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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약력
뮤리엘 스파크(Muriel Spark)는 1918년 2월 1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자 리투아니아 출신의 엔지니어인 아버지 버나드 캠버그(Bernard Camberg)와 어머니 시시(Cissy) 사이의 둘째 아이였다. 노동자 계층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스파크는 5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제임스 길레스피 고등학교(James Gillespie's High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학교에서 '시인과 몽상가'로 불렸으며 많은 시작품을 교지에 발표했다. 스파크는 1929년 크리스티나 케이(Christina Kay) 선생님을 만나 큰 영향을 받았다. 크리스티나 케이 선생님은 그녀를 전시회, 콘서트, 시 낭독회 등에 데리고 가서 그녀에게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일러줄 정도였다. 그녀의 여섯 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소설인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케이 선생님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졸업 후 스파크는 헤리오트 와트 대학(Heriot-Watt College)의 요약 글쓰기(précis-writing) 과정에 등록했다. 그리고 이후 한 백화점 주인의 비서로 취직했다. 그녀는 댄스파티에서 유대인인 시드니 오스왈드 스파크(Sydney Oswald Spark)를 만났다. 그녀는 19살이었고, 그는 32살이었다. 그녀는 그가 아프리카에서 가르치는 일을 계획한 데다가 자신이 에든버러를 떠나 주체적인 삶에 입문하기를 열망해 그와 약혼했다. 그리고 1937년 8월 약혼자를 따라 남부 로디지아(Southern Rhodesia, 현재의 짐바브웨)로 갔고, 다음 달에 결혼했다. 1938년 아들 로빈(Samuel Robin Spark)이 태어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헤어졌다. 이듬해 전쟁이 일어나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곳에 머물다가, 1944년 이혼하고 군함을 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아들을 부모에게 맡긴 뒤 그녀는 런던으로 향했다. 그리고 외무부 정치정보부에 들어가 독일 국민들에게 반나치 선전을 퍼뜨리는 일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뒤 스파크는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947년 시(Poetry) 협회의 총무와 잡지 편집자로 임명되었다. 1949년 첫 번째 저서인 『워즈워드에 대한 헌사(A Tribute to Wordsworth)』를 당시 연인이었던 데릭 스탠포드(Derek Stanford)와 함께 공동 집필해 출간했다. 2년 뒤 그녀는 『옵서버(Observer)』지의 단편 공모에서 「세라프와 잠베시(The Seraph and the Zambesi)」로 당선되었다. 1952년 그녀는 데뷔 시 모음집인 『판팔로와 다른 시(The Fanfarlo and Other Verse)』를 출간했다.
스파크는 1954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1957년 첫 번째 소설집인 『위안을 주는 사람들(The Comforters)』을 출간했다. 이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로빈슨(Robinson)』(1958), 『메멘토 모리(Memento Mori)』(1959), 『페컴 라이의 발라드(The Ballad of Peckham Rye)』(1960), 『총각들(The Bachelors)』(1960) 등 4편의 소설과 단편집 『이동하는 새(The Go-Away Bird)』(1960)를 연이어 출간하며 독창성과 재치로 명성을 얻었다.
1961년 스파크는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을 출간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고, 작품 속의 교사를 연기한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미국에서는 『뉴요커(New Yorker)』지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편집자인 윌리엄 숀(William Shawn)은 스파크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무실을 제공해주었다. 그녀는 거기에서 『맨손뿐인 처녀들(The Girls of Slender Means)』(1963)과 『만델바움 게이트(The Mandelbaum Gate)』(1965) 등 두 권의 소설을 출간했고, 제임스 테이트 블랙 기념상(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을 수상했다.
1967년 스파크는 뉴욕 생활의 소란스러움과 폐소공포증에 지쳐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했다. 같은 해에 그녀는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OBE)가 되었다. 또한 단편과 시를 한데 모아 첫 전집을 출간했다. 1968년 『공공 이미지(The Public Image)』가 출간되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1970년 『운전석(The Driver’s Seat)』이 출간되었고,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풍자한 『크루의 수도원장(The Abbess of Crewe)』이 출간되었다.
1970년대 중반 스파크는 로마를 떠나 토스카나의 깊은 시골로 가 예술가 친구인 페넬로피 자르딘(Penelope Jardine)이 소유한 집에 정착해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집이 될 그곳에서 『인수(The Takeover)』(1976), 『영토권(Territorial Rights)』(1979), 『의도로 어슬렁거림(Loitering with Intent)』(1981)을 썼는데, 『의도로 어슬렁거림』은 또다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잉거솔 재단 TS 엘리엇상(the Ingersoll Foundation TS Eliot Award), 현실과 꿈을 위한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상(the Scottish Arts Council Award for Reality and Dreams), 보카치오 유럽 문학상(the Boccaccio Prize for European Literature), 평생의 업적에 대한 데이비드 코헨 영국 문학상(the David Cohen British Literature Prize for a lifetime’s achievement), 국제 펜클럽의 황금펜상(the Gold Pen Award from PEN International) 등을 수상했다. 그녀는 1993년 남자의 서(Sir)에 해당하는 데임(Dame)이 되었다.
스파크는 말년에 자주 병에 시달렸지만 소명 의식을 가지고 글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후기 소설로는 『켄싱턴에서 멀리 떨어진 외침(A Far Cry from Kensington)』(1988), 『심포지엄(Symposium)』(1990), 『현실과 꿈(Reality and Dreams)』(1996), 『범행 방조(Aiding and Abetting)』(2000) 등이 있다. 그녀의 고별 소설은 『마무리 학교(The Finishing School)』로 2004년 출간되었다.
스파크는 2년 뒤인 2006년 4월 13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스카나 발 디 치아나(Val di Chiana)에 있는 올리브토(Oliveto) 마을의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묘비에는 이탈리아어로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다 : 시인(poeta).
[2017년 영국 버린사(Birlinn Ltd)의 출판사 폴리곤(Polygon)에서 출간한 『메멘토 모리』의 머리말(알렌 테일러(Alan Taylor) 씀)을 발췌 번역함 : 맹문재]
■ 책 뒤표지 글
김현경 여사님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의 135쪽 아래 2단락과 136쪽 2단락 “그는 내가 몸져누워 있는 것을.... 이것이 그와 나와의 최후의 시간이 될 줄이야.”
―김현경, 『메멘토 모리』에 대한 회고담
■ 각주
1) sir.
2) 留. stay.
3) granny, grandmother : 할머니.
4) Tempest. 번역문에는 ‘템피스트’로 표기됨.
5) 원문은 다음과 같다. “sisters and brothers sinisters and bothers.”
6) S.S.A.F.A. : Soldiers', Sailors' and Airmen's Families Association(육해공 군인 가족 협회)
7) 번역문에는 ‘미시즈 페티그루’로 표기됨.
8) 귀살머리스럽다 : 마구 뒤얽힌 정신이 어수선하다. 원문에는 ‘nuisances’로 표기됨.
9) bastard : 사상아. Burstead : 이 작품의 간호원장 이름.
10) 번역문에는 ‘독터’로 표기됨. doctor.
11) 번역문에는 ‘부르크’로 표기됨. 제3장에서 ‘부룩’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통일시킴.
12)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ough he had meant to think about Charmian on
that walk.”
13) 흘게늦다 : 조금 풀려 단단하지 못하다. 원문에는 ‘untidy-looking’으로 표기됨.
14) 번역문에는 ‘내 모자’로 표기됨. 원문은 “Every now and then a little succession of raindrops would pelt from the leaves on to his hat or her hat.”
15) 번역문에는 ‘전혀’로 표기됨. 원문에는 ‘entirely’로 표기됨.
16) Baptist. 침례교도.
17) 게염 : 부러운 마음에 시샘하여 탐내는 욕심.
18) 짝패 : 짝을 이룬 사람들의 무리.
19) 귀갑(龜甲, tortoise) : 거북의 등 껍데기.
20) 사경(斜頸, Torticollis) : 목 근육의 섬유조직이 짧아져 목이 한쪽으로 기우는 병적 상태.
21) Athenaeum : 학술 진흥 기관. 도서관. 아테네 신전. 법률․문학의 학교.
22) 대고 : 무리하게 자꾸. 계속하여 끊임없이.
23) Lousy : 이투성이의. 불결한. 비열한. 비참한. 형편없는.
24) Ovaltine : 우유 음료를 만들기 위한 분유 또는 착향(着香)된 분유의 상표.
25) 종야등 : 밤새도록 켜 놓는 등불.
26) teenager : 13세에서 19세 사이의 소년과 소녀를 이르는 말.
27) rice pudding : 밥에 달걀, 우유, 크림, 설탕, 향료 따위를 섞고 과실, 야채 따위를 넣어 만든 푸딩.
28) 白灰 : 탄산 칼슘을 열분해하여 생기는 염기성 산화물. 하얀 고체나 가루.
29) 곡률 : 굽은 선이나 굽은 면의 굽은 정도를 나타내는 값.
30) 번역문에는 “췌장 볶음에”로 되어 있음. 원문은 “She put all that garlic in the sweet bread casserole– said she thought it was celery, well, I mean to say.”
31) 해소 : 목이나 기관지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세찬 호흡 운동.
32) 오직 : 직권을 남용하여 맡고 있는 직책을 더럽힘.
33) 안가 : 값이 쌈. 싼값.
34) 격자창 : 창살을 가로세로로 일정하게 간격을 두어 직각이 되게 짜맞춘 창문.
35) 야료(惹鬧) : 까닭 없이 트집을 잡고 마구 떠들어 대는 짓.
36) 박살 : 사람이나 짐승을 손으로 쳐서 죽임.
37) 유증 : 유언으로 재산을 물려줌. 또는 그런 행위.
38) 번역문에는 “마를로(路)를”로 표기됨. 원문은 “The taxi was purring
along the Mall towards St James’s Street.”
39) 고항 : 오래된 항아리.
■ 앞날개 약력
뮤리엘 스파크(Muriel Spark)
시인, 수필가, 전기작가, 소설가. 1918년 2월 1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16살 때까지 제임스 길레스피 고등학교에서 교육받았는데, 크리스티나 케이(Christina Kay) 선생님을 만나 작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받았다. 헤리오트 와트 대학에서 수학했고, 1937년 약혼자 시드니 오스왈드 스파크(Sydney Oswald Spark)를 따라 남부 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로 간 뒤 결혼했다. 1938년 아들 로빈(Samuel Robin Spark)을 두었지만, 1944년 이혼하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1954년 카톨릭으로 개종했고, 1957년 첫 번째 소설집인 『위안을 주는 사람들(The Comforters)』을 출간했다. 이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메멘토 모리』(1959) 등을 출간했다. 1961년 출간한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은 연극과 영화로 만들어졌고, 작품 속의 교사를 연기한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7년 이탈리아와 로마로 이주했다. 1968년 『공공 이미지(The Public Image)』를 출간해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1970년대 중반 로마를 떠나 토스카나의 깊은 시골로 들어가 글을 썼다.『의도로 어슬렁거림(Loitering with Intent)』(1981)으로 또다시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2004년 고별 소설로 『마무리 학교(The Finishing School)』를 출간했다.
2006년 4월 13일(88세) 사망해 토스카나 발 디 치아나(Val di Chiana)에 있는 올리브토(Oliveto) 마을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 옮긴이 약력
김수영(金洙暎)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린상업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영문과에서 수학했다. 1946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 김현경(金顯敬)과 결혼해 두 아들 준(儁)과 우(瑀)를 두었다. 시집으로 『달나라의 장난』(1959) 있다. 한국전쟁 때 포로수용소 생활을 했다. 1968년 6월 16일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메멘토 모리』 재출간 후기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는 김수영 시인이 마지막으로 번역한 소설이다. 이 사실은 김수영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가 증언했다. 김현경 여 사의 말씀에 따르면 1968년 6월 15일 김수영 시인은 이 소설의 번역 원고를 신구문화사에 넘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다음 날 타계 했다. 따라서 김수영은 생전에 이 소설의 출간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출간 된 소설집의 판권에는 1968년 3월 30일에 간행된 것으로 되어 있어 궁금증 을 자아낸다.
그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이 세상에 없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따라서 이 소설은 김 수영이 타계한 뒤 출간되었지만, 이미 정해놓은 출간 날짜에 맞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김현경 여사의 증언에 따르면 김수영 시인은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책상 한 귀퉁이에 ‘상주사심(常住死心)’이라고 써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좌우명으 로 삼겠다고 말했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살아 있는 목숨이 고맙고, 아 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김수영은 죽음의 세계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의 거울로 삼았다.
소설을 읽어보니 김수영 시인이 얼마나 공을 들여 번역했는지 새삼 실감 했다. 정확한 번역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단어 하나도 매우 신중히 선택했다. 뮤리얼 스파크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도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수영은 시인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번역가였다.
이 소설을 재출간하면서 편집 과정에서 실수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각주를 달고 바로잡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부연 설명을 달았다. 또한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 표기는 작품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를 제외하고 현행 맞춤법 규정에 따랐고, 한자와 외래어가 병기된 경우는 필요한 것만 살리고 한글로 바꾸었다.
『메멘토 모리』가 번역 출간된 지 54년 만에 푸른사상사에서 재출간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 올해 96세의 김현경 여사님께서 살아 계시기에 더욱 그 러하다. 내내 건강하시어 더 많은 일을 함께하시길 응원한다. 이 소설을 구 해 건네준 김병호 서지학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