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명기 33:29 / 행복한 신앙생활
여러분, 저는 최종환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만 말씀드리면 저를 수양회 강사로 초청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많은 목사님들이 부흥회를 하거나 이렇게 수양회를 할 때는 소문난 목사님, 큰 교회 목사님, 박사 목사님들을 강사로 초청하시는데,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저는 유명하지도 않고, 큰 교회 목사도 박사도 아닌데 초청해 주셨으니 존경할 수밖에 없잖아요.
사실 평소에 목사님들의 모임 때나, 지방회 때도 항상 겸손하신 모습은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여러분, 이번 수양회 주제가 뭐지요?
“부흥을 주옵소서” 맞습니다. 참사랑교회가 년부년 부흥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 부흥은 양적, 질적 부흥을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방향에서 부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좋은 것처럼 부흥부흥해도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야 그게 진정한 부흥같아요.
그래서 행복한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드려보려고 합니다.
과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겠지만 제가 경험하고 보았던 행복한 신앙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행복이란 단어가 구약성경에는 11번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행복이란 단어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먼저 긍정적인 의미에서 행복은 신명기에만 두 번 나옵니다.
(신 10: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나머지 아홉 번은 모두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에스라 9: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욥이 엘리바스에게 하는 말
(욥 7:7) 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에게 하는 말
(욥 20:21) 남기는 것이 없이 모두 먹으니 그런즉 그 행복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욥이 소발에게 하는 말
(욥 21:25)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솔로몬이 인생 경험에서 하는 말
(전 6: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몇 년 전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송중기가 주인공이라는 것은 생각이 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말은 최고라는 말입니다. 최고로 착한 남자입니다.
주인공 송중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옵니다.
몸이 아파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문채원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남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앞에 있는 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3: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수룬은 올바른 자, 고결한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붙여준 애칭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이스라엘은 올바른 자라고 불러주십니다. 70인 역에는 사랑하는 이스라엘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는 사랑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고 노래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은 최상급으로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최고!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신들 중에 하나님보다 더 뛰어나신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도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고결하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좋으신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최고이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최고봉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시러 오십니다.
하늘에서 찬란하게 구름을 타시고 급히 이스라엘을 도우러 오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에서 친히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도우시는 분이라고 노래하는 것은 그의 깊은 체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200만의 인구가 40년 동안 사막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사막에는 물도 없고 먹을 마실 것이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 하나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이 마를 때는 바위에서 샘물 나게 하셔서 마시게 하셨습니다.
출애굽 할 때, 아멜렉과 처음으로 전쟁합니다.
모세는 산 위에서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싸웁니다.
이 전쟁에서도 하나님이 하늘에서 친히 도와주셔서 크게 승리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그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여호와닛시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나 자녀들이 시험을 앞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시험 보는 날 도와주러 오십니다. 취업도 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돈이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구름을 타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한 후 본문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29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죠?
여러분의 원하시는 대로 행복하시기를 행복의 근원이신 우리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정도 행복하시고, 학생들 학교생활도 행복하시고, 직장 생활도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행복하게 하시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분은 연애도 행복한 연애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 생활을 행복하게 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새군산교회는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표어가 있습니다.
즐거운 교회, 행복한 가정!
교회 오면 즐거워야 합니다. 찬양할 때도 즐겁게, 식사할 때도 즐겁게, 친교도 즐겁게, 즐거운 교회 생활을 마치고 집에 오면 행복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보면서 행복해야 하고, 자녀들이 함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부흥이 안 될 수가 없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옵니다.
반대로 지옥을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사람도 있어요.
볼 때마다 짜증이 나고 말할 때마다 걱정이고, 한숨만 나오는 사람이지요.
그런 사람이 모이는 교회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참사랑교회는 집사님도 행복하고 권사님도 행복하고 장로님도 행복하심으로 날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한번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29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모세는 이스라엘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감탄합니다.
행복하다는 뜻은 축복받은 사람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신 33:29, 쉬운) 이스라엘아, 너희는 복을 받았다. 너희와 같은 백성은 없도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구해 주신 백성이며, 여호와께서 너희의 방패시고 너희의 돕는 분이며 너희의 영광스런 칼이시다. 너희의 원수들이 너희에게 패하겠고, 너희는 그들의 높은 신전을 짓밟을 것이다.”
(신 33:29, 우리말) 이스라엘아, 너는 참 행복하도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민족인 너 같은 자가 누구겠느냐? 그분은 네 방패이며 도우시는 분이고 네 영광스러운 칼이시다. 네 원수들이 네 앞에서 움츠리고 너는 그들의 높은 곳을 발로 밟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받은 행복한 백성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받은 자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같이 구원해주시는 사람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을 많이 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심으로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해 주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자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함께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믿으십니까? 믿으시나요? 그러면 큰소리로 외쳐봅시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여러분)을 돕는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방패가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들의 화살에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광스런 칼이십니다. 영광의 칼로서 대적을 물리쳐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복종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대적들의 등을 짓밟을 것입니다.
구원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누가 400년 노예살이에서 구원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친히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찾아오셨고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장자를 치신 재앙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게 하셨습니다(출1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집에는 문설주와 문인방에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양을 잡아 고기는 먹고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에게 많은 금은보화를 달라고 하여 영광스러운 탈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430년 노예살이에서 자기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탈출한 백성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은 2500년 동안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 이스라엘 나라를 세웠습니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세계 인구 1%의 인구로 노벨상의 30%를 받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구원의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셔서 그런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 복 받은 자가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축복받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변의 많은 사람이 자신은 저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이렇게 불행하게 살아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이 본래부터 불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복을 주셨습니다.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복을 주셔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교만과 욕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복 받아야 할 세상이 저주받는 세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땅을 저주하여 엉겅퀴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동물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종신토록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찾아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노화가 오고 질병이 오고 죽음이 왔습니다.
죽은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저는 운명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데 마땅히 표현할 말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오늘 사용했습니다. 섭리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지만 가까이 느껴질 것 같지 않아 운명이란 단어를 사용했으니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자라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저주받고 태어나는 것을 알아야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인간을 저주하셨지만, 저주하기를 원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여 평안의 복, 희망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지은 인간에게 마음대로 복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 주시기 위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죄의 값은 저주이며 사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죄의 문제는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의 피를 요구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제사장이 매일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이 다 모여 제사를 드릴 때는 피가 강물처럼 흘렀습니다.
양이나 염소가 14만 8천 마리나 유월절 날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이나 염소의 피는 아무리 온전한 것이라도 우리의 죄를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청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매일 양이나 염소를 죽여야 하고 1년에 한 번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양의 피를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를 반복했다는 것은 그 제사가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친히 흠 없는 자신의 아들을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자신의 피를 흘려서 죄의 값을 청산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번 십자가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사는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다시 반복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다 갚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완불하고 청산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죄 사함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값을 치른 것을 보시고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우리를 소중하게 보십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단번에 드린 제사로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갈 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멘
그리스도께서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으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저주받은 자는 나무에 달게 하였는데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서 저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하여 저주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시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 선교사 마이클 조(조재영)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충남 서산에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신체 장애를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3남1녀(가족관계)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으며, 고통의 시절을 보냈던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꿈은 있는데 환경이 어려운 분들에게 유익한 간증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도전을 주는 간증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주받은 인생에서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대전에서 시사영어학원을 하고 있는 마이클 조 선교사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뇌성마비로 정신박약인입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구입니다. 항상 절뚝거리며 걸어 다닙니다.
큰아버지는 농약 먹고 자살하셨습니다. 큰어머니는 바닷물에 쏠려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노름하여 땅을 다 팔아먹었습니다.
형과 누나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형은 머슴을 살고 누나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머니는 마이클 선교사를 임신했습니다.
낙태하기 위해서 휘발유를 두 컵이나 마셨습니다. 그래도 낙태가 안 되었습니다.
어려서는 젖을 먹인 후 다라이(큰 그릇)에 넣어두고 그 위에 맷돌을 올려놓고 일을 하러 가셨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마이클 조 선교사는 어려서부터 노름을 배우고 마약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선배에게 맞아서 열일곱 바늘을 꿰메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색명으로 군대에 가서 휘발유를 넣어야 하는 발전기에 경유를 넣어 일억 이상의 큰 손해를 끼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위병소 옆에 있는 나무를 올라가서 나무를 자르고 꼭대기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죽지는 않고 타박상으로 큰 고통만 당하였습니다.
그는 깊은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열외 시키는 관심병이었습니다. 그는 군대에서 왕따를 당하고 별명이 어리버리였습니다.
마이클 조 선교사의 어머니는 몸은 불편했지만 독실한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휴가 나온 아들에게 집 앞에 잔디밭을 보여주셨습니다.
움푹 파인 두 곳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살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일 한 시간씩 여기에서 무릎 꿇고 세 번씩 기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여 무릎을 꿇은 곳에, 잔디가 나지 않고 움푹해졌던 것입니다.
그는 부대에 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항변이었습니다. 하나님이라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에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습니다.
“하씨! 정말 하씨가 계시다면 2주 안에 나를 쳐서 병원에 가게 해줘!!”
그렇게 발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2주 만에 축농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하셨습니다.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여서 세 번의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세 번째 수술할 때입니다. 부분마취를 하고 한 시간쯤 지났는데 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명이 한 명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피가 위에서 아래로 흘렀습니다. 옆구리에는 구멍이 뚫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로 쳤습니다. 발로 차고 주먹으로 쳤습니다.
개새끼하고 욕도 하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때리는 세 명을 보니 첫째도 마이클 조 자기였고 둘째도 마이클 조 자기였고 셋째도 마이클 조 자기였습니다. 그는 그때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장 5절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 후에 그는 군대에 있는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맨 뒤에 앉아서 엉엉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조 선교사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에 박혀 있었고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발버둥 칠 때마다 고통을 더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이클 조 자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조 선교사는 주님, 나 같은 놈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지 마십시오.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를 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혈의 피가 조 선교사에게 흘러들어왔습니다. 그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의 자괴감, 낮은 자존감, 죽고 싶은 마음을 예수님의 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은 조 선교사를 새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군 제대를 한 후 노가대(막노동)를 하며 교회에서 잠을 잤습니다.
새벽기도하고 학교에 갔습니다. 하나님은 주위 환경이나 사람을 바꾸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조 선교사에게 너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는 너의 삶을 나에게 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집도 없고 공부도 못하는 자신을 왜 원하시는지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고민하고 있던 조 선교사에게 여러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시편 81편 10절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편 2장 8절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로마서 10장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잠언 24장16절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시편 18편 1절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모태 신자로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는 아무것도 못하는 못해신자였습니다. 그는 어머니 때문에 종교 생활만 하는 가짜였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먼저 신앙생활을 회복시키고 생활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시간을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새벽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서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전의 배제대를 다녔는데 처음 시험에서 토익 140점을 맞았습니다. 뒤에서 세 번째였습니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5대양 6대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쓰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나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서 영어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뒤로 돌아서면 네가 1등이라고 하셨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토익 응시자 9,000명 중에 1등을 하였습니다.
노량진 시사영어학원에서 7명의 학생을 데리고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200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1년에 6억을 버는 억대 연봉의 스타(요즘으로 말하면 일타)강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3무의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집이 없고 통장이 없고 차가 없는 생활을 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만 보고 살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10에 5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는데 10에 9조까지 드렸습니다.
그는 31살에 국제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3개의 학원을 만들었습니다.
인도에 두 개의 대학을 세웠는데 하나가 주립대학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마이클 조 선교사만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그리고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꿈과 소망을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로 태어났습니다.
이 사람은 권력과 돈, 예쁜 여자 1,000명을 데리고 살았던 남자였습니다.
한 나라를 40년간 다스리며 절대 권력을 누렸고, 금이 너무 많아 은을 귀히 여기지 않을 만큼 부유했습니다(역대하9:20~21).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대하 9:20)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순금이라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함은
(대하 9:21) 왕의 배들이 후람의 종들과 함께 다시스로 다니며 그 배들이 삼 년에 일 차씩 다시스의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옴이더라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아내를 가진 남자였습니다.
한 아기를 두고 다툰 두 어머니에 대한 명재판을 했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인물 중 하나로 꼽힌 왕입니다. 그렇다고 책 속에 파묻혀 공부만 한 것이 아닙니다.
화려하고 방탕하게 잘 놀았던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누구일까요?
맞습니다.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그런 솔로몬 왕은 행복했을까요?
솔로몬이 왜 인생 말년에 "인생은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는 결론을 내렸을까요?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이 남긴 조언은 결국 인생 허무주의였던 것일까요?
솔로몬이 인생에서 좋다는 것을 다 누려본 뒤 전도서에 남긴 메시지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헛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주고, 어리석은 사람도 죽고,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죽습니다.
심지어 그는 죽는다는 점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나 권세를 많이 가졌더라도 죽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일평생 고생해서 쌓아놓은 부와 권세가 그것을 얻기 위해 전혀 수고하지도 않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갈 뿐입니다.
그러니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움켜쥐려고만 하지 말고 나누면서 베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니 겸허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헛되다고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노력한다고, 선하다고 다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발이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하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닙니다, 지혜롭다고 권력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또 착한 사람이라고 다 복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악인이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세상이 이처럼 부조리한 이유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인생조차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라고 합니다.
셋째는 욕심부리지 말고 현재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될지조차 알 수 없고, 확실한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밖에 없으니 살아 있는 동안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쁨은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수고해 일하는 데 만족하고, 노동의 대가로 얻은 소득으로 먹고 마시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허락된 경계 너머로 나가려고 너무 욕심내지도 말고, 세상이 불공정하다며 너무 이유를 따지지도 말고,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히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음으로 생명의 경계가 그어지고 지식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 헛된 인생을 가장 보람있게 사는 비결이라는 결론입니다.
*** 헤밍웨이의 법칙이란 말 들어 보셨습니까?
어느 대학의 심리학 시간이었다.
교수(敎授)는 학생들에게 풍선에 자기 이름을 써넣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워 모두 천장으로 날려 보내라고 했다. 한참 지난 다음 교수는 자기 이름이 든 풍선을 찾아보라고 했다. 정해진 시간은 5분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풍선을 찾으려고 부딪히고 밀치다가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5분이 흘렀지만,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단 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교수는 이번에는 아무 풍선이나 잡아, 거기 넣어둔 이름을 보고 그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였다. 순식간에 모두 다 자기의 이름이 들어있는 풍선을 하나씩 받아 가질 수가 있었다. 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지금 시험한 풍선 찾기는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행복을 찾아 다니지만, 행복이 어디 있는지? 장님과 같이 헤매고만 있습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함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풍선을 찾아주듯 그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를 헤밍웨이의 법칙이라 합니다.
헤밍웨이는 행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행복을 가꾸는 것은, 자기 손이 닿는 데에 꽃밭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어떤 거창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습니다. 매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거의 매일 만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따뜻한 마음으로 항상 가까이서나 먼 곳에서도 나를 찾아주고 찾아가는 바로 그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부부, 부자, 형제)이 가장 행복한 조건입니다.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 아닐까요?
사람이 길이고 그 길이 자기가 만든 행복한 꽃밭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일평생 동안 한편으로는 장성하여 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훼손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나의 여생의 잔고는 얼마나 남았을까요?
금쪽같은 하루하루, 주님의 부름을 받는 그날까지 후대에 민폐를 최소화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난다면 그야말로 멋진 인생이 아닐까요?
한세상 잘 살다가 가는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후대들의 축복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은 짧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 안에서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하는 날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 행복한 성도일까요?
*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하셨으니 기뻐하는 사람이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기쁨이 없이는 행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 기도하는 사람이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라고 했는데 기도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회개하라고 하셨으니 회개하는 사람이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감사도 모르고 맨날 움켜쥐기만 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착하고 충성되라 하셨으니 착하고 충성하는 사람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착하지도 않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지키라고 하셨으니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기 위해서 하라고 하시는데, 하기 싫다고, 게을러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내가 바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내가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는 가운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보호하시고 나를 도우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끝으로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시편 1편 1~3절 말씀을 드리며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시 1:1) 행복한 사람은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따라가지 않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인들이 가는 길에 함께 서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빈정대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입니다.
(시 1:2)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깊이 생각합니다.
(시 1:3) 그들은 마치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새가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들은 참사랑교회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삶이 되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간증하며 증언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행복한 성도의 사람을 통해 교회를 부흥케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