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정기구독하는 '한겨레 21'(1063호)에서 재밌는 글을 하나 읽었다. 소설가 한창훈이 쓴 <거북손에게 정말 미안하다>라는 칼럼인데 분량이 많아 일부만 옮긴다.
(.......)일전에 쇠비름의 효능이 방송에 나온 모양이다. 이거 흔한 풀이다. 시골에서는 흔하고 별 소용 없는 풀을 싸잡아 지심이라고 한다. ‘지심매러 간다’ 하면 밭에 풀 뽑으러 간다는 소리다. 쇠비름은 지심이다. 그런데 좋다고 하자 잔뜩 뜯어먹고 응급실에 실려 간 사람도 있었단다. 쪽팔리는 짓도 참 가지가지다.
그래서 우리끼리 말하곤 한다. 여름 수온이 올라가면 해파리가 잔뜩 불어난다. 어민들이 이놈들 때문에 죽어난다. 해파리 없애는 방법은? TV에서 몸이 이롭다고 한 번만 나오면 된다. 적조 현상도 마찬가지다. 적조 바닷물을 조금씩 장복하면 만병이 사라지고 항암 효과까지 있다고 방송 타면 된다. 그러면 바닷물이 아주 맑아질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불안한, 이른바 센터 콤플렉스. 예전에는 이런 거 종교가 했다. 메시아가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들어 말씀 듣고 전했으며 그의 지시대로 동으로 가고 서로도 갔다. 경전을 얻어와 베끼기도 했다.
지금은 새로운 신이 등장한 시대다. 이름 하여 怠來卑電(태래비전). 사람들은 그 분이 말씀하시는 뉴스를 곧이곧대로 믿고 뭐가 몸에 좋다고 강설하면 우르르 달려가 아작을 내버린다. 그래서 거실 벽 중앙에 테래비전님을 모셔놓고 제사까지 그분께 지내는 것이다. 심지어 저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그분을 통해 남들이 노는 것을 구경한다.
신(神)은 터미널 앞 식당 메뉴처럼 많을수록 좋다고 칠조 박상륭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 있다. 인도에서는 신의 수가 자그마치 10억 명이나 된단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의 새로운 신도 갈수록 늘어 버튼만 누르면 새로운 존재들이 나와 가르침을 전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먹을 것 관련이다. 이 채널에서 성인병 예방을 위해 과식을 금하고 운동하라는 말씀을 전하시는데 그다음 체널에서는 이것 먹어봐라, 저것은 더 맛있다, 설파한다. 이른바 먹방이다. 언젠가 음식 관련 채널이 너무 많은 것을 한탄하자 모 방송국 피디가 이렇게 대답했다. “먹는 거 하면 기본 시청률은 나오거든요”
검증되지 않은 과도한 정보에 의한 쏠림현상. 이거 어떡할 것인가. 한 철학자는 100년 뒤엔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바 있다. 킹 크림슨이라는 팝가수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끔찍한 친구일 뿐이야.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모든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달려 있게 되지.”
유명 음식점에 길게 줄 서 있는 모습, 흥행 1위 영화는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 노는 것 구경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따라 하는 족속들, 한 가지에서만 정보를 얻는 무지. 이게 바보 아니고 뭔가.
창의성은 고사하고 스스로 판단도 못한다면 국가와 사회가 통제하기 장 좋은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미디어에 의해 사육당하고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존재들. 엊그제 테레비보니 바닷가 거북손이 좋다고 나오던데, 그나저나 이번 여름 피서철에 다 먹어 조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