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기업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한때 ‘피라미드’로 악명을 떨쳤던 다단계 업체와 잇따라 손을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바이오 벤처의 경우 다단계를 통해 해외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어 세인들의 관심을 자극하고 있다.
기업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단계 업체와의 ‘전략적 동거’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업체들은 “유통망 확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기업의 ‘파상공세’로부터 시장을 방어하기 위한 ‘피 튀기는’ 전략이 숨어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다단계 업종과 가장 활발하게 제휴하고 있는 곳은 바이오 분야. 코스닥 등록기업인 벤트리를 비롯해 쎌바이오텍, 렉스진바이오텍 등이 잇따라 다단계 업체와 손을 잡았다. 일부 업체의 경우 아예 다단계 업체를 새로 설립하기도 했다.
매출의 50% 이상이 ‘제휴 매출’
벤트리(www.ventree.co.kr)는 최근 다단계 업체인 네띠아미와 3년 간 6백92억원 상당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조건은 네띠아미가 벤트리 공급 물량의 최소 90%를 판매 보증하는 것.
이로 인해 벤트리는 계약 기간인 3년 동안 최소 6백20억원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연간 매출액만 평균 1백80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지난해 벤트리 매출(77억원)의 2배가 넘는 액수다.
유산균 제품 공급업체인 쎌바이오텍(www.cbt.co.kr)도 최근 다국적 기업인 암웨이코리아와 15억원 상당의 계약을 맺었다. 쎌바이오텍은 아울러 암웨이코리아와 함께 해외시장에도 공동 진출할 예정이다.
쎌바이오텍 유종문 차장은 “일본에서 이미 30억원 상당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도 암웨이의 막강한 판매력을 바탕으로 조만간 시장에 진출하기로 합의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건강식품 제조 및 판매업체인 렉스진바이오텍(www.rexgenebio.co.kr)의 경우 요즘 자체 유통망인 ‘온누리 약국’보다 매머드급 다단계 업체인 하이리빙코리아를 통한 제품판매에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1백39억원.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1백1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 매출의 50% 이상은 하이리빙코리아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코스닥 기업은 아니지만 바이오 벤처기업인 STC(www.stc365.com)는 다단계 계열사를 직접 설립한 케이스. STC는 최근 STC인터내셔널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화장품이나 건강식품 등을 직접 유통하고 있다. 이밖에도 홈쇼핑 업체인 씨앤텔이 최근 다단계 업체인 엔도큐와 2년 간 69억원 규모의 생활가전 상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다단계 업체와 손잡는 코스닥 기업이 늘고 있다. 특히 바이오 기업의 경우 ‘전략적’으로 다단계 기업과 동거에 들어가는 등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유통망을 확보하기 위한 일상적인 업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벤트리 안경신 과장은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고 해도 유통경로는 고민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유통경로 확보가 필수적인 만큼 다단계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의 행보가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배수진’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증시 관계자는 “건강보조식품이 주력 상품인 바이오 시장의 경우 그 동안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해 왔다. 그러나 건강기능성 식품법 시행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대기업들도 시장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을 견제하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다단계 기업과 제휴를 체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기존의 건강식품 시장은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였다. 때문에 시장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이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러나 건강기능성 식품법이 시행되면 기존의 신고제가 허가제로 바뀌게 된다.
또 임상시험을 거친 제품에 대해서는 효능 및 효과 표시와 광고가 가능하게 된다. 때문에 그 동안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던 대기업들이 막강한 유통망을 동원해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군침을 삼키고 있다.
이미 일부 대기업은 할인마트나 편의점 등 자사 관계사를 동원해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롯데제과의 경우 현재 관계 계열의 4천3백여 편의점에 ‘헬스원존’을 설치, 비타민 및 미네랄 등 10여 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풀무원과 웅진식품마저 사업 방향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주가 올리기 노림수’ 란 지적도
이 경우 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총알’이 부족한 벤처기업은 시장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의 경우 원료를 개발해 대기업에 공급하거나 제품을 생산해 대형 유통업체 등에 판권을 넘기는 유통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 ‘적과의 동침’이란 불편한 관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칫하면 그 동안 구축한 판매망을 통째로 잃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단계 업체와 손을 잡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대기업의 ‘파상공세’에 대비한 벤처기업들의 ‘연합전선’ 구축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벤트리와 렉스진바이오텍이 최근 마케팅뿐 아니라 연구개발, 제품생산에 이르는 포괄적인 업무제휴를 체결했다”며 “이 같은 조치는 시장 변화를 염두에 둔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가를 높이기 위한 노림수가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한다. 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와의 제휴 소식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상당한 상승 모멘텀이 되고 있다”며 “다단계 업체와 재휴한 업체들이 시장에서 상한가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네띠아미와의 제휴를 밝힌 벤트리의 경우 공시 당일 가격제한폭까지 주가가 급등했다. 2년 간 69억원의 공급계약을 성사시킨 씨앤텔도 코스닥 시장에서 한때 6% 이상 주가가 급등했다. 이후 상승폭이 줄며 2% 오른 선에서 장을 마감하긴 했지만 씨앤텔로서는 적지 않은 호재인 셈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다단계의 의존도가 높을수록 위험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다단계 업체와의 제휴가 단기간의 매출은 증가시킬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 I-Weekly 178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