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문 남선
그날 그 곳엔 거꾸로 가던 시간이 잠시 멈춰 있었다. 30여년이 주는 세월의 무게는 친구들의 얼굴에 약간의 다른 색상과 선을 긋고 있을 뿐. 천진함과 장난기 어린 포근함은 예전 그대로다.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뵌 은사님의 손을 잡던 순간 절로 흐르던 눈물은 아마 ‘타임머신’의 윤활유 였나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작고 야무지던 순조의 얼굴에도 여문 모습이, 늘 다정다감했던 연희의 모습에도 푸근함이 옛날 그대로다. 왜 그랬는지 나를 자주 못살게 굴던 경인이의 짓궂음에도 풋풋한 정감이 있고, 개그맨 뺨칠 정도의 끼를 발산하던 또갑이의 행동은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아쉬운 생각마저 갖게 한다.
그날은 언론이 태풍 ‘라마순’에 대한 주의로 잔뜩 긴장을 주던 날이기도 했다. 예약된 항공권을 여행사 후배의 도움으로 어렵게 열차표로 교환했다. 남편 직장인 은행의 토요 휴무제가 시작된 첫 여행을 부산의 동창회 장소로 정한 것이다.
먼 바다에서 생명의 근원인 설악의 남대천까지 알을 낳으러오는 연어. 이 건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내게도 연어와 같은 본능적인 회귀성이 있는 탓인지 이삼십대엔 느끼지 못했던 고향과 코흘리개 시절의 친구들이 요새 들어 더욱 그리워진다.
동창회가 있던 날은 수필 동인회에서 1박 2일간 ‘대부도 세미나’가 있던 날 이기도 했다. 둘 다 놓치기 싫은 양손의 떡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의 은행 생활 중 첫 토요 휴무를 보내는 남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인연도 유별나서 남편과 나는 초등 동기 동창이다. 그래서 내 욕심을 조금 접고 아쉽지만 문우들과의 모임을 포기한 체 부산행을 택했다.
왼편 친구가 내 작품 <소래 포구>의 등장인물 오른쪽 친구의 바뀌지않은 지독한 사투리에 늘 배꼽을 잡는다.
승용차를 소유한 후 14년 정도 열차 여행은 해보지 못했었다. 오랜만에 타보는 새마을호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다. 네모진 창은 바깥 풍경을 한 아름 끌어안고도 남을 듯 타원형의 커다란 창으로 바뀌어있다. 남편과 나는 식당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평소에 잘 마시지 못하는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보니 약간 알딸딸하면서도 상큼해지는 기분이 여행의 운치를 더해준다.
남편은 창밖의 신록의 푸르름과, 다양하고도 기기묘묘한 구름의 모습에 취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 더 즐거운 눈치다. 차창 밖 부산의 하늘은 눈부셨다. 태풍 뒤의 고요함 탓일까? 하늘은 몇 조각의 흰 구름만 군데군데 품고 있을 뿐 눈이 시리게 맑고 아름다웠다.
사상에 위치한 파라곤 호텔에 도착하자 하나 둘 모여드는 반가운 얼굴들. 세월 따라 얼굴이 변한다지만 얼굴 중앙부분의 1/3은 변치 않는 탓인지 누구라고 얘기하는 순간 모두 30여 년 전의 얼굴로 되살아난다. 식사와 간단한 회칙 절차를 마친 뒤의 여흥 시간은 모두의 끼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시간이었다. 몇 십 년간 대화 한마디 나눈 적 없었던 친구와도 한 치의 벽도 없이 격의 없어짐은 참 요상한 일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와 이렇게 빠른 시간에 속내의 모든 경계심을 풀고, 있는 그대로 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거기엔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조심스러움도 필요 없었다. 순간의 생각대로 행동해도 모든 게 이해와 관용과 익살이라는 단어로 덥혀 버리는 기분이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모두들 헤어짐이 아쉬웠던지 해운대로 옮기자고 한다. 꽤 많은 인원이 해운대로 향했다. 해운대의 밤은 관광지답게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멀리 뵈는 ‘달맞이 고개’ 의 불빛 또한 환상적이다.
태풍의 끝이었지만 밤바다의 파도는 거칠었다. 쉴 새 없이 어둠 속에 밀려오는 희고도 힘센 포말! 힘차게 밀려오는 포말위에 잠시 몸을 맡기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단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동기생 중 누군가가 사온 폭죽이 밤바다의 일부를 물들였다. 경찰이 와서 제지했지만 여러 명의 익살 앞에서 어쩌지를 못하고 폭죽을 다 쓰기만 기다리신다. 제복이 주는 두려움이 익살 앞에 묻혀 버린 일 또한 추억이다.
늦은 토요일 밤이라 그랬던지 주변의 콘도는 많았지만 방이 없었다. 마침 거주지가 해운대인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종덕이가 일행을 찜질방으로 안내했다. 요즘의 찜질방은 숙소이고 헬스장이면서 식당 역할도 하고 있으니 인근 숙박업소의 타격이 꽤 클 듯싶다.
일요일 아침 해운대 바닷가를 잠시 산책한 후 열차로 귀경할 때였다. 전날 해운대까지 동행하지 못한 미안스러움 때문인지 매출액이 상당한 사업가로 변신한 석원이가 새마을호 대합실까지 나와 주었다. 간단한 행동인 듯하나 결코 간단치 않는 깊은 정이 느껴져 고마웠다. 4시간정도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안양이다. 숙박시설은 무조건 좋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쌓인 내가, 잠자리의 불편함도 못 느끼고 보낸 시간이 되려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타임머신 때문 이란 걸 나는 안다. 우리가 보낸 시간은 40대 중반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건 앞으로 남은 시간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은, 그립고도 순수했던 10대로의 시간 여행이었다.
2002년 7월
첫댓글 우리 집 근방의 관악구와 동작구엔 고향 친구가 오롯이 6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바쁘기에 잘 만나지를 못합니다. 서너달에 한번꼴로 친구들과 함께 타임머신을 탑니다. 추석이 가기 전 내일 저녁 내 차에 모두 태우고 원당의 두부집으로 향할려구요. 가끔씩 그들을 만나면 그 시간 만큼은 고향에서 지내는 듯해서 너무 좋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10대로 돌아간 즐거움이 꽤나 쏠쏠했겠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순수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한별님 마음과 몸이 반비레하지요? 나이들면 어린아이에 가까와진다고 하더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아요. 옛 시절이 자꾸만 그리워요.
항상 이야기거리가 많은 글이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사실 "인연도 유별나서 남편과 나는 초등 동기 동창이다." 천생연분이라는 이보다 더 어울릴 곳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합니다. 글 즐기고 갑니다
남편과 저는 초등만 아니라 중등 동기동창이기도 합니다. 정확히는 저가 8살 남편이 7살(남편이 일찍 학교를 갔어요)때 만났습니다. 남들은 머리에 쇠똥도 안벗겨진 것들이 일찌감치 연애한 줄 알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전 연애같은 것 나이 들도록 잘 못해봣습니다. 그냥 그리 되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부부연이란건 그냥 되는게 아니라 하늘이 맺어준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럼 지점장님은 연상의 여인을 모시고 사는거네요? 새로운 사실입니다.ㅋㅋ
히히히 울 남편 젤루 싫어하는말. <당신도 내 나이 되어보면 알거야>하는 말이랍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무슨 소리야? 동창이면 모두 똑같은 거야!! >그런다구요.
부럽습니다. 저도 그런 타임머신을 타고 싶네요. 그런데 그것을 멈춘것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전에는 제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칼로 자르듯 하였던 고로... 그들이 '만나자. 만나자.' 해도 나는 싫어, 싫어 하였지요. 내가 정한 반듯함에서 조금 빗나가는 사람은 쳐다도 안보던 철부지였답니다. 우 우 우...... 저는 제가 백로인줄 알았더니 이제보니 까마귀였네요.
저도요 봄비님처럼 좀 그런면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 만나는 친구들도 사실은 어릴때 어울리며 이야기도 몇번 안해 본 친구들이었답니다. 헤어진 후 처음 저를 만났을때 과거의 저를 생각하고 애들이 좀 가까이오기 힘들었었나보더라구요. 연체동물처럼 흐믈흐물해진 지금의 저를 요즘은 참 좋아한답니다. 이것도 착각인가??? 저도 까마귀였어요.
해운대 바닷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보셨군요. 해운대 밤바다와 동백섬, 저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발목이 저린 줄도 모르고 같이 걸었던 백사장 ... . 저도 그런 타임머신을 태워줄 수 없는지요?
바우님! <발목이 저린 줄도 모르고 같이 걸었던 백사장 ...> ㅎㅎㅎㅎㅎ 누구랑요? 누군데요? 남자 아니죠? 여자맞죠? 언젠가 글에서 본듯한 그 여자분 맞죠?
엄지님은 해운대 파도를 타고 멀리 가버린 '보라빛 연희' 의 추억에 젖습니다.
8월 25일, 예고도 없이 강릉 초등 동기생(남자들만) 14명이 어성전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삼겹살에 추어탕감을 준비해 가지고... 그 날, 타이머쉰을 너무 많이 타서 어지러웠지요. 소꿉 친구들은 언제나 정겹지요? 그 정겨운 동창이 부부로 만났으니 천생연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연하남이시니 요즘의 세태를 예견하셨나 봅니다.ㅎㅎ
초등학교 동창 남자들만 14명 대단대단하십니다. 들미소님의 인기가 동해에 넘치나이다. 저는 초등학교 동창회도 없고 만난일도 없습니다. 피난민들과 섞여서 공부하고 수복하니까 반 이상은 가버리고... . 저도 그런 타임머신을 타고 시퍼요.
들미소님! 인기 왕짱이당. 시상에 14명이 모두 들미소님 사랑했단 말씀?? 안봐도 비디오당. 글고 바우님은 그런 들미소님이 너무 부러우신가봐요. 와! 나도 14명 남자가 무더기로 나한번 찾아오면 우리집 앞의 사리원 만두에서 메뉴판에 있는 것 왕창 사줄수 있는데...
그러기에 사람은 터를 잘 잡아야 됩니다요. 어성전 같은...ㅎㅎㅎ. 들미소가 인기였는지 어성전이 인기였는지는 한 번 힘겨루기를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쿠아님, '타임머신'을 읽고 있자니, 수년전 63빌딩에서 있었던 초딩학교 반창회 발기회가 생각납니다. 탱자나무 울타리 과수원집에 살았던 청순한 順이의 달라진 모습에 기절초풍을 했었습니다. 딴지부려서 죄송합니다.
호호호 과수원집 사과같던 순이가 모과가 되었습디까? 아이구 어쩌요? 나보고도 지존님처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많을텐데.. 그런데 들미소님은 지금도 14명의 남학생이 그리워 찾아왔대잖아요. 한두명도 아니고 14명이나... 그래서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말고 고운 모습 그대로 품고 살다 가는게 나은가봅니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모두다 실망한대요.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