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가르는 성격
세상살이는 인과율을 따라가는 모양이다. 양장역학에서 논하는 미시적 세계에서는 이 법칙이 엄밀히 성립치 않지만, 사회생활은 예외가 없을 상 싶다.
세상살이의 주체인 한 인생은 사고방식이나 생각에서 좌우되는 것 같다. 내재된 관념이 계획하고 목적을 설정해서 마음을 움직이고 구체화된 행동에 옮겨 실천에 이르게 되고 반복을 되풀이 하면서 버릇이 되어 습성화된다. 그 모든 과정이 환경이나 교육, 관습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문제는 습성이 계속되면 성격으로 고착되어 간다는 사실이다. 그 성격이 각자의 개성을 만들어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어 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성격의 출발점은 어떤 사고방식을 갖느냐, 어떤 생각을 품느냐에 기인된다고 여겨진다.
누구든 수시로 선택의 기로에서 결단하며 살아간다. 사소한 일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택하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성격대로 인생이란 무대에서 한평생을 연기한다고 할까.
성격이 생후의 경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본디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후천성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선천적인 각자의 본성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여기는 편이다. 단지 단점이나 악습은 교육이나 수양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보완될 수 있고 개선되어져, 운명을 전환시킬 좋은 운세를 맞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악습을 유발하는 나쁜 근성을 변화시켜 바로 잡는다는 게 수월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 강을 건너야 하고 이 산을 넘어야 하는 숙제가 항시 기다리고 있다.
가문을 중요시 여긴 조선왕조 때의 혼인에 납득이 간다.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혼인하기 예사이고, 아예 유아시절에 양가끼리 혼인을 약속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족보와 가문을 보고 결행하기에 훌륭한 가풍에 연단된 자녀나 후손이면 성질이나 습관이 닦여졌을 것이요, 좋은 혈통이 이어져 좋은 성품을 갖고 태어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다. 왕대밭에 왕대 나듯이 말이다.
기실 부부의 가정생활에서 성격이 가장 문제되는 것 같다. 나 자신도 남편으로서 아내가 어떻게 평가할까 가늠해 보면, 필경 모나고 오지랖 좁은 피세를 들춰 목멘 소리를 늘어놓을 상 싶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행운이 여러 번 찾아왔던 것 같다. 그 기회를 번번히 놓쳐버리거나 들어온 복을 어리석게도 뒷발질한 격이었다. 그 정황을 살피면 성격에서 연유된 것 이다. 자업자박이라 할까.
불법에서 업이란 말이 통용된다. 전생에 지은 선악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현세에서 받는 응보요, 훗날 초래될 수 있는 결과를 일컫는다. 전자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되는 혈통적 업이요 후자는 자신에게서 연유되는 업이랄 수 있다.
기독교리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부모가 지은 죄가 후대에 이른다고 본다. 그렇다면 혈통적으로 죄가 유전된다는 말이다. 그 요소가 양심을 거스른 사악된 것이 되어 나도 모르게 영혼을 어둠의 그늘로 유인하는 것이다. 인간시조인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성이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죄의 뿌리가 되었다. 시기하는 성품, 자기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교만, 자신이 처할 위치를 떠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성품 등이다. 불행을 초래하고 파멸로 내몰지 모를 싹을 틔운 것이다. 그래서 숱한 인생살이가 원치 않는 치뜰거나 피새여물의 속성을 가진 성격이 머리맡에 있는 파랑새를 새장에서 쫓아내버리는 아둔함을 반복하는 것이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업, 혹은 죄란 멍에를 불가피하게 걸머진다. 그렇다고 성악설이라 단정 짓지는 않는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본성은 지고성의 창조주의 속성을 닮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양심의 안테나가 무의식적으로 항시 작용하여, 우리를 후회하고 반성케 하면서 보다 나은 진선미의 가치를 추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려 부단히 우리는 발버둥치지 않는가.
어떻게 해야 지혜롭고 슬기롭게 행운을 맞아들이고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그것은 올바른 사고방식과 생각이 관건일 것 같다. 가훈이나 좌우명도 도움을 주는 방편일 것이요, 진리를 깨닫는 신앙생활은 보다 나은 지주가 되어 나태 되고 좌절할 때 소생의 힘이 되고 생명의 빛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스스로 어떠한 목적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이젠 이순을 넘은 나에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은 과거사요 ‘늦은 밥 먹고 파장간가’는 격언에 걸맞은 늙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만사지탄이 앞을 가리니, 조급한 마음이 가슴을 파고들어 애틋한 기운이 어깨를 덮는다.
남은 인생이나마 진정으로 위하는 생활을 하고 물욕이나 소유욕을 버리고 초연하게 아름답고 참된 생활을 습성화하여 행운만을 맞아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