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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정기법회_길상경 51
정기법회 때마다 법문해 드리고 있는 「길상경」의 마지막 두 게송이 남았고, 오늘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세상법과 만난 어떤 이의 마음이 ➀ 동요하지 않는 것, ➁ 슬픔이 없는 것, ➂ 애착 등의 때가 없는 것, ➃ 안온한 것, 위험이 없는 것, 이 네 가지가 거룩한 행복과 번영의 원인인 길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빠알리어로 된 이 게송을 잘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미얀마에서는 미얀마어 게송으로 독송을 합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이것을 독송합니다. 우리 선원 어린 신자들도 한국어로 독송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통행복 세상법은 누구든지 경험해
좋고나쁜 두가지쌍 번갈아서 항상해
세법겪어 두려워마 동요치마 확고해
슬픔없어 때없어 안온행복해
이~것~이 불교에서 세상길상들
35. 세법부동 길상(Puṭṭhassa maṅgalā )
35번째 길상은 세상법과 만났을 때도 동요하지 않는 길상입니다. 우선 loka세상+dhamma법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법lokadhammā/ 세간팔풍
이득대중 칭송해 행복기뻐해
그네가지 반대돼 세상슬퍼해
세상법은 못피해 겪어확실해 (마하시사야도)
➀ lābha: 이익이 많음, ➁ alābha: 이익이 적음, ➂ yasa: 대중이 많음, ➃ ayasa: 대중이 적음(yasa, ayasa를 명성과 불명예라고 하는데 미얀마에서는 대중이 많고 적음이라고 한다), ➄ nindā: 비난받음, ➅ pasaṁsā: 칭송받음, ➆ sukha: 행복, ➇ dukkha: 고통, 이 여덟 가지가 세상법 8가지입니다. 한문으로는 세간팔풍이라고 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좋은 법이 네 가지, 좋지 않은 법이 네 가지로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이 여덟 가지 법들이 좋은 것 하나만 계속 생겨나지 않고 나쁜 것과 번갈아 생겨나고, 세상에서 지내는 이들이라면 확실하게 겪어야 할 성품들이기 때문에 세상법lokadhamma라고 합니다. 혹은 ‘세상’을 ‘중생세상’으로 취해서 중생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에 세상법이라고 합니다.
❖부처님: 웨란자 마을, 에까날라 바라문 마을, 찐짜마나위까와 순다리 등
으뜸이고 가장 거룩하신 부처님조차 이러한 세상법에서 벗어나지 못하십니다. 부처님께서도 가끔씩은 다하지 못할 정도, 한계를 알지 못할 정도로 네 가지 필수품을 많이 수용하시더라도 가끔씩은 매우 적은 경우도 겪으십니다. 웨란자Verañjā 성에서 안거를 나실 때 마라의 장애로 인해 말 사료로 쓰는 거친 보리가룻 죽을 안거 3달 내내 드셔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러한 것을 공양하셨기 때문에 제자들께서도 똑같이 그러한 것을 공양했을 것입니다.
가끔씩은 에까날라Ekanāḷa 바라문 마을에서 탁발하실 때 마라가 부처님을 직접 사로잡지 못하므로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사람들이 공양을 올릴 인식을 확립하지 못해, 가지고 가신 발우 그대로 다시 가지고 돌아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칭송의 측면에서는 사람과 천신, 범천들의 같음 없는 칭송을 받으시기도 하시지만, 찐짜마나위까Ciñcamāṇavikā의 비방, 순다리Sundarī 유행녀의 비난 등을 연유로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의 비방도 받으신 적도 있었습니다.
행복과 고통의 측면에서는 과 증득의 행복, 멸진정의 행복이라는 행복을 누리시지만 가끔씩은 요통, 두통, 복통 등의 육체적 고통도 겪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그러한 성품들은 누구라도 다 겪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lokassa세상의+ dhammā법= lokadhammā,' 즉 세상의 법, 세상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법, 혹은 중생이라고 하면 누구나 피할 수 없이 생겨날 법이기 때문에 세상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대중이 많고 적음의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가끔씩은 몇 천, 몇 만, 몇 억 천신들로 대중들이 많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나가사말라라는 비구가 부처님의 시종 사문으로 부처님의 대가사와 발우를 들고 뒤에서 따라가다가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으로 가자꾸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비구는 “부처님, 저는 왼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가사, 발우 받아주십시오. 저는 왼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해서 부처님께서 가사와 발우를 지니시고 혼자 가신 적도 있었습니다. 왼쪽 길에는 도적들이 숨어있었고 나가사말라 비구는 가사와 발우 모두 약탈당하고 머리는 맞아서 깨진 상태로 부처님께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중이 적을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법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 아라한의 마음
그러한 세상법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좋은 것과 만났을 때 너무 들뜨지 않고 싫은 것과 만났을 때 너무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라한의 마음이지 다른 이의 마음이 아니라고 주석서에서 설명했습니다. ‘동요하지 않는 것은 아라한의 마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일 좋은 것, 완전하게 동요하지 않는 것을 취하고자 제일 높은 것을 드러내어 설명하는 방법, 최상현시방법ukkaṭṭhaniddesa에 따라 설명한 것입니다. 아라한들은 원하는 대상이나 원하지 않는 대상과 접했을 때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상태로, 원하지 않는 대상을 원하는 상태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어 관조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여여tādi한 덕목을 갖추었기 때문에 큰 바위가 아무리 거센 바람에도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아라한들은 비난이나 칭송 때문에 동요함이 없는 현자라고 부처님께서 칭송하신 게송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하깟사빠 존자의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가난한 신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공양을 받으십니다. 어느 날은 한센병에 걸린 어떤 한 사람을 섭수하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그 사람이 공양을 올릴 때 음식 자체도 좋지 않았고, 또 병 때문에 손가락이 끊어져서 마하깟사빠 존자의 발우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만약 마하깟사빠 존자가 그 자리에서 드시지 않고 그냥 가신다면 그 사람은 ‘그렇지, 손가락이 떨어졌으니까 이 밥은 버리시겠지’라는 마음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마하깟사빠 존자는 직접 보는 앞에서 앉으려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자리를 깔아드리자 마하깟사빠 존자는 그 자리에 앉으신 후 발우에 떨어진 손가락을 한 쪽으로 보내면서 공양을 드셨습니다. 한센병으로 썩은 손가락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상태로 아라한들은 마음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라한들의 여여한 덕목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소리만 들어도 역겨우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 다른 이들
하지만 아라한이 아닌 다른 유학 성자나 범부들도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적당한 정도로는 동요하지 않은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앙굿따라 니까야』 여덟 가지 모음, 「세상경」에서 범부와 성제자가 세상법과 만났을 때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범부들은 세상법과 만났을 때 세상법이라는 것은 항상하지 않다는 사실, 괴로움이라는 사실, 변화하고 무너지는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숙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범부의 마음은 세상법과 만났을 때 그러한 세상법에 휘둘립니다. 세상법에 제압당합니다. 좋은 세상법과 만났을 때는 그 세상법에 따라 즐겨 버리거나 아만·자만으로 우쭐해 버리고, 나쁜 세상법과 만났을 때는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낙담합니다.
반대로 성제자들은 세상법의 anicca무너지기 마련인 성품, dukkha괴로움인 성품을 숙고합니다. 그렇게 숙고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법이 그의 마음을 휘두르지 못합니다. 좋은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지나치게 좋아하지 않고, 나쁜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나쁜 것에 반발하여 화내거나 마음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성제자만 세상법에 동요하지 않는 이라고 설하셨고, 범부들은 동요하는 이들이라고 설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상함 등을 전혀 숙고하지 못하는 범부들만 동요한다고 의미를 취하면 성자들에게는 비록 미치지 못하겠지만 일부 범부들은, 현명한 범부들은, 훌륭한 범부들은 법의 성품을 어느 정도 숙고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만큼은 세상법을 견딜 수 있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숙고 방법
✱ kammassakā 업만이 자기재산
첫 번째 견디는 방법이 나눠드린 자료에 있는 것처럼 kammassakā, 미얀마에서는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라고 표현합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kammassakā업만이 자신의 재산인 성품이 바로 세상법 때문에 동요하지 않게 해결해 줍니다. ‘선업을 행하면 좋은 결과를 받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쁜 결과를 받는다. 업만이 각자의 진정한 재산이다’라고 잘 숙고하는 것도 세상법 때문에 동요하지 않게 해 줍니다.
불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업 자기 재산 정견이 있기 때문에 나쁜 세상법과 만났을 때 본인이 노력할 것은 다 한 뒤에도 전혀 예상치도 않은 어떠한 조건 때문에 재산적인 측면에서 손해를 본다든지 하면 ‘kammassakā, 업만이 자기 재산이지. 업에 따라서이다. 업은 누구도 어찌할 수 없다’라는 등의 숙고를 통해 일부 사람들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래 마음을 잘 다스리면 마음의 그 요소가 성숙하게 됩니다. 나쁜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너무 들뜨거나 하지 않고 ‘업이 좋을 때뿐이다. 업이 나쁘면 다시 무너지기 마련이다’라는 등으로 숙고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도취하거나 너무 지나치게 즐기거나, 아만·자만으로 우쭐하지 않습니다.
✱ 무상함
두 번째 숙고 방법이 무상합니다. 앞에 예를 든 「세상경」에서 성자들은 무상함anicca의 성품, 무너지기 마련인 성품을 숙고하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일부 사람들은 무상함, 괴로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아의 성품을 숙고해서 해결하기도 합니다. ‘좋은 것과 만나든지 나쁜 것과 만나든지 모든 것이 무상하다. 항상한 것이 어디 있는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 성품법대로 생겨나는 것일 뿐이다’라는 등의 숙고를 통해 마음을 진정시키곤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무상함을 숙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주 숙고하여 많이 진정시켜 시간이 흐르면 마음 요소가 성숙하게 되어서 더욱 세상법을 잘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좋은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지나치게 취하거나 즐김이 없고 나쁜 세상법과 만나더라도 마음을 진정시켜 동요하지 않게 됩니다.
✱ 부처님조차
세 번째는 세상법과 만났을 때 ‘부처님도 벗어나지 못하거늘 우리 같은 이들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라는 숙고를 통해서 일부는 해결하기도 합니다.
❖ 비난과 칭송
✱ 비난칭송 칠일뿐
8가지 세상법 중에 이익이 많고, 이익이 적고, 재산적인 측면에서 이익이 있고, 없고는 등의 세상법은 어느 정도 잘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는 이라 하더라도 비난과 칭송 때문에 동요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쉽게 동요합니다. 칭송받으면 지나치게 들뜨고, 비난받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특별히 다스리기 힘듭니다. 미얀마 속담 중에 ‘칭송도 일주일, 비난도 일주일, 칭송도 7일뿐, 비난도 7일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생각해서 전혀 신경 쓸 것이 아니다’라고 중시하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이 속담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에서 나온 격언입니다.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성에서 머무실 때 사리뿟따 등 많은 이들이 출가했습니다. 그때 다른 이들이 “왜 선남자들을 출가시키느냐”라고 비난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을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그 비방소리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여래에 대한 비방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않느니라. 칠일 정도만 지속될 것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Vin.mv.55)
✱ 아뚤라 거사(DhpA.ii.209)
아뚤라Atula 거사가 부처님에게 “부처님에게 법문을 들으러 왔습니다”라고 자신이 법문을 들으러 온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법문을 듣지 않았는가?”라고 부처님께서 물으시자 “부처님, 레와따 존자에게 갔는데 레와따 존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어려운 아비담마 법을 많이 설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에게 갔더니 아난다 존자는 법에 인색하듯이 법을 조금만 설했습니다. 그래서 그 존자들에게 조금 화가 나서 부처님께 온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뚤라여, 세상에서는 왕을 일부는 비방하기도 일부는 칭송하기도 한다. 일부는 해나 달, 땅을 비방하거나 칭송하기도 한다. 나 여래도 비방하는 자는 비방하고 칭송하는 자는 칭송한다. 어리석은 이들이 비방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현자들이 비방하지 않도록, 칭송 받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자들의 칭송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두 번째 말씀이 더 중요합니다. “이 비방이라는 것은 지금 시대에 새로 등장한 법 성품이 아니다. 이전부터 지속된 오래된 법 성품이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이도 비난한다. 말을 많이 하는 이도 비난한다. 잘 가늠해서 말하는 이도 비난한다. 세상에 비난을 절대로 받지 않는 이란 없다. 절대로 비난 받지 않는 이, 절대로 칭송만 받는 이란 과거에도 없었고, 나중에도 없을 것이고, 지금도 없다”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내용을 잘 기억하시면 본인이 잘못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거나 비방받았을 때 비난이라는 세상법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좋은 숙고거리가 됩니다.
미얀마에는 “바보 만 명 비난해도 현자 한 명 칭송한 그것이 바보 만 명 비난을 무너뜨린다, 쓸모없게 만든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 만 명이 비난하더라도 현명한 사람 한 사람만 칭송하면 현명한 한 사람의 칭송이 어리석은 사람 만 명의 비난을 무력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나쁜 사람 만 명이 칭송하더라도 현명한 사람 한 명이 비난하는 것이 의미가 커서 그 칭송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우 뽀우 사야도지는 “사람, 천신, 범천들이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비난하시는 것을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면 부처님이 비난하시는 것이니까 그것을 마음속에 잘 새겨야 할 것입니다.
비난받으면 마음 다스리기가 힘들기 때문에 거듭 거듭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위의 방법들이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 비구라면 견뎌야
과거에 한 비구가 한 집에 탁발 나가다가 그 집과 친밀해졌습니다. 그리고 수행도 해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 집 주인과 친해진 사실을 보게 된 한 천신이 그 장로가 아라한인 줄 모르고 그 비구의 불이익을 원하지 않고 이익을 원하여 그 집의 안주인 모습으로 변신해서 그 비구에게 다가가 “존자시여, 나루터나 도시입구, 대로, 집회소 등 곳곳마다 존자와 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메아리 같은 소리는 많기 마련이오. 비구라면 그러한 소리를 견딜 수 있어야 하오. 그 소리 때문에 의기소침해지면 안 되오. 숲에서 바람 불 때마다 놀라는 사슴처럼 비방하는 소리에 잘 놀라는 비구는 마음이 가벼운 자라고 할 수 있소. 그러한 비구는 거룩한 실천을 성취할 수 없소”라고 말했습니다.
본인이 잘못이 있는데 비난받는다면 고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비구의 일화를 통해 본인이 잘못이 없는데 비난받는 것만으로는 자신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에 반응해서 비난소리에 놀라거나 의기소침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해야 할 일만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숙고 잘 하시도록 이 이화를 설명해드렸고, 이것도 비난을 해결하는 좋은 숙고 한 가지입니다. (S9:8, Kulagharaṇīsutta, 안주인 경)
36. 슬픔없음 길상(Asoka maṅgalā)
슬픔soka이란 부모가 돌아가시거나 재산의 무너짐 등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는 이의 마음이 슬퍼하는 것,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그 슬픔과 접했을 때 해결책이 없는 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슬퍼하기도 합니다. 뒤에 설명해드릴 여러 가지 일화나 경전에 있는 내용을 통해서 법성품을 숙고하는 것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대념처경, 새김확립 긴 경」에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게 하는 오직 유일한 길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새김확립이니라”라고 분명히 설하셨습니다. 새김확립, 위빳사나 수행을 통해서 슬픔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 숙고와 새김확립
✱말리까(Dhp.게송224 일화)
반둘라Bandulā 장군의 아내인 말리까Mallikā는 어느 날, 승가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녀가 들고 오던 버터단지가 깨졌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무너지기 마련인 것은 무너지는 법이오. 너무 걱정하시 마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말리까 여인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어 “존자시여, 제 남편과 아들, 33명이 모두 죽었다는 전갈을 받았어도 감관을 무너뜨리지 않고, 슬퍼하지 않았는데 이 버터단지 때문에 어찌 슬퍼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아들이 한 날 한꺼번에 다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이 정도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이 말리까 여인이 아직 특별하게 깨달음을 얻은 성자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성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주 자주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 무상함, 죽음이라는 성품에 대해서 잘 마음을 기울였기 때문에, 법의 성품을 잘 아는 힘 때문에 슬퍼하지 않는, 아라한의 마음이지만 일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얻을 수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라가 자따까(죽음새김)
과거 한 바라문이 아들이 죽어 집안식구들과 함께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고, 남편이고, 오빠였는데도 모두가 슬퍼하지 않고 비탄하지 않고 고요하게 있었습니다. 그때 제석천왕이 여행자로 변신하고서 다가와서는 그들이 울지 않는 이유를 한 사람씩 물었습니다.
바라문은 “뱀이 옛 허물을 버리는 것처럼 아들도 이전의 생을 버린 것일 뿐입니다. 죽어서 전혀 쓸모없게 된 이 몸을 화장하는 것도 다음 생에 태어난 그는 모를 것입니다. 친척들이 울고 있는 것도 모를 것입니다. 자신이 가야 할대로 가버렸으니 나는 울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남자라서 마음을 잘 다스린다고 칩시다. 어머니라고 하면 아들을 아주 사랑하고 애착하는데 왜 울지 않습니까?”라고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는 우리가 부르지 않았어도 다른 곳에서 왔고, 지금 우리가 보내지 않았어도 가버렸습니다. 자기 성품대로 온 것처럼 자기 성품대로 가버렸으니 울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울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누이는 “내가 울고 있으면 나만 피곤할 뿐입니다.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마음의 불편함만 더욱 많이 생길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어린아이가 허공에 가고 있는 달을 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죽은 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친척들은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아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녀는 “깨져 버린 항아리를 다시 붙일 수 없듯이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깨진 항아리처럼 이익을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라가 자따까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
이렇게 숙고하는 모습이 수준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한 숙고는 그들의 지혜가 매우 성숙한 마음 요소 때문입니다. 그처럼 견딜 수 있는 마음 요소를 갖게 된 것도 주석서에 보면 오랜 세월 끊임없이 익혀 온 죽음새김maraṇasati 수행 때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죽음 새김 등의 수행을 닦는 것도 슬픔을 가라앉히는 약이 될 수가 있습니다.
37. 때가없음 길상(Viraja maṅgalā)
여기서 때raja란 애착,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보통의 때, 먼지가 몸에 떨어지면 몸을 더럽히는 것처럼, 그 법들도 마음속에 생겨나면 중생들을 더럽히기 때문에 ‘rajo viyāti rajo 먼지와 같이 때문에 먼지라고 한다’라는 단어분석처럼 때와 같기 때문에 raja라고 명칭한 것입니다. 애착 등이 더럽히기 때문에 그러한 법들이 없어 깨끗한 마음은 행복과 번영의 원인이 되는 길상이 됩니다.
관련된 도,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도를 통해 아직 제거하지 못했다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직 아닙니다. 여기서는 아라한으로서 완전히 없어진 것을 말하지만 범부라도 참사람들은 그러한 법들의 허물을 보고서 없애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수행 행위를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착 등을 수행으로 내부에서 빼내야 합니다.
38. 안온평화 길상(Khema maṅgalā)
안온khema이란 위험이 없는 것, 안전한 것입니다. 주석서에서는 네 가지 속박yoga에서 벗어나 위험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네 가지 속박이란 감각욕망kāma, 존재bhava, 사견diṭṭhi, 무명avijjā입니다. 법체로는 탐욕, 사견,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 법들은 번뇌kilesā여서 마음을 더럽히고 번민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 법들이 사라지지 않은 마음은 안온함이 없습니다. 안전함이 없습니다. 반대로 그러한 법들이 완전히 사라져 깨끗한 아라한의 마음은 언제나 안온하여 길상이 됩니다. 이 길상은 아라한들과만 관련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도 적당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수행을 통해 불선법들을 빼내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는 그때는 그 법들이 없기 때문에 길상이 됩니다.
결어와 칭송
「길상경」의 게송을 다 설하셨을 때 천신들만 헤아려 일조의 천신들이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이 된 천신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시, 지계, 수행을 잘 실천하셔서 이번 생, 이번 몸, 이번 부처님의 가르침에 성자가 되시면 좋고,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려서 다음 부처님이 출현하셔서 「길상경」을 설하실 때 천신의 몸으로 일조 천신들 중에 포함되시길 바랍니다.
사-두 사-두 사-두
서른여덟 길상들을 따라서들 실천해
재산행복 영화늘어 좋은이익 번창해
위험없어 호인늘어 몸과마음 행복해
말과생각 모든행 승리확실해
그~래~서 장엄하길 길상꽃들을
38 길상들을 따라서 실천하면 재산도 늘고 영화도 늘고, 행복도 늘고, 좋은 이익들도 번창합니다. 위험도 없고. 호인好人, 즉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고, 몸과 마음의 행복도 늘고, 말과 생각 모든 행하는 것에서 승리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을, 특히 마음을 길상이라는 꽃으로 장엄하라는 뜻입니다.
이 「길상경」은 부처님에게 자정 즈음 천신이 와서 길상에 대해 여쭈었고, 그 천신을 위시하여 여러 천신, 범천들에게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입니다. 다음날 부처님께서는 그대로 아난다 존자에게 가르치셨고, 다른 비구들에게도 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자신이 배운 대로 아난다 존자는 「길상경」을 비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승가가 이렇게 스승 대대로 계속 배우고 익혀 온 이 「길상경」의 가르침이 지금까지 온 세상에 분명하게 지속되고 퍼졌습니다.
38가지 길상법들이 여러분들, 여러들의 가족, 여러분들의 지내고 있는 사회, 나라, 온 우주에 가득 가득 나날이 늘어나고 번창하기를 기원하면서 「길상경」 법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