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군의 옛 군지에 안견이 지곡인이란 기록이 있어 당대의 화가인 안견선생의 작품을 전시하고 예술혼을 계승하고자 안견기념관을 짓게 되었다.
경위(전개 또는 발전과정)
우리나라 3대 화가중 한 분인 안견선생은 조선시대 세종대왕때부터 세조제위시기에 이르기까지 화원으로 활약하였으며 '몽유도원도', '적벽도' 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유명함에 비해 안견의 일생을 고증할 자료가 없어 1400년대에 출생하여 1460-1470년 사이에 타게한 것으로만 추정되었다. 그러던 중 1619년 광해군 11년에 서산의 지방지인 호산록에 안견의 출생지가 서산군 지곡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산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서산시에서는 안견선생을 기리기 위해 4천 7백만원을 들여 지곡면에 몽유도원도를 실측크기로 조각한 기념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화의 창출자인 안견의 자연애호사상을 현창하고 미술학도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승화시킴은 물론 국민 정서순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안견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안견기념관은 1990년 10월에 착공하여 1년 뒤인 1991년에 완공하여 개관식을 가졌다. 전시관에는 안견선생의 유작모사품이 18여점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1996년과 1999년 2회에 걸쳐 '안견미술대전'을 개최하여 지역출신 선현 및 향토출향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안견"
본관 지곡(池谷). 자 가도(可度)·득수(得守). 호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화원 출신으로 도화원(圖畵院)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까지 지냈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을 가까이 섬겼으며, 1447년(세종 29) 그를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를 그리고 이듬해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그렸다.
북송(北宋) 때의 화가 곽희(郭熙)의 화풍을 바탕으로 여러 화가의 장점을 절충, 많은 명작을 남겼는데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사군자·의장도 등에도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일본의 수묵산수화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칭작품(傳稱作品)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적벽도(赤壁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