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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해발87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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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대둔산...
금산은 임진왜란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바로 그 해인 1592년 금산에서 7월과 8월 한달 사이를 두고 두 차례나 왜군과의 큰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임진년 7월 첫 싸움이 대둔산 배티재에서 있었다. 금산이 곡창인 평야지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탓으로 논산, 강경의 평야지대를 침범하려는 왜장 고바야까와는 휘하 2만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논산으로 쳐들어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기미를 알아챈 당시 광주 목사였던 권율 장군이 전라도 동복현 황진 현감을 선봉장으로 세우고 새벽에 1,500의 군사로 배티재의 왜군을 기습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 싸움의 흔적이 ‘권율이치 대첩비’외에 대둔산 여기저기에 여러가지 이름 또는 전설로 남아있다.
권율 장군이 싸움을 지휘 했다는 장군 바위가 배티재에서 태고사로 가는 산등성이에 있고 권율 장군이 물을 마셨다는 장군샘이 태고사 아래 골짜기에 있다.
기습을 감행할 무렵 달이 떠올라 승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달이 떠오른 곳인 진산면 석막리 골짜기 막바지를 지금도‘달박골(월명리)’이라 한다. 또 배티재 진산쪽 아래 묵산리 북편 골짜기에 울음실이란 곳이 있다. 이 이름은 배티재 싸움에 참패한 왜군의 부상병들이 몰려들어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해서 울음실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 한다.
그밖에 천둥산에 밝은 빛이 비추어서 기습이 성공했다는 전설도 있고, 닭울음을 신호로 기습키로 했는데 시기를 놓칠까 두려워 닭이 울기전에 대둔산 용굴의 용이 일찍 울음소리를 내어 기습이 시작되고 싸움에 크게 이겼다는 전설도 있다.
이처럼 대둔산은 임진왜란 초기 우리 군사들이 패배만 거듭하던 시기에 보기 드물게 큰 승리를 거두었던 곳이지만, 한달 후 금산벌 싸움에서는 중봉 조헌의 칠백의사가 모두 순사하는 비극이 있었다.
한듬산’이라는 옛이름...
대둔산은 『동국여지승람』 진산군 편 산천조에 진산의 서쪽 10리에 있고 진산(鎭山)이라 되어 있으며 『세종지리지』,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 안심골에 있는 안심사 사적비에 그 이름이 나온다. 그들 무헌에는 둔자가 ‘싹날둔(芚)’으로 되어 있는데, 요즘에 ‘진칠 둔(屯)’으로 쓰기도 해서 어느것이 옳은가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그 논쟁은 아무런 뜻이 없다. 원래 대둔산의 이름은 순수한 우리말인 ‘한듬산’이다. 지금도 나이든 사람들이나 논산쪽에서는 ‘한듬산’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논산쪽에서 대둔산이 산태극 수태극의 명당 자리를 계롱산에게 빼앗겨 한이 들어나는 뜻으로 ‘한듬산’이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한듬산이라 순수하게 불려오던 이름이 우리말 우리글이 천대받던 시기의 기록에 대둔산으로 한자화한 것이다. 한은 크다는 뜻에서 ‘큰 대(大)’로 되었고, 듬은 ‘더미’,’바윗덩이’의 뜻과 함께 양지뜸 음지뜸 할때의 구석진 곳, 또는 물건을 덮거나 볏가리를 덮을 때 쓰는 ‘뜸’의 뜻인데, 그 듬 또는 뜸을 음화해서 비슷한 소리를 내는 ‘둔’자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풀로 엮어서 무엇을 덮는 뜸이라 할 때는 싹날 둔(芚) 자를 써서 대둔산 (大芚山)이 옳고ㅡ 권율 장군의 많은 군사들이 머물렀다는 뜻일 때는 진칠 둔(屯)자를 써도 좋겠지만, 원래 한듬산을 한자화 또는 음화한 것이기 때문에 둔자가 한자로 어느것이 옳다하는 논쟁은 뜻이 없는 것이다.
한편 배티재도 한자화 시켜 이치(梨峙)로 하는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 배티재에 돌배나무가 많아서 배티재로 한것이다. 지금도 진산쪽 골짜기에 큰 돌배나무 한그루가 금산군 보호수(번호 8-3-336호)로 남아 있는게 그 증거다.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의 산...
대둔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바와 같이 진산(珍山)의 진산(鎭山)이며 금산 땅이니 금산의 산이라 할수 있다. 속리산 법주사 하듯 대둔산을 주산으로 하는 옛절 태고사도 금산 땅에 있다.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이 작지만 분명 대둔산의 뿌리는 만해 한용운이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태고사 자리가 대둔산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대둔산 하면 금산의 산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완주군 쪽을 크게 개발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전북 또는 완주의 대둔산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금산의 대둔산으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금산ㆍ완주의 대둔산’이라는 공동명의의 산으로 인식을 바꾸어 놓았으면 한다.
두개의 도립공원으로 되어 있는 산이다. 군 행정구역으로 볼 때 전북쪽은 완주군 하나의 군 구역으로 되어 있으나 , 충남쪽은 금산군과 논산시 두군의 구역으로 되어 있다.
대둔산은 기암괴봉들이 많고 그 바위 봉우리들이 수려하며 깨끗하다. 크지 않으나 장한 맛도 있고 아기자기한 맛도 있다. 한 쪽은 숲도 울창하며 계곡도 아름답다. 가을에 단풍이 기암괴봉과 어우러질 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또 임진왜란의 전적지이기도 하고, 천하의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태고사 절 앞의 암벽에 새겨진 ‘석문(石門)’이란 글은 우암 송시열이 쓴 글자로 알려져 있으며 갖가지 전설도 서려 있다. 경관이 수려하고 여러가지로 훌륭한 대둔산은 금산군, 논산시, 완주군이 차지하고 있는 각 지역마다 각각 특색이 있어 재미있다.
금산은 임진왜란 전적지와 천하명당인 태고사가 있고, 논산지역은 숲이 좋고 계곡과 개울이 좋으며 완주지역은 기암괴봉이 수풀처럼 서있고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있다.
산길도 진산면 향정에서 오르거나 배티재에서 산비탈을 엇비슷이 가로 질러 오르다 태고사레 들른 뒤 낙조대에 오르는 길이 좋다. 논산 쪽은 수락리에서 승전탑을 거쳐 수락계곡의 화랑, 금강, 비선 폭포를 보며 196계단을 타고 고스락에 오른 사소이 좋고, 완주쪽은 집단 시설지구에서 올라 구름다리 금강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좋다. 안심사에서 깔딱재를 넘어 오르는 길도 있다.
원효대사가 사흘을 둘러 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격찬한 대둔산은 정녕 아름다운 산이다.
첫댓글 대준산이구나. 가을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갔다 온지가 좀 된 사진 같은데?...늦게 올라온듯?...아닌감?
10월 29일 금산으로 인삼사러 가다가 잠시 들렀던 곳인데 시간상 산행은 고사하고 케이블카도 못 타고 눈요기만 살짝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