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왜 세상이 혼란하고 분열되었는지에 대해서 집중관리해서 조명하는 일환으로 글을 올립니다.
문제는 지금 증산도가 필요이상 왜곡되어 있고, 궁극적으로는 제대로된 기록으로 남아 있지도 못하고, 왜곡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단지 증산도라는 하나의 종교단체의 문제라면 또는 단지 하나의 신앙의 문제로서 남는다면 이에 대해서 침묵한다 해도, 대세적 차원에서는 문제 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의 역사과정을 살펴 보았을때, 전체 역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문제들, 특히 역사의 왜곡으로 인해 벌어지는 필연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묵과할 수 없겠습니다.
곧 부정확한 역사가 초래하는 대중의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아래와 같이 증산도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보도하고 올리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국내 기독교계 신흥종교인 전도관 일파로 신도살해 지시(살인교사)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지난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영생교(승리제단) 조희성 교주가 서울구치소에 수감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19일 오전 5시경 사망했다. 조씨는 지난달 24일 2심에서는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범인도피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상고심에 계류중이었다. 조씨의 사망으로 일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던 영생교와 신흥종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신흥종교는 신종교, 민족종교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신종교(新宗敎)라는 이름이 학계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사이비종교 혹은 이단종교로 부르기도 한다. 조희성 영생교주의 사망을 계기로 국내 신종교에 대해 알아본다.
◆기독교계 신종교
기독교계 민족종교는 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는 통일교를 비롯, 정도교, 전도관, 세계일주평화국, 산성기도원, 삼광수도원, 한국기독교 에덴성회, 중앙예루살렘심정교회, 에덴문화연구원(만교통화교), 세계종교연합법황청, 새일교회,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 애천교회, 예수님개혁 그리스도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 한국성민회, 대한기독교 천도관, 순금촛대교회, 엘리야 복음선교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교단은 선민사상과 민족전통사상의 포용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기독교계 종단에는 한국 민간신앙적 요소가 들어와 단군신앙, 음양사상, 태극사상, 풍수지리사상, 해원사상, 정감록 사상 등이 대부분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독교계 신종교는 여러 전통종교들의 사상과 재래의 미간신앙들이 갖는 장점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기독교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새롭게 구성코자 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 동학계
동학은 조선조 철종11년 경주인 최제우에 의해서 창교된 종교다. 최제우는 전통적인 유교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유교의 경전을 배웠는데 성년이 되어서는 유학자로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동학혁명과 3.1운동을 주도하는 등 한때 큰 세력을 과시했으나 현재는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동학의 쇠퇴는 손병희 이후 뚜렷한 지도자가 출현하지 못했고 일제의 통제와 내부분열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해방이후 기독교 등 거대종교들의 공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데도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도 재정과 조직의 열세로 당분간 세력을 떨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동학계 계열 교단에는 천도교(손병희), 수운교(이최출룡자), 시천교(이용구), 동학본부(김주희), 천진교(김역국), 성도교(이민제), 동학회중앙본부(박성호) 등이 있다.
◆유도계 교단 개관
신흥유도계 종단은 일제가 1935년 간행한 자료에 의하면 태극교(太極敎․1907년), 모성원(慕聖院․1912년), 대성교회(大聖敎會․1923년), 대성원(大聖院․1930년), 공자교(孔子敎․1931년), 조선유도회 등이 있었다. 이들 유교계 교단은 유교를 숭봉하면서도 전통유교와는 달리 종교성을 강하게 내포했고 일제시대 민중들에게 민족의식과 자주의식을 고취시켰다. 대부분이 북쪽에서 일어났다.
이밖에 청학동 도인으로 유명한 갱정유도와 신명유도가 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회장이 갱정유도 교단 소속이다. 신명유도는 1980년 권정수(權正洙)가 따로 독립하여 창립한 단체다. 권정수는 전국선비모임회의와 도덕성회복추진회 등을 발족해 회장을 맡으면서 친민당을 창당, 14대 대통령선거때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다.
◆단군계 교단
단군계 교단은 우리나라를 개국한 국조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교단을 총칭한다. 단군신앙은 고대부터 전승되어 민간에 연면히 흘러왔으나 조직적인 종교단체는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890년경 평안남도 맹산에서 김염백(金廉白)이란 사람이 신교(神敎)라는 명칭으로 종교단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단군교단에는 대종교, 한얼교, 단군교, 단군교 본부, 단군마니숭조회 등이 있어왔다. 또한 단군사묘(檀君祠廟)도 전국에 40여개가 산재해 있는데 여기에는 종교단체에 속하는 것과 종교성을 띠지 않고 다만 민족적 의식에서 국조숭배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있다. 단군 국조의 역사성이나 종교성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들도 있는데 이들 단체 역시 종교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들 단체에는 단단학회(檀檀學會), 배달문화원, 삼일철학연구원, 단군신정치연원역사연구원 등이 있다.
이밖에도 다른 계통의 교단에서도 단군을 곁들여 신앙하는 교단이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은 증산교계는 물론 봉남교계, 불교계, 계통불명, 무속계 뿐만 아니라 중국계인 일관도와 일부 기독교계 교단에서까지 퍼져 있다.
◆정역(正易)계 교단
정역계란 19세기 후반 김일부(金一夫)가 제시한 정역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영향을 받은 종교들을 말한다. 김일부(1826~1898)는 정역이 주역을 계승, 극복한 것이고 주역은 복희역을 계승, 극복한 것으로 보고 복희역, 주역, 정역의 사이에는 생성, 성장, 완성의 변증법적 발전의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한국 신종교들의 대표적인 사상적 특징의 하나인 후천개벽사상은 정역에 의해 논리가 뒷받침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정역계 교단에서는 영가무도(詠歌舞蹈)에 의해 병을 고치고 삼재팔난에서 벗어나며 후천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정역계 교단에서는 신단을 설치하지 않고 주요 신앙대상으로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의 삼성신(三聖神)을 신봉하고 있다. 김일부의 무극대도는 충남일대에 크게 번성한 적이 있으나 그가 죽자 제자인 하상역이 2세 교주에 올라 교명을 대종교(大宗敎)로 칭한 뒤 교단이 분립하기 시작했다. 1944년 계룡산으로 옮겨가서 중앙대종교로 개칭했다. 현재 정역계 교단 신도들은 운장산과 대둔산 등지에 주로 산재해 있다.
◆각세도계 교단
각세도(覺世道)는 활동시기가 주로 광복전이었고 포교활동보다는 내수도에 치중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때문에 현재 교세는 미미하다. 각세도는 신계 이선평(李仙枰 )이 창도했다. 1882년 2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태어난 신계는 17세에 구월산 어도왕으로 들어가 10년 수련을 시작했고 1909년에는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기도 했다. 현재 5개 정도의 분파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골도관, 화음정도관, 각세교, 천지원리교, 천성교 등이 있어왔다.
◆물법교(물法敎)계 교단
물법교계는 제주사람 김봉남(金奉南)에 의해 이뤄진 교단의 여러 교단을 총칭한다. 때로는 ‘봉남교계’ 또는 ‘찬물교계’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찬물의 이법을 교리로 하고 찬물을 먹게 하여 치병을 한다 하여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교조 김봉남은 1898년 4월 제주 북군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위장병을 앓아 이를 치유하기 위해 수도를 시작한 김봉남은 후에 수도를 해서 치병능력을 보유함으로써 많은 신자들을 모을 수 있게 됐다. 물법교리에는 유불선(儒彿仙)의 3개 교리가 통섭되어 있다.
유교의 윤리적인 면을 강조한 찬물교와 성덕도교화원이 있고, 불교의 염불과 참회를 강조한 용화삼덕도와 봉남교가 있다. 또한 선교의 주술치병을 중시한 교단으로 대한도교와 삼법수도원이 있다. 태와교(太和敎)와 봉남교는 무속적인 내용을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태화교에서 분파한 삼천교는 무속신앙을 교리의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무계(巫系 )교단
무계 교단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시는 교단인 관성교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 박기홍과 김용식에 의해 서울에서 창교되었다. 이외에도 무량교(1921). 칠성교(1922)를 비롯, 삼신교, 삼황교, 삼령교, 성화교, 영신교, 숭신인조합 등 10여개 교단이 해방전에 설립됐다. 해방이후에도 교단설립이 계속돼 70년대 말 대략 30여개의 교단이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중 대한승공경신연합회가 발전한 천우교, 천황궁, 무량천도, 천왕교, 무량교 등이 대표적인 종단이다. 70년대 말 무교계 종단은 충청도에 15개 정도의 단체가 계룡산 신도안에 밀집해 있었는데 80년대 그곳이 개발되면서 대전을 비롯한 인근지역으로 흩여졌다. 주로 단군, 부처, 산신, 수신, 해신 등을 모신다.
◆증산교계 교단
증산교는 1901년 전라북도 모악산에서 강일순에 의해 창교됐다. 신화일심(神化一心), 인의상생(仁義相生), 거병해원(去病解寃), 후천선경(後天仙境) 이라는 교의를 내걸고 이 교의의 내용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태을주를 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을주 첫머리가 ‘훔치훔치’ 시작된다고 해서 훔치교라고도 한다. 교세가 확장돼 가던 중 강일순 교주가 갑자기 사망하자 교주 승통문제에 혼선이 벌어져 여러 분파가 난립하게 되었다. 1992년 민족종교협의회에서 파악한 자료에 의하면 57개의 분파가 활동하고 있다. 증산도, 대순진리회 등이 상대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부 종단의 비의성과 폐쇄성 때문에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불교계 교단
불교계 민족종교로는 무엇보다 원불교를 들 수 있다. 원불교를 창립한 소태산 박중빈은 원래 증산교인이었으나 수도를 끝내고 대각을 이룬 후 자신의 도가 불교에 연원이 있다고 밝혀 불교계로 분류되고 있다. 원불교는 최근 들어 조직을 정비하고 교세확장에 주력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교조의 사후 후계문제를 모범적으로 해결했다는 점에서 다른 신종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원불교 외에도 대한불교용화종, 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법상종, 백화사 등이 불교계 민족종교로 분류되고 있다.
이밖에도 외래계 신종교가 국내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만 들어도 일본계인 천리교, 일연정종, 중국계인 도덕회, 기독교계인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계인 바하이교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종교가 기성종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리의 체계화 △종교의식과 종교윤리의 확립 △신자공동체로서의 교단조직의 체계화라는 세가지 차원에서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종교(민족종교)의 발생과 현황
1860년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이후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출현했다. 이들 종교는 서세동점의 추세에 따라 물밀 듯이 밀려드는 서양세력에 맞서 민족의 고유성과 정통성을 지키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한민족의 역할을 특히 강조한데 특징이 있었다. 이들 종교는 일제에 의해 유사종교, 사이비종교, 신흥종교 등으로 불리며 폄훼돼 왔으나 외세에 의해 민족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민족의 미래에 대해 민중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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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종교중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세계종교로까지 도약한 종교는 많지 않다. 문선명의 통일교와 박중빈의 원불교 정도가 성공한 케이스로 분류되고 있다. 이밖에 대부분의 종교들이 민족종교로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기성 종교에 밀려 미미한 교세에 머물고 있다.
이들 종교는 크게 동학계, 증산계, 기독교계, 무속계, 불교계, 물법계, 정역계, 각세도계, 외래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종교의 특성으로는 △교리혼합주의 △기존질서에 대한 부정적 관점 △현세적 지상천국 건설 △선민사상 △종말론의 강조 △교조의 신비체험과 카리스마적 성격 △신도집단내의 강렬한 연대의식 등이 지적되고 있다. 또한 계파를 떠나 인존사상(人尊思想), 사회개혁사상, 민족주체사상, 전통문화계승사상, 통합사상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신종교운동의 역사적 배경
그러면 이들 신종교들은 왜 19세기 후반과 20세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일까. 우선 조선왕조를 지배해온 성리학적 세계관이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신종교가 태동하게 됐다는 주장이 있다. 유교는 원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현세적 질서 존중의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초월적 세계를 지향하는 민중의 체험적 신앙과는 일정한 간격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일반 서민뿐만 아니라 왕이나 사대부계층까지도 인간본래의 의미문제에 부딪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종교적 요구를 억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민중들의 사상적 기저에 깊이 침윤해 있던 운세사상의 영향이 거론된다. 운세사상이란 중국의 선진시대부터 내려오는 음양오행과 참위설 및 도교의 요소가 가미된 일종의 순환론이다. 음양오행설은 새로운 시대의 개시가 우주의 섭리로서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게다가 참위설은 왕조의 흥망성쇠가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우주의 섭리에 따른 오행의 운행에 의해 정해진다는 결정론적 예언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정감록신앙이나 격암유록 등의 참위서가 크게 맹위를 떨친 것은 이런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런 사상은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종말론적 대망사상을 토대로 하여 몰락양반과 같은 주변적 지식인들이 체계화한 관념형태로서 미륵신앙과 더불어 이들 종교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셋째로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양반관료 중심의 봉건적 지배질서가 급격히 해체되어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한데서 이유를 찾는다. 조선조말 삼정의 문란으로 가렴주구를 일삼던 관료들에 맞서 민란이 발생하고 이들 사이에 특히 참설(讖說)이 횡행했다는 점은 이미 일반 민간차원에서 신종교가 태동할 토양이 마련돼 있었다는 것이다.
넷째로 외래종교문화의 충격을 들 수 있다. 최제우가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이나 ‘용담유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동학은 서구문화, 특히 천주교의 전파에 크게 충격을 받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천주교가 전파되기 전 조선시대에는 전통신앙이 불교와 결합된 형태로 민간에 전래돼 왔다. 그러나 불교가 한국 전래의 하느님신앙을 수용하지 않고 내면적 수도에 치중했다는 점에서 천주교의 전래는 한국 정신문화에 일대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유일신론적 신앙을 강조하는 천주교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교단적 형태를 갖춘 조직적 종교가 태동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