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딱새 우는 뜻은
오 길 순
새벽이다시피 뒷산을 오르다가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을 들었다. 꾀꼬리 물까치 휘파람새가 조곤조곤 잠꼬대하는 부연 여명인데 머리 위 나무꼭대기에서 들려오는 검은등뻐꾸기의 소리는 청아하고도 구슬펐다. 무엇보다 봄내 마을을 홀로 울어 에이던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을 그리도 가까이 들은 것은 처음이다.
순간 휘파람이 슬쩍 나왔다. 한 옥타브 높이 ‘도’로 시작하여 ‘솔,솔,도’를 리코더처럼 가만히 내려 불고 나니 제법이었나. 멈칫멈칫하던 새는 이내 “도,솔,솔,도” 화답을 하는 게 아닌가. 한참동안이나 소리를 주고받노라니 무겁던 발길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내 미숙한 흉내에도 진정으로 답해 준 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도시의 유리창에 부딪쳐 사라지는 새들도 날로 늘어난다니 몇 마리 남은 산새들의 울음은 소중하기만 하다.
검은등뻐꾸기(Indian Cuckoo)는 흔히 홀딱새 혹은 홀딱벗고새 라는 별명이 있다. 땀에 찌든 등산객에게 청아하게 들리는 ‘도,솔,솔,도’는 더운 옷을 홀딱 벗고프게 했을까. 속세를 벗듯 찌든 옷을 들고 구슬픈 울음에 휘파람을 불었을까. 홀딱새 울음이 때로는 벌거벗은 누런 호박을 보는 듯 재미있는 것은 ‘홀딱벗고’라는 특이한 어감 때문일 것이다. 문득 한 여름 폭포에 손을 담근 듯, 배꼽을 드러내놓고 걷는 돌쟁이 아기를 보는 듯 별명이 신선하기도 하다.
검은 등 뻐꾸기는 배에 검은색 가로줄이 굵고, 머리와 가슴은 회색이며, 등과 꼬리는 회갈색이다. 소리는 '카, 카, 카, 코' 하고 우는데, 앞의 3음절은 대부분 높이가 같고 마지막은 낮다. 생김새가 비슷한 종으로는 뻐꾸기, 벙어리뻐꾸기, 두견이 등이 있다. (위키 백과 발췌)
홀딱새는 31-33센티쯤의 크기로 한 번에 15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개개비, 붉은머리오목눈이 휘파람새 등 알 색깔이 비슷한 작은 새들의 둥지에 한 개 씩 탁란(托卵)을 하는 것이다. 제 몸보다도 큰 새끼가 제 것인 줄 알고 양육하는 작은 새들의 착각은 눈물겹다. 남의 알을 지치도록 품게 한 자연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대리모에게 맡긴 홀딱새의 양육은 참으로 얄미우면서도 경외스럽다.
<<풍경>>의 저자 원성스님은 검은등뻐꾸기 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홀딱 벗고/마음을 가다듬어라//홀딱 벗고/아상도 던져 버리고//홀딱 벗고/망상도 지워 버리고//홀딱 벗고/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홀딱 벗고/정신차려라//홀딱 벗고/열심히 공부하거라//홀딱 벗고/반드시 성불해야 해//홀딱 벗고/나처럼 되지 말고//홀딱 벗고/홀딱 벗고
동자승으로 살았던 그에게 끊임없이 우는 홀딱새 울음은 수행을 재촉하는 소리로 들렸나보다. 일체유심조라더니 세상사 때없는 망상을 시끄러운 소리로도 떨쳤을 스님의 지혜가 엿보인다. 누군가는 ‘괜찮다고, 괜찮다고’로 듣는단다. 고난을 이겨내는 힘으로 긍정(肯定)이 으뜸이라는 것일 게다. 콩나물시루 물 떨어지는 소리도 아상에 따라 다르듯 긍정과 부정(否定)의 차이는 간격이 멀 것이다. 웃음과 울음처럼, 하늘과 땅처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긍정과 부정 아닐까.
실제로 내가 번민할 때 홀딱새 소리를 들으면 맥박도 홀딱거려졌다. 구슬픈 울음의 어감이 부정적인 긴장을 재촉한 것일 게다.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의 작용이 신기하다. 그럴 때면 우주 속의 먼지 한 점이 인간이라는 걸 홀딱새가 확인해 주는 것만 같다. 한 개의 생명체가 우주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홀딱새’나 ‘홀딱 벗고새’라는 별명은 낙천적인 이가 번민을 잊으려 지은 지혜의 이름일 것 같다. 구슬픈 소리도 ‘홀딱’이란 이름을 넣으니 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작년 봄에도 홀딱새 한 마리가 마을을 떠돌았다. 멀리 혹은 가까이서 진종일 들려오는 외로운 울음은 어둑해진 내 귀를 쉴 새 없이 깨웠다. 개발이란 이름으로 산등허리가 잘리고 트레일러가 산턱까지 차 오른 지금, 이태나 울어 에이는 홀딱새의 뜻은 무엇일까. 그 동안 한가하도록 청정했던 마을도 지금 홀딱새와 같은 운명이기에 떠도는 새의 울음이 구슬프기만 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작은 마당에는 박각시나방이나 호랑나비가 쌍을 지어 왔었다. 곤줄박이나 동고비 떼도 날았다. 꿀벌조차 오지 않는 지금 문득문득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떠오른다. 생명의 매개체가 사라지면 지구의 결실도 사라진다는 걸 홀딱새도 알고 있는 것일까.
지난 해 봄날의 한 밤 중, 까무러치듯 울어대던 홀딱새 소리에 불면을 했었다. 어디 돌멩이에라도 맞은 듯, 지구가 정말 종말이라는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던 날, 마을 사람들도 차마 불안으로 잠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튿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여일하게 홀로 울어댄 것이다. 뉘 집 향나무에 부화한 물까치 병아리를 도둑고양이가 앗아갔다더니 지나가는 야생개에 겁을 먹었나. 큰 새들이 알을 물어갔나. 날카로운 비명마저 다시는 들리지 않았을 때 어디 마른 나무 가지에 시체라도 걸렸는가 싶어 뒷산을 둘러보곤 했었다. 미물들의 생애라니, 말없이 살다 소리 없이 지는 민초처럼 속절없었다.
이 봄 돌아온 검은등뻐꾸기가 유난히 반가운 것은 내 상상의 아상(我想)을 무너뜨리고 살아온 생명의 경외심 때문이다. 도시의 유리창에 부딪치지 않고 매의 덫을 피해 살아 돌아온 한 마리 새의 용맹은 얼마나 장한가. 실은 멀리 남쪽 나라나 필리핀에서 겨울을 나고, 떠났던 길로 귀소한 것일 게다. 작년에 부화한 곳으로 용케 돌아오는 재주를 지닌 영묘한 새가 홀딱새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산허리쯤에서 홀딱새 울음이 들려온다. ‘도,솔,솔,도, 도,솔,솔,도,’ 울어 에이는 홀딱새 소리는 제발 미물들을 ‘살려달라’는 듯 구슬프기도 하고 숲속에서 ‘함께살자’는 듯 청아하기도 하다. 산과 바다가 하나이듯이, 산에서 강이 발원했듯이 새와 인간이 ‘한덩어리’라고 우짖는 것도 같다. 그래서 홀로 한참동안 휘파람 화답을 해 본다.
“도,솔,솔,도, 도,솔,솔,도.”홀딱새여 영원히 ‘행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