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게리 네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유소년 구단 출신 스타들이다. K-리그에도 유소년 클럽 시스템이 도입된 지 몇 해가 흐르면서 각 구단들은 점차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유소년들을 육성하고 있다. 유소년에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면 한국 축구도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유소년 클럽 시스템은 한국 축구의 미래와 구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미래, 유소년 클럽
부산은 지역 공헌팀 안에 유소년 담당 부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유소년들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최보람 매니저가 그들의 일과를 같이 하고 있다. 최보람 매니저는 단순히 운동복을 나눠주고 간식을 챙겨주는 업무만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정신적인 멘토가 되어 상담은 물론 사소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고 있다. 남자 코치선생님들 사이에서 최보람 매니저는 어린 선수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이다. 유소년 클럽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부산의 최보람 매니저를 만나 부산 유소년 클럽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프리미어리그 유명한 구단의 유소년 클럽들은 우리랑 너무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축구만 했었죠. 하지만 그 쪽은 축구‘도’ 하는 시스템이에요.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죠. 아이가 원하고 즐기는 게임으로서의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해줘요. 어릴 때는 그렇게 즐기는 축구를 하다가 크면서 몸이 잡히고 난 뒤, 체력을 다지고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잔기술을 가르쳐서 아이들을 빨리 지치게 만들어 버리는 경향도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도입 할 때 목표를 ‘다 함께 즐기는 축구를 하자’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 지금 부산은 보급반, U-12, U-15세, U-18세 이렇게 연계되어 있어요. 보급반은 5세 이상 13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놀이와 게임으로 축구를 즐기는 시스템을 기초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U-12세는 2003년도에 창단되어 전국 유명 클럽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구요. U-15세는 2005년에 창단되어 신라중과 연계를 하고 있어요. 특히 이 U-15세 팀은 운동을 마친 후에 공부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U-18세는 올해 동래고와 연계를 해서 처음 만들어졌어요."
'어린 선수들은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존재다.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있다가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존재들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이 유소년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했던 말이다. 부산이 이토록 유소년 클럽에 특별한 애정을 쏟으며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이유 역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 장기적인 계획으로 봤을 때 유소년 클럽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유소년들이 커서 우리구단의 프렌차이저 선수가 되는 거고 그 선수가 또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는 거죠. 유소년 클럽이 이런 연결고리의 시작이 되는 셈이죠. 지금 당장 선수를 키워서 반짝 스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축구 미래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유소년클럽은 각 구단의 꿈과 같은 존재에요. 이런 어린 꿈나무들이 제대로 커나가야 하죠. 정규리그의 성적은 2007년만의 성적일 뿐이에요. 2008년, 2009년의 성적은 또 달라지겠죠. 하지만 유소년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커 나가야해요.”
공부와 축구가 별개? 그건 NO
부산 유소년 클럽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U-15세 팀의 공부와 축구를 병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현대 축구는 생각하는 축구로 변했고 지능적인 선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부산은 지능적인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 생각하는 축구를 하게 만들자는 생각에서 착안했어요. 운동하는 사람은 공부를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축구는 혼자서 잘한다고 잘 되는 운동이 아니잖아요. 축구는 조직이고 패스로 이루어지잖아요. 공이 어느 쪽으로 패스를 했을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생각을 해야 해요. 그렇게 해야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생각하는 축구를 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습적인 보호를 잘 못 받아요. 운동을 하니깐 ‘쉬어라’고 하고 시험을 못 쳐도 아무 말도 안하죠. 하지만 이건 장기적으로 큰 문제에요. 유소년 클럽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다 프로 선수가 되면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선수들이 점점 크면서 축구를 계속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겨나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프로선수가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걸러짐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다보면 축구 하나만 보고 있던 아이들이 결국 방황을 하다가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향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최대한 미완에 방지할 수 있을 만큼 도와주자는 생각이었죠. 축구를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적인 기본은 다져가면서 축구를 배우자는 거죠.”
부산 유소년들이 배우는 과목은 영어, 수학, 한문으로 총 3개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춘 과목 영어, 논리적이고 지능적인 과목으로 수학, 아이들의 전체적인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한문까지. 이들은 운동을 마친 뒤 일주일에 3번, 월요일은 한문을 배우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정말 기본적인 내용을 공부하고 있어요. 수학은 사칙연산, 영어는 단어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죠. 중학교 3학년들은 영어 문법을 공부 하고 중학교 1~2학년들은 파닉스와 기초 영어회화를 병행하고 있어요. 저희 수업 내용은 학교 진도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 있어요. 학교에서 수학을 함수, 그래프를 공부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죠. 아예 처음부터 배운다는 입장에서 시작하다보니 학교 진도를 맞출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학교진도를 맞추면 아이들이 못 따라올 것 같아요. 학교 숙제도 이곳에서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운동을 마친 후,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수업이 이루어지다보면 어린 선수들을 지칠 법도 하다. 1시간 수업시간이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길고도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어린 선수들이 잘 참고 불평불만 없이 잘 따라오긴 할까, 행여나 안한다고 반항은 하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저만 수업을 쭉 하고 애들은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아이들과 같이 생활을 하다보니깐 서로 편하잖아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모르는 것도 편하게 저한테 물어보게 되고 저 역시 아이들에게 말하는 전달력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수학시험을 4점 받았다고 혼내지는 않아요. 아이들한테 ‘너 왜 이거 몰라! 너 왜 이거 못해!’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에요.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것이 문제죠. 수업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화기애애하고 활발해지면서 좋아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질문에 답을 할 때 틀릴까 봐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틀리더라도 자신감 있게 말해요.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더 정확하게 알아가고 있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고 있어요.”
“ 운동이 끝난 후에 수업이 이루어지다보니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편이에요. 공부가 힘든 것보다 쉬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힘들죠. 그런데 기특하게도 아이들이 불평불만 없이 잘 하고 있어요. 가끔 발표할 때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축구선수라고 승부욕이 생기는 모양인지 안 지려고 더 열심히 해요. 또 공부의 필요성도 잘 알고 있어서 빠지지 않고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죠.”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바로 영어. 아무래도 다른 과목들 보다 영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보니 더욱 좋아하는 모양이다.
“저희가 영어 공부를 할 때 항상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 이영표 같은 선수들이 인터뷰 다 영어로 하지? 그러니깐 너희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하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더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번 니카타에 A3대회를 갔었는데, 아이들이 일본, 중국 친구들하고 그 짧은 영어 실력으로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단어가 기억이 안 나면 저에게 와서 물어보기도 했어요. 해외에 가서 입 꼭 다물고 쭈뼛쭈뼛 서 있는 것 보다 배운 것을 활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깐 보기 좋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기도 했죠. 또 3학년 학생 중 한명이 영어 성적이 올랐었어요. 물론 본인이 열심히 해서 성적이 오른 것이겠지만 뿌듯하더라고요.”
실제 공부를 하고 있는 김지민 선수는 “운동한 뒤에 바로 공부를 하는 것이라 힘들어요. 하지만 학생의 본분인 공부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다 참을 수 있어요. 그리고 다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면서 분위기도 좋아지고 운동장에서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라며 수업에 열의를 나타냈다.
실력만큼 쌓아야 할 인성의 중요성
‘축구를 즐기자’라는 목표 아래 부산은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축구 실력만으로 훌륭한 선수들을 키울 수는 없는 법. 부산이 유소년을 육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인성이다. 그들은 인성 바른 선수를 키우기 위해 축구 실력만큼 더 신중을 기하며 어린 선수들의 행동에 관심을 쏟고 있다.
“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예, 인성이에요. 물론 축구 선수이니깐 축구도 잘해야죠. 하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이다 보니깐 인성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예의 바르고 매너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어요. 어디 가서 아이들이 버릇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가장 기분이 나쁜 일이죠. 그러다보니 아이들한테 하나하나 말해주고 고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항상 아이들한테 시간 날 때마다 인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 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고 심적으로 안정감을 찾게 상담도 해주고 있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 뿐만 아니라 여자 친구 이야기도 해요. 그러다보니 저도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되었죠. 어릴 때부터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그렇게 행동이 제대로 갖춰질 수 있도록 저희가 사랑으로 지켜봐야죠. 일단은 주변에서 사랑과 정성을 주면 애들은 어느 순간 자신감을 가지게 되요. 어릴 때는 누가 특별히 잘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때,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에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죠. 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뛴다면 머지않아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선수들에게 경기에 나가서 이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산은 지금 당장 뛰어난 선수를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선수가 되도록 어린 선수들을 도와주고 있다.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 지원 그리고 사랑과 관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 유소년 클럽. 그들이 앞으로 한국 축구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K-리그 명예기자 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