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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민의 역사공부방
 
 
 
카페 게시글
고대사 게시판 카타콤(지하묘소)의 현장~ㅇㅇ
정재윤 추천 0 조회 558 05.07.22 10:30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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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3.18 09:28

    첫댓글 알짜 자료 올리셨군요. 왜 박해가 행해졌을까요?

  • 05.03.18 16:06

    초기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중심지에서 벗어나 기독교인들끼리 모여살았습니다 그것에서 바울의 말에따라 조용히 로마의 제의에 참석도하지않으며 살았습니다 박해를 받기 시작하는 2세기경 로마가 파르티아를 제압하는데 이들 병사들이 페스트를 가져와 로마군단의 상당수가 페스트에 걸려죽게됩니다

  • 05.03.18 16:10

    병력손실로 약해진 북방방어선을 게르만인들이 위협을 하게되죠 위기에 시기에 애국심이 높아진 로마인들에게 로마의 것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에게 대한 반감이 커집니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 끼리는 서로 돕는데 로마의 시민이면서도 공공사업이나 복지사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 05.03.18 16:13

    박해가 시작된 최초의 판결에서 트라야누스법(로마인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저부한 자는 채찍질후 참수형한다)에 의해 콜로세움에서가 아니라 감옥에서 목이 베어졌다고 합니다

  • 05.03.18 20:11

    카타콤은 원래부터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로 만들어 진것은 아니라고 합니다.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위에 만들 수 없었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돈이 들지 않는 자연동굴에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 05.03.18 20:10

    그런데 자연동굴도 다 차버리자 그때부터 땅을 파고 지하에 무덤을 만들었죠.카타콤도 그 중의 하나인데요. 투파라는 응회암이 있어 굴을 안전하게 팔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세기 초기까지 공동묘지로 이용되다가 그후에 순교자들이 매장되면서 성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 05.03.18 21:16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예배장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공공 예배당이 필요해지고, 그 필요에 의해 지어진 초기 교회 양식이 바실리카 양식이고, 이것이 주된 흐름이 되어,바실리카 미술가들은 카타콤브 세대를 참고하여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모자이크 양식이라고 합니다.

  • 05.03.19 22:07

    카타콤 미술에 대해.. 지하 묘굴의 프레스코 벽화로 대표되는 카타콤 미술은 크리스트교 박해 시대의 미술로 초기 기독교 미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이 당시 회화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기독교의 상징주의에 입각하여 그림의 모티브가 신중하게 선택되고 있음을 볼 수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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