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56)
(4) 脇出諸龍(협출제룡)
이건 이제 옆구리에서 용이 나온다, 용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해요.
從其兩脇하야 出不思議龍과 不思議龍女하야 示現不思議諸龍神變하니
종기양협 출부사의용 부사의용녀 시현부사의제룡신변
그 양 옆구리로부터 부사의한 용과 부사의한 용녀를 출(出). 내어 가지고서 불가사의한 여러 용들의 신통변화를 시현(示現). 나타내 보였나니.
所謂 雨不思議香雲과 不思議華雲과 不思議鬘雲과
소위 우부사의향운 부사의화운 부사의만운
이를테면. 용들이 부리는 신통변화는 뭐겠어요? 구름·비·바람··· 뭐, 이런 거죠. 당연하죠. 소위 우(雨). 비 내린다. 불가사의한 향운(香雲). 향기죠. 아~주 향기가 아름다운, 그런 구름을 많~이 내리는 것이 폭우가 내리듯이 그렇게 한다. 또 불가사의한 화운(華雲). 꽃구름. 불가사의한 만운(鬘雲). 이건 꽃다발 구름.
不思議寶蓋雲과
부사의보개운
불가사의한 보배로 만든 일산(日傘), 덮개죠. 덮개 구름과. 이 ‘개[蓋]’자(字) ‘덮을 개[蓋]’잔[字]데. 인도의 더운 지방에서는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을 아주 귀하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왕이 행차하면 아주 큰, 양산을 가지고 그늘을 지운다든지. 근데 그 양산에 아주 아름다운 치장, 보배로서 아주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왜냐하면 덮는 것이 필요하고. 필요하다 보면 발달했을 것이고. 발달하면 거기에다 온갖 아름다운 치장을 다하고··· 우리나라에도 이제 부채 보면은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하듯이. 인도에는 그늘을 만드는 덮개가 발달을 하고 그러니까 그러다보니까 온갖 보배, 이런 걸로 치장도 하고 그랬겠죠. 그래서 보개(寶蓋)라고 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보배로 된 덮개 구름과
不思議寶旛雲과
부사의보번운
또 불가사의한 보번운(寶旛雲). 또 번(旛)이라고 해서 천에다가 그림을 그린다든지 글씨를 쓴다든지, 그래 가지고 휘날리게 하는··· 말하자면 누구다, 무슨 관운장이다, 유비다, 하고 이름 터억 써 가지고 휘날리는 그런 것들이 번(旛)이예요. 절에서는 아주 그걸 많이 써요, 쓰기를 좋아합니다. 오왕번(五王旛), 시왕번(十王旛), 해 가지고 동서남북으로 부처님 명호를 써서 걸기도 하고. 또 열 왕[十王]들의 이름을 써서, 번(旛)에다 써서 걸기도 하고. 요즘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현수막’텍이겠죠, ‘현수막’. 현수막도 요즘 아주 많이 발달해 있데요. 아주 색깔도, 글씨도, 옛날하고 다르게 이쁘게 잘 만들고 그렇더라구요.
不思議妙寶莊嚴具雲과
부사의묘보장엄구운
또 불가사의한 보배로 된 장엄 거리, 그런 구름을 또 비 내리고
不思議大摩尼寶雲과
부사의대마니보운
또 큰 보배구슬도 비가 쏟아 붓듯이 막, 그렇게 풍부하게 비내리고. 용들이 이제 그런다는 거죠.
不思議寶瓔珞雲과
부사의보영락운
또 불가사의한 영락운(瓔珞雲). 영락(瓔珞)도 보배고 또 거기다 겹치기로 보배영락[寶瓔珞]이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不思議寶座雲과
부사의보좌운
자리. 말하자면 앉는 의자가 됐든지 앉는 깔개가 됐든지 간에, 그런 앉는 자리가 또 보배로 꾸며졌다는 거죠. 그런 것을 비 내리고.
不思議寶宮殿雲과
부사의보궁전운
또 불가사의한 보배로 꾸며진 궁전. 그런 궁전 구름을 또 비 내리고
不思議寶蓮華雲과
부사의보련화운
불가사의한 보배 연화운[寶蓮華雲]. 연꽃인데 보배로 된 연꽃 구름을 비 내리고.
不思議寶冠雲과
부사의보관운
머리에 쓰는 관(冠)인데 보배로 꾸며졌다는 거죠.
不思議天身雲과 不思議婇女雲하야
부사의천신운 부사의채녀운
하늘사람의 몸 같은, 그런 기이한 모습의 그런 구름과. 채녀(婇女)는 궁중에서 왕에게 시중드는 그런 여자를 채녀(婇女)라 하는데 그런 모습. 아름다운 모습이예요, 어쨌든. 그런 일들을 비 내려서
悉徧虛空하야 而爲莊嚴하고
실변허공 이위장엄
모두다 허공에 두루두루해서 장엄을 하고
充滿一切十方世界諸佛道場하야 而爲供養하야
충만일체시방세계제불도량 이위공양
일체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부처님 도량에 충만, 가득~히 채워가지고서 공양(供養)을 올려서. 공양(供養)을 삼아서
令諸衆生으로 皆生歡喜하니라
영제중생 개생환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그 모습을 보고 아~주 기쁘도록, 그렇게 만들더라.
이게, 해당 비구(海幢 比丘)가 삼매에 들어 있는데 삼매에 들어있는 그 순간에 이러한 모습을 연출해 낸다. 그걸 또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공부하러 가는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그 모습을 본 거죠. 지금 현재 상황이 그렇습니다.
(5) 胸出修羅(흉출수라)
그 다음, 흉출수라(胸出修羅)라 그랬어요. 가슴에서는 아수라, 아수라가 마~구, 수없이 수없이 나와 가지고 또, 교화사업을 합니다.
가슴 앞에 ‘만[卍]’자(字)가 있죠. 부처님 딱, 가슴에 ‘만[卍]’자(字)가 있는, 그 ‘만[卍]’자(字)로부터. 아수라가 이제, 무수한 백천 아수라가 나온다. 제가 가끔 우리 불자(佛子)님들, ‘만[卍]’자(字) 목걸이를 해서 걸라고 제가 늘 권하는데. 요거는 딱, 목걸이 해서 걸면은 부처님에게 ‘만[卍]’자(字) 상(相)이 있어요, 본래. 부천님 가슴에. 우리가 목걸이를 적당한 길이로 해서 걸면 오는 그 자리에 부처님에게는 만[卍]’자(字)가 있어요. 이게 아주 길상해. 부처님의 32상(相) 가운데 아~주 길상한 상(相)이 있는데 그거 중에 백호상(白毫相)을 최고로 치죠, 백호상(白毫相). 그 다음 정상육계상(頂上肉髻相)이 있어요. 정상(頂上)에 육계상(肉髻相)이라고. 백호상(白毫相) 다음에 만자상(卍字相)을 최고로 쳐요. 그만치 ‘만[卍]’자(字)는 만덕(萬德)을 구비한 그런, 상징으로서 부처님의 가슴에··· 요 형태에요. 이건 불교에서만 쓰는 거예다. ‘가슴 만[卍]’자(字). ‘만[卍]’자(字) 가 새겨져 있다. 혹은 만상(卍相). 요, 만(卍)의 형상이 부처님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래요.
그래, 예를 들어서 보살님들은 ‘만[卍]’자(字) 목걸이 해서 딱 걸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 부처님의, 새겨진 바로 그 자리에 딱 오니까 그거 하나는 부처님하고 같은 거야. (웃음) 목걸이만 걸어도··· 그럼 어디요, 그게? 그거만 해도 상당히 복이 된다고요. 그럼 내가 복이 없는데 형상만 그렇게, 목걸이만 그렇게 걸어도 복이 되느냐? 되요, 된다고요. 부처님 같이 다 되진 않아. 다 되진 않은데 어느 정도 그게 보완을 해 줍니다. 이, 상학(相學)이라고 하는 게, 그게··· 아, 여러분도 꾸미는 대로 가잖아요? 본래 못난 사람도 자~알 꾸며 놓으면 잘나 보이지 않습니까? 그 보십시오. 그만치 달라지잖아요. 그, 달마 대사, 귀걸이 했잖아요? 그 분이 귀가 그리 빈약한 양반이 아닌데 그보다 더 귀가 커야 된다는 거죠. 그래, 보완한 거죠, 자기 관상을. 귀가 작은 사람은 귀걸이 꼭 해야 되요.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는··· 제가 옛날에 아~주 유명한 관상학자에게 그것을 물었어요. 그런 게 보완이 되느냐? 된다, 이거야, 어느 정도. 100% 다 되지는 않는데 인위적으로 해서 붙여도 어느 정도 된다는 거야. 억지로라도 주름살 제거 해 놓으며는 (웃음) 없는 거 같이 보이잖아요, 일단. 그러니까 그런걸 해서 (···) 그렇게 외형적으로라도 그렇게 하면 보완이 어느 정도 된다, 고 관상학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달마 대사도 귀걸이 했지 않냐고, 그래. 그것도 자기 부족한 거를 보완했다는 거야. 그래, 부처님은 귀가 큰데 달마 대사는 귀가 그렇게 안 크니까 부처님 흉내 내려고 그랬든지··· 어쨌든 하여튼 좀 크게 한 거죠.
그것도 바란스가 잘 맞아야지. 여~엉, 그냥 얼토당토안하게 큰 걸 달아 가지고 칠렁거려 놓으며는 그건 다, 도로 버려 놓는 거지. 달마 대사 귀걸이는요, 크긴 한데 비었어요. 그러니까 커 보이지가 않는 거야. 가늘고 둥글기만 하지 그 안에 차진 않았거든. 그러면 그렇게 큰 걸로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 것도 잘 알아서 해야 돼. 크게 하고 꽉 채우면은, 그건 아주 크게 보이니까 크게 할 때는 안이 비어야 되고. 안이 찼을 때는 작게 해도 그게 보완이 다 된다고요. 저어기 학하리(鶴下里)라고, 대전에, 유성에 가면 학하리(鶴下里)라고 하는 데 거기 금성낙처지지(金星落處之地):추성낙지(樞星落地)라고 금성(金星):추성(樞星:북극성)이 떨어진 그런 터가 있어. 쪼그마~한 동산이야. 아주 작은 동산인데. 흙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겉은 흙인데, 거의가 돌덩어리야, 그냥. 근데 그 작은 산이 말하자면, 그 유성 신도시가 생기게 된, 이유가 바로 그 산 때문이라고 그러더라구요. 금성낙처지지(金星落處之地):추성낙지(樞星落地)라. 중국 사람들. 그 지리를 공부한 사람들이, 중국에 앉아서도 다 알아. 대한민국에 금성낙처지지(金星落處之地):추성낙지(樞星落地)가 있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금성(金星)이 떨어진 듯한 그런 지역이 있다, 라고 해 가지고 일부러 보러 오고 그래요. 그 지리학자들이. 그래, 제가 가 봤잖아요. 가 봤더니. 큰 산 아니야. 그냥 쪼그마한 동산인데. 전체를 보면 3층짜리 집, 정도 되는 고런 작은 동산인데. 통째로 동그랗게 생겼는데 전~부 돌덩이라, 돌덩이. 거기 나무는 났어요. 나무는 나있는데 흙이 전혀 없는··· 99%가 돌덩이처럼 그렇게 됐더라고. 그래서 작은 산이지마는, 돌로, 여러 돌도 아니고 한 덩어리 돌로 딱!딱 뭉쳐져 놓으니까 그만치 효과가 있다는 거야. 그건 토산(土山) 10배 큰 거 보다 낫다는 거지, 그런 거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귀걸이라 해도. 크게 할 때는 비게 해야 되고 작게 하면 차야 되고. 그래서 보충, 다 되는 거예요, 전부가. 작은 고추가 맵다고. 작아도 매우면 되거든요. 그래, ‘만[卍]’자(字) 이거 이야기 할 때마다 제가 보살님들은 ‘만[卍]’자(字) 목걸이, 금으로 하면 좋지마는 금으로 할 돈이 안 되거든 은으로라도 가지고 하고 은으로도 안 되거든 뭐, 철사라도 굴려 가지고 (웃음) 철사 이거 딱 하기 좋아요. 가는 철사···. 그 녹 안 나는 철사 있어요. 그리 하며는 한 가지 부처님 모습은 낸다, 만든다, 이거지. 그런데 이 해당 비구(海幢 比丘)도 가슴에 ‘만[卍]’자(字)가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이건 부처님이 아니고 해당 비구(海幢 比丘)야. 해당 비군[海幢 比丘]데 가슴에 ‘만[卍]’자(字)가··· 그러니까 수행을 많이 하며는 저절로 생기나 보죠.
從胸前卍字中하야 出無數百千億阿修羅王하니
종흉전만자중 출무수백천억아수라왕
‘만[卍]’자(字)로부터 무수한 백천억 아수라왕이 나왔는데
皆悉示現不可思議自在幻力하야
개실시현불가사의자재환력
그들은 모두 다 불가사의한 자재한 환력(幻力)을, 자재환력(自在幻力)을 시현(示現)하더라. 나타내 보이더라. 환력(幻力). 환상. 환영(幻影)아닙니까? 금방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고, 하는. 그런 능력, 그런 것을 시현(示現)해 보여서
令百世界로 皆大震動하야
영백세계 개대진동
백 세계로 하여금 진동하게 한다. 아주 그, 요술과 같은, 요술의 능력이 아주 뛰어난 거죠, 아수라들이.
一切海水가 自然涌沸하고
일체해수 자연용비
일체 바닷물이 그냥, 화~악, 그냥 수천 키로(km) 높이로 솟고
一切山王이 互相衝擊하고
일체산왕 상호충격
산에 ‘왕[王]’자(字)를 붙이는 것은 큰 산들을 주로, ‘왕[王]’자(字)를 붙여요. 일체 큰 산들이 그냥, 서로서로 이렇게 부딪치고
諸天宮殿이 無不動搖하고
제천궁전 무불동요
또 모든 하늘의 궁전들이 동요하지 아니함이 없고
諸魔光明이 無不隱蔽하고
제마광명 무불음폐
또 모든 마구니의 광명들이 전부 음폐(隱蔽)하는 거죠. 마구니의 광명은 쑥 들어가 버린다, 이 말이야. 기운을 못한다, 이 말이죠.
諸魔兵衆이 無不摧伏하며
제마병중 무불최복
그리고 마구니의 군대들이. 병사들이. 전부 항복하지 않는 게 없어. 다~ 항복 다하고
普令衆生으로 捨憍慢心하고
보령중생 사교만심
그래서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교만심을 버리고. 겁을 주는 것은. 자재한 환력(幻力)으로서 이렇게 산을 움직이고 바다를 움직이고 해 가지고서 사람으로 하여금 겁을 주는 것은 방편으로 중생들의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한다. 아무리 지가 잘나서 교만하다 하더라도 이런 모습을 보고 떨지 않을 중생이 없죠. 다~ 떨고 보는 거죠. 그래서 잘난 체 하는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하고.
除怒害心하고 破煩惱山하고
제노해심 파번뇌산
아주 분노하고 해치려고 하는 마음을, 또 제거하고. 번뇌의 산을 깨뜨려 버리고.
息衆惡法하고 長無鬪諍하야 永共和善하며
식중악법 장무투쟁 영공화선
온갖 여러 가지 악한 법들은 전~부 쉬게, 쉬게 딱 하고. 투쟁이 없는 것을 키워서 영원히 함께 화선(和善)하게 한다. 화(和). 화합하고 화목하고··· 이, ‘화[和]’자(字) 같이 좋은 글자가 없어요. 글자 한 자(字)만 가지고 얘기하라면 이 ‘화[和]’자(字)가 제일이야. 평화. 화목. 화합. 뭐··· 이 전부 ‘화[和]’자(字)가 좋아요. 그리고 선(善)하게 한다. 함께, 그것도.
復以幻力으로 開悟衆生하야 令滅罪惡하고
부이환력 개오중생 영멸죄악
다시 환(幻)의 힘으로 중생들을 개오(開悟)해서. 환(幻)은 이제 요술 같은 능력이죠. 요술 부리는 능력, 그런 힘으로서 중생을 개오(開悟)해서. 말세 중생은 특히 그런 신통이 필요해요, 사실은. 뭐, 방편이지마는. 정법(正法)은 아니지마는 그런 신통이 필요하죠. 중생을 개오(開悟)해서 죄악을 멸하게 한다. 어쨌든 방편으로라도 중생 겁 줘 가지고 나쁜 짓 안 하게 할 수만 있으면, 좋죠, 어쨌든.
令怖生死하고 令出諸趣하고
영포생사 영출제취
모두들 생사를 두려워하고 모든 갈래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지옥·아귀·축생·인도(人道)·천도(天道)·아수라. 이걸 취(趣)라 그래요, 여러 갈래. 그런 걸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令離染着하고
영리염착
아주 물들고 집착하는데. 예를 들어서 돈에 물들었다·벼슬에 물들었다·무엇에 물들었다··· 그, 물들어서 집착하는 거, 그런 것을 모두 떠나게 하고
令住無上菩提之心하고
영주무상보리지심
영원히 하여금. 최상의 깨달음의 마음. 보리의 마음에 머물게 하고
令修一切諸菩薩行하고
영수일체제보살행
모든 보살행을 닦게 만들고
令住一切諸波羅蜜하고
영주일체제바라밀
또 일체 모든 바라밀(波羅蜜). 6바라밀(六波羅蜜)이나 10바라밀(十波羅蜜)이나 이런 여러 가지 바라밀(波羅蜜)에 머물게 하고.
令入一切諸菩薩地하고
영입일체제보살지
일체 보살의 지위에, 모든 일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게 하고. 이 보살 지위라고 하면 이제, 10주(十侏)·10행(十行)·10회향(十回向)·10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 그런 수행의 경지를 보살지(菩薩地)라고 그래요.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게 하고.
令觀一切微妙法門하고
영관일체미묘법문
일체 미묘한 법문(法門)을 관찰하게 하고
令知一切諸佛方便하야
영지일체제불방편
일체 제불(一切 諸佛)의 방편을 알게 해서
如是所作이 周徧法界하니라
여시소작 주변법계
이와 같이 짓는 바가 법계(法界)에 가득~히 찼더라.
요건 이제 해당 비구(海幢 比丘)가 삼매 속에 있는데 마침 가슴에 ‘만[卍]’자(字)로부터 펼쳐서 보이는, 그런 현상. 또 그 현상도 역시 중생들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저런 중생들이 많이 나오는데 종국에 가서는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그런 모습이 여기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6) 背出二乘(배출이승)
그 다음에 배출이승(背出二乘)이라. 등으로부터 이승(二乘)들이 나온다, 이승(二乘)들이. 성문(聲聞)·연각(緣覺). 그걸 이승(二乘), 그러죠. 여기서 이승(二乘)이라는 거는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2가지 승(乘)이라는 그런 뜻으로 봐도 좋고. 그냥 이승(二乘), 소승(小乘)이라고 그렇게 봐도 좋습니다.
從其背上하야 爲應以二乘으로 而得度者하야
종기배상 위응이이승 이득도자
등 위로부터 이승(二乘)으로서, 성문(聲聞)·연각(緣覺)으로부터 제도(濟度)를 얻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出無數百千億聲聞獨覺하니
출무수백천억성문독각
무수 백천억 성문(聲聞)과 독각(獨覺)들을 출(出). 내어가지고서
爲着我者하야 說無有我하며
위착아자 설무유아
자기 자신에게, 아(我)에 집착한 자를 위해 가지고서는
이 성문(聲聞)과 독각(獨覺)들이
무아(無我)라. 아(我)가 없다는 것을 설한다.
너~무 아집(我執)이 강한 사람, 아집(我執)이 강한 사람에게는
“아(我)라고 하는 게 없어. ‘너’라고 할 게 아무 것도 없어. 뭐,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 육신 낱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며는 ‘너’라고 할 게 뭐가 있느냐··· 생각도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지고··· 그래, 마음도 고정된 게 아니고··· 이 육신도 고정된 게 아니다. 그래서 ‘나’라고 할 게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하면 ‘나’에 대한 집착이 떨어지거든요. 그걸 이야기해주고.
爲執常者하야 說一切行이 皆悉無常하며
위집상자 설일체행 개실무상
또 모든 게 영원하다. 나도 영원하고 뭐, 우리 집안도 영원하고 돈도 영원하고 벼슬도 영원하고 이 세상도 영원하고 전부 영원하다고 항상(恒常)하다고 집착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제법(諸法)이 무상(無常)이다. 모든 게 다 무상(無常)한 거야. 무상(無常)하지 않는 게 무어가 있느냐···” 그런 것을 잘, 간곡하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해 준다.
爲貪行者하야 說不淨觀하며
위탐행자 설부정관
아주 탐욕행하는 사람을 위해서. 탐(貪). 이 세상,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에 대해서 너~무 사람에 대해서 탐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부정(不淨)한 거야. 사람은 부정(不淨)한 거야. 따지고 보면 전부 피, 고름··· 그런 거 주머니지 뭐 별 수 있냐”고 이렇게, 부정관(不淨觀)을 설명하는 옛날 <아함부 경전> 같은 데 보면 전부 그렇게 해 놨어요. 그리고 백골관(白骨觀). 여기는 전부 부정관(不淨觀)이라 해 가지고 부정관(不淨觀)속에는 백골(白骨)을 상상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인도에는 그런 현상들이 많거든요. 묘를 안 쓰고 그냥 갖다 버려요. 그러면 거기에 쉬파리가 끓고 구더기가 끓고 한 반 쯤, 썩어 자빠진 그런 시체를 관하는. 참문관(**관?)인가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거죠. 그런 것을 관찰하게 하는 거.
그 쪽에 갔다 온 사람들 염주 사 온 거 보니까. 백골(白骨)로 된 염주, 있대. 그거 뭐 하려고 사오는지, 나 참··· 백골관(白骨觀)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 백골관(白骨觀) 하기 위해서 그런 염주 만드는 거야. 백골관(白骨觀) 하는 데 쓰는 염주라, 그거는. 알기는 알고 사야 돼. 그 염주 그거는 백골관(白骨觀) 하는 거예요. 사람에 대해서 탐욕심이 많은 사람은, 말하자면 백골관(白骨觀) 하라는 거예요. 아예 살아 있는, 멀쩡히, 젊고 팔팔히 살아있는 사람을 백골(白骨)로 보는 거야. 그대로. 아주 썩어서 파리가 끓고 구더기가 끓고 하는 그런 모습을 관하고. 그런 게 몇 가지가 있어요. 그걸 모두 합해 가지고 부정관(不淨觀)이라 그래요. 어쨌든 ‘사람은 부정(不淨)한 것이다.’ 부정(不淨)해도 뭐, 무슨 목욕을 안 해서 부정(不淨)한 정도가 아니고. 여기 경전에서 부정(不淨)하다고 하는 것은 백골(白骨)로 된 모습, 그 다음에 시체가 썩어서 막 썩어 자빠진 그런 모습들. 그런 모습을 부정(不淨)이라고 합니다. 그런, 탐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관(不淨觀)을 이야기하며.
爲瞋行者하야 說慈心觀하며
위진행자 설자심관
요건 이제 성을 많이 내는 사람들. 성을 많이 내는 사람들은 자비관(慈悲觀)을 하게 하는 거. 자심관(慈心觀). 자비한 마음을 내게 하는 거예요. 그래, 자비한 마음을 자~꾸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으키는 훈련을 쌓는 거예요. 그러면 성을 내고 싶어도 성이 잘 안 나겠지. 자비심 있는 사람이 왜 성 내겠어요? 성은, 어차피 사람을 향해서 내는 거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지면 성을 낼 턱이 없지.
성을 냈다며는 그 순간은 최소한도로 사랑이 아닌 거야. “내가 뭐, 니가 좋아서 이러지 미워서 그런 줄 아냐?” (웃음) 천만에. 말이지, 화내는 그 순간은 미운 거야, 일단. 금방 그게 지나가서 다행이지, 다행은 다행이지마는, 어쨌든 화내는 순간은 미워서 하는 거야. 그, 여기 보십시오. 성 잘 내는 사람들에게는 자심관(慈心觀)을 관한다. 자비심이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데는 성이 안 나죠.
爲癡行者하야 說緣起觀하며
위치행자 설연기관
그 다음에 이제 중요한 게. 치행자(癡行者). 어리석은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연기관(緣起觀)을 설한다, 그랬어요, 연기관(緣起觀).
우리 불자(佛子)들이 불교 공부 해 가지고 여~러 가지 가르침, 여러 가지 주문들을 우리가 다 들을 수는 없어요. 어차피 능력도 능력이고 머리도 머리고 또 수행도 수행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꼭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연기관(緣起觀)입니다, 연기관(緣起觀). 이건 뭐 우리가 물론 어리석죠. 중생이니까 연기관(緣起觀)을 해야 하는 것이···
제가 오늘 서두에 말씀드린 ‘모든 것은 흘러간다.’ 왜냐?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인연의 힘이 다하면 결국은 흘러가게 돼 있어. 그게 이제. 왜 흘러가느냐. 흘러가면 안 된다. 왜 변하느냐. 니 죽고 나 살자···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이게 어리석음 아니예요? 그건 연기관(緣起觀)을 몰라서 연기의 도리(緣起)를, 인연의 도리를 몰라서 그렇게 하는 거라. 그렇게 한다고 그게, 그냥 있어 주나? 더 빨리 가 버리지, 그러면··· 그런다고 안 있어 준다고요. 전부 흘러가게 놔 둬야 돼, 흘러가게 놔 둬야 ‘아, 이제 인연의 힘이 다 했구나. 인연의 힘이 다 했구나.’ 언젠가 또 돌아올 인연이 되면 또 돌아오리라. 뭐, 돈이 됐든 사람이 됐든 벼슬이 됐든, 그리 생각할 줄 알아야 그게 현명한 사람이야.
여기 보세요.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연기관(緣起觀)을 설해준다, 그랬습니다. 그래, 우리가 연기관(緣起觀)을 몰라서, 연기를 몰라서, 연기의 도리를 몰라서 자~꾸 속도 상하는 거야. 화도 그래서 내는 거야, 어떻게 보며는. 다 인연 도리인 것을.
그렇게 사실은 인간의 문제도 어떻게 보면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거여. 좀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요 이렇게 보며는. 돈이 왔다가고 재산이 왔다가고 집안이 흥하고망하고 사람이 오고가고 하는 그런 문제도 어떻게 가만~히 편안한 마음으로 보며는 물 흐르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건데. 그것을 우리는 거부하려고 하는 거야. 브레이크를 밟는 거야. ‘아, 너는 흘러가면 안 돼, 변하면 안 돼.···’ 거기에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때사부터 고통이 싹트기 시작하는 거야.
불행이라고 하는 거,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거부해. 내 자신 속에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는 데서 또 불행이 싹트는 거예요.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고 그걸 내가 그대로 받아들여 주며는 받아들일 수 있는 열쇠는 연기(緣起)라는 거예요, 연기관(緣起觀). 인연의 도리다, 라는 것을 투철하게 알아 버리며는 브레이크 안 밟는다고요. 그냥 흘러가게 놔두는 거야. 그냥 그렇게 두며는 좀 마음은 섭섭하죠. 마음은 섭섭하지마는 그렇게 뭐, 죽고 못 살 정도로 섭섭하고 그렇지는 않애.
불교를 공부해서 우리가 꼭 놓쳐서는 안 될 게, 바로 인 인연의 도리. 부처님도 뭐 마음을 깨달았다고 하지마는 뭐, 연기(緣起)의 도리를 깨달았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고. 그래서 꼭 우리 불자(佛子)들이 부처님하고 인연 맺고 불교하고 인연 맺어서 정말 하나 꼭 건져야 할 것은 이 세상에 모~든 존재는 인연의 도리로, 연기의 법칙으로 구성됐고. 그렇기 때문에 공(空)한 것이다. 본래는 공(空)했고 그리고 지금도 공(空)하고 앞으로도 공(空)해. 왜냐? 연기의 세력이, 힘이 있는 동안에는··· 마치 이 꽃바구니가, 오늘은 꽃바구니를 만들었다며는. 이렇게 만들어 놔서 이 힘이 있는 동안은 살아있고. 이게 뭐, 며칠 가겠어요? 며칠 가면 없는 거야. 며칠 가면 사정없이 변해 버린다구교. 이게 그게 연기의 도립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 이제 그걸 우리가 마음속에 새길 줄 알며는 그건 이제, 불교를 공부한 소득이 있어요. 불교를 믿고 절에 와서 절하고 기도하고 온갖 불사(佛事)에 동참하고 한 그런 소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착한 일 많이 하면 잘 살고 악한 일 많이 하면 그만치 과보 받는 것도, 그게 뭐여? 그게 연기(緣起)거든. 그게 인연의 도리라고요. 우리, 기도 열심히 하고 부처님에게 잘 하고 뭐, 보시도 잘하고··· 그게 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다고 하는 것도 결국 연기(緣起)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고요. 그걸 알면서, 그래서 복은 지으려고 하면서 자기에게 당장에 닥친 문제는 연기관(緣起觀)을 못 하는 거야. 연기(緣起)로 관찰을 못한다, 이거야. 연기(緣起)로 관찰을 못하고 거부하고 반항하고 그러다보면 마, 불행하고 화나고, 그냥··· 그래서 막, 슬픔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슬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해 가지고 그래서 병도 생기기도 하고 그래 가지고 평생 살면서 한 번 제대로 마음, 툭 터지게 그렇게 한 번 펴 보지도 못한 그런 상태로 그냥··· 산다고요.
그래, 그런 것을 잘 받아들이며는 잘 받아들이는 것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이치가 그러니까, 이치가 그러니까 그렇게 이해해야 된다는 거죠.
서두에 말씀드린,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모든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스치고 지나가게 해야 돼, 스치고 지나가게 해야 돼. 그게 인연이니까. 그래,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거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해서 너무 마음 쓰지 말자. 그게 이제 연기관(緣起觀)이야. 어리석음을 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연기관(緣起觀)을 설한다.
爲等分行者하야 說與智慧相應境界法하며
위등분행자 설여지혜상응경계법
요 등분행자(等分行者)는 3독(三毒). 아까 그 탐·진·치(貪嗔癡)아니예요? 금방. 탐행자(貪行者)·진행자(瞋行者)·치행자(癡行者). 요, 탐·진·치(貪·嗔·癡) 3독(三毒)인데. 요 3독(三毒)이 등분(等分). 평등하게 동등하게 나눠있는 그런 사람. 그래, 3독(三毒)이 똑같다, 이거야. 탐심(貪心)도 있고·진심(嗔心)도 있고·치심(癡心)도 있고. 그 중에서도 이제, 탐심(貪心)이 좀 치우쳐 많은 사람이 있고 진심(嗔心)이 좀 치우쳐 많은 사람이 있고 어리석음이 또 치우쳐서 많은 사람이 있고. 그건 이제 사람마다 쪼끔쪼끔씩 차이가 있어요. 근데 요등분행자(等分行者)는 3독(三毒)이 똑같은 사람. 골고루 다 가진 사람에게는 그를 위해 설해. 지혜와 상응하게, 서로 맞아떨어지게 하는 그런 경계의 법을 설해준다. 역시 지혜가 들어가야만 되는 거예요, 지혜.
爲樂着境界者하야 說無所有法하며
위락착경계자 설무소유법
경계에 낙착(樂着)하는 사람은. 아주 경계에 집착 잘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무소유법(無所有法)을 설한다. <무소유>라는 책이 있죠? 무소유(無所有)라는 보살이 있더라구요. 제가 요즘 발견한 경(經)인데. <무소유보살경> 제가 언제 한 번 번역을 잘 해서 세상에 소개를 하든지 장경(藏經) 속에 들어있어 놓으니까 찾아 보기가 좀 그런데. 그, 무소유(無所有)라는 보살이 있고. 경전이 있더라구요. 경계에 집착을 잘 한다. 이 경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경계든지 상관없어요. 사람도 명예도 돈도 뭐, 가진 모든 것들··· 자식··· 뭐, 이런 모든 것은 전부 경계예요. 그런, 경계라고 하는 경계에는 무조건 집착하는 거야. 그런 사람에게는 무소유(無所有). “있는 바가 없다. 지금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마는 그것도 어느 순간만 그리 있는 거야.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이렇게 이야길 해 준다, 이거야.
爲樂着寂靜處者하야 說發大誓願普饒益一切衆生法하니
위락착적정처자 설발대서원보요익일체중생법
그 다음에 고요한 것만 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죽자고 고요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거, 소극적이예요. 소극적인 삶이라고요, 고요한 것만 좋아하는 사람. 여기 보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큰~ 원력을 발해 가지고서 일체 중생들을 널리 이익하게 하는 그런 법을 이야기해준다. 이게 이제, 보살의 길이죠. 이게 진짜 보살의 길이야. 그래서. 산(山) 중에 들어가서 조용~~하게 산다 하는 거, 이건 정~말 소승(小乘)이고 아주 소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고, 그래요. 조금 더 자기가 노력을 해 가지고 자기가 뭔가 이웃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걸 찾아 가지고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이 말하자면 불교의 목적이예요. 부처님은 그리 살았고.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나는 뭐, 돈 10원도 누구 줄 수 없다. 성격상 그렇다.’ 좋아요, 그러면 돈으로 할 생각, 하지 말라, 이거야. 그러면 노력을 한다든지. 그런 거는 또 가능하잖아요? 자기가 가서 노력을 한다든지. 아니면 지식이 있으면 지식을 제공한다든지. 그렇게 보시할 수 있는 거예요. 돈 드는 거 아니며는 양보하는 거, 나는 뭐, 돈 양보 안 하지마는 차 타다가 자리 양보는 잘 한다. (웃음) 그거, 좋은 거예요. 그건 뭐, 100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다. 여기서 멀리 대신동까지 서서 갈 수 있다. 좋다, 이거야. 그거 얼마나 큰 보시야? 어떤 사람은 또 몇 만원 걷었으면 걷었지, 서서는 못 간다, 이런 사람, 또 있거든. 그럼 반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 세상에 누가 있습니까? 각자 자기 취향대로 자기 할 수 있는 능력대로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적정처(寂靜處)를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게 아니예요, 사실은. 불교가 바라는 바도 아니고.
근데 왜 이제, 불교가 사찰이 산(山) 중에 많이 있고, 산(山) 중에 자꾸 가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옛날 조선 시대 배불(排佛) 정책 때문에 쫓겨 가서 그렇게 산 경우도 있고. 그래, 스님들 자~꾸 세상을 등지는 것도, 옛날에 밖에 나가면 서울 남대문 안에도 못 들어오게 했으니까, 사람 취급도 못 받을 때도 한 때는 있었으니까 그거 어디 기분 나빠서 세상에 나가겠어요? 못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산(山)으로 산(山)으로 사람들 없는 데로 들어오는 거지. 그런 영향들이 사실은 커요. 사실은 도시로 나와서 사람들과 더불어 모든 면을 다 이익하게는 못하지마는 그래도 어딘가 한 명이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면이 있거든요. 그래, 그런 면을 찾아서··· 여기 뭐라고 해 놨어요? 서원을, 큰~ 서원을 발해가지고서 일체 중생을 널리 이익하게 해 준다. 이게 참, <화엄경>에서 발하는 그런 삶이고 불교에서 권장하는 그런 삶입니다.
如是所作이 周徧法界하니라
여시소작 주변법계
이와 같이 짓는 바가 법계(法界)에 두루두루 펼쳐져 있느니라.
삼매에 들어 있는 해당 비구(海幢 比丘), 신체의 여러 가지 부위부위마다 그런 모습들을 어떤 환상처럼. 환영처럼 펼쳐 보이고. 또 그것을 선재 동자(善財 童子)가 관찰을 하고서, 또 그것을 글로 표현이 되고,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등에서 이승(二乘)들이 나왔다, 고하는 이 대목까지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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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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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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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發大誓願普饒益一切衆生法하니...큰 서원을 발해가지고서 일체 중생을 널리 이익하게 하는 법을 설하니...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_()()()_
햇살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덕분에 잘 읽습니다. ()
三毒에 물든 자를 위하여 不淨觀 慈悲觀 緣起觀을 說한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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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연기관(緣起觀)을 몰라서, 연기를 몰라서, 연기의 도리를 몰라서 자~꾸 속도 상하는 거야. 화도 그래서 내는 거야, 어떻게 보며는. 다 인연 도리인 것을.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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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성내는 사람에게 자비관을,
어리석은 사람에게 연기관을 설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스치고 지나가게 해야 한다.그게 인연이니까,공하니까,연기이니까
불행,고통;흘러가는 것을 거부하고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다
신체 곳곳에서 선지식을 방출하여 중생을 건시시는 해당 비구님 대단하십니다
옆구리에서 용,용녀들이 나와서 일체 도량을 가득 채워 공양올려서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한다
가슴에서 아루라 왕들이 나옴
등에서 성문,연각들이 나옴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緣起觀을 설한다
나무 입법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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