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회 산행일지 : 호남 삼신산과 고창읍성
(전북 고창군 방장산)
일시 : 2008년 3월 8(토)
날씨 : 맑고 포근한 봄날씨
북으로 가면 아직은 눈과 겨울을 볼 것이고 남으로 가면 아직은 이르지만 그래도 봄기운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100명산 중 남쪽 방면의 산이 몇 남지 않아 앞으로 올 봄들에 대비해 남겨두어야 하지만 겨울산보다는 봄산이 좋기는 하여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이라는 방장산으로 정하고 길이 멀 것을 우려해 30분 이른 시간으로 통문을 돌렸다.
66회 산행으로 2월 26일 황매산을 다녀온 지 2주일 만이지만 새롭다. 8시가 못되어 다들 화원IC에 모였다. 전북 고창군 신림면 방장산을 입력하니 233.9km라고 알려준다.
9시, 벌써 지리산 휴게소이다. 몇 대의 버스가 사람들을 부리고 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들고 오던 길을 재촉한다.
애초의 예정은 담양에서 내려 국도로 가려했는데 담양에 이르니 10번 남해고속도로에서부터 연결되는 고창담양간 14번 새고속도로가 말끔하다.
전북과 전남 다시 전북을 지나며 길이 시원한데 더욱 고마운 것은 장성에 이르니 여기서 끝나지 않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만나는 고창JC까지 길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네비도 아직 모르는 길이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이제 서해안에 이르는 것이 일도 아니다. 지난 3월 1일, 교회에서 태안군 기름 유출사고 현장에 봉사활동 차 다녀올 때에는 올림픽고속도-함양에서 대진고속국도-장수에서 익산간 고속국도-군산까지 국도를 거쳐-서해안 고속국도를 타고 홍성에서 내려 태안에 이르는 길을 택했다는데 아마도 오늘 이 길로 간다면 약 한 시간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창IC까지 통행료 6,200원에 2시간 30분에 도착하고 보니 생각 외로 시간적 여유가 많다.
10시 40분, 산행의 들머리인 신평리 입전마을회관 앞에 주차하였다. 마을 우물 옆에 위치한 마을회관의 준공 기념비에는 방장산과 이 마을에 대한 짧은 설명을 담고 있다.
사실 총무는 산너머의 전남 장성군 북이면의 방장산 자연휴양림에서 방장산을 올랐다가 벽오봉을 거쳐 양고살재로 하산하는 길을 예정하고 왔었다. 원래 방장산을 종주하려면 1번국도변의 장성갈재에서 시작하여 쓰리봉-방장산-고창고개-벽오봉-양고살재에 이르는 10.4km 거리의 코스를 택하여야 하지만 원점회귀형 산행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아무튼 오늘은 내가 준비한 신평리-용추교-능선안부-봉수대-정상-고창고개-용추교의 10.1km 코스로 정하였다.
시멘트 길이던, 농로이던 걱정하지말고 산쪽의 계곡을 향하는 방향으로 오르면 10여분 정도면 용추교를 만나는데 산행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시멘트 길의 경사가 은근히 높아지고 산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좌측 언덕 위에 갈색과 황토색의 세 칸 짜리 한 채만 덩그런 관음사이다. 예까지만 올라와도 마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입구에서부터 백구 한 마리가 산의 품에 들어선 후에도 한참동안 우릴 뒤따르다 돌아갔다.
고로쇠 수액 채취통이 여럿 있다. 매번 이맘 때 보는 모습이지만 매번 마음이 아프다. 오르막이 상구 거칠다. 20여분 정도 숨이 막혀올 듯 급경사다. 쉬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안부와 맞닿은 푸른 하늘이 저만치 앞서 있기에 기어이 참고 올랐다. 여러 사람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이 약속이나 한 듯 배낭을 내려놓는다. 아마도 오늘의 산행 중 가장 힘든 구간이 될 성 싶었다.
사과를 먹고 다시 추스려 우측의 조릿대가 양쪽으로 무성한 능선길로 접어든다.
좌부승지를 지냈다는 경주김씨의 묘가 제법 크다. 북쪽사면이라서 잔설이 아직은 많고 낙엽아래에는 얼음이 제법 숨어 있어 미끄럽다.
능선길이 점차 경사를 더하면서 눈이 많아진다. 20여분 진행 후 다시 휴식, 곧 정상 능선이다.
용추폭포 1.8km라는 이정표가 있고 바로 앞이 정상으로 보이나 이곳이 봉수대이다. 그러나 올라서보면 봉수대는 없고 돌로 쌓은 석축의 형태만 부분적으로 남아있을 뿐 너른 헬기장이다. 다소 섭섭하기도 하지만 바로 앞의 정상과 거의 높이가 수평으로 보이는 이곳에서의 전망은 참 좋다.
고창 방향의 너른 들판과 장성갈재에서 이곳을 지나 양고살재에 이르는 주능선이 가로막은 건너편의 산들이 대조를 이루고 있고 잔설로 덥혀 있는 북쪽 사면과 볕을 가득 받고 있는 남쪽 사면의 색감도 대조적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푸른 저수지, 그리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의 모습들도 보기에 좋다. 이곳에서 전을 펼칠까 하는데 정상쪽에서 두어 팀이 이쪽으로 오고 있기에 정상을 향하다가 바위를 돌아 남으로는 확 트이고 북으로는 바위가 가리는, 볕이 백퍼센트 쏟아지는 그리고 안성마춤의 천연식탁이 차려진, 점심자리 치고는 최고인 곳에 전을 폈다. 2주전 황매산에서 겨울바람을 실컷 맞았는데 오늘은 바람마저 훈훈하다.
방등산이라고도 하는 방장산 정상(743m)에 서니 13:30분, 정상을 알리는 스텐레스 이정표의 글씨들이 많이 지워져있다. 산행안내도에는 우리가 오른 길과 내려설 용추계곡에는 등산로 표시가 아예 없고 양고살재에서 방장사, 벽오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길과 자연휴양림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아마도 방장산의 주등산로는 그쪽인가 보다.
금도현이 뽑아든 시그널은 ‘산미인’으로 그 옆에 ‘산에 미친 인간들’이라고 쓰여 있다. 김생곤 장인께서 우리더러 ‘등산을 고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등산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갈파하셨다던 일이 떠오른다. 산미인도 좋지만 역시 등고선보다는 한수아래인 것 같다.
한참이나 내려섰는데 삼거리에서 만난 이정표에는 정상 0.4km, 용추계곡(신림) 3.0km라고 쓰고 있다. 우측의 용추계곡으로 내려서면 눈길이 제법 미끄럽다. 20여분 정도를 내려오면 곧 좌측으로 용추계곡을 만나는데 길이 편안하여 마치 응봉산의 덕구온천길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탁족이다. 얼음같은 찬물에 발 담그기는 역시 김생곤을 따라갈 멤버가 없다. 난 잠시만 있어도 고통스러운데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린다. 물속에는 낙엽을 둘둘감아 마치 나뭇가지 조각같은 애벌레들이 여럿이 보인다.
거의 하산이 끝날 무렵 속이 빈 큰 나무 안에는 컵에 담긴 초, 막걸리, 오렌지 등이 어지럽다. 주변에도 쓰레기 천지여서 오랜만에 큰 비닐백을 들고 주변을 청소한다. 3시 30분, 하산완료.
석정온천은 주변의 유명 관광지로 여러 군데 소개되어 있기에 찾았으나 공사중이다. 늦기 전에 고창읍성에 들었다. 단종 때 세웠다는 둘레 약 1.7km의 성곽은 폭이 2미터 정도나 되어 산책에 아주 좋아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돌며 무병과 극락을 바란다는 답성놀이를 하는 곳도 성곽 위의 이 길이다.
읍성은 성문이 있는 곳에는 둥글게 앞으로 돌출되어 방비가 튼실해 보이는 독특한 구조이며 세월의 흔적이 머문 돌담의 선형미도 눈길을 끈다.
서문에서 성안으로 들어와 객사를 지나 동헌에 이르니 가운데가 썩어서 사이가 벌어진 두 그루로 보이는 한 그루의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굳건한 생명력으로 살아있어 이채롭다. 그리고 동헌의 사랑채에서는 밀납 선비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고 그 곁에는 학날개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멋진 소나무가 사관처럼 자리하고 있다.
언덕을 올라 맹종죽 대숲으로 들어선다.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고 어두워지는 분위기가 약간은 전설스럽지만 잘 뻗은 기개와 푸르름이 참 좋다.
‘책읽기는 내게 버릴 수 없는 취향이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고, 벗어나기 힘든 중독이’라던 장석주의 독후감 모음집인 ‘만보객 책속을 거닐다(2007, 예담)’에서 저자는 경기도 안성으로 ‘거처를 옮긴 뒤 꼭 이루고자 했던 것 세 가지’ 중 하나가 ‘집주변에 대나무를 심는 것이’었다며 대나무에 관한 얘기들과 이어령의 ‘대나무(2006, 종이나라)를 소개하고 있다.
소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로서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아 선비들이 이를 보고 행실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오늘 본 이곳의 대나무는 정말 푸르고 곧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늘한 대숲이 마냥 신기하고 좋아 이리저리 사진도 찍어보고 숨도 크게 들이켜 본다. 다만 대나무 몸통에 깊게 새겨진 장삼이사의 이름과 그들의 방문내역들에 마음이 아프다. 한참이나 앉았다가 읍성을 돌아 나와 시내 사우나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카운터에 물어 식사를 마치고는 자연휴양림을 지나는 국도를 경유하여 장성, 88고속도로를 좇아 집으로 돌아오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