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볜(延邊)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였다. 그곳 시인들 가운데 노랫말을 작사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 대표인 이상각 시인이 나를 초대하여 주었다. 함께 작사하자는 것이었다. 옌볜 자치주 정부에서 예산을 타다가 풍광 좋은 옌쯔(燕子)산장에서 5일 동안 침식을 하면서 자유롭게 작사를 하는가 하면, 가사를 가지고 토론에 붙여서 다듬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조탁 과정을 거쳐서 노랫말이 완성되면, 그 다음으로는 작곡가들이 그 가사를 가지고 5일 동안 침식을 하면서 작곡하게 되고, 작곡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에는 가수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숲속에는 수많은 반딧불이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딧불이들은 한국의 것보다 작았지만, 촉광은 전깃불처럼 밝았다. 중국의 깊은 산중의 숲속에서 깊은 밤에 바라보는 반딧불이는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었다.
문득, 일본 영화 '호다루가와(螢川)'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장호강 장군 시인과 함께 이곳 만주 벌판에서 광복군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문상명 시인이 영화진흥공사에 있을 때 시사회에서 본 작품이었다. 한말에 의병으로 투쟁하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던 문석택 선생의 차남으로 출생한 문상명 시인은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제3지대원으로 일본군의 점령지인 허난성 카이펑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광복 후 귀국하여 6.25 때 참전한 분이다.
그 영화에서는 고향 얘기가 나오는데, 반딧불이가 마치 시냇물 흐르듯 그렇게 반짝이는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나의 뇌세포에는 알전등이 켜지고, 창조적 상상력은 노랫말을 향하여 분해와 결합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반딧불 냇물이 흐르네'라는 제목의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산천은 고요히 잠이 들고 /만월은 하늘에 떠서 가는데 /오작교 밑으로 반딧불이 흐르네 /아아 아아 하늘에는 별무리 /땅에는 반딧불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1절)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첫사랑 빛나는 눈동자처럼 /티없이 맑은 물 반딧불 냇물 /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어라 /아아 아아 하늘에는 별무리 /땅에는 반딧불 반딧불이 냇물처럼 흘러내리네
이 가사는 최연숙 작곡, 박경숙 노래로 방송되었고, 녹음띠(카세트 테이프)로 만들어져서 귀국할 때 가져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