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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채 드러내지 못한 4.3은 여전히 기록의 역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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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오전 11시부터 열린 4.3유해발굴 개토제에는 유례없이 많은 취재진을 몰렸다. |
| 본격적인 4.3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에 앞서 4.3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4.3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가 7일 오전 11시 제주시 화북동 '가릿당동산' 동녘밭 현지에서 열렸다.
이날 개토제는 4.3당시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을 맞아 50여년간 해원되지 못한 4.3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례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개토제가 열린 가릿당 동산 동녘밭은 4.3 당시 1949년초 제주시 서부지역 출신의 민간이 수십여명이 군인들에 의해 총살돼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사건을 목격했던 마을 주민들로 부터 들은 학살.암매장 위치와 정황에 따르면 대략 20여명의 4.3 희생자가 매장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제주특별자치도의 주관으로 열린 개토제에는 제주4.3유족회의 진행으로 제주대학교와 (사)4.3연구소 등 발굴단과 유족 등 100여명이 참여해 4.3원혼들의 넋을 달랬다.
먼저 이규배 제주4.3연구소장이 추진경과와 계획을 보고하고 김한욱 특별자치도 행정부지사가 주제사, 고충홍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과 고충석 제주대학교 총장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어 본 제례에서는 이중홍 제주4.3유족회 부회장과 진덕문 제주4.3 유족회 사무처장의 집사로 초헌관 김두연 제주4ㆍ3유족회장, 아헌관 이상하 제주4ㆍ3유족회부회장, 종헌관 송승문 4ㆍ3유족회 제주특위위원장이 나서 제례를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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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당시 17세의 나이로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매장작업에도 참여했었다는 안명호씨(75)는 "당시 트럭에 20~30여명이 끌려와 이곳에서 학살됐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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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에는 당시 학살을 목격한 몇몇 증언자가 나와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17세의 나이로 학살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매장작업에도 참여했었다는 안명호씨(75)는 "1949년 초 트럭에 20~30여명이 끌려와 이곳에서 학살됐다"고 증언했다.
앞으로 유해발굴단은 2009년까지 4개년 계획으로 국비 43억원을 들여 제주시 화복동지역 5곳과 제주국제공항 2곳 등 총 11곳에서 1000여구의 유해를 발굴할 계획이다. 하지만 얼마 만큼의 유해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미 1차 발굴로 지난 5월 화북천변 암매장지 하천정비 관련 긴급 유해를 발굴한 결과, 3구의 유해가 확인돼 현재 제주의대에 안치해 유전자 감식 중에 있다.
이어 내년 1월 중순부터 제주시 화복동 가릿당동산을 비롯해 별도병 진지동굴, 동제원 입구, 고우리모루 저수지, 화북천 등 학살 암매장지 5개소에 약 100여구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미 국방부를 방문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선행사례를 수집 분석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이를 토대로 암매장지 발굴과 유해의 DNA검사 및 유전자 분석, 유가족 가계도 조사, 유가족 채혈 등을 거쳐 발굴된 유해의 유가족을 찾아주게 된다.
이번 4.3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은 4.3당시 암매장된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해 50여년간 해원되지 못한 4.3영령들을 추모하고, 발굴된 유해를 유전자 분석 등 과학적 신원확인 방법을 통해 유족의 품으로 돌려주자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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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종헌관 송승문 4ㆍ3유족회 제주특위위원장, 아헌관 이상하 제주4ㆍ3유족회부회장, 초헌관 김두연 제주4ㆍ3유족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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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유해발굴 개토제에 참석한 4.3유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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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당시 20여명이 학살돼 암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화북 일대 속칭 '가릿당 동산' 감귤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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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사를 낭독하고 있는 김한욱 행정부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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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대성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을 대신해 추도사를 읽고 있는 고충홍 부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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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맡은 서운봉 제주특별자치도 4.3사업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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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제주시 화북천변에서 4.3 유해 3구가 발굴돼 옮겨지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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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개토제 행사에는 유족 등 100여명이 지켜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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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채 드러나지 않은 생생한 기록의 역사 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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