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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음 초등학교 총 동문회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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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쉼터 김주복시리즈 11탄 (추수감사제)
17회 김홍창 추천 0 조회 156 07.11.15 22:04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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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15 22:58

    첫댓글 그때나 지금이나 현명한 판단력과 똑바른 사고방식이 오늘의홍창이를 만든것이 아닐까싶다 너 어떻게 권광호까지 기억을 했니 나보다 1년 이나 2년 선배되지싶어 근대 우리동내사람들은 모두다 친해서 그냥 친구처럼 이름 부르며 놀았단다 6회 영철이 진구 현수 명수 주영이 주호 금영이 병숙이 새삼스럽다 그당시 정말 농악놀이 많이 해긴했다 진땡이 막걸리에 냉수를 적당히 타서 마시면 유난히 맛있었는데 우리 할머니는 막걸리 거를때 어린 우리들한테 간을보라 하셨단다 집에서 담은 막걸리말야 그 이후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그냥먹는 음료로 생가이 들었어 찬 보리밥을 막걸리에 말아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란다

  • 작성자 07.11.27 15:22

    가페에 나오진 않지만 4회 권광춘이란 분은 6촌인 충현의 작은 어머니 이십니다. 그분이 저를 업어주셨다더군요, 옛날 그 미모와 아가씨같은 허리를 유지하고 계시죠. 그랬었군요, 술이 아닌 음료로서의 막걸리, 정겨운 우리의 토속주 였죠. 요즘엔 지평에 공장이 있는데 포천것 보다 더 달착지근 하더라고요. 그 때도 아마 이장님댁 에서 공수한 돼지고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 07.11.15 23:45

    이미지가 손상되었네요 애써 만든것이 한번더 손을보고 다듬어야 할것같지요? 홍창 동문님 수고많네요 화이팅!

  • 작성자 07.11.16 02:48

    늦은밤 댓글 감사드립니다. 용량 문제로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컴퓨터가 있는것 같습니다. 잘 보일수 있도록 손질해 보겠습니다.

  • 07.11.17 00:58

    모든것이 손볼데가 없을듯 반듯하네요.. 저도 기억에서 벗어난것들을 이렇게 추억해주니 차츰 기억을 거슬러 갔었네요.. 그래야만 했었구요.. 음,.. 감탄밖엔 나올게 없는듯.. 홍창이 머리속엔 무엇이 있을까.. 아님 내가 차츰 기억을 잊어가는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해준 후배이면서 동생이면서 어쩌면 아주 선배같은 홍창이가.. 너무나 커보이네요.. 아주큰 소나무같이 든든하게 느껴져요.. 고마워..^^

  • 07.11.16 21:13

    그 옛날 추억을 되 살리게 하는 글을 다시 올려 주셨군요...우리 산음1리에도 농악대가 있었죠..."농자천하지대본" 이란 기대가 제일 앞이고 다음이 농악대를 이끌고 지휘하는 꾕과리 상쇠잡이, 그 뒤에도 꾕괴리, 북, 복고, 나팔수, 상모 들리는 사람 3명등 머리에 고깔을 쓰고 뒤 딸았으며 농악대 뒤에는 신명나는 춤을 추는 춤꾼들이 뒤를 따랐죠...당시엔 동네분들의 큰 구경거리 였으며 신이 나는 분들은 그뒤를 따라 덩실 덩실 춤을 추곤하였죠...당시엔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다 모여들어 구경을 했죠...우리집 밖앗 마당이 놀이터도 되고 사랑채 마루가 무대가 되어 연극 공연도 한적이 있습니다...-_-...

  • 07.11.26 18:09

    구경거리가 없던 그 시절엔 모든 동네 사람이 모여들어 구경하는 큰 잔치 마당이었습니다...모 심을때도 농악대를 운영했으며 긴 장대에 "농자천하지대본"깃발을 깃대를 논 두렁 위에 꽂아놓고 노래를 불러가며 모심던 시절의 기억이 생생이 떠 오릅니다...당시 산대 안골을 중심으로한 산음1리와 고가수 수청을 중심으로 한 산음2리 농악대가 구성되어 있었군요...지금 생각인데 농악 놀이는 상부(면사무소, 군청)으로 부터 장려 정책 이었을 겁니다...아무튼 당시 농악 놀이는 우리들이 어린시절 촌에서 크나큰 구경거리 였습니다...*(^0^)*...

  • 작성자 07.11.16 22:09

    저보다 산음리에서 더 오래사셨던 선배님이시라 기억이 더 섬세하신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온동네 잔치가 바로 그 농악놀이였던것 같습니다. 다시생각해봐도 절로 어깨춤이 덩실덩실 추어질것 같은 광경입니다.

  • 07.11.16 22:29

    언제 기회가되면 집에서 담은 막걸리는 힘들겠구 지평 막걸리에 총떡이나 먹으면서 토킹 어바웃해보자 아재는 필히 있으셔야 하구 용문산 막걸리도 엄청맛있어 산음리의 잔잔한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어가네 이맘때쯤이면 옥수수 낫가리를 하나둘씩 헐어서(이표현이 좋아) 송곳으로 듬성듬성 고속도로 뚤어놓고 손으로 알갱이를 따면 참재미있었는데 사랑방에 소죽불 지펴놓고 말리면 습습한 옥수수향이 초겨울을 대신했단다

  • 작성자 07.11.16 22:40

    그 옥수수 알갱이 바짝말린거 잘 모아두었다가 대장간하는 영복후배님 집에서 뻥튀기 해먹었잖아요. 쩝 총떡먹어본지는 30년이 넘었네요

  • 작성자 07.11.17 12:14

    무월누님은 지상에서 가장 좋은 멘트로 칭찬을 해주셨네요,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짧은 제글을 통해서 묻어두었던 추억을 캐낸다면 그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작은 기쁨일 것입니다.

  • 07.11.18 00:22

    잘 보입니다. 11탄두 대박이 예상됩니다. 언제 쐬주한잔 합시다.ㅎㅎ

  • 작성자 07.11.18 07:52

    감사합니다. 쐬주는 많이는 못하지만 한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 07.11.18 16:39

    추위에 떨고, 아름다운 글에 또 한번 떨어 봅니다. 작은 동네에서 나도 잘 모르는 지ㅣ명이 있습디다. "천지송"이란 이름이 마음에 와 닿소. 생각해보니 무경이네 집앞의 솔나무를 천지송이라 부르는것 같소만. 추운 겨울밤의 군불같은 이야기에 취해봅니다.

  • 작성자 07.11.18 17:19

    아랫동네까지 방문해 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천지송은 무경선배의 생가가 있는 언덕입니다. 좋은 하루되십시요

  • 07.11.18 22:57

    선배님 글 올리느라 수고 하셨어요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세요~~~

  • 작성자 07.11.19 10:27

    댓글 감사드립니다. 후배님도 가끔씩 좋은글 올려주시고 계시죠....

  • 07.11.20 22:18

    믄득 .,홍창이가 올린 글 보면서 매번 그렇게 느끼는데요.. 10살이란 나이에 그정도나이면 한창 어리광부릴 코흘리게(요즘 아이들같지 않고..) 에 불과한 아이임에도 이렇듯 그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게 너무나 의아하면서 한편엔 기특하단 생각을 안할수가 없네요.. 근데,. 그시절 놀이감도 없이 겨울이면 눈밭을 놀잇감삼고 ,여름엔 물흐르는곳엘 의지하면서 그렇게 어린 유년시절을 보냈으니, 나보다 어른들의 행동들을 유심히 볼수밖에 없었을것 같단 생각도 해봅니다.. 저만해도 어린시절이 선명하게 떠오르는게 있어요.. 아마 홍창이도 그중 가장 잊혀질수없는 그무엇들을 머릿속가득 담고 있는듯하네요..아마도! ^^

  • 작성자 07.11.20 22:42

    맞아요. 아이들을 공기탁한 사각의 차단된 공간에 가두고 시력을 저하시키는 디지털기기로 가득찬 현대문명에서는 절대로 느낄수 없는 순백의 동심과 맑은공기, 투명한 물, 정겨운 농촌문화등은 그 무엇으로도 살수없는 소중한 지적재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07.11.21 16:02

    옥수수 낫가리는 수많은 옥수수를 매달아 예술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밤으론 송곳으로 타개고 알갱이 분리 작업을 하고 영복이네 집에서 뻥튀기 만들고 정월이면 조청에 동그랗게 뭉쳐두고 먹기도 하고... 뻥튀기 기계옆에 삑사리난 거 주워 먹으려고 잠복해 있다가 야단을 맞기도 하고...ㅋㅋ

  • 07.11.23 22:45

    난 잊지 이세상에서 홍창이가 쓴글이 제일 좋단다 왜냐하면 잊혀진 추억을 한개도 흘리지않고 고스란히 주어서 싹뛰었잖아 나이들어 그런지 금방 들은말도 잊기가 일쑤다 하지만 홍창인 달라 그옆에서 열심히 어시스트하는 현주도 이쁘고 막상 가보면 볼것도 없는 산음리 하고도 고가수 거긴 우리의 유년시절의 꿈이였던 곳이기에 더더욱 애틋하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음하는 아쉬움 때문에 그리움만 더해가는 고가수가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 작성자 07.11.23 22:52

    딱 맞는 말씀이네요.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고가수, 동댕이, 유년시절에 그렇게 커보였던 나무며, 성황당이며, 띠길이 왜그렇게 작게 보이는지, 그렇지만 그런 소재들을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게 되지요, 또한 너무어려서 몰랐던 큰누나, 둘째누나와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가는 지금이순간이 제2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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