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여섯 식구. 1997년 자카르타에서 함께 근무한 최수봉(50)씨를 만나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온 인도네시아의 숙아띤(34)씨의 가정이다.
재혼 가정으로 인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결혼 후 남편만을 바라보고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는 숙아띤씨였지만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어려움도 많았다. 한국에 오자마자 함께 시어머니를 비롯한 남편의 형님네까지 11명의 식구가 살게 됐지만 결혼 후에는 분가하는 것이 당연한 인도네시아의 풍습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는 익숙치 않는 일 뿐이었다고. 하지만 3년 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고 말하는 누구보다도 착한 며느리이다.
현재 숙아띤씨는 남편의 자녀인 8살 아래의 딸 최주희(26)씨와 아들 최병진(24)씨, 그리고 결혼 후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주현양·병민(11)군과 함께 오붓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 어머니로서 딸 주희씨를 만났을 때는 갈등도 많았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아빠가 돌아왔는데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서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나봐요. 저 또한 저만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몇 년간은 별 것 아닌 일로 싸우고 함께 식사하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모녀였지만 2005년 딸아이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변하게 됐다고. 특히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07년 KBS의 러브인아시아에 ‘어색한 어머니와의 사이를 개선하고 싶다’라는 주희씨의 사연이 채택되면서였다. 그동안 문화의 차이로 넘나들지 못했던 모녀 사이의 벽을 방송을 통해 해체시킨 것이었다. 이날 방송을 통한 가장 큰 감동은 바로 숙아띤씨를 위해 마련된 결혼식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주현, 병진씨 없이 조촐하게 치러진 결혼식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한 이날 자리는 숙아띤씨에게도 주현씨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결혼하기 전에 엄마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길 원하는 마음이었대요.”
러브인아시아에의 출연은 또 다른 의미에서 숙아띤씨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처녀 시절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지만 한국에 온 후로는 바깥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던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의 발돋움이 되어 준 것이다.
이후 SBS의 징검다리, 라인업, EBS의 한국어쇼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었다. 또한 현재까지 EBS의 스크린 한국어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영화를 통해 예전의 자신과 같이 의사소통으로 힘들어하는 재한외국인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숙아띤씨는 한국 속의 외국인, 그리고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한 전파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 알게 된 선생님의 요청으로 초등학생과 학부모에게 한국에서의 외국인의 삶에 대한 고충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내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자신과 다르게 생겼다고 지나가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당사자가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려주고, 같은 이유로 친구를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얘기했어요”
숙아띤씨의 사연을 듣고 그런 행동은 좋지 않다고 대답하는 아이들과 공감하는 학부모 분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12년 동안 한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녀이지만 이제는 거꾸로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알려주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