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 역’ 부근
6호선 ‘효창공원 역’에서 내려 효창공원 쪽으로 이동했다. 금양초등학교가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2월말까지 휴교한다는 공지문이 정문에 붙어있다. 학교는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많은 사회적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비록 그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학교’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을 어떻게 개발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가 ‘학교’가 존재하고 지속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이 닥치게 되면 ‘학교’는 금지지역이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학교’는 우리 시대 ‘공존’과 ‘공생’의 가능성이 실험되고 있는 장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
조금 더 올라가니 ‘효창운동장’이 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곳이다. 이곳은 과거 고등학교 시절 학교 축구부 경기에 단체 응원으로 몇 번 온 기억이 난다. 축구 경기에 별 다른 흥미는 없었지만 ‘수업’을 대신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효창운동장에 오는 기억은 상당히 먼 거리와 오랜 시간을 소모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당시 경기 결과는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축구 경기를 마치고 뿔뿔이 흩어지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귀환하는 모습은 고등학교 시절 남아있는 추억 중에서는 괜찮은 순간이었다.
백범 기념관이 보였다. 입구 앞 쪽에 서있는 ‘이봉창 의사’의 동상이 보인다. 화려한 삶을 꿈꿨던 젊은이의 극적인 전환이 ‘이봉창’의 삶과 겹쳐있다. 그의 삶을 읽다보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결단’에서 시작된 행위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백범 기념관은 평생을 해방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김구’의 모든 것이 기록되고 전시되어 있는 곳이었다. 백범은 한국 사회에서는 ‘진영’논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보인다. 비록 해방 이후 시도되었던 마지막 남북 협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더라도 남북이 분리된 채로 국가를 세운다는 현실을 백범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해 죽어간 그의 정치적 순수함과 의지는 비록 모두가 실천하기 어려울지라도 모두가 지녀야 할 근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백범의 묘와 효창공원을 한 바퀴 돈 후 숙명여대 옆길로 해서 삼각지 방향으로 걸어갔다. 효창공원 주변 약간은 허름한 주택을 둘러싼 거대한 신축 건물은 용산구의 욕망을 대변한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야당의 실질적인 선거전략 중 대표적인 것은 중산층의 ‘주택’에 대한 욕망을 건드리는 것이다. 현 정부가 주택에 대한 세금을 늘리고 주택 소유를 죄악시한다는 프레임으로 사람들의 불만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소유한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의식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소유와 부소유가 수많은 원인에서 기인하겠지만 소유와 부소유의 그 자체의 상태는 문제를 왜곡된 시선에 의해서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진보 인사들의 발언과 행동에서 보여준 ‘부동산’에 관한 진실은 이러한 시선을 더욱 당파적으로 각자 정당하게 만들고 있다.






첫댓글 기억 속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