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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야베스의 기도가 있습니다.
기독교서점마다 성구와 나무액자로 제작되어 진열되어 있고 많은 분들이 이를 집집마다 또는 사업장마다 축복의 기도의 좋은 모델인 것처럼 경쟁적으로 걸어 놓고 있습니다.
분명 성경에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에서 뭔가 우리가 배울점이 있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야베스가 기도한 내용처럼 기도해야 한다거나 야베스의 기도를 집 안밖으로, 또는 사업장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의 공적예배에서 훌륭한 기도의 모델공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점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야베스의 기도는 이해하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질수 있고, 현대의 개신교회내에서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기복신앙'에 대한 성경적 근거처럼 잘못 인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위해 한번 자세히 성경말씀을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아래의 성경들을 잘 고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글개역성경)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KJV영어성경)
'And Jabez called on the God of Israel, saying, Oh that thou wouldest bless me indeed, and enlarge my coast, and that thine hand might be with me, and that thou wouldest keep [me] from evil, that it may not grieve me! And God granted him that which he requested.'(대상4:10)
(번역:'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원하건대 주께서 참으로 내게 복을 주사 내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주께서 나를 악에서 지키시며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그에게 주셨더라.')
이제 2가지 측면에서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오해부분입니다.
(1)야베스의 기도는 성경에 있으므로 성경적인가?
야베스의 기도가 단순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자체로 성경적이라고 할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알다시피 마귀가 한 말에 대한 기록도 있고 우상숭배에 대한 기록들도 모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마귀를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앞에 가증스런 것으로 주님의 뜻이라고 결코 볼수 없습니다.
야베스의 기도가 그토록 좋은 기도의 모델이라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9절에서처럼 '너희는 야베스처럼 기도하라'라고 한번쯤은 말씀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야베스의 기도의 문구가 차지한 자리에 예수님의 기도의 표본인 주기도문을 기록해 두시는 것이 어떨까요?
(2)야베스처럼 기도하면 존귀하게 되는가?
"가난하고 고통받던 야베스가 야베스의 기도를 드린후에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역대기상4장10절에 야베스의 기도가 나오기 전인 4장9절을 잘 살펴보면 이미 그는 명예롭고 존귀한 자였습니다.(Jabez was more honourable.)
'And Jabez was more honourable than his brethren: and his mother called his name Jabez, saying, Because I bare him with sorrow.'(대상4:9)
(번역:'야베스는 자기 형제들보다 더 존귀한 자더라. 그의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 하며 이르기를, 내가 고통을 겪으며 그를 낳았다, 하였더라.')
결국, 야베스가 이 기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존귀케 된 것이 아니라, 자기 형제들보다 더 존귀한 자이였던 야베스가 그런 기도를 드린 것인데 사람들이 순서를 혼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3)그래도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으니 그것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결과를 보고 , 야베스의 기도를 좋은 기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말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마치 자기가 물을 주는 것처럼 반석을 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물을 솟아나게 한 것은 모세가 사용한 방법에 있지 않습니다. 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면 주는 겁니다.
'모세와 아론이 반석 앞으로 회중을 함께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반역자들아, 이제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야만 하랴? 하고 손을 들어 그 막대기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크게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민20:10-11절)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 달려있지 야베스의 기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를 면밀히
분석하여 야베스가 무엇을 구했나, 어떻게 기도했나를 연구하고 관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기도가 주의 뜻에 맞는지를, 여러곳의 성경말씀을 통해서 베뢰아출신의 이름모를 성도처럼 신사적으로 살펴보고 상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크게 탐욕을 부려 하나님을 매번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하는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혼을 야위케 하는 것을 보내셨습니다.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기도가 올바르고 좋다고 보는 것은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십시다.
응답되었다고 보실 만한 때에 오히려 주님의 뜻을 바르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But lusted exceedingly in the wilderness, and tempted God in the desert. And he gave them their request; but sent leanness into their soul.'(시106:14-15)
(번역:'광야에서 크게 탐욕을 부리고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그분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시되 그들의 혼에게 야위게 하는 것을 보내셨도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구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 졌다고 해서 그 기도가 모두 다 좋은 기도라고 보는 것은 성경의 관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에 대한 이해부분입니다.
(1)주께서 참으로 내게 복을 주사
개역성경에는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바라크'가 두번 연속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서 우리가 받아 들이기에 복을 강조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문법에 같은 단어를 연속으로 두번 사용하는 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져 있고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될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만큼 중요한 복이 있을까요?
물론 건강의 복이나, 재물의 복, 사업이 잘되는 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복을 실컷 누리다가 결국에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면 그런 복들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주께 복을 구하는 기도라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복적인 신앙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야베스가 구한 복은 어떤 것들이였는지 잘 살펴보시고 좋은 점은 본 받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본받지 말아야 함을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2)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야베스는 주님께 자신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했습니다. 지경(coast)이란 땅의 경계를 말하며 이것은 경계를 나타내는 지계표(landmark)에 의해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스라엘의 토지법'에 의하면 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땅을 영원히 팔수 없었습니다.
'땅을 영원히 팔 수 없나니 땅은 내 것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나와 함께 머무는 자니라.'(레25:23)
'자기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할 것이요, 온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17)
야베스에게는 이미 물려받은 땅이 있었고, 기도하기전부터 이미 그는 자신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이였습니다.
만약 그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여 각 지파별로, 각 가족별로 상속재산이 정해진 이후의 사람이라면 이런 기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위의 신27:17절의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사람들 중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않고는 그의 지경을 넓힐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가 등장하는 대상4:10절 이후에 나오는 아래의 두 성경구절에서 갈렙의 아들들과 사사기에 처음 등장하는 사사 옷니엘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야베스는 아직 가나안정복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대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나스의 아들들은 옷니엘과 스라야요, 옷니엘의 아들들은 하닷이더라.'(대상4:13)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아들들은 이루와 엘라와 나암이요, 엘라의 아들들은 곧 그나스더라.'(대상4:15)
이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여 그 땅에 거인족속이나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여부스 족속만 하더라도 다윗 왕 시대가 되어서야 정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요셉자손들에게 거인족속을 몰아내고, 철병거를 가진 가나인 족속을 쫓아내어 그들의 영토를 더 넓히라고 합니다.(수17:15-18)
갈렙 역시 헤브론 산지를 자기에게 주면 아낙자손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습니다.(수14:12-14)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네가 큰 백성이므로 에브라임 산이 네게 너무 좁을진대 나무가 많은 지역으로 올라가 브리스 족속과 거인들의 땅에서 너를 위하여 나무를 베어 내라, 하니'(수17:15)
'그러므로 이제 그 날 {주}께서 말씀하신 이 산을 내게(=갈렙에게) 주소서. 거기에 아낙 족속이 있었으며 그 도시들이 크고 성벽으로 둘린 것을 당신도 그 날 들으셨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매'(수14:12)
만약 야베스가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위 갈렙이나 옷니엘등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는 그의 기도는 동족의 땅을 빼앗아서 자기가 차지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 산을 내게 주소서'라고 구한 갈렙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참고로 하여 큰 꿈을 품고 자신이 행하고 있는 사역의 범위나 활동영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기도를 드릴때에는 먼저 그것이 가)나의 야망이나 나의 사역의 세상적인 성공을 위한 것인지, 나)아니면 주님을 위하여 마귀의 세력(예:가나안족속...)을 몰아내고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인지 잘 분별하여 올바르고 선한 동기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
개역성경은 이 부분을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사'의 잘못된 번역으로 그 의미가 매우 다릅니다.
은연중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려는 일방적인 생각이 들어있는 것처럼 들리는 표현방식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길에 동행하면 자연히 주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그분의 손이 우리에게 선하게 임하십니다.
에녹은 그렇게 주와 함께 걸었고(창5:24),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그가 형통하게 되었으며(창39:2),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사 그를 창대하게 하셨으며(대상11:9),
느헤미야 역시 주님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느2:8,18)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아니하고서야 함께 걸을 수 있겠느냐?'(암3:3)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더 이상 있지 아니하더라.'(창5:24)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더라.'(창39:2)
'만군의 {주}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으므로 이처럼 그가 점점 더 창대하게 되었더라.'(대상11:9)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편지를 내사 그가 그 집에 속한 궁궐의 문들과 그 도시의 성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짓기 위한 들보들을 만들도록 내게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위에 임한 내 [하나님]의 선한 손에 따라 왕이 내게 허락하니라.'(느2:8)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내 위에 선하게 임한 [하나님]의 손과 또 왕이 내게 하신 말씀을 고하였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이처럼 그들이 자기 손을 강하게 하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니라.'(느2:1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기도시, 기도자 자신이 주인공('주의 손이 나를 도우소서')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하시기를 구하였다') 곧 함께 하신분이신 주님의 주도권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나를 악에서 지키시며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부분을 개역성경에서는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아무런 환란도 겪지 않고 무사안일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을 거치거나 불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때 물, 불과 같은 고난을 면제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과 불을 통과해야 하지만 그런 때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강들을 건널 때에 강들이 네 위로 넘쳐흐르지 못하며 네가 불 속을 걸어갈 때에 타지도 아니하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위협하고 핍박했을때 사도들은 그런 위협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위협을 제거해 달라고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을 보시고 또 주의 종들이 전적으로 담대히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하시며'(행4:29)
사도바울 역시 제자들을 권면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난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며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행14:22)
성경에 의하면 야베스는 환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한 것이 아니라 악에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였다로 합니다.
이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마6장), 주께서 드린 기도(요17장)와도 일치합니다.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vil: For thine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men.'(KJV영어성경 마6:13)
(번역:'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I pray not that thou shouldest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hat thou shouldest keep them from the evil.(KJV영어성경 요17:15)
(번역:'나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기도하지 아니하며 다만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라고 기도하나이다.')
이상을 정리해 볼때
역대기상 4장10절의 '나를 악에서 지키시며'는 , 마태복음 6장13절의 '악에서 우리를 건지시옵소서'라는 기도와 요한복음17장15절의 '그들을 악에서 지켜주소서'라는 기도에 해당하며 이렇게 구하는 것은 주님의 뜻에 맞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 슬픔과 근심이 찾아 온 것은 죄 때문이므로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으로부터 보호받으면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부분도 자연히 이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야베스의 기도는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기를 구한 기도'이였지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환란을 벗어나서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고, 무사안일,만사형통하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야베스의 기도를 잘못 인용하여 개인의 안일과 태평을 구하는 이교도들?의 습관과도 같은 기복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편이 되어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는 무관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뜻대로 일방적으로 움직여 주신다'라는 식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신앙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인 것이라는 것이 성경적으로 분명해 진 만큼 우리는 이런 인본주의적인 사고에 기도할 때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한 의지에 따라서 야베스가 구하는 것을 주셨다고 했지 야베스의 기도가 훌륭하고 본이 되는 기도라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했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신 사실을 기록한 것일 뿐, 야베스의 기도에 무슨 신비한 효험이 있다거나, 야베스가 기도한 내용대로 기도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거나, 야베스의 기도를 그대로 따라서 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다시 되새겨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조글 출처: "바르게 읽는 성경"(저자:한마음침례교회 김문수목사)
첫댓글 야베스의 기도 제가 찬양으로 좋아하는 곡인데.. 이런 의미가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