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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낯선 그리움
강 영 환 (시인)
1.
그때가 1974년인가?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광복동 입구 피노키오 다방에서 시화전을 열고, 시낭송회를 하고 젊은 패기를 모아 동인지를 출간하였던 때, 그리고 청마 유치환 묘소가 에덴공원 산 정상에 있을 때 묘소 가꾸기 모금운동을 펼쳐 나무를 사서 묘소와 시비 주변에 심기도 하고, 주변 돌을 모아 무너진 석축을 쌓기도 하고… 그렇게 대학생활을 멋지게 보내면서 자정문학동인회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문학을 아니 시를 통해 돈독한 우의를 쌓아가던 때가 있었다. 함께 했던 멤버들 가운데 아직도 시를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이는 아마도 백시인과 나 뿐이 아닌가 여겨진다. 물론 내적으로는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등단을 하고, 시집을 출간하고, 문학적 활동을 직접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그때로부터 참 많은시간이 흘렀다. 생활전선에서 좌충우돌하다보니 문학적 열정은 뒤로 숨어버리고 그러다보니 만남도 뜸하게 되었다. 어떻게 가정을 꾸렸는지부터 자녀를 혼인시키기까지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근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몇 사람이 연락되어 겨우 일 년에 한두 번꼴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 자갈치 시장 난전에 앉아 꼼장어를 안주하여 소주잔을 나누며 열을 내어 토론하던 때가 그립고, 혹은 음악다방 백조나 오아시스 같은 곳에서 토해내던 시에 대한 열정이 아직 철 지난 잔설처럼 남아 있기에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정>은 그렇게 흘러 갔고 백지영 시인과 나는 대학시절 문학 동아리 <자정>에 함께 몸담았던 문
우였다.
오늘 따라 새삼 유년시절이
부분 부분 모자이크 된다
파스텔 톤으로
서서히 지워지는 지나간 날들
살아가는 생각이 달라지면서
바라보는 세상도 옅어졌다
차츰 차츰
추억이 덧칠해지고
두텁게 쌓인 추억은
흐르는 강이 되어
98 백지영 시집
잡을 수 없는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멀리 떠나 온 시간만큼
오늘은 길게 사랑하리라.
「희미한 생각」전문
백지영 시인은 고교시절 때부터 활동해 오던 <전원문학회> 멤버다. 그 당시 부산에서 전원문학회는 고교에서 문예반 반장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연합 써클로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인물들이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아직도 <전원>은 그때 멤버들이 모임을 지속하
고 있다고 들었다. 일찍부터 시문학에 눈을 뜬 백지영 씨를 만난 것은 대학 재학 때 <자정>이라는 문학 동아리에 들고부터다. 나는 백지영씨가 그 당시 여학생들의 흔하고 평범한 이름보다 무척 세련된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문학세계에 대한 발언에도 당당하였 뿐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문학에 대한 담화들도 많이 알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백지영은 그림을 전공하고 있었고, 늘 보헤미안 스타일로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참 자유로운 영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군사독재로 유신체제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고, 대학생들로는 딱히 돌파구를 찾지 못해 당시 유행했던 히피족 흉내를 어설프게 내던가 아니면 백조다방이나 무아음악실 같은 곳에서 고전음악에 심취해 자아를 잃어버리고 싶었던 것이 대부분 할 일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처럼 처절하게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공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든 당연히 취업이 되던 때였으니까 낭만을 구가하며 젊은 이상에 맘껏 젖어 민주와 자유에 대한 가치를 뜨겁게 토론할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인가에 쫓기기는 지금 학생들과 마찬가지였다. 젊었기에 충족되지 못한 아픔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2.
정말 장황하게 70년대 젊은 학창시절을 회고해 보았다. 백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오른다. 그의 시가 그 시절 보헤미안적인 정신을 다분히 담아내고 있기에 더욱 그런 것이라고 나름 생각해 본다. 어쩌면 낭만주의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심정의 발로들이 이 한권의 시집에 담겨져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삶의 돌파구를 찾고 현실의 어두운 면을 바라보며 내면에 퇴적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부조리를 담담하게 끌어내면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늘 시간과
공간이 배경보다 무거운 아우라로 시를 지배한다. 시공을 초월하는 삶, 그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이며 그 일은 곧 예술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꿈꾸는 세계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내 걸어온 길은 문신이 되어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숲속 낮은 음악이 되어 흐른다
한 잔 검은 그림자에 담긴
깊은 하늘을 음미하며
뒤돌아 보아지는 눈물과 함께
사라져버린 시간을 마신다
함께했던 사람들도 잔 속에서
지나온 길을 추억하며 걸어가고
오늘 마시는 이 한 잔도 어쩌면
과거로 지나간 시간 속에서
어둠과 같이 묻힐 것이다
「한 잔의 커피」 전문
이 시를 읽으면 당시 부산에서 유명했던 클라식 다방이었던 백조나 오아시스, 무아 음악실이 생각난다. 베토벤 9번이나 스트라빈스키에 젖어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백지 위에 무언가를 긁적거리던 때였다. 전봉래 시인이 운명 교향곡을 들으며 스타다방에서 자살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자주 들먹이곤 하던 때였다. 이제 벌써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는 나이가 되었을까. 그의 시에는 과거 회상적인 작품이나 그렇지 않은 작품들 속에서도 중심축이 과거로 이동되는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움>이란 관념어가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회상의 낌새를 충분히 감지해 낼수 있다할 것이다.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립고 아름답다. 설혹 그것들이 핏빛 아픔일지라도 도달하지 못한 언덕은 늘 무지개가 걸리고 이루었던 일들은 다시 ‘한 번 더’라는 안타까움을 수반하면서 안개 속에서 아련하게 심성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가 인식하는 공간이다.
백 시인의 시는 시적 표현이나 형상화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소 산문적인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시적 포에지를 획득하고 시와 공간이 지닌 아우라를 전달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메시지를 통해 시인이 전달하고자하는 의미를 찾는 데는 어렵지 않다. 1차적인 감성으로도 접근이 가능한 작품들은 친근하고 쉽게 읽혀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상식적인 의미들이 신비평가 그룹이나 러시아 형식주의가 제창한 낯설게 하기와는 좀 거리가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라고 본다. 이런 편안한 시가 좋게 느껴지는 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내 안에는 아마도
벌판을 거침없이 달리던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있을 것이다
바람을 가르며
야생화 들판을 지나
끝없는 지평선을 향하여
달려본다
그러다가 낙조를 만나면
지는 해와 함께 쓰러져
기울어지는 해에
붉은 구름과 함께
어디론지 방향도 모를 곳으로
함께 흘러가 보고 싶다.
「소망」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는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고 진술한다. 바람을 가르고 야생화 들판을 지나 지평선을 향해 달려간다. 그것도 해가 질 때까지 몸이 허락받은 한도 끝에 다달아 본다. 그것은 목적을 정해 놓고 가는 계획적인 방황이 아니라 방향
도 없이 그냥 떠도는 전형적인 짚시의 삶, 그것이다. 예술가들은 갈망한다. 자유를 찾아서 자유가 주어지는 곳으로 무작정 가는 것이다. 어쩌면 숙명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예술혼을 위해 절대적으로 방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시를 통해 내면의 갑갑함을 토로해 놓지 않으면 이 압박하는 현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래야 예술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결국 낯설게 하기 아니던가. 낯설게 하려면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 낯선 곳을 찾아 현재 있는 여기가 더 낯익기 전에 새로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야 하는 숙명을 예술가는 지녔다.
백 시인의 보헤미안 적 기질이 찾아낸 것은 여행이다. 생활에서 일탈을 꿈꾸는 시인은 허락을 받고 떠나는 여행이 차선이다. 낯선 곳을 다니며 재충전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일은 모든 예술가들의 로망이 아닐까. 자유로운 영혼이 가닿은 곳은 특별한 의미를 주기도 하고 평범한 장소일지라도 시인이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불어 넣기도 한다.
그가 섭렵한 여행지를 따라가 본다. 이 시집에 시로 형상화된 여행지보다 그가 다닌 여행지는 더 많겠지만 우선 시에 등장하는 국내 지명으로는 서해 한진 포구, 죽녹원, 독립기념관, 문탠로드, 지리산, 연평도, 낙안읍성, 함양 상림공원, 불회사, 양평 수종사, 선운사, 양산 통도사, 철마 연밭, 화순 운주사, 함안 가야읍, 경주 남산, 일출이 보이는 서해 왜목마을, 수목원, 금정산성, 기장 대변항, 문경 새재 등이다. 해외로는 티벳 시가체, 중국 용문산과 향산, 홍석협곡, 운대산, 로카찬타 파고다, 차욱타지 와불, 테카포 호수, 뉴질랜드 거울호수, 미얀마 정원, 달라섬, 밀포드 사운드, 미얀마 차이나 타운, 인도 바라나시, 노산, 인도 갠지스 강, 오키나와,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 로렐라이 언덕, 몽고초원, 내몽고 들판, 타브럼 사원, 두보초당 등등 이 밖에도 시로 씌여지지 않은 숱한 장소와 타국들이 더 있을 것이다.
그는 죽어 땅에 묻히지 않고
비디오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레이저 광선은
보는 이의 영혼을 씻어주고
비디오 조각 모음의 형태는
우리의 마음을
한 곳으로 쏠리게 한다
예술가는 세상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변화 시키는
위대한 바람이며
위대한 태풍이다.
「화가 백남준」전문
예술가들에 대한 섭렵은 또 한 편으로의 여행이다. 어쩌면 예술가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인의 삶에서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서는 것도 그 예술가의 기질을 섭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이 시집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을 살펴본다면 아방가르드 예술인들, 백남준, 화가 헨리 밀러, 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예술인들, 화가 달리, 시인 괴테, 화가 세라핀, 철학자 헤겔, 야스퍼스, 청마 유치환, 화가 전혁림, 소설가 박경리, 화가 모네, 시인 두보, 지휘자 캬라얀, 소설가 심훈 등이다. 여행에서 만난 예술가들일 수도 있고 스스로의 요구에 의해 찾아간 예술인일수도 있다. 그들은 방황하는 영혼을 소유한 예술가들이다. 백 시인도 그들의 예술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닮고자하는 욕구를 지닌 것은 아닐까.
백 시인은 시인이기 전에 화가다.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직종이 그림이기 때문에 화가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그는 동양화를 그린다. 대상이 화폭에 선명하게 담기는 산수화를 주로 그린다. 추상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다. 그의 그림처럼 시도 선명한 형태를 보여 준다. 안개로 감추거나 여백으로 남기거나 하는 일 없이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가식이 있을 수 없다. 시원스러운 비유이기에 고민할 필요없이 읽혀지는 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마음의 풍경으로
우주를 담는 화가는
자신의 시야로
붓 끝에 꿈을 묻힌다
차분하게 착색된 캔버스
섬세하고 치밀한 채색묘사는
화면을 꿈으로 가득 메우고
순도 높은 완성도로 이끈다
영혼이 숨겨진 그림
갤러리에 전시된 한 점의 풍경화는
어느새 가슴에 들어 와
맑은 하늘이 되어 있다.
「그림 한 점」전문
자신이 그려내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시다. 나는 그렇게 늘 말했다. ‘그림은 색채와 형상으로 그려낸 시이며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는 말을 가감없이 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가장 신봉하는 시작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미지를 애매한 관념어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념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언어로 형상화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에서 순도 높은 완성도에 이르려면 섬세하고 치밀한 채색묘사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그림도 자신의 시야가 중요시 되는 것처럼 곧 시에 대한 생각도 이러하리라. 가슴에 들어와 맑은 하늘이 되는 그림이 되어야 완성도 높은 그림이라는 의미다. 그것은 곧 감동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그림은 영혼이 숨겨져 있지 않는 그림이다. 자신의 영혼을 담아야 독자들 영혼에 감동을 줄 수 있다. 시도 그렇다. 예술은 궁극적 목적이 동일하다. 미를 통해서 삶의 본질에 닿을 수 있는 것, 시로 말하면 언어를 통해서 전달하는 세계관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그 감동이 주는 세계를 통해 행복감을 전하는 예술이 시인 것이다. 백 시인도 아래 시에서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詩는 무지개 타고 하늘을 너머
가슴에 내려앉는다
힘들게 힘들게
반짝이는 언어를 찾아서
마음에 들게 줄을 세워본다
때로는 슬프기도 하고
때로는 기쁘기도 했던 詩들이 모여
하늘을 적시고
오늘을 가슴에 적신다.
「시를 다듬다」 전문
가슴에 내려앉고 가슴을 적시는 시야 말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다. 그의 시는 하늘을 넘어 무지개 타고 온 반짝이는 언어로 마음에 들게 줄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기쁨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갖기도 한 그 시편들은 하늘을 감동 시키고 독자들의 가슴을 감동 시킨다. 그것이 시다. 하늘과 사람을 감동 시키는 것, 그러기에 상식으로는 감동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시는 상식 이상이어야 하고 낯선 것이어야 한다. 낯익은 것들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여행을 하여 새로운 풍경에 열광하는 것도 그 풍경들이 지금껏 보지 않았던 낯선 풍경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화석이 된 그대
칠백 년 깊은 잠에 들었다가
함안 옛 이름 아라가야
박물관 앞 연못에서 깨어났다
연꽃이 씨앗에 꽃을 피워
화려한 자태로 얼굴 붉히고 있다
고려 여인이 시공을 넘어
홍련으로 태어나
이십일 세기 햇빛을 살고 있다
여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우울하여
이제 다시 태어났는가
펼친 치마폭에 옥구슬 올려놓고
하늬바람에도 쉬이 흔들리며
눈 뜬 봄빛을 즐기고 섰다.
「아라가야 연꽃」전문
칠백년 된 씨앗이 발견되어 심었더니 연꽃이 피었다. 오래된 씨앗이 연꽃으로 피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랍고 흥분했다. 칠백년 전이면 고려 시대다. 그때 씨앗이 잠에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경이롭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엄연한 현실 속 사실이다. 시인은 새롭게 피어난 연을 그때 살았던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시대적 우울과 연관시켜 표출하였다. 여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우울한 고려 시대 그리하여 잠에 들었다가 환생하여 다시 이 시대에 연꽃이 되는 여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존재일 수 있다. 700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는 씨앗, 치열함이 극에 달하지 않은 것인가. 칠백년 전의 씨앗이 꽃을 피우는 것이 시다. 그것은 치열함이다. 백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치열함을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여행 중에 느꼈던 혹은 찾아낸 ‘가난’이 내포한 치열성을 독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처럼 어떤 메시지 전달을 통해 느꼈
던 세상의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발견으로 끝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인이 사라진 관찰자적 시점밖에 남지 않는다. 예술은 치열함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획득할 수 있다. 예술은 재현이 아닌 새로움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때 그 새로움을 얻어내지 못하면 예술일 수가 없다. 결국 그림그리기와 시쓰기는 같은 것이다. 안이함 속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또 다른 세계-유토피아를 꿈꾼다. 한 편의 좋은 시가 주는 행복감 그것은 바로 다른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백 시인이 숱한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새로운 창조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백 시인이 ‘아라가야 연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시각이 앞으로의 시에 희망을 갖게 해준다.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새롭게 다가 설 치열함을 위해 가슴앓이하는 시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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