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파트 단지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의 획일적인 성냥갑 아파트는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단지 안에 들어서면 온통 주차된 차량들로 발 디딜 틈 없던 풍경도 사라지고 있다. 어딜 봐도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는 제각기 특색 있는 지붕과 외형, 색깔을 띄기 시작했으며, 지상은 주차된 차량 대신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와 잔디로 뒤덮이고 있다. 단지 한 켠에는 폭포수가 떨어지고 중앙 연못에는 물고기가 헤엄친다. 푹신푹신한 바닥의 놀이터는 아기자기한 모양의 놀이기구가 어린이들을 기다리고 있으며 조명시설까지 갖춘 체육시설이 입주민들을 맞는다. 아파트의 개념이 단순한 주거에서 쾌적한 삶의 출발점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이번 149호에서 아파트 외관 부분을, 151호에서는 조경에 대한 부분으로 나눠 최근 아파트 단지의 변화 모습을 짚어보기로 한다. - 편집자
----------------------------------------------------------------- ■ 글 싣는 순서
① 아파트, ‘닭장’을 벗어나 멋 부리기에 나서다 - 옥탑, 야간조명 등 외관 꾸미기 ② “이제는 조경이다!” - 조경 업그레이드로 차별화 나선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참살이(웰빙)’ 문화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규모의 성장보다는 개인과 가족에게 시선을 돌리며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의 요구가 소위 ‘참살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사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5일 근무제까지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뒷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런 움직임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대상으로 하는 의식주 분야로 모아지고 있다.
의식주 분야 중에서 외부 변화 흐름에 가장 둔감한 것이 주거다. 주택을 기반으로 하는 주거양식은 이미 10∼20년 전에 건물이 지어져 음식이나 의류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외부 변화에 경직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미 10∼20년 전의 설계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건물과 주변 환경은 최근 추세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쉽게 따라갈 수 없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주거분야가 이 새로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특히, 도시 내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이 트렌드는 재건축 등 아파트가 새로이 신축되는 과정에서 담겨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아파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근 아파트 주거의 트렌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경을 포함해 아파트 외관이 화려하게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걱정했던 골조나 배관시설 등 내부의 견고함은 이제는 당연히 담보되어져야 할 부분이다. 요즘 시대에 골조 등 구조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해당 업체는 문을 닫아야 한다. 이제는 내부 구조적인 부분보다는 외부 경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아파트단지의 외부 경관은 크게 건물부분과 오픈스페이스(공지) 부분으로 나뉜다. 최근 건물 외관의 변화 추세는 옥탑 부분의 조형물 설치, 외벽 문양, 야간 경관 등을 적용시켜 각각 최고의 아파트가 되기 위해 몸치장을 하고 있다.
한편, 오픈스페이스 부분의 변화가 다채롭다. 조경을 통해 아파트 단지에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어 입주민들이 원하는 ‘참살이’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재 조경에서 각광받고 있는 트렌드는 ‘친환경’이다. 기존의 아파트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이며, 보다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도시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아파트의 과거 '닭장'
그동안 아파트는 ‘콘크리트 성벽’‘닭장’ 등의 비속어로 지칭되며 도시 풍광을 해치는 주범으로 인식돼 왔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는 주택 공급 우선 정책으로 인해 천편일률적인 구조로 물량 채우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설득력이 높다. 5개 신도시 개발, 주택 200만호 건설 등 수치적인 공급 기준의 나열을 통해 주택보급률을 높이는 것이 당시의 해결 과제였기 때문이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주택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사람들의 가장 큰 요구는 어떤 형태든 ‘내 집’의 마련에 있었으며, 이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정부는 대규모 주택공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대규모 주택공급의 방법으로 가장 저렴하고 용이한 방법은 획일화, 일반화 된 주택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라고 밝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당시 정책이었던 분양가 규제도 한 몫 했다. 건설사 측면에서는 정해져 있는 분양가로 완성품을 내놓기 위해 외관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는 것. 동심원 조경기술사 사무소의 안계동 대표는 “예전만 하더라도 분양가 규제로 인해 조경 등 외관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며 “ 때문에 하고 싶어도 아파트 외관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짓기만 하던 팔리던 시대는 끝났다. 물론, 서울 및 수도권 주요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들은 아직까지도 분양하기만 하면 최소 몇 십대 일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조기마감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울 지역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아파트들의 경우에는 미분양되는 상황 또한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방 중소 도시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98년을 전후한 IMF 여파는 기존 아파트 분양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집값이 하락하면서 분양가가 자율화됐으며 주택시장에서는 기존의 다른 아파트들과의 차별화를 통한 업그레이드가 업체들의 생존전략으로 등장했다.
아파트 외관으로 차별화 시도
주거환경에 대한 욕구가 점점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살고 있던 주거환경을 갑작스레 뜯어고칠 수 없다. 특히, 아파트는 공동주택으로서 주민들의 공동 동의가 우선되어야 하는 어려움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동의를 기반으로 해서 재건축을 기다리거나 이도 아니면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로 이사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이 때부터 등장한 것이 내부 인테리어다. 대개의 주민들은 ‘인내하며’ 살아왔고, 더러 여유가 있는 주민들은 단위 세대별로 내부 인테리어를 통해 기존의 아파트 세대와는 다른 분위기와 시설 등으로 주거환경 수준을 높여 왔던 것이다.
그동안 삶의 터전으로 아파트는 편의성에서는 경쟁력이 있다 하더라도 주거환경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많았다. 옥외 공간의 대부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된 아스팔트가 뒤덮었고, 놀이터나 노인정 등 최소한의 복리시설들도 천편일률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아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공을 주우려 단지 도로로 달려나오다 차와 부딪쳐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았고, 단지내 조경은 법정 기준에 따른 잔디와 나무를 심어 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주민들은 휴식이나 운동, 오락을 위해서는 당연히 아파트단지 밖을 나와 다른 장소를 찾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단지 내 공지는 소수의 인원들만 사용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차별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 아파트 외관 변화다.
아파트, 옷을 갈아입다
외관 변화의 가장 큰 변화는 예전 아파트의 문제로 지적되던 획일적이고 반복적인 것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이다. 특히, 아파트 건물에 있어서도 예전의 판상형 아파트를 대신해 탑상형 아파트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획일적인 아파트 건물 모양에서 벗어나 옥탑 부분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최근 아파트의 고층화 추세에 따라 예전의 저층 아파트였을 때 보다 도시 미관에 끼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근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되면서 실제 건설에도 사용되고 있다.
옥탑은 그동안 옥상으로 통하는 통로와 함께, 물탱크실, 또는 엘리베이터 기계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옥탑의 모양은 대개 ‘사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옥탑 부분에 조형물 등을 설치해 예전의 천편일률적 사각 옥탑에서 벗어나 스카이라인 변화를 통해 도시 미관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옥탑 주위에 원형 모양 또는 물결 모양 등의 조형물을 설치해 다양한 미관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발코니 및 건물 돌출부에 대한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예전의 아파트 발코니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어 추락위험 및 경관상으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이 부분은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고 설계당시부터 건물 내부로 옮기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아파트 건물을 타고 위아래로 길쭉하게 연결돼 있는 도시가스관이나 보일러관도 예전처럼 직접 노출되던 것을 피해 건물 주위에 홈을 파서 그 안에 집어넣거나 그릴을 설치함으로써 직접 노출을 지양하고 있다.
아파트 건물 측벽 녹화 방법도 제시되고 있다. 각종 덩굴형 식물을 이용해 창문이 설치되지 않은 아파트 측벽을 푸르게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 같은 추세에서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생태적 건물외피 조성기술’을 개발해 현재 광진구청 주차장 건물 외벽에 잔디를 키우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또한, 아파트는 주간뿐만 아니라 야간에도 그 외관을 뽐내고 있다. 일부 고층 상업빌딩에서만 볼 수 있었던 야간 조명 기술을 이용해 아파트 외관을 이용한 야간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자체에서도 경관 개선 노력
도시 미관에 큰 역할을 차지하는 아파트에 대해 지자체에서도 관심이 높다. 서울시의 경우, 건축심의 과정에서 아파트 외관에 대한 미관심의를 함께 진행시키고 있으며 각급 하위 지자체에서도 공동주택 미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양천구의 경우, 지난 2003년부터 공동주택 경관개선 기준을 마련해 관할구역내 아파트 건립시 좀 더 나은 주택 경관을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재건축사업 및 주택법 등에 따른 아파트 건설사업 시 권고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양천구 관계자는 “개선기준으로 제정해 각 조합 및 사업시행자에게 권고 기준으로 제시해 보다 나은 도시 미관을 위해 유도하고 있다”며 “사업시행자 측에서도 이러한 경관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어쨌든 이제 아파트는 때론 소박하게, 또 때로는 화려하게 겉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파트의 이러한 ‘화장발’이 주택공급의 효자이자 편안한 주거공간 창출의 일등공신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일부로부터 도심미관을 헤치는 ‘흉물’ 취급을 받던 것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아파트의 ‘화장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병조 기자 2005-09-14 16:35: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