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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자경문 - 시작하는 마음 제 21 강
宗師(종사)가 설법을 할 때에 법문 듣는 자세를 얘기한 것입니다.
懸堐想(현애상)을 지어서 退屈心(퇴굴심)을 내지도 말고,
慣聞想(관문상)을 지어서 容易心(용이심)도 내지 말고, 생각을 텅~ 비우고 들으면 그 機緣(기연)을 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말 배우는 자를 따라서 입으로 판단함만 취하지 말라. 판단한다는 것은 처리한다 이 말이지요. 입으로 처리하는 것만 취하지 말라. 그러면 주둥이만 끊어서 모아놓은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입으로만 나불거리고 실천은 없었기 때문에...
귀로 듣기만 하고 실천을 아니한 사람은 귀만 떼어놓은 지옥을 간대요. 아무튼 간에 알 知(지)자, 안다 하는 것은 화살 矢(시)자에다 입 口(구)자 했잖아요. 안다고 하는 것은 入耳出口之學(입이출구지학)이라. 귀로 쏙 들어가고 입으로 쑥 나온다는 말입니다. 口耳之間은 三寸(구이지간삼촌)이라. 귀와 입 사이는 세 치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그 만큼 짧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短販漢(단판한)이라. 짧은 장사꾼이다. 자기 아는 것 한 번 지껄이고 나면 더 지껄일 말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석굴암에 대해서 원고를 한 100장쯤 쓰고 나니까 다기 더 쓸 말이 없더라고... 일본에 사이또 라는 박사는 기왓장 한 조각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3년을 설명을 해도 끝이 없더라 그 말입니다. 학문의 깊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알 知자. 입으로 나불나불 지껄이는 것ㆍ귀로 들은 것. 이것이 말과 소리가 그것이 같이 만날 발랑 발랑 발랑 싸우는 것. 그러니까 싸울 화자ㆍ창 화자ㆍ그것이 識(식)입니다.
識→ 말씀 言(언)변에 소리 音(음)하고 창 戈(과), 창으로 찌른다는 말입니다. 창으로 찌르고 방패로 막고 그럴 것 아닙니까? 창으로 찌르면 으레 방패로 막지요.
그것이 그러니까 識으로 분별하는 것은 知에 불과하기 때문에, 知라고 하는 것은 但取口辦(단취구판)이라. 입으로 판단하고, 입으로 처리해버리고, 입으로 일 다 해치워 버렸다는 말입니다. 일을 입으로 해서 다 치워 버리는 사람, 무엇인가? 그 말이지요.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못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보리도를 성취하고, 알 知자 밑에다가 날 日(일)자를 한, 일월광명과 같이 밝고ㆍ빛나고,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말이거든요. 그것이 智慧(지혜)입니다. 간택 할 수 있는 힘ㆍ결정 할 수 있는 힘. 이것이 智ㆍ慧입니다. 智라는 것은 간택 한다는 뜻이요,
慧라는 것은 결정 한다는 뜻이거든요. 智是簡擇(지시간택)이요,
慧是潔淨(혜시결정)이라. 智라는 것은 간택 할 수 있는 힘이요,
慧라고 하는 것은 결정 하는 힘이더라. 보리라는 것은 智ㆍ覺ㆍ道.입니다. 지혜와 진리. 道는 진리입니다. 옛날말로는 도이고, 요새 말로는 진리이고 그래요. 왜 그랬잖아요. 나는 빛이요ㆍ나는 진리요하는 그런 말 있지요? 智ㆍ覺ㆍ道라는 뜻입니다. 보리도 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중노릇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 알거든요. 예수가 10여 년 동안을 중노릇을 했기 때문에 다 하는 소리입니다.
又不得於主法人(우부득어주법인)에 生輕薄想(생경박상)이니
因之於道(인지어도)에 有障(유장)하야 不能進修(불능진수)하리
니 切須愼之(절수신지)어다.
論(론)에 云如人(운여인)이 夜行(야행)에 罪人(죄인)이
執炬當路(집거당로)어든 若以人惡故(약이인악고)로
不受光明(불수광명)하면 墮坑落塹去矣(타갱락참거의)라하시니
聞法之次(문법지차)에 如履薄氷(여리박빙)하야
必須側耳目而聽玄音(필수측이목이청현음)하며
肅情塵而賞幽致(숙정진이상유치)라가
又不得於主法人(우부득어주법인)에, 生輕薄想(생경박상)하라.
主法人에게, 주법을 거꾸로 해서 법주라고 해도 괜찮아요.
불광에서는 법주스님이라고 그러지요. 법을 주관하는 스님이다 이 것이지요. 법주스님이라고 하나, 주법스님이라고 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법주스님에 대해서, 설법하는 법사스님에 대해서, 그런 말입니다.
生輕薄想하라. 경박한 생각을 내지 말라. 가벼이 여기는 생각ㆍ업신여기는 생각ㆍ시원치 않다ㆍ못 났다는 생각ㆍ에이고 저거 뭐 별 수 있겠나? 선생님이 저래 쪼매가지고 뭐 얼마나 많이 들었겠나? 배울 것이 있겠나?
옛날 보조스님이 금나라 순제의 아들 진각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금나라 천자의 등창병을 고쳐줌으로써 금나라 천자가 스님에게 “뭘 선문 하리까? 뭘 드리리까?” 하니 “중이 뭐 필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돈이 필요합니까? 금이 필요합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천자가 아들이 셋 있는데, 막내가 참 잘 났거든요. 잘 난 아들이 도인감입니다. 왕자의 기상과 고승의 기상은 같은 겁니다. 옛날 큰도인 하고, 왕 하고 곡두하고 지혜도 어슷비슷 해요. 그래서 왕자는 나라를 다스리느라고 번뇌 망상을 많이 끓이기 때문에 하위에 속하고, 스님은 오직 보리도를 위해서 구도를 했기 때문에, 도를 깨달았기 때문에 빛이 나고 힘이 훨씬 더 세니까 왕 상으로 살지요. 스승 노릇을 하지요. 모든 것을 스님한테 자문 해가지고...
어쨌든 간에 금나라 천자 병을 고쳐줬으니까 -등창병을 고쳐준 과거 인과 얘기가 있어요. 그 얘기는 그만 두고... 기니까요.
셋째 아들을 데려다 중 만들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내가 늙어가니까 상좌가 하나 필요한데, 큰아들은 태자니까 놔둬야 되고, 둘째아들은 후보로 놔둬야 되고, 막내아들은 뭐 합니까? 막내아들이나 주면 가져 갈 겁니다.” 왕도 셋째 아들이 제일 잘 났거든요.
태종이 양녕대군ㆍ효령대군ㆍ세종이 막내잖아요. 세종이 제일 잘 났으니까 ‘세종에게 나중에 왕위를 줘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을 양녕대군이 알고 양녕이 일부러 미친 체 했잖아요. 아주 놈팽이 노릇을 했잖아요. 담장도 넘어가지고 술도 먹고 대문도 발로 차고, 완전히 부랑배 행동을 했거든요. 그래서 태자에서 떨어졌거든요. 효령대군이 형님이 저 모양이니까 ‘혹시 나한테 넘어올런가?’ 싶어가지고 아주 얌전하게 행동을 하고 글을 부지런히 읽고 있으니까 양녕대군이 ‘야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놈아, 네한테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셋째한테 생각이 있는 그것을 몰라?’ 그렇게 말은 안 하고, 그런 뜻으로 글 읽는 책상을 발로 걷어 차버렸거든요. “야 이 눈치도 코치도 없는 놈아, 글만 읽으면 제일이냐?”이런 식으로...
그 소리에 알아듣고 중이 됐거든요. 도봉산 망월사에 가서 떡~ 하니 기도를 하고 있는데, 양녕이 사냥을 하러 와가지고 토끼인지 노루인지 잡으러 쫓아서, 자기 동생이 있는 절로 후닥닥 거리고 들어오니까 “아이고 형님, 이런 살생하면 못 씁니다.” 그러니까 껄껄껄 웃으며 “나는 살아서는 왕의 형이요, 죽어서는 부처의 형이라. 참 내가 복도 많은 사람” 이라고 그랬다고 그러지요. 효령대군이 거기서 기도하다가 화신사리가 나타나가지고, 그 사리를 모신 곳이 사리가 파고다 공원에 모신 사리가 거기 사리라고 하잖아요.
그와 같이 금나라 순제도 셋째 아들이 제일 잘 났기 때문에, 셋째 아들을 왕을 삼으려고 하는데, 스님이 셋째 아들을 달라고 하니 곤란하거든요. “아이고 셋째 그거 철이 하나도 없는 것, 어떻게 그걸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스님 속 썩입니다. 큰놈 데리고 가시지요.”
“에이, 큰놈은 다 키워 놓은 걸 제가 어떻게 데려가겠습니까? 조그만 놈 데리고 가서 키우지.” 할 수 있나요? 줬어요. 나이 한 여 남은 살 먹었어도 이놈이 왕자의 상으로 잘 났거든요. 인물이 훨씬 잘 났거든요. 송광사 국사전에 가운데가 보조스님이고, 바로 옆에 진각국사잖아요. 보조스님보다 진각국사가 인물이 잘잖아요. 影(영)만 봐도 그렇잖아요.
10살짜리라도 키도 훨씬 크고 인물이 훤해요. 스님 보니까 쪼매하니 쪼다같이 못났거든요. 진각국사가 따라 나오다가 ‘아이구 제기랄, 저렇게 키도 쪼매한 스님한테 배울 것이 뭐 있겠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스님이 알았어요. “키 큰 사람 앞에 가라.” 그러는 바람에 꼼짝 못하고 그 다음부터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당최 스님 의심할 재주가 없지요. 떡~ 송광사에 내려 와가지고, “3일 동안만 정신을 집중해서 흐트러지지 아니하면 견성성불을 할 수가 있다.” 그 말을 꼭 믿고 그냥 3일 동안을 앉아서 탁~ 정진해서 3일 만에 확철대오 해가지고 견성도인이 됐단 말입니다. 그래 지금 송광사에 삼일암이 있어요. 진각국사가 3일 만에 견성했다고 해서 삼일암입니다.
輕薄想(경박상)을 내지 말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말씀이, 4의법 이란 것이 있어요. 네 가지 의지 하는 것.
依法不依人(의법불의인)하라. 법을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법을 볼 것이지 사람 모양을 봐서 좋으니 궂으니 판단 짓지 말라.
依智不依識(의지불의식)하라. 智를 의지할 것이지, 지혜를 의지할 것이지 분별 식경. 아까 얘기한 識과 智. 식은 중생계요, 지라는 것은 진리의 세계요, 도의 세계입니다. 지혜를 성취하면 바로 보리이고, 식을 가지고 따지면 그것은 어리석은 중생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범부와 성인의 차이가 智와 識. 그것 차이입니다. 중생세계는 식의 놀음이고, 말하자면 성인의 세계는 지혜의 놀음이고요. 지혜냐? 분별식이냐? 이것 차이입니다. 그러니까 依智不依識하라. 지혜를 의지하지, 식을 의지하지 말라. 그 다음에
依意不依語(의의불의어)하라. 뜻을 의지할 것이지, 말을 의지하지 말라. 말은 삐딱하게 할 수도 있거든요. 말은 삐딱하게 해도 그것이 옳은 말일 수가 있다 말입니다. 예뻐서 삐딱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미워가지고 삐딱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잖아요. “처먹고 뒈지라.” 어디 처먹고 죽으라는 소리입니까? 그것이 예뻐서 많이 먹으라 소리잖아요. 좀 과하게 하는 소리겠지만요. 그러니까 말을 의지해가지고 죽으라고 했다고 이렇게 고집세우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것은 예뻐서 하는 소리지요. 그러니까 뜻을 의지할 것이지, 말을 의지하지 말라. 依意不依語하라. 그리고
依了義不依不了義(의요의불의불요의)하라. 了義가 있고, 不了義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국사책 하고,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하고 대학에서 강의 듣는 국사 하고, 국사는 같은 국사 인데, 초등학교 국사는 了義국사는 아닙니다. 요의 학문은 아닙니다.
대학학문이 了義학문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같은 말이라도 끝까지 다 한 것. 완전 요달한, 그 뜻을 요달한, 진리의 세계를 완벽하게 말씀한 것을 요의라고 그러고, 불완전. 완벽하게 설해지지 않은 것을 不了義라 그러거든요. 뜻을 다 마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입니다. 과정 상태까지만 얘기한 것이지, 완전 끝까지 다 말씀한 것을 요의라고 하고요. 依了義언정 不依不了義하라.
대승법은 요의법문이고, 소승법은 불요의법문입니다.
그러니까 “살생하지 말라” 살생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소승의 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살생만 아니해요. 고기먹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했기 때문에 고기는 먹는다 이 겁니다. 이런 제기...
그것은 불요의법입니다. 대승법에서는 살생하지 말라 했으니까 고기도 먹지 말라. 살생하지 말라 했으니까 남의 속도 썩이지 말라. 남의 마음을 찌르지도 말라. 마음을 상하게 하지도 말라. 몸뚱이도 상해하지 말라. 원래는 殺生(살생)이 아니라 傷害(상해)거든요. 정신적인 것을 상해하지 말고 육체적인 것도 상해하지 말라. 남의 마음을 상해하면 자기 마음도 상할 날이 올 것이고, 남의 몸을 때리면 자기도 두두려 맞을 일이 반드시 있게 된다 이 겁니다.
그렇게 얘기 하는 것은 요의법문이고, 요의법문에 살생계고, 살생하지 말라는 소리는 고기는 먹어도 좋다. 남의 속 썩여도 좋다. 두두려 패는 정도는 좋다.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다. 죽지 않을 만치만 패라. 이거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것은 불요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依了義하고, 不依不了義(의요의불의불요의)하라. 요의 법에 의지하고 불요의법에 의지하지 말라. 이 4의법을 의지하라 그랬거든요. 제일 첫째가 依法不依人(의법불의인)이라. 법을 의지하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을 輕薄(경박). 더군다나 主法人(주법인)에 대해서 輕薄想(경박상)을 내지 말라. 이 말입니다. 말솜씨가 좀 서툴다고 해서 ‘에이고 말도 더럽게도 할 줄 모르네. 젠장 맞으리 그런 말쯤은 나도 할 수 있겠네.’한다던가요. 그거 다 안 되는 소리다 이 겁니다.
어떤 사람이 친한 친구 잔칫집에 가는데, 친한 친구집 이니까 바쁘고 해서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그냥 보통 옷 입고 갔어요. 갔더니만, 문지기가 못 들어가게 하거든요. 당신 같은 사람 오는데 아니라고, 대감들만 오는데 라고, 가라고, 가라고 안 가면 혼난다고... “이 집 주인하고 내가 절친한 친구” 라고, “어허, 어디 거짓말 하느냐?”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하고 올 턱이 있냐고 가라고 쫓겨났어요. 쫓겨났지만, 문지기는 몰라서 그런 것이고 친구를 봐서, 관복을 떡~ 차려입고 비켯거라 섯거라 하고 들어가니까 “아이쿠 대감님 어서 오십시오” 하고 윗자리로 모십니다. 주안상을 받아놓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나 라는 사람은 여기 올 자격이 없는데, 들어오게 된 것은 다만 이 옷 덕택이다 이 겁니다. 옷 덕택으로 들어왔으니 먹는 것은 내가 먹을 것이 아니라 옷을 먹여야 될 것 아니냐? 술을 부어가지고서는 “옷 너나 먹어라.” 옷에 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겉모양만 보고 처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겉모양을 본다 하더라도 마음의 자세가 더 중요한 것이거든요.
이 태조와 무학대사의 얘기가 있지요? 둘이 친 하잖아요. 오늘은 농담 좀 하자고 “아이고 대왕 무슨 농담을 하겠느냐?” 고,
“아이 탁 터놓고 농담 좀 합시다. 내가 먼저 할까요?”
“하시오.”
“스님 대가리가 꼭 소 붕알 같소.”
“아이고 대왕님 머리는 꼭 부처님 머리 같습니다.”
그렇게 안 하기로 했지 않느냐? 고, 그래도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 고, “스님 말하는 주둥이가 꼭 돼지주둥이 같소.”
“아이고 대왕님 입은 꼭 부처님 입 같습니다.”에이 또 그런다고... 그래 무학스님이 한다는 소리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것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것이라고 그랬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 태조가 한 방망이 단단히 맞은 셈이지요. 그러니까 主法人(주법인)에 輕薄想(경박상)을 내지 말라. 이런 애기는 수도 없이 많지요.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파계하고 난 뒤에 뒤웅박을 차고 거지대장 처럼 해가지고 털럭거리며 광명진언만 부르고, 모래 한 주먹 가지고 가는데, 경주 조금위에 영일에 가다 보니까, 놈팽이들이 고기를 많이 잡아가지고 냄비에다가 삶으면서 “야 이 파계승아, 파계했으니까 이거나 좀 처먹고 가라.”고 이러거든요.
“그러지 뭐, 좀 먹자.” 하고 솥에다가 삶아놓은 고기를 다 먹어 버렸어요. “먹으라니까 진짜 다 먹어 버렸네.”
“그렇게 아까우면 도로 내 놓지.” 도랑에 가자지고 궁둥이를 들고 똥을 화닥닥 싸니까 다 생고기가 나왔다고 그러지요.
“汝屎吾魚(여시오어)라. 그대들이 먹으면 똥이 되지만, 내가 먹으면 고기가 된다. 생고기가 된다.” 그래 영일에 吾魚寺(오어사)라는 절이 있어요. 겉에 거지 옷을 입고 뒤웅박 차고 거지 형상을 했다고 해가지고, 법이 있는 것을 모르고 놀리다가 고기만 한 냄비 방생당했지요. 이런 애기는 무수하게 있으니까요.
主法人(주법인)에 대해서 輕薄想(경박)한 생각을 내지 말라.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기는 그런 생각을 내지 말라. 因之於道(인지어도)에 有障(유장)하야, 그로 말미암아가지고 도에 장애가 있을 것 같으면 不能進修(불능진수)하리니, 닦을 수가 없을 것이니 切須愼之(절수신지)어다. 모름지기 삼가할 것이니라. 역시 똑 같은 소리입니다.
論(론)에, 논에 이르기를 云如人(운여인)이 夜行(야행)에,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罪人(죄인)이 執炬當路(집거당로)어든, 죄진 사람이, 허물 있는 사람이 횃불을 들고 길에 떡 나왔거든요. 죄인이라고 할 때는, 죄인은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중생은 기독교에서 보면 죄인 아닌 사람이 없잖아요. 기독교에서 볼 적에는 다 죄인이지요. 원죄라 하든가 뭐라 하든가 다 죄인이지요.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이니까 다 죄인이잖아요. 그런데 죄인이 죄를 지어서 죄인도 있고, 죄를 안 지어서도, 자기가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더라도, 자기 부모가 돌아가시면 “아~ 저는 죄인이올시다.” 본래 그러는 겁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喪(상)을 만난 사람은 죄인이라고 해가지고, 지팡이 짚고 큰 삿갓 쓰고 자기가 죄인이니까 부끄러워서 하늘을 볼 수 없다 이 겁니다. 그래서 죄인이라고 하는 수 도 있고, 죄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어요. 죄를 지어서 죄인일 수도 있고 그런데, 그 죄인이 어쨌든 간에 안 좋은 그런 사람이, 執炬當路(집거당로)어든, 횃불을 들고 떡~ 길에 나왔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밉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밉다고 해가지고 若以人惡故(약이인악고)로 했는데, 人惡故(인악고)로 하지 않고, 제가 어릴 때 우리 스님한테 배울 적에는 人惡故(인오고)로 라고 배웠어요. 그러니까 惡(악)이라고 하지 않고, 惡(오)라고 배웠어요. 그 사람이 밉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왜 밉나요?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잖아요.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거든요. 사람을 미워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김으로써 결국은 자기한테로 돌아온다 이것이거든요. 그래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이것이 중요한 애기들입니다. 사람을 미워한 연고로, 사람이 미운 연고로, 그 사람이 밉기 때문에, 꼬라지도 보기 싫기 때문에 不受光明(불수광명). 그 사람이 들고 있는 횃불도 보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 사람 횃불 불빛도 안 보려고 눈 딱 감고 들어간다 이 말입니다. 不受光明, 그 광명을 받지 않는다면 墮坑落塹去矣(타갱락참거의)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개천에 빠질 수밖에 더 있느냐? 구렁창에 뚝 떨어질 수도 있고, 눈 감고 가다가 개천에 푹 빠질 수도 있고요. 塹壕(참호). 군대에서 참호 판다고 그러잖아요. 일부러 구덩이 파놓은 것을 참호라고 그래요. 개천이라는 뜻이지요.
墮坑落塹去矣니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개천에 빠질 것이다. 했으니, 그런 말씀이 논어에 있다 이 말입니다.
聞法之次(문법지차)에, 법문을 들을 때에는 如履薄氷(여리박빙)하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 소리는 詩經(시경). 속가에서도 있는 말입니다. 어쨌든 조심조심하라는 말이지요. 얇은 얼음을 쾅쾅 밟으면 깨질 것 아닙니까? 깨져서 빠질 테니까 살금살금, 살금살금 아주 조심조심하라 이 말이지요. 必須側耳目而聽玄音(필수칙이목이청현음)하며, 반드시, 모름지기 必須. 必ㆍ須라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須자도 반드시 必자와 같은 겁니다. 모름지기라는 말도 반드시라는 말입니다. 필수라는 것은 숙어입니다. 側耳目. 耳目이라는 것이 숙어이고요. 側은 기울인다는 뜻이니까 耳目을 기울여서, 귀와 눈을 기울여서, 아주 정신, 정신 차려서 聽玄音이라. 玄音 = 깊은 말씀. 검은 소리라는 말인데 검은 것은 깊다는 뜻입니다. 玄玄(현현)하다. 이치가 아주 깊다는 뜻입니다. 깊은 법문소리를 들을 것이며,
그렇게 해서 법문 듣는 그 장소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숨소리 하나도 아주 조용해가지고 법문을 듣고 있었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일심으로 법문을 듣다가 肅情塵而賞幽致(숙정진이상유치)라가, 肅情塵而. 肅이라는 것은 엄숙하다 이 말입니다. 그 장소가 아주 정숙해요. 정진이라고 할 적에는 六情과 六塵(육정육진)을 말합니다. 여섯 가지 情. 六情이라는 것은 六入(육입)이라고도 하는데,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 생각. 여섯 가지 알음알이, 情이라는 말이지요. 이것을 六根(육근)이라고도 하고, 六入이라고도 합니다.
六根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뿌리가 되어가지고, 귀에 소리가 들어가고ㆍ눈에 색깔이 들어가고ㆍ코에 냄새가 들어가고ㆍ입으로 맛을 맛보게 되고ㆍ몸뚱이로 감촉을 하게 되고ㆍ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이 말이지요.
아~, 는 눈 眼(안)자를 표시하는 겁니다. 사람이 섰는데 눈으로 척 본다 이 말입니다. 어~, 는 사람이 섰는데 소리가 탁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鼻는 오거든요. 舌은, 우입니다. 목구멍에서 혓바닥이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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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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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法之次(문법지차)에 如履薄氷(여리박빙)하야...법문을 들을때에는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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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聞法之次에 如履薄氷하야 必須側耳目而聽玄音하며.. 법문을 들을 때에는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고 모름지기 정신을 차려 집중하여 이치가 깊은 법문소리를 들을 것이며,,,
대원성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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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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