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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서서 ......
누군가 무슨 말을 하는것 같기는 한데 ...내 귀에는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거 같다.아 !!! 내가 잠깐 기절 한거 같다. 아침에 씻고 나가려다 거실에서 쓰러졌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가 머리맡에 앉아 허둥대시며 정신 차리라구 날 흔들어 깨우시는 소리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턱 및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급히 수건으로 지압을 하고 근처 병원으로 가 10여바늘 꿰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빈혈이 대장암의 전초 증상 중 하나란다.
2010년 1월 초...
요즘들어 술만 마시면 아랫배가 쓰리고 아프다 .동네 의원을 가 보니 스트레스성 장염 같단다 .약을 10여일 먹었더니 들 아프다 .그러다 술한잔 하면 또 아프고 ...이번엔 다른 의원에서 과민성 대장염 같단다 .그러길 서너차례 ...화장실에 가면 속이 너무 쓰리고 아프다.가끔씩 혈변도 보고... 전에도 치질 때문에 그런일이 종종 있어서 혈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10년4월5일...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데 조금 모자란거 같다 .한잔 더 하자 하니 모두 바쁘다고 간단다 .허전한 맘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돌아와 지방에 있는 약사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최근 증상을 이야기 했더니 쉽게 말을 못한다 .그래서 " 지금 내가 생각 하고 있는거랑 생각이 같아 ?"하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다음날 바로 내시경 예약을 했다 .
4리터의 약물을 거의 다 마시도록 장 청소가 안된다 .병원에 전화를 해 보니 그래도 나머지를 다 먹으란다 .거의 다 마셨다 .그래도 장 청소가 안된다고 하니 병원서 와 보라고 한다.배는 이미 남산만해 졌다 .동내 병원서 이제는 큰 병원으로 가 보란다.
구급차를 타고 급하게 대형병원 응급실로 갔다.대장에 용정이 커져서 장을 막았단다 .급히 스텐스 시술을 해서 장 청소를 했다 .조직 검사를 했더니 대장암(에스결장) 3기란다 .림프절에도 이미 여러 곳으로 전이 됐고 ...곧 바로 수술할 줄 알았는데 대장이 정상인의 5~6배 늘어나 있어서 부기가 빠진 후에나 수술을 할 수 있단다 .이렇게 오래 걸릴줄 몰랐다.
나이드신 어머니 걱정 하실까봐 지방에 일이 있어서 내려 간다고 거짓말을 했는데...어머닌 30이된 큰 아들을 사고로 먼저 보낸 트라우마가 있으시다. 이번엔 작은 아들 마져 암 이란걸 아시면 얼마나 놀라실까...
2010년 4월 19일..
드디어 기다리던 수술을 했다.복강경 수술을 하고 싶었는데 개복해서 복부 내부를 확실하게 확인하자고 해서 개복 수술을 하기로 했다.수술 후 얼마 안 있어서 퇴원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어진다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많이 불안해 하신다 .의사선생님 한테 사정을 말씀 드리고 외출 허락을 받았다.수술 부위는 상처가 덧나지 않게 복대로 단단히 두르고 친구와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말랐냐고 걱정을 하신다.그래서 지방에서 물이 안맞아 설사병이 걸려서 그렇다고 둘러대 안심시켜 드리고, 어머니가 취미삼아 하시는 주말농장 땅도파고 여러가지 모종도 심어 드리고 ...아무튼 어머니 걱정 안 하시게 해 놓고 오후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며칠이 지났는데 환부에서 진물이 나와 조금 더 있어야 퇴원을 할수 있단다 .그러길 며칠 ...설상가상 밤에 갑자기 설사가 난다 .검사를 해 보니 이번엔 슈퍼 박테리아에 감염 됐단다.10여일 넘게 아무것도 못먹고 수액과 영양제로 버텼다.그렇게 한달 넘은 병원 생활을 마칠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어머니 전화를 받았지만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드디어 집으로 간다 .항암 치료만 아니면 어머니께 말씀 안 드리는게 좋은데..어머니 쓰러 지실까봐 누나들과 상의해 조금씩 이야기 하기로 했다.퇴원 다음날 암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초기라 별이상 없다고 ...안믿는 눈치다 .그래서"죽을거 같으면 말씀 안드리고 버텼지 왜 얘기 했겠냐고" ...어머닌 아무말 없이 방으로 들어 가셔서 문을 닫는다 .긴 침묵이 흐른다 .간간이 들리는 어머니의 흐느끼시는 소리 ...억장이 무너 지는거 같다 .얼마나 맘이 아프실까 ...한참을 그렇게 우시더니 다시 거실로 나와 앉아 물으신다 .이제 당신이 어떻게 하면 되냐고 ...그래서 체력이 회복되고 항암치료 받으면 낫는다고 말씀 드리고 필요한건 그때그때 말씀 드리겠다고 했다.참 못난 아들이다 ...
두어달 지나 어느정도 체력이 회복되어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찌질한 모습 보여 드리기 싫었는데...다행히 강화도에 아궁이에 불때는(난 이 집을 귀곡산장이라 불렀다)아주 오래된 시골집을 갖고 있는 후배가 있어 그 곳에서 혼자 항암 치료를 하기로 했다. 3일간 주사를 맞고 일주일 체력 회복후 다시맞는 방법으로 12회 치료 하기로 했다.
1차 항암 치료가 끝난후 집으로 와서 밑반찬 등을 싸 가지고 강화도로 갔다 .얘기 들은것 보다는 견딜만 하다.그런데 회차가 거듭 될수록 점점 더 힘들어 진다 .어떤날은 지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 자전거를 타고 따라가서 보다가 올때는 힘이빠져 한참을 주져 앉아 있기도 했었다.또 어떤주는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한주 더 휴식을 취한 후 항암치료를 받기도 하고 ...체력이 갈수록 약해 지는거 같다. 암튼 힘이조금 나면 뒷산에 가서 아궁이 불 지필 나무도 해오고 ..또 너무 오래 된 흙 집이라 여기저기 무너진 부분을 수리하며 무료함을 달랬다 .이제는 체력이 떨어져 자전거는 탈 엄두도 못내고 운동은 매일저녁 논두렁을 한시간 정도 걷기만 했다.
강화도의 가을 풍경은 유난히도 아름답다.
넓은 들에는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서쪽으로 지는 석양은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이런 풍경을 보는것 만으로도 힐링이 되는거 같다.
항암 치료가 중반을 넘어 서니 진짜 견디기 힘들다 .오늘은 지쳐 쓰러져 하루종일 집에 누워 있었다.이웃집 노인이 술취해 와서 읍내까지 차를 태워 달란다 .갑자기 화가 나서 막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모르게 감정 통제가 안된다 .어르신은 뻘쭘해서 돌아가시고 ...항암제를 맞으면 감정조절이 잘 안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거 같다 .그 전 같으면 웃으면서 모셔다 드렸을 텐데 너무 죄송하다.
요즘은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죄다 고깝게 들린다 ."항암제가 많이 개발되어 완치될수 있을거야 힘내"그러면 속으론 니들이 아직 암에 안 걸렸으니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 ..등등 ...마치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암에 걸린것 처럼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질 않는다.이래서 사람들이 항암 치료가 힘들다고 얘기 하는거 같다 .
병원가서 간호사에게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 하니까 항암제 맞으러 오기전 닝거를 맞고 맞고난 후 다시 링거를 맞으면 덜 힘들 거라고 했다 .조금은 도움이 되는거 같다 .10회차때는 넘 견디기 힘들어 119에 실려가 응급조치도 받았다.
이번에도 병원서 주사 처방받고 집으로 와서 강화도로 갈려고 짐을 싸는데 너무 힘들어 진짜 표정 관리가 안된다 .짜증 스럽게 집 문을 "쾅"하고 닫고 힘들게 강화도로 갔다 .이제 곧 끝나니까 ...좀만 더 버티자 하며 ...눈물이 핑 고여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시고 어머니는 그날 혼자 하루종일 우셨다고 한다.그렇게 어렵게 12회를 마쳤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니 몸이 많이 좋아진것 처럼 느껴졌다.
대장암 3기 !!!5년 생존율 50%.절반은 살아 남는단다 .내가 암만 운이 없어두 절반안에 안들까...감기 걸려두 죽는다...난 암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이제 다시 살아난 기념으로 남은 삶을 멋있게 살아야지...그래서 학교 강의도 나가고(항암 치료 때도 얘들은 가르 쳤었다) 또 아는 동생이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해 청계산 쪽에서 장사도 시작했다 .마침 그 곳이 공기도 맑아 아예 청계산 상적동 쪽으로 이사도 했다 .마치 일에 중독된 사람처럼 또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다.
2011년6월
검사결과에 문제가 생겼단다 .폐에 작은 점 같은게 양쪽에서 한개씩 발견이 됐단다.아직은 암인지 아닌지 모르니 좀더 지켜 보기로 했다 .난 별걱정 안했다 .설마 한번이면 됐지 하고 ...
2011년 12월 초
두번째 검사를 했다 .암이란다 .한쪽폐엔 방 하나에 있고 다른쪽은 폐 윗쪽에 있고 ...빨리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난 생각해 보겠다고 얘기 하고 병원서 나왔다.오후 3시경 ...병원근처 집에 있을만한 후배를 불러내 술 한잔 하자고 했다.낮 시간이라 술집 문 연곳이 없어 동네 전통시장 좌판에서 술을 마셨다.후배가 낮부터 무슨 술이냐고 하길래 그냥 한잔 하자하고...(대장암 수술때 까지만 해도 주변에 몇사람 빼 놓고는 알리지 않았다) ,그 친구가 저녁에 일이 있다고 해서 다른 후배를 불러 취하도록 마셨다.암 수술 후 관리하느라 1년 8개월 동안 못 마신 술을 다 마실것 처럼 ...
집에 어떻게 들어 왔는지 모르겠다.깨어보니 내방...
문 밖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니""병원 에서는 다 나았대?"문뒤에다 "어 엄마 !!!" 하고 대답 하는데 갑자기 가슴 저 아래서 뭔가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른다.어머니 들으실까봐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꺽꺽 거리며 울었다.그렇게 며칠동안 술을 마시고 울었는지 모르겠다.그당시엔 아침에 술이 깨면 왜 그리도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잘 아는 후배 한테서 연락이 왔다.
" 형 그러다 진짜 죽어" ..."수술하자" ...대장암 4기 ...5년 생존율 10%...딱히 고민을 해 봐도 수술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거 같다. "그래!! 수술하자, 수술하고 치료해서 내가 10%로 안에 있으면 되지뭐"...
이번엔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다.먼저번엔 멋 모르고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이번엔 도저히 혼자 받을 자신이 없다 .집을 나서기전 어머니를 안아드리고 싶었다.생각해 보니 어린시절 빼고는 어머니품을 느껴본 적이없다."엄마 ,수술 잘 받고 올께"하고 안아 드리고 집을 나섰다 .참 오랜세월 어머니의 품을 잊고 살았다,괜히 쑥스러워 한번도 표현을 못했던거같다.(그럴 가능성은 히박 하지만 혹시 이게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불안감도 잠재의식 아랫편엔 조금 있었던것 같다)훗날 어머니 말씀이 이날도 내가 병원간 후에 어머닌 참 많이 우셨다고 한다 .
2011년12월26일
양쪽폐 절제 수술을 했다.복강경 수술을 해서 외상도 거의 없다 .
수술한지 나흘만에 퇴원해도 좋단다 .폐는 통점이 없어 병원 에서도 딱히 더 치료 해 줄게 없다고...왠지 불안하다.그래서 이틀만 더 있겠다고 했더니 안된단다.난 절때 퇴원 못한다고 버티다가 결국 하루 더 있기로 하고 5일만에 퇴원했다 .
퇴원후엔 절에 들어가 요양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절로 올라 가는데 폐수술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았던 조그만 언덕이 한걸음 띄기도 힘들다 .앞에 반가운 스님이 계신데 통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한걸음 걷고 쉬고 ..또 한걸음 걷고 쉬고 ...
그날부터 한달간 하루에 조금씩 조금씩 운동을해 곧 죽엽산(광릉 수목원 근처)정상까지 오르는데 채 보름이 안 걸렸다 .
폐 수술을 해서 그런지 목소리도 이상해 진거 같다 .약간 쇠 소리도 나는거 같고 ..숨소리도 많이 거칠다 .
난 매일 산 정상에 올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발성연습을 했다. 그리 유명한 산도 아니고 한 겨울이라 등산객도 없었다 .
어떤날은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는데 지나던 등산객이 조용히 산행하라며 뭐라 하신다.난 막 악을쓰며 소리를 지르고 덤볐다.그분이 날 이렇게 만든것도 아닌데 ...난 이름도 모르는 분에게 한참을 화풀이를 했다.내 속에 화가 참 많았나 보다 .그 등산객은 아마 내가 미쳤는지 알았을 게다 .그렇게 미친듯이 발성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소리는 어느정도 힘을 찿은거 같다 .
서너달 절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와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총 8회에 걸쳐 일주일 약을 먹고 2주회복...이번엔 전이암 이라 독한 약을 쓴단다.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먼저번 항암 치료도 힘들었는데...이번엔 그거보다 더 독하다고 한다 .그래도 어쩌겠나...어차피 받아야 할 건데 ...그래도 분명한건 시작하면 끝이 있단 것이다 .
어머니에겐 내가 항암 치료시 밤에 안자고 앉아 있거나, 울거나 좀 이상한 행동을 하지않나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렸다.항암 치료중에 종종 우울증이 생기는 사람들도 있단다 .
일차 항암치료 약을 먹었다 .먹은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데 머리카락이 한 웅큼 빠진다 .먼저번 항암 치료땐 별로 안 빠졌었다.곳바로 근처 이발소로 가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 .
항암치료를 받던중 전세로 살던집이 경매에 부쳐졌다.
"화불단행"이라더니 어찌 이리 갈수록 힘든일만 생기는지 ...
이제 얼마남지 않은 전세금 마져 날릴까봐 전전 긍긍...걱정한다고 해결 될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
2차 항암 치료...
치아가 마치 나무껍질 처럼 시커멓게 죽고 시리고 흔들리고 아프다 .첨엔 이에 뭐가 끼었나 하고 양치질도 해 보고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도 보았는데 여전하다 .치아 까지도 검게 죽는걸 보니 약이 독하긴 독한가 보다 .또 손가락 끝은 찬물만 닿아도 마치 감전된것 처럼 찌릿찌릿 아프다.(이증상은 6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만 되면 아프다...)이번엔 약만 먹으면 토한다 .찬물은 먹지 말라고 하는데 갈증이 심해 꿀꺽꿀꺽 마시면 바로 분수처럼 뿜어낸다 .뭐든 입으로 들어 가기만 하면 토한다,진정제를 먹어도 듣지 않는다 .65키로였던 체중이 항암 치료만 하면 48키로 까지 빠진다 .차라리 죽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다 .그래도 어느정도 회복되면 하루에 조금씩 걷기 운동을해 결국 담 항암 치료전엔 청계산 정상까지 오를 체력을 만들고...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힘든 몸을 이끌고 다시 항암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갔다.
암 병동 입구에만 가면 메케한 약냄새 때문에 헛구역질이 난다.
병원서 주사를 맞고 약방으로 가 처방받은 약값을 지불 하려는데 이번엔 카드가 안된단다 .다른 카드도 안돼고...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지급하고 집에 와서 은행에 알아보니 가압류가 되었단다 .
현금화 할수있는 모든통장, 연금보험, 심지어 선산까지..,내 이름으로 되어있는 모든 것은 다 가압류가 되었다 .
10여년전 부산 서면에 주상복합 아파트에 투자를 했었다. 조건이 너무 좋았기에 노후를 위해 투자 하기로 했었다.대형 건설회사에서 시공하고,전철역에서 몇십미터도 안 떨어져 있고,부동산 전매 가능하고,혼자서 여러개도 할 수 있고,만약 입주시점까지 프리미엄이 없어 매매가 안될경우 건설회사에서 제값에 매입하는 조건었는데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다.설마 대형건설사라서 부도가 나리라고는 생각도 안해봤다.그때 건설회사에서 내 이름으로 중도금등 기타금액을 대출을 받았었다.물론 그 대출 이자도 건설사에서 한동안은 대납을 해 줬었다 .대출 자체가 좀 합법적이지 않아 서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부산 저축은행이 부도가 나면서 책임질 사람이 구속되니 가압류를 한거 같다 .그 큰 건설사에서 뭐가 부족해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분양을 한단 말인가 ..일단 의심부터 했어야 하는데 소개하는 사람도 잘 아는 사람이고해서 믿고 투자를 했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중간에 한두번 부도가 날 뻔 했었다고 한다 .이 일을 통해서 참 많은 교훈을 얻었다 .
아픈몸을 이끌고 법률 구조공단으로 찿아 갔다.변호사는 이길 확률은 높지만 시간이 오래 걸릴거 같으니 암치료에 치중하는게 어떻겠느냐고한다.사실 내가 암에 걸린것도 이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부분 차지 했다고 본다."그래 모든걸 포기하자"지금은 암 치료에만 전념 하자고 생각했다.돈이야 나중에 또 벌면 되니까...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모든걸 포기하고 나니 차라리 맘이 후련하다.
그러는중 항암 치료는 중반을 넘어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집에서 약물치료를 할 땐 힘이 없어 기어 다녔다.어느날 인가는 이번에도 견디다 견디다 저녁에 응급실에 실려가서 하루밤을 보낸적도 있었다.그래도 이번엔 먼저번 처럼 닝거에 의존 하는건 피했다.내 몸이 살아나면 암세포도 살아 난다고 생각 했었기 때문에...(물론 내 생각이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는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서 방문을 걸어 나올 기력조차 없다.
토할거 같아 헛 구역질을 하며 방에서 기어 나오다 거실에서 쓰러졌다.쓰러져 누워 있는데 오히려 몸은 나른하고 너무 편안하다.
오후 했살은 얼굴에 비치고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죽는게 이런거구나...죽으면 이렇게 편안 하겠구나 하고...몸이 나른해 지면서 바닦에 착 가라앉는 거 같았다.그렇게 쓰러져 잠시 꿈을 꾼거 같다 .문득 꿈속에서 내가 암에 걸린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아니 꿈속에서 내가 암에 걸린게 아니라 원래 암에 걸렸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거 같은,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과 현실이 혼란스러웠다...비몽사몽 꿈에서 깨어나 날 바라 보시는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이 세상에서 내가 본 눈빛 중 가장 아름다운 눈빛 이었다.난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따뜻하고 사랑스런 눈은 처음 보았다.아니 어머니의 눈빛은 단 한번도 그렇지 않았을 때가 없었을 게다.그런데도 난 오십이 넘어서야 어머니의 사랑 가득한 눈을 처음 보았다 .나 살기 바빠서 ...아니 어머니를 위한 생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안 했던거 같다.어머니는 당연히 자식에게 무조건 주는 걸로만 알았다.죽을 만큼 아프니까 이제서야 어머니의 사랑 가득한 눈이 보인다 ...바보같이 ...아흔이 다 되어 가시는 지금도 어머니는 아픈 자식을 위해서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니신다.당신 무릅도 아프고 몸도 성치 않아 잘 걷지도 못 하시면서...."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란 말이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이자리를 빌어 우리 어머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
암튼 어렵게 어렵게 항암 치료를 끝냈다.
이번엔 3기 대장암 치료때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좀더 공기 맑은 곳으로 가서 5년 동안 요양 하기로 작정했다.내가 그동안 얻은 정보로는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 조차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암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생존해 있는 분들을 보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간중간 약 6개월간 요양할 곳을 보러 다녔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가 깊은 산속도 아닌 그렇다고 번화가도 아닌 서울 에서 약 70여키로 떨어진곳,병원도 한두시간안에 접근이 가능한 , 대중교통도 하루 10번정도밖에 안 다니는 한적한 곳에서 요양 하기로 했다.물론 이곳뿐 아니라 가평군 북면,강화,남양주등 여러곳 ...자연과 가까운 곳이면 그곳에서 허락하는 시간만큼 머물렀다. 병원갈때와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서울 집에서 하루 이틀 보내고 없을 때에는 이곳에서 대부분 요양을 했다.
이곳은 여름 한철만 좀 북적 거리고 나머지 계절엔 저녁 6시만 되면 적막 강산이다.이곳에서 나는 자연인 처럼 자연의 시계에 맞춰 해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자고 ...집 주변 밭에 내가먹는 채소의 대부분을 심고 산나물 등을 채취하며 지냈다, 쌀 이외의 것은 최대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고 ...,물론 거의 매일 집 뒤 산도 오르고..
어느날은 약초 산행중 발아래 너무나 예쁜 와인색에 윤기가 흐르는 커다란 영지버섯을 두어개 발견했다.
영지의 쓴맛은 그냥 쓴게 아니라 깊고 표현하기 힘든 맛이다.
감사한 맘으로 채취를 하는데 머리위로 윙하는 소리와 함께 말벌 보다 두어배 큰 노랗고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벌 두마리가 날아올랐다 .난 모자로 흔들어 쫏고 몸을 낮춰 얼른 하산 하려했는데 순간 머리가 따끔했다 .머리가 띵하니 엄청 아프다 .급하게 자리를 피하고 가지고 있던 물고 머리를 소독했다.집으로 하산 하는데 머리가 심하게 아프고,멀미가 난다 .미안 하지만 이번에도 119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바로 출동 하겠단다 .난 그전에도 말벌에 쏘인 경험도 있고, 봉독 알레르기도 적으니 집에가서 응급조치를 하고 참기 힘들면 다시 전화를 한다하고 집으로 왔다.삼십여분후 집에 도착해 머리를 감고,얼음 찜질을 했다.그러나 증상은 점점 심해지는거 같다 .머리가 빙빙 돌고 ,토하고,입에서 거품이나고, 쏘인 자리는 부어 올랐다 .급하게 119를 타고 읍내 병원으로가 해독 주사를 맞으니 진정이 된다 .준 자연인 처럼 사는게 참 힘들다 ...그 후 산행시는 스프레이 모기약등 비상약품을 항상 구비하고 다녔다.
항암 치료가 끝난 후 부터는 집안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울 엄니가 평생 하시던 설걷이,집안청소등을 한다.그때 쓰러 졌을때 어머니 눈을 본 다음에 더 늦기전에 어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 이라도 갚아야 했기에 아니 갚는다는것 보다는 이젠 당연히 내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암 때문에 아무일도 못하는게 아니라 설걷이를 통해서라도 내가 살아 있다는 자존감도 회복할 수 있었고 ...
2016년 6월...마지막 검사를 했다.
그동안의 검사는 그냥 덤덤 했는데 이번엔 조금 긴장된다 .
이번 검사만 좋으면 어느 정도는 암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긴장된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간에서 문제가 발생 됐단다.작은 점이 여러개 발견 되었는데 아직 암인지는 모르겠다고 ...
첫번째 수술후 폐로 전이 되었던 생각도 나고, 또 내가 아는 대장암 환자가 대장 ,폐 ,간등의 순서로 전이 되어 죽는걸 보았다.
순간 잠시 흔들렸다. 혹시 나두? 하지만 그동안 내가 했왔던,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지켜왔던 나 자신을 믿기로 했다 .그 동안은 1년 주기로 검사를 하다가 이젠 다시 3개월 후에 검사 하기로 하고 병원을 나왔다.집에 와서는 그동안 보다 더 열심히 운동도 하고 ,나머지 식이요법과 민간요법등은 이제까지 했던 그대로 했다.
2016년 9월 ...다시 검사를 했다 .
역시나 아무 문제가 없단다.사실 자신은 했었지만 그래도 맘 한편 에서는 다소 찜찜한 구석도 있었다.물론 검사 결과가 이상이 없다고 해서 암으로 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내 주변에서 암 전이가 5년 동안 없다가 6년, 8년 후에도 재발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5년이 지나 완치 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제부터는 평생 암과 친구같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다만 그전 보다는 좀 자유롭다는 생각뿐...앞으로의 삶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어느날 문득 거울앞에 서 있다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지난 나 자신의 삶을 돌이켜 봤다.난 암에 걸리기 전에는 고장난 폭주 기관차 같았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내인생을 정신없이 살아왔다.그러다 보니 항상 갈증에 시달려 왔다.현실의 나와 내 기대치 속의 나를 혼돈하며 나 자신을 더욱 힘들게 했다.다른 사람의 잣대로 내 삶을 견주고,그 잣대에 못 미치면 최대한 근사치로 가기위해 미친듯이 달렸다 .
나이 40에는내가 왜 사는가 하는 삶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껴 백두대간 종주도 해 보았다. 동료들과도 며칠밤 술을 마시고 이야기 해봐도 그 어디 에서도 갈증을 해결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날 찿아 보았는데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삶의 진정한 가치가 뭔지도 모르고 내 삶을 그렇게 정신없이 결과에만 치중하고 살았던 내가, 암에 걸리고 난 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문득 "내가 왜 이렇고 살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며 살기도 바쁜시간에...
지금 내가 고민하고 힘들어 한다고 삶이 달라 지는것도,병이 낫는것도 아니고...오히려 힘들어 할 수록 고난과 암은 악화될 뿐이다.
어떻게 살든 미래의 결과는 온다 ,그 대답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
만약 5년 밖에 살 수 없다면 5년밖에 못산다고 징징될께 아니라 나머지 5년을 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면 된다.
그래!!! 난 지금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는데...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반기는 내 삶에 감사한다 ...내가 지금 숨 쉬는것 조차도 감사하다 .어느날엔가는 친구와 이야기 하다 내가 암에 걸리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했더니 친구는 암에 걸린게 감사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물론 암에 걸리지 않고도 이런 행복을 느꼈더라면 좋았겠지만 ...암을 통해서 내 자신의 삶을 좀더 깊이 있게 통찰할수 있었으니 하는 말 이다 .
-재앙- 어떤 사건이 재앙이 되는 것은 그 사건 자체에 있지 않다.그 사건에 휘말려 응당 배울수 있는 교훈을 얻지 못할때 그것이 손실이며 재앙이 된다. 반면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인가 깨달으면 그 사건은 내게 이익이 된다 -법륜스님-
그런거 같다 ,대장암 3기때만 해도 암은 내게 재앙 이었다.하지만 폐로 전이되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이웃에 사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옻을 심하게 타신다고 이야기 하시며,한번은 꿈속에서 옻 나무를 만졌는데 하루종일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 하셨다고 하신다 .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암이 무섭기는 하지만, 스스로 암에게 진다고 생각하면,암뿐만이 아니라 어떤 역경도 극복 할 수 없다는 것이다.내가 진다고 생각하면 우리몸은 먼저 안다,마치 꿈에서 옻 나무를 만졌는데 옻이 오르는 것 처럼....
암 세포 또한 원래부터 우리 몸의 일부였다.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 세포를 화나게 했고 그 세포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건강한 사람들은 암세포가 스스로 죽지만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은 이 암세포가죽지 않고 커지는 것이다 .그러니 암에 걸렸다고 두려워 할게 아니라 내 삶과 생활습관을 잘 관찰해 문제점을 고치고 성난 세포를 달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의학이 발전 한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암도 치료약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쳐 포기하기 보다는 긍적적으로 조금만 잘 견디면 될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편적 범주에서 벗어나 생존해 있으면 기적이 일어 났다고 한다 .난 생각이 다르다 .이 세상에 기적은 없다 .다만 기적이라고 불리는 피나는 노력이 있을뿐...우리는 쉽게 기적 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당사자는 아마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환우들이 고통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때로는 금전적으로 힘든 분들도 있고 ,또한 정신적으로도 ...
스티브 잡스를 보자 ...그는 아마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만큼 의학적 으로는 최고의 치료진과 함께했을 것이다 .물론 정신적 으로도 아마 최선을 다 했겠지만 ...하지만 우리와는 운명을 달리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건 지금 현실에서 할 수 없는것 때문에 목말라 하지말고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최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더라도 그 자체가 지금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방법이면 그 선택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내가 10%안에 들어가 있는것 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도 포기하지않고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잘은 모르지만 인생은 동전의 양면 같다.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고..양지에 있을땐 그늘이 그립고...그늘에선 따스한 했살이 그립다.산이 높으면 오르긴 힘들지만 멀리 볼수있고...그런데 우린 자신이 보고 싶은것만 본다.내가 원하는것이 이뤄졌나만 신경쓰고 그것이 이뤄지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힘들어 한다.행복한 것만 보고 살기도 바쁜데 꼭 남과 비교하며 피곤한 삶을 산다.
어떻게 살든 시간은 간다.그렇다면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고 살면 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메이저리그 타자도 3할대면 톱 타자다.열번중 3번 밖에 잘 치지 못한다.나머지 일곱번은 실패한다.그러니 실패 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 지금 아프다고 힘들어 할 시간에 좀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절망하지 말고 힘차게, 체력이 받쳐 주는한 최선을 다해 암 치료에 전념하시길 바라며...두서없는 글을 여기서 끝낸다 .
땅에서 넘어진자 땅을 짚고 일어나고...
암으로 쓰러진자 암으로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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