 표징이 되도록 하였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표석” 전면에는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터”라는 제목 아래
이 땅에 빛을! 한국의 103위 순교자를 성인 반열에 올리노니, 세계 교회가 공경하기를 바랍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시성선언문 일부를 새겨 넣었습니다.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터
'이 땅에 빛을'
한국의 103위 순교자를 성인반열에 올리노니
세계 교회가 공경하기 바랍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1984년 5월 6일 이곳에서 103위 한국 순교복자들을 성인 반열에
올려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을 기리고자 이 돌을 세웁니다. 2009년 9월 19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니콜라오 정진석”
문구를 한글, 불어, 영어로 각각 새겨 순례자들에게 기념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1984년 5월 6일 103위 한국순교성인 시성식이 여의도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이때 여의도에는 100만 인파가 운집하였다.
이 사진 속에서 시성식 제단 십자가 아래 중앙 제단 있던 곳이 지금의 여의도 공원 잔디마당 그 자리이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訪韓)한다. 한국 순교복자 103위를 성인으로 올리는 시성식을 거행한 것이다.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와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이 거행되었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복자 김대건 안드레아와 정하상 바오로 및 동료 101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전 교회에서 그들을 경건히 공경해야 함을 선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시성 선언으로 한국 천주교회 103위 성인이 탄생하게 되었다.
더욱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친히 한국 교회를 찾아와 103명의 복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빛과 평가를 부여하였다. 이 땅에서 100년이 넘도록 계속된 박해 중에 만 여명이 순교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대박해 때 순교한 교인들중에서 1925년에 79위, 1968년에는 24위, 모두 103위가 시복되었고 이들이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두 시성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
'한국 순교 103위 성인'의 의미과 시성식과 관련한 사실을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에서 간추려 아래에 옮긴다.
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는 곧 순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한 박해를 받았고, 이에 따른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1839년 기해년부터 1846년 병오년 사이의 순교자 79위의 시복식(諡福式)이 1925년 7월 5일 거행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흥선대원군의 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모두 103위의 순교복자(殉敎福者)를 지니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한 교황 파울루스(바오로) 2세가
여의도 광장에서한국 순교복자 103위 시성식(諡聖式)을 거행함으로써 이들은 복자에서 성인의 품위로 오르게 되었다.
103위의 구성을 보면, 김대건 신부(성인이 된 유일한 한국인 성직자)와 평신도 92명,
파리 외방전교회소속 선교사 10명(주교 3명, 신부 7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성식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1983년 3월 한국주교단은 교황청에 기적심사관면청원서를 제출했고
교황청은 시성을 허락했다. 성인의 반열(班列) 절차가 매우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이 승인한 이유는 한국 천주교회가
'신앙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평신도 중심의 자생적 교회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이외의 지역에서 시성식을 행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로써 한국의 천주교회는 천주교 성인의 10%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에 뒤이은 성인교회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시성식이 행해지면 성인들은 교회의 성인명부에 기록된다.
성인을 기념하는 성무일도(聖務日禱:성직자 기도서)와 미사경문이 작성되고, 그의 이름이 세례명으로 사용된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모든 신자들로부터 경의의 대상이 된다.
1984년 7월 2일 103위 성인이 탄생함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공문을 통해
한국성인의 공경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내용은 첫째, 9월 6일 한국순교복자 대축일을 없애고 9월 20일을 한국성인 대축일로 기념하며,
각 교구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둘째, 복자성월(福者聖月) 9월은 순교자성월로 지낼 것 등이다.
1984년 10월 14일 로마 교황청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103위 시성 로마 경축대회가 열렸다.
이듬해 3월 12일 교황은 한국순교성인축일을 세계공용 로마 축일표에 수록하고 기념하도록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