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순례길 6.
7시 30분 초남이 성지 경당에서의 미사로 오늘 일정을 시작하는데
신부님께선 우리 자는 방에 잘익은 장두감 2개를 두었다고 먹고 나오라 이르신다.
나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일 남편과 아이들을 비롯하여
이제껏 걸으며 지향 두었던 써니언니의 온전한 쾌유와 마음의 행로님....
나의 ‘노후안심보험’에 함께 가입된 자유행 친구들을 일일이 봉헌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내 삶을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봉헌한다.
김환철 신부님께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복을 내려 주시도록 빌어주시는
강복과 안수는, 길 떠나는 우리를 한층 충만하게 해준다.
초남이 성지의 교리당은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며
한국 최초로 교리를 가르치던 곳이다.
신부님께서 우리를 배웅해 주시는 길에는 안개가 많이 끼었다.
월드컵 경기장까지 가는 길 중간의 안개 낀 배나무 과수원 길이 신천지처럼 아름답다.
4월 10일경에 초남이를 방문하면 동네가 온통 배꽃지천으로 아름답다고
꼭 꽃피는 봄에 다시 오라신다.
초남이 성지의 마리아 자매님을 보며
계시된 말씀에 일치하기 위해
전 생애를 하느님과 함께 고독한 삶을 유지한 채
자신의 특별한 소명을 준비하며
성전을 떠나지 않던 선지자, 안나가 생각나....
내 삶에 그런 시간 살아볼 선택의 갈림길이 있다면 "예“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의 영원한 동반자인신 성모님께서
“예” 라는 기꺼운 응답을 신뢰에 찬 믿음안에서 하였듯이
성모님과 함께 주님께 나아가고, 봉헌하며 일생을 사랑안에서 사시기를 빕니다....
교리당을 출발하여 배나무 밭과 농수로를 따라 1시간가량 함께 걸어
구의 - 이서간 고속화도로의 위험한 갓길 트럭에서 만들어 파는
따뜻한 토스트와 오뎅이 맛있다며 사주신다.
실제 먹어보니 신부님 자랑처럼 그리 멋진 토스트가 아니었건만
외출하고 돌아오실 때 드시는 최상의 외식이라며
어제부터 우리에게 주실 근사한 아침자랑이 늘어지셨었다.
원시적으로 소박한, 가난으로 사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고향처럼 느껴졌다.
토스트먹여 보낼 의향으로 순례표지기와는 다른 길로 돌아갔다가
월드컵 공설운동장 앞까지 배웅해주신 신부님, 마리아 자매님과 헤어져
다시 우리의 길잡이인 달팽이를 만났다.
전주제지를 지나며 여기서부터는 함께 걸어주시겠다며
마중 나오신 이진식 선생님과
가연교, 백제교, 서신교, 백제교, 어은교로 이어지는 갈대숲 지천인 전주천변을 함께 걷는다.
어은교 위에서 시청쪽으로 200m 거리에 숲정이 성지가 있다.
안내 표지판과 십자가 그리고 순교자 현양탑이 순교의 영광을 기린다.
아파트 짓느라 원래 위치에서 1백50여 미터 떨어져 자리해 있는 숲정이는
성지에서 옮겨 온 토사로 조경이 되어있다.
숲정이에 도착하니 전주성지의 해설사로 봉사하시는
라파엘 이상원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숲정이'는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조선 시대부터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일찍이 유항검 일가가 순교한 이래
기해박해, 병인박해 때에도 수많은 신앙인들의 유혈의 현장이다.
1866년에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과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여섯 분이 치명했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순교자는 한국 순교자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류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이다.
갈대밭 지천인 전주천변의 초록 바위는
1886년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요한)의 14세 된 아들
명희와 순교자 홍봉주 (토마스)의 두 아들이 수장된 곳이다.
이 두 가정은 온 가족을 처형되거나 노비가 되고 가산을 몰수당하는 혹형을 받았는데,
이 두 어린 아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당시 관례대로 전주 감옥에 수감했다가 나이를 채워 전주천에 밀어 넣어 죽였다.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그의 동료들이 복음 전파에 온 힘을 쏟고 있던 1790년경,
조선의 천주교인들에게는 처음으로 큰 시련이 닥쳐왔다.
천주교의 전례와 유교 의식간의 충돌인 제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790년 중국 북경에 파견된 윤유일(바오로)은
선교사 파견에 대한 북경 구베아 주교의 약속과 함께
'조상 제사 금지' 라는 회신을 갖고 왔다.
이로부터 소위 '진산 사건'으로 알려진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사가 시작됐다.
윤지충은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서울에 갔다가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서학을 접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양용 형제들의 지도로 열렬한 신자가 되고
다시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에게 전교한다.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서 진사 윤지충(바오로)이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외종형 권상연(야고보)과 상의,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 의식인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수,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1801년(신유년) 천주교 박해령이 내리자
3월 호남에 검거 선풍이 일어 유항검은 대역 부도죄,
유관검· 윤지헌은 역적 모의죄로 능지처참, 김유산 이우집은 불고지죄로 참수됐다.
그 후 90년 만에 그 자리에는 전동 성당이 자리를 잡아 초대 교회의 굳건한 신앙을 기리고 있다.
성지마다에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성숙한 신앙으로
주님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시는 이상원 라파엘님.
순례길에서 기꺼이 헌신 봉사하시는 선생님께 깊은 감동을 받았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등의 어진 봉안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 했는데
태종12년에 태조 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에는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승전이라 했다.
경기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에 중건하였다.
조선 태조의 어진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전주사고가 조선의 역사를 지켜냈기에 그러하다.
전주사고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성주, 청주, 서울마저 함락되면서
세 곳의 실록은 불타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뿐이었는데
그해 6월 전주에도 왜군이 들이닥치면서 전주사고마저 불에 타 없어졌다.
당시 전주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8백여 권과 고려사 등 귀한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주사고는 불탔지만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어진을 지킨 사람은
이름없는 유생 안의와 손홍록 두 사람이었다.
왜군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 집안의 머슴들을 이끌고
모두 64궤짝이나 되는 실록 등을 말등에 싣고
정읍 내장산 은봉암이라는 작은 암자까지 피신시켜 오늘날까지 전해올 수 있었다.
경기전 나와, 옆에 있는 한옥마을 후문에 있는 소설 『혼불』의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그 흔적이
원고와 편지와 엽서, 문학 강연의 모습들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높이 쌓인 원고지와 벽 두면을 채운 친필 원고를 짙은 감동으로 바라보았다.
라파엘 이상원 선생님으로부터 전주시내의 성지해설을 받으며
순례문화연구원이 있는 전일관광에 도착했다.
전 전북대학교 총장님이셨던 순례문화연구원의 김수곤 이사장님과
우리들의 수호천사님들이셨던
이진식, 강동암 선생님과 박동진 차장님, 신혜경 선생님께서 나와 계셨다.
당신들 어려운 순간마다 함께 돌보아주시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음에도
우리들 완주를 너무도 기쁘게 축하해 주신다.
지극히 따뜻한 보살핌과 환대 속에 가슴 벅차올랐던 우리들의 길들을 축복하는
4개 종단의 대표들과 전라북도 지자제가 수여하는 순례완주증을
순례문화연구원 이사님으로부터 받다.
우리가 무엇이라고.....
전주의 인기최고봉인 ‘일번지’ 막걸리집에서 완주축하연을 열어주셨다.
막걸리 한주전자에 기본으로 깔린 음식들이다.
막걸리를 더 시키고프면 숟가락으로 주전자를 두들긴다.
한 주전자씩을 더 시킬 때마다 새 안주인 간장게장과 산낚지 등이 계속 나왔다.
그래, 순례문화연구원의 돌보심으로 그동안 쌓인 친밀과 신뢰에 감사하며
완주의 기쁨과 흥에 겨워 서너잔 씩을 마셔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
또 전주터미널까지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서울을 향했다.
어느덧 서울 도착하니 영아이님과 라떼님이 마중 나왔다.
아네스님은 영아이님께로, 나는 라떼님께
개선장군처럼 호위받으며 귀가하는 호사를 선물로 받았다.
우리가 아름다운 순례길에서 받은 모든 것들이 선물이어서
살아갈 희망과 감사와 위안이 넘쳐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로마서 말씀이 더욱 마음 깊이 다가온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 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내가 받은 은총과 사랑의 선물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순서가 있음을 순종하듯이 받아들이며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 묽어지고 충만해진 마음은 승전가를 부르듯 경쾌하다.
첫댓글 안개길을 걷는 모습이 왜 이리 시리도록 아름답게만 보이나요? 6일간의 코스 중에 초남이에서 전동성당까지 하루 동안만 걸었는데 아쉬움이 많아 언젠가는 꼭 완주하리라 다짐합니다.
"느리게~!" "바르게~!" "행복하게~!" 두 분의 완주를 축하드리며 아름다운 순례길의 이름다운 이야기를 이곳에 올려 주신 보아미님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스테파노 신부님, 마리아 자매님과 안게 속을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은 신비감마저 들게 됩니다. 언젠가 다시 전주 막걸리를 마실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영육간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