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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 선교 ♡
 
 
 
카페 게시글
________말씀 나눔 스크랩 어 성경이 읽어지네 8
이루리 추천 0 조회 28 10.04.11 00: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7과  신약속으로 오신 “왕”- 예수님

P203

1. 간추린 신약 목록


이제 드디어 신약으로 들어왔습니다. 신약의 배경이 되는 400년동안의 중간기 역사를 대강 정리하고. 이제 우리는 신약의 무대가 되는 로마에 발 딛고 있습니다. 신약 읽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신약의 27권 목록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신약을 읽어 내려갈지 관점도 찾아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 구약 읽기를 공부할 때 39권 목록 하나하나를 간단히 정리하고 나서 읽는 방법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목록도 하나하나 간단하게나마 살펴봅시다. 물론 주석성경이나. 요즈음 나오는성경책에는 간단한 각 권 설명이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잘 참고 하시고 이것도 잘 읽어 보십시오


마태복음

예수님의 제자 세리 마태가 세무 공무원답게 꼼꼼하게 메모를 많이 해 두었던 자료를 바탕으로 기록했다고 봅니다. 구약에서 말라기로 끝난 이야기를 이 마태복음에 붙여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구약적 배경을 갖고 쓴 예수님의 생애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신약성경의 시작이다’ 하는 ‘성경책’이라는 생각을 갖고 읽어오던 관점과 함께. 한 세금쟁이(?)였던 사람이 어떻게 예수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을 결국 어떻게 이해하고 썼나.. 하는 ‘한 사람의 일생’ 을 투영해 보는 시각으로도 이 마태복음을 읽읍시다. 특히 산상수훈이나 예수님의 비유등 수 많은 설교와 교훈들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은 그가 그 내용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깊이 소화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받아 적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목사님의 설교를 수천 번 들으신 분 도 계실 것입니다. 몇 편이나 그 내용을 요약해서 이 마태처럼 요점 정리하실 수 있으시겠습니 까? 아마 깊이 깨달은 말씀이 있다면 여러분의 표현으로다시 기록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태뿐만 아니라 다른 신약의 책들을 읽어보십시오. A.D. 63-67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며,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의 예수님복음은 제일 짧습니다. 그는 요한(행 13 :5. 13)으로도 불리워졌습니다. 바나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했던 그 마가입니다. 베드로에게서 들어서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했다고 해서 베드로복음이라고 말하는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승천 후 갈릴리에 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모인 장소가 마가의 집이였던 것으로보아, 일찍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도 그곳에 통상모이곤 하셨던게 분명하므로, 그도 예수님을 만나 보았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였겠지만 그의 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큰 다락방이 있었으니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도 그의 선교초기(행13:5)와 후기(딤후4 :11)까지도 마가와 관계했습니다. 이 와 같이 마가 요한은 베드로와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를 이루고, 또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 이레네오는 베드로가 헬리어를 못하니까 마가가 통역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이후에도 쓰임 받다가 성경까지 기록합니다. A.D. 55 -65년에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누가복음

유일한 이방인 성경기록자로서, 사도행전을 쓴 의사 누가입니다. 그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골4 :14)라고 불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으면 호홉이 맞습니다. 마태는 경험한 예수를 썼고. 마가는 베드로에게서 직접 들어서 썼고,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사도들에게서 듣고, 연구해서 쓴 것 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과 가장근접한 타입의 성도라서 친근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보지도 못했고. 우리같이 다른나라 사람이고. 자료를 통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피고 조사해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복음서를 썼기 때문입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격치를 제외하고는 의사누가나 우리나 예수를 믿는 방법은 같습니다. 누가 자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주님의 관심을 특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저술 연대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바울의 투옥생활이 끝나던 A.D. 63년 이전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입니다. 어부 출신이었는데도 학자 출신 바울 못지 않게 지적인 통찰력과 심오한 철학적 센스가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일차 소화해서 깊은 해석까지 겸하여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요한이 이 복음서를 기록할 당시는 공관복음이라 일컫는 위의 세 복음서들이 회람으로 돌아다니던 때였으므로 요한은 가급적 이 세 복음서에 없는 내용을 기록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 복음서끼리는 거의 같은 내 용들을 기록한데 비해 요한복음은 90%가 이 세 복음서에 없는내용입니다. 이런 연유로 요한복음 은 다른 세 복음서 부류에 넣지 않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이 세 복음서만 공관 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말씀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요한 1,2,3서, 요한 계시록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요한은 자기 어머니 Mrs. 세베대까지 동원해서 예수 혁명정부가 들어서면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야망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즈음까지도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목적 중 하나가 그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 포로 시대 때 없어져서 지금까지 주권없이 떠도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한자리 하고 싶었던 명예욕도 있었겠지만. 애국적인 마음을 가지고 이 하나님 나라를 회복 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후, 또 마지막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그를 비롯한 많은 제자들이 이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구약에서 사라진 것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고 싶어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이 바로 이 요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쫓아 다니게 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까지 대동해서 ‘자리’ 를 청탁하자 모든 제자들이 다들고 일어나 분히 여긴 걸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 , 이 질문이 그들을 이끌어 간 엔진이었습니다. 그 당시 웬만한 남자들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면서 기도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 시대라는 정치. 종교, 사회 상황을 지나오면서 이렇게 좌충우돌하던 제자들이 결국 어떻게 이 .하나님의 나라’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는 주제)를 이해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눈여겨 보십시오. 요한은 요한대로, 베드로는 베드로대로 그들의 일생을 찬찬히 이런 관점에서 관찰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로마를 정복하면 그 나라가 임하리라고 기대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청탁도 했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 된 것을 은근히 좋아하며 뒷바라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십시오. 구약의 사건들을 영해하며 예수를 증명하는 요한의 그 필치를 보십시오. 잡히시기 전날 밤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신 내용들, 그 깊은 내용들을 기억해서 기록으로 남긴 것을 보십시오. 우뢰의 이들이라고 불리우던 그 강한 개성 (?)을 갖고 있던 사나이가 “사랑” 이라고 하는 개념을 정리해서 요한1,2,3서에 기록한 그 깊고 섬세한 인간 이해를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에 밧모섬 채석장에 끌려가 노동을 착취당하는 현장에서 받은 계시를 보십시오. 사람의 입으로 다 말하지 못할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결국 살아간 것입니다.

‘요한복음’ 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온 고정관념도 좋지만, 한 인간 요한이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갔는가 하는 그 과정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걷고 있는 ‘예수 믿어기는 노정’ 과 비교하며 요한복음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A.D. 85-95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 남아 있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베드로 중심) 과 그 교회가 세계로 흩어지는 선교의 과정 (바울중심)을 그린 역사서입니다. 4복음서가 증언적 성격의 책이라면 사도행전은 역사적인 기록이면서도 기행문적인 성격의 책입니다.
· 이 사도행전은 예수사건의 핵심부위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삶으로 관통한 사람들이 “영원 한 생명”을 소유하고 질주해 나가는 책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경험한 사람이 읽는 책입니다. 마치 그 옛날의 제자들과 같은 심정. 이 예수를 전하고 싶은 충동을 갖고 읽는 책입니다. 일단 복음서를 통과한 사람이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겁 많던 제자들 이 이렇게도 용감해져서 폭발적인 힘으로 ‘예수의 도’ 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신이 나는 사람 이 밤을 새워가며 읽을 수 있는 책 입니다. 만약 아직 복음서의 핵심인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깊이 공감하지 못한 이들이 읽는다면 사도행전은 너무나 재미없는 책입니다. 지루한 책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지명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입에서 지명들만 뱅뱅 돌다가 내용은 못 찾고 그만 성경을 덮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 성장, 확장. 그리고 바울의 세계선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누가는 바울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A.D. 63년 경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로마서

로마서는 성경 중의 성경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마틴 루터도 이 책을 읽고 종고개혁을 일으켰고. 어거스틴도 이 책을 읽고 회개했습니다. 정독해야 하며. 일생 동안 한번은 깊이 연구해야 할 책입니다. 바울 서신 중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복음을 설명한 논문성격의 책입니다.

제3차 전도여행 끝 무렵. 속썩이던 고린도교회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겨울을 기다리며 쓴 것이 로마서인데 겐그레아(고린도 지방)에 살고 있던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리워  로마로 전달된 책입니다 그 로마교회들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갈 계획으로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A.D.58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봅니다.


고린도전·후서

사도 바울의 속을 제일 썩인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입니다. 제2차 선교여행의 중심 사역지입니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사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교회인데 그 때문에 오늘날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 답을 제공해 주는 책이 되었습니다. 오고 오는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극적인 의미에서 쓰임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요?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있을 때 글로에 집 종으로부터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을 합니다(1 :11).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유럽지역 아가야의 고린도 도시 중심)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해 놓고도 여행(유럽지역 아가야의 고린도 도시 중심)때 세운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개척해 놓고 떠난 이후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3명의 대표단이 많은 질문을 가지고 에베소로 찾아옵니다(고전 16:17). 바울의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거지요(7:1). 그래서 그들이 질문 한 문제들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는 답변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 속에서 바울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에베소를 오순절 때까지는 계속 있을 것이고 그 후 에베소를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고 밝히고 있습니다(16:5-8).

그 뒤 바울은 그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더 씁니다(고린도후서가 아님) . 고린도전서를 쓴 그 장 소, 에베소에서. 왜냐하면 고린도전서를 받고 난 이후 또 고린도 교회에 위기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파당 문제, 은사 문제. 교회 내의 음행문제 등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 정도가 아니라 ‘바울 사도를 공격하는 문제’ 였습니다. 비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소위 ‘눈물로 쓴 편지’ 라고 불리우는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이 눈물의 편지를 전해 주려고 들고 간 사람이 디도였습니다(고후 2:1-11). 디도는 고린도에 가서 교회를 잘 평정하고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는데 이때는 이미 바울이 에베소 (고린도전서와 눈물의 편지 쓴 장소)를 떠난 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야 (유럽) 쪽으로 올라갔고, 디도도 고린도 (남유 럽)를 떠나 마케도니아(유럽)로 갑니다. 둘이 마케도니아지방에서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고란도 교회가 잘 회복되었고 바울을 진짜 사도로 믿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고후7:6이해. 이렇게 고린도전· 후서는 56-57년 경에 기록한 것 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인간 사도바울의 개인적 감정이나 생각이 풍부히 들어 있는 책이라서 인간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게 해줍니다 



갈라디아서

다메섹에서 개종한 바울 얘기는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후 그가 아라비아로 갔었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올라갔고, 그 후 3년 있다가 게바(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는 정 보는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한테 보내는 편지(갈 1 :17~18)에만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장 은바울이 1차선교여행을마친후예루살렘 총회(행 15 :2)에 올라가서 있었던일을말합니다. 이 런 예루살렘 총회 얘기도 이곳에서만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의 초창기 사역에 매우 밀접하게 연류되어 있다고 보여집니다(까· 이런 연유로 갈라디아서는 1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 총회 어간에 쓰여진 최초의 편지라고 보는 사람도 있음y).

말 그대로 갈라디아 지빙벼l 보낸 편지입니다. 이것은 이미 갈라디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빨리 바울이 전한 복음에 도전해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었습 니다. 유대주의자들이 문제였습니다. 바로 이 문제들을정리하는작업을예루살렘 총회에서 한것 입니다. 율법과복음의 관계, 성령에 대해서 다룹니다. 즉, 성령을 받은것이 할례로 대표되는율 법을지킴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은 것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주의지들의 심각한 공격이 구체적인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할례, 율법 등과 복음의 관계들이 다뤄지는 것입니다. A.D. 52년 정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비울의 로마 제1차 구금 중에 보낸 편지들로 봅니다. 사도행전 28장끝 부분에서 쓴것입니다.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은 체포되어 7에사랴(y 팔레스타인땅. 지 중해연안 항구도시로 대헤롯이 세운 로마식 도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해서 붙인 도시이 름y)에서 2년간 억류됩니다. 그 후 로마로 호송되어 그곳에서도 약 2년간 감금 생활을 합니다 (행 28:30). 그가죄수의 몸으로로마에 도착한시기는A.D. 61년 봄쯤으로 추정되는데 63년에 풀려나기까지 감금된 상태에서 쓴편지들이 바로 에베소서. 벌립보서, 골로새서입니다. 그러니까 약62-63년 사이에 쓰신 편지로 봅니다. 벌립보서를 조금 더 후에 썼다고 생각됩니다.


골로새는 에베소의 인접 도시인데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전도한 곳이 아닙니다. 에바브라에 의해 개척 된 것 같습니다(골 1 :27). 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이 중요 지도자 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이 두 통의 펀지는 주소가 같겠지요? 그런데 에베 소는 골로새랑 인 접한 도시지요? 그러니까 이 편지 세 통을 두기고(엠 6:21, 골 47)가 오네시모 와함께 틀고간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이었던 AD.52년 경에 고린도에서 기록한 편지 입니다. 당시 데상로니가는 인구가 많게는 약 5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항구 도시로서 번화한 곳 이었습니다. 유럽 (마게도니아 지방)의 도시입니다. 그래서 데미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덤후 4:10).

데살로니가휘는 전서가 기록된 이후에 뒤이어 쓰여진 것이 분명합니다. 전서에서는 데살로 니가 교회 내부가 별 분쟁없이 조용한 데 반해, 후서에서는 광신자들의 종말 도래설로 몹시 소란 스럽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광신적인 사장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사상이 교 회를 어지럽게 하기까지는 적어도 수개월이 걸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따라서 전서와 후서의 시 간 차이는 최소한 5-6개월은 된다고 보여집니다. 아마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지고 갔던 동역자가되돌아온후그러니까A.D. 52년경 말에 이 후서를썼을것입니다.


디모데전·후서,디도서

사도행전이 그의 감끔으로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바울이 그 후 순교했다고 생각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잡혀가서 2년 간 감금되었다가 (이 기간에 에베소 서, 골로새서. 벌레몬서 쓴것 기억나지요7) 풀려납니다(A.D. 62년경). 그후에 그는계속전도를 하는데 이 전도를 일반적으로4차전도여행이라고부르기도합니다. 바로이 때 기록된것이 디모 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소위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자인 디오데와 디도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서신입니다

그 후 바울은 제2차로 로마 감팩1 투옥됩니다.A.D.64년 로마의 대화재가 기독교인들의 소 행이라는누명을쓰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은심한벅해를받았습니다. 그와중에 바울도체포된것 입니다(A .D. 66-67). 디모데후서에는 이때의 상황이 매우 자세히 언급되고 있습니다(1 :15, 2:9.4:6-8...).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1차 구금 때와는 달리 제2차 구금 때는 매우 어려웠던 것 볼 때 tll:(_데후서는A.D. 68년 가을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는사도바울의 가장 마지 막편지입니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생활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디도는 사도행전에는 안 나오지만 사도 바울의 충성스런 조수로 선교활동 에 적극 침여한 사람입니다. 교회사에서는 디모데. 디도같은 사람들을 속사도(사도들의 뒤를 이 은사도)라고합니다.


빌레몬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한입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 네시.!Ð~ 주인집을 탈출뼈 로마로 가서 사도 바울을 만나 개종을 합니다. 그를 용서해 줄 것을 - 부탁하는 사도 바울의 인간미가 풍기는 면지입니다. 위에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 골로새서를 설명 할때 이 벌레몬서도 함께 다뤘습니다. 로마1차감금때 쓰여진 옥중서신 중하나입니다.


저자는 미상이라고 봅니다. 흑자는 사도 바울이라고 방l도 합니다 흔히 믿음을 설명하는 책 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예수님이 대제사2얀l심을 강조한 책입니다. 그런 접에서 유대인 그리 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임이 분명합니다.


야고보서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2:9)이 라고 불렀습니다.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활동했기 때문에 야고보서는 예루살렘에서 기록된 편지로 보여집니다.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처음에는 형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걱정하기도 하고. 또 형을 비꼬기도 했습니다. 형을 인간으로만 보았 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그 형을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가 왕인 것을 발견한 다음 그도 그 발에 입 맞추고 예수로 인한 새 이스라엘. 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충성합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바울의 신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2 :24: 롬 3:28), 따라서 이 야고보서는 최소 바울의 저술 연대인 A.D. 57년 이후에 쓴 것 같습니다. 야고보는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행실을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논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유포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

사도 베드로가 역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A.D. 65년 이후부터 본 격적으로 닥친 핍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베드로전·후서라는 한권의 책 이름으로 고정된 우리의 관념을 벗읍시다. 베드로가복음서에서 어떤 사람이었나 비교해 보며 한 유대 사나이가 물고기 잡아서 먹고 살다가 왕 예수를 만나 그가 하나님이셨다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가를 동시에 봅시다. 복음서에서의 베드로와 연결해 봅시다. 그런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 개념을 이해하고 그 성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하는 관점으로 읽어봅시다.

내 양을 치라 하신 유언의 말씀을 따라 어떻게 일평생 목양하는 삶을 살았는지 보십시다. 구약의 선지지들을 모델로 해서 ‘저렇게 살아야지’ 하기에는 구약이 너무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환경이 주어진 사도행전 이후의 삶의 내용들은 우리가 모델로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베드로... 다제자들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제자라는 말을 우리의 삶속에서 재소화 합시다. 요한이나 베드로의 한 일생 속에 투영된 예수사건이 우리의 삶 속에도 통과되어야 합니다. 고뇌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실수하기도 해야 합니다. 깨닫지도 못한채 열심히 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지나면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목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13절의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언급한 것 으로 보아A.D. 63-64년 경에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1, 2, 3서

요한은 에베소에서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약 A,D.90-96년경으로 봅니다. 그는 특히 사랑을 강조했는데 이 서신에서도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단들을 경계하라고 썼습니다. 당시 이단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한것으로 보는 영지주의 계통이었으며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였습 니다.

당시 예수사건에 대해서는 원조격인 요한이 볼 때 너무 거짓된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흘러 다녔습니다. 사실 복음서는 이 이단들의 거짓된 복음서가 흘러 다니는 것을 본 이후에야 “아, 이거 진짜 예수사건을 써야지 안 되겠네!” 하고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복음서는 소극적인 방어 입장에서 쓰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거짓 교사, 거짓 예수 복음, 거짓 예수사건 기록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회 역사 속에서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하는 작업이 있었고 오늘날 우리 손에 들리워진 것입니다.


유다서

역시 예수님의 친동생 유다가 쓴 것입니다. 이단을 경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둘이 성경 저자로 남게 된 것은 예수님의 동생이라는 점 때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 성경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신분은 베드로. 요한과 함께 대단했을 것입니다. 일반 적으로A.D. 64년 경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로 잡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보다 아래 동생이니까 오래 산 것 같습니다. 서신서 내용을 보아 당시 이단의 형태도 매우 발전된 단계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한계시록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할 때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환상 중에 받고 기록한 것입니다. 약A.D. 85-96년 즈음입니다. 로마가 공공연히 기독교를 빅해할 무렵에 기록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로마에 화재가 났던 네로의 박해 때보다 후대인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때로 봅니다.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20:4) 박해를 받았다는 얘기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우리 주’ ‘우리 신’ 으로 부르도록 명령했던 도미티나누스 황제 시대를 반영한 것 같습니다. 핍박가운데 있는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2. 신약 읽기의 난제


생장점

자, 이제 신약을 읽어야하겠는데요. 구약성경의 목록은수천년의 역 사를 “창·출 · 민 · 수· 삿· 삼·왕. 대 · 라· 느”라는 역사 순서로 엮어 한마디로 꿸 수 있었지만 신약은 불과 1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아 역사순서대로 엮을 것도 웰 것도 없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생과 사도행전과 편지들. 그리고 요 한계시록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만만히 볼 수 없는 두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예수 님의 일생을 기록한 복음서가 네 개나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가 문제입 니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거기 연결되는 서신서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문제입 니다. 공동서신이라고 불리우는 사도 바울 이외의 서신들은 그냥 하나씩 읽으면 되 는데 사도 바울의 서신들은 상황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게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 이 두가지 문제를 하나씩 정리해 보십시다.


1) 첫째로-4복음서의 내용을 하나로 만들어야겠습니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고, 그 다음이 마가복음. 마가복음 다음이 누가복음, 누가복음 다음이 요한복음, 이런 순서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 다. 왜냐하면 구약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런 순서로 되어있는 것처럼 무 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일생· 이라는 한 가지 사 건을 네 사람이 보고 기록한 것입니대.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복음. 이 세 복음서를 공관(共觀j 복음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사건을 함께 보고 기록한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태여 읽는 순서를 매긴다면 마태복음 다음에 사도행전. p}가복음 다음에도 사도행전. 누기복음 다음에도 사도행전. 요한복음 다음에도 사도행전을 읽어야 순서가 맞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이 네 가지 복음서가 오늘날 남겨졌을까요? 이 각각의 복음서들이 납겨졌다는 사실은 곧 폐수사건’이 진짜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네 명의 저자가 어느 날 한 자 리에 앉아서 의논하면서 쓴 것이 아니라, 각각 자신의 삶을 살다가 기록한 것인데 후대에 모아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저자가 그들 나름대로의 상황 속에서 썼고. 그 쓰여진 폐수사건’ 이 성도들에게 회람되어 얽혀졌습니다. 그러다가A.D. 397년 카르타고 공회에서 27권의 신약성경이 확정될 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 네 권이 복음서로 채택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 붙이고 싶은 것은 외관적으로는 종교회의가 성경의 정경 여부를 결정한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는 성경 자체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서 결정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경으로 공인된 성경들이 그 자체에 정경임을 증거하는 증거들을 찌고 있었으며. 종교회의는 다만 그 사실을 공언했을 뿐입니다.


생장점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4복음서가 정경으로 최종 채택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우리들은 고민이 되는 겁 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네 번이나 읽고 나도 뭔가 모르게 산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서는 읽어도 읽어도 한 줄로 주욱 연결이 안된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일어난 순서대로 다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잘 정리가 안됩니다. 마태복음 읽고, 마가복음 읽고. 누가복음 읽고. .. 이렇게 한 권 한 권을 읽어왔던 방법대로는 예수님의 행적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태에 있는 것이 요한에 없고, 마가에 있는 내용이 누가에는 없고, 이런식으로 되어 있고,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된 복음서 동네는 알기는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늘 뭔가 섞여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에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강론도 있고. 비유와 설교. 논쟁 형식의 글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일독학교에서는 이번에 이 네 권의 복음서를 다 벌여 놓고 공생애 3년 동안 의 예수님의 행적을 시간을 따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구약에서도 그 흐름을 찾으려고 했듯이 예수님의 행적도 그렇게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4복음서를 왔다갔다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한 눈에 보이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물론 시간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사건들도 많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연구된 내용들을 참고해서 복음서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2) 둘째로-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을 연결시키는 문제일니다


복음서가 지나가면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숭천하신 이후 약속대로 보혜 사성령께서 오십니다. 곧 교회라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 가 역사 속에서 탄생하는 새 무대가 열리 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이 하나님 나라라는 유형적인 공동체였듯이, 이제 신약에 와서는 성령의 사역으로 .교회’ 라는 공동체가 생긴 것입니다. 이 새 이스라엘.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만 들어져 나갔는가를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하나님 나라가 생겨나는과정이 국민만들기, 주권만들기. 영토만들기라는틀에 의해 착착진행되었듯이, 신약에 서도 ‘교회’ 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국민들이 만들어지며 어떤 지역으로 전파되어 나가는지 를 사도행전에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두 계열로 나됩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모교회 계열의 베드로입니다. 다른 하나는 안디옥 이방교회 계열의 바울입니다. 그러다 보니 편지들도 예루살렘 계열의 베드로, 요 한, 야고보, 유다 이 네 사람이 쓴 편지들(흔히 공동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과 안디옥 계열의 바울 의 편지들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의 펀지나. 베드로, 유다, 야고보의 펀지들은 그렇게 복잡할 게 없습니다. 그냥 어느 지역교회에 보냈나 보다 생각하고 읽으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공동서신 내 용과 관계된 행전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입니다. 바울에 대해 서는 행전이 있고, 편지도 있습니다. 신약 대부분의 내용이 바울의 편지(신약 27권 중 13권)이고 그 편지가 사도행전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연류되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에서 복음서가끝나면 바울이 주인공이 된다고해도과언이 아니라는말입나다.


그렇다면 바울이 주인공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구약 에서부터 흘러내려 왔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무슨 뜻이겠냐는 말입니다. 바울 은 이방의 사도입니다. 한마디로 이제 신약에서의 그 나라의 백성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계 열방’ 이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어디에서 그걸 알 수 있습니까? 많은사도들의 행적들이 있었겠지만유독 'tl}울’ 이라는사도의 행적 중심으로사도 행전이 기록되었을뿐만아니라그가이렇게 돌아다니며 전도하다가때때로필요해 서 쓴 편지들까지 성경목록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열방을 호t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약 창세기 10장에서 흩어진 열방들. 그들을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신약성경에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의 중심은 유대인이 아니고 세상 모든 열방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이 당시,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수를 전파한 그 행적들을 일단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급선무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사건을 있는 그대 로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듯이 말입니다. 또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기록한 편지들이 저렇게 따로 열세 권이나 남아있으니 그 편지들이 도대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디서. 왜 쓰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그내용들을 소화할수 있겠구 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만치 않지요? 구약의 예언서들도 어떤 실제 역사 적 상황이라는 배경에서 쓰여졌던 것처럼 이 편지들도 사연이 있어서 썼다 이것이 지요. 열왕기에 나오는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선지서를 이해해야 하듯이 신약의 서 신서들도 어떤 배경 가운데 특정인들에게 보내진 것이므로 이런 눈으로 읽어야 합 니다.

그러니 우린 그걸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의 예언서를 읽을 때 뭘 말하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기 때문에 예언서들이 어려웠듯이 이 서신서들도 어려워 지는 것입니다(그럴뿐만 아니라 서신서도 표준새번역 같은 쉬운 번역으로 읽지 않 으면 우선 말이 어려워 이해도 못합니다) . 이와같이 사도 바울이 쓴 편지들은 사도 행전과같이 연결시켜야한다는과제가우리 앞에 있습니다. 마태복읍. D}7백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요한계시록 이렇게 목록 순서대로 그냥 읽으면 될 걸 뭐 그리 복잡하게 이런 작업을 해가면서 까지 성경을 원나? 하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직 신약을 부분부분A로라도 못 읽어 보신 분들은 한권씩 읽으셔도 참 좋습니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그렇게 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읽으면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협니다. 그 한계가 우리가 지금 얘기 하고 있는 두 가지 난제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난제를 터득하면 신약성경이 다시 보입니다. 우리 어혔을 때 컬러π가 나오니까 혹백'IV 안보더라구요. 그런 느낌처 럼 새로 보일 것입니다. 구약에서 우리는 지도를 살폈고, 지형을 외웠고, 목록들을 새로 살펴서 정리하는 고된 작업을 했습니다. 비록 힘들지만 이 정도의 과정은 거 쳐야 하나님의 말씀이 조금이라도 들어외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투7-}를 할 것입 니다. 이제 신약에 와서는 이 두 가지 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읽어가려고 합니다. 연구하고수고를하면 성경이 뚫리고 수고를못하면바로그부분 에서 믿뻐서. 그때부터 성경은 재미없어지고 까만색 글자만 읽게됩니다. 전복 따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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