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10-14절에서 에돔의 멸망이유를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이었습니다. 그 교만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약하여진 유다가 이방의 침략을 받을 때에 함께 동참한 것에 대하여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멸망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기를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는 언약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언약을 받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하여 대적하는 것이 멸망의 이유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비단 에돔만이 아니라 온 세상만국을 심판할 근거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는 에돔이 멸망하는 이유가 하나의 모델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멸망이 온 세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여호와의 날은 자기 민족은 구원을 받고 이방민족은 심판을 받는 날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기다린 구원의 날이 심판의 날이 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차적인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만국에 대한 심판이 시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돔당시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 이 종말의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베드로전서 4:16-19절입니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1)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이런 순서로 일하시기에 세상에서 성도는 믿음의 시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다가 이방의 여러 나라에 시달림을 당하고 있을 때에 형제라는 에돔의 시기와 질투로 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 중에 오바댜 선지자가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돔이 곧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중에 나바르 왕국이 세워지면서 에돔이 세일 땅에서 쫓겨나서 남방의 네게브 지역을 차지합니다. 이때 에돔 사람을 이두매 사람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유다 마카비 왕조가 들어섰을 때 강제로 할례를 받고 유다에 편입됨으로 에돔은 영원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헤롯왕은 바로 그렇게 해서 유다에 편입된 이두매 사람이었습니다. 그 조상을 따지자면 에돔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시에 유아살해를 명한 자입니다. 에돔이 이렇게 오래간 것입니다.
오바댜 당시에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였는데 왜 빨리 망하지 아니한 것입니까? 멸망하리라는 에돔은 더 기세가 등등하게 올라가고 구원받으리라는 유다는 더욱 망하는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나오지는 않습니까? 섭섭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까운 원수가 있는 것은 나를 낮추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 가시와 사람채찍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복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저 원수가 언제나 망하는가 하는 생각이 가득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더욱 더 든든하게 평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이런 모습이 역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에돔과 유다의 관계가 지금 종말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것도 바르게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힘들게 어렵게 사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입니다. 적당하게 세상의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고 더 잘 사는 것입니다.
시편73편에서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실족할 뻔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언젠가 망하겠지 하고 지켜보아도 죽는 때도 고통이 없고 타인과 같은 고난과 재앙도 없는 것입니다.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더 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만이 저희 목걸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고 거만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롭게 살고자 마음을 정하게 하고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헛되지 아니한가 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지 실족할 뻔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히 곤란하였는데 성전에 가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결국은 졸지에 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망하는 것이 우리 눈앞에서 바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족할 만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종말론적인 심판을 알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만을 사모하겠다는 것입니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며 영원한 분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를 멀리하는 자는 다 망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합니다.
15절 상 반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에 먼저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은 결국 모든 열국을 심판하는 전조가 되는 것입니다. 유다가 지금 열국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고 그 틈에 에돔도 함께 성산에 와서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가 망하는 것을 좋아할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전조가 되는 것입니다.
15절 하 반절입니다. “너의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희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에돔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본 내용입니다. 유다가 망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함께 망하게 한 자들입니다. 이것이 에돔의 멸망이유입니다. 그러므로 행한 대로 심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대적한 것이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에돔이 유다에 와서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여호와의 성산에 와서 유다가 망하는 것을 함께 즐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도 만국인이 마셔버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유다가 망하는 일에 와서 함께 마셨기에 너희도 마심을 당하여 원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유다가 망하는 것을 보고 에돔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에돔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에돔만이 아니라 에돔같은 온 세상이 다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하실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유다와 에돔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언약을 받은 유다의 남은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구약의 언약들이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을 지목한 것입니다.
포도원의 악한 품꾼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 유대인들이 선지자들 배척하고 결국 아들까지 죽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유다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이 땅은 심판을 받아야 당연한 것입니다. 유다가 망한 것을 기뻐할 것이 아니라 이제 온 세상이 다 망한다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살해당하신 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진멸을 받아야 마땅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온 세상의 심판의 기분이 명확하여 진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임을 알고 회개하는 자와 십자가의 죽음을 유다가 멸망할 때 기뻐한 에돔처럼 대하는가 하는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24:1-3, 29-31을 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세상멸망의 징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AD70년에 망하고서 지금 약 1933년이 지났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고 나면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땅에서는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의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 망하지 않았습니까?
오바댜 선지자가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여도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다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남은 자가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사이인 이 기간은 종말입니다. 더 이상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의 시간이란 무의미 한 것입니다. 묵시의 세계가 역사의 세계를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이 심판의 날이요 종말의 날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역사의 발전이라든가 개인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종말 안에 들어 있기에 진노의 대상인가 긍휼의 대상인가 하는 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 안이냐 예수님 밖이냐, 십자가 안이냐 십자가 밖이냐는 구분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십자가 안을 보면 죽은 자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15절입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15 4)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표준 새 번역).”
오늘 세상도 동일한 원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에서 징계를 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에서 망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여도 별 볼일 없구먼! 하면서 멸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심판하실 그 날이 이르게 되면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행한 대로라는 것은 에돔이 유다를 어떻게 대하였는가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세상을 심판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19-2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지금이 심판의 때입니다. 모든 심판의 권세를 아들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 아들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고 살아난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삽니다. 이들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죽은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십자가를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는 자들은 만국을 벌하시는 여호와의 날에 영원한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들은 그날에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