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군 생활하던 중 원주 상지영서대 국방정보통신과 초빙교수를 하느라
2005년 전역을 하고 마지막 근무지 육군과학화훈련단이 위치한 마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 정착하여 안보 강의 및 문해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 27번째, 고향은 경기도 평택)
이번 2024년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 대상을 받으며 감회가 새롭습니다
작년 인제군 어느 카톡에 저와 이름이 비슷한 '김상호'라는 분이 본인이
20회 대상을 받았다고 소개하여 (저는 처음듣는 이야기임) 물어보니
한국평생교육진흥( https://www.nile.or.kr/)을 방문하면 양식 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준비하였으며 절차는 서류심사 ( 참고로 이번에 180 여명이 도전하였고
본선에 14명이 올라) 나중 ZOOM으로 심사위원들에 의한 대면 심사를 받았습니다
우리 회원님들도 저 못지않게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
과감히 도전하여 좋은 결과있길 바라며 제 자료 일부 올립니다
* 제가 좋아하는 말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하라'
이 말의 의미는 '안되는 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고 될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 (도전 의사가 있는 분 계시면)
자료 공유하겠습니다 (010-5072-0673) openlarge@hanmail.net
* 자료 중에서
어릴 적 이야기 (자란 환경)
제 나이가 어느 덧 70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70을 고희(古稀)라고 말하는데
이는 당나라 두보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인생칠십고래희’의 줄인 말로
‘삶에 있어 칠십도 드문 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에 있어서 평생교육 그리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자평해봅니다.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 부근에 사시다가 6.25전쟁이 나자
두 형제분이 경기도 평택으로 피난을 가셔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어렵게 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결혼 후 5남 1녀를 둔 것을 보면 당시에는 왜 그리 아이들을 많이 낳았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4째인 저로서는 세상을 보게하여 또 감사한 마음입니다)
각설하고 다른 부모님들(자기가 못살아도 자식들은 어떻게라도 가르치려고 함)과는 달리
자식들을 많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저도 빨리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경제적 활동을 하려고 2년제 전문대학에 진학하여
중학생들 과외공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니던 중 제 인생의 큰 전환점 맞는 일이 생겼습니다.
남자로서 어차피 軍에 가야하는데 장교과정(기술행정사관)이 새로 생긴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소정의 시험을 거쳐 1년 여의 힘든 훈련을 마치고 1976년 드디 어 육군 장교가 되었습니다. (중략)
중고교 시절 다니던 태권도장의 관훈(館訓)이 ⌜문무겸비(文武兼備)⌟ 였습니다.
운동을 한답시고 배움을 게을리해서 안되고 또 공부한다고 남자로서
운동(무술)을 도외시(度外視; 상관하지 아니하거나 무시함)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젊음을 군에서 보내는 덕분에 틈만 나면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군(軍)에서 간부 자질향상을 위해 일반대학에 군 위탁교육 제도를 시행하는데
경북 영천 3사관학교 근무 시 인근 대구의 영남대학교 야간 위탁장교 모집을 하여 합격하여
일과 후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중략)
기 간 | 학 교 명 | 전 공 | 학 위 | 비고(나이) |
1970.3~1973.2 | 평택종합고등학교 | 인문계 | 졸업 | (17 ~ 20) |
1975.3~1981.2 | 인하공업전문대학 | 통신공학 | 전문학사 | (22 ~ 28) |
1986.3~1990.2 | 영남대학교 | 국어국문 | 학사 | (33 ~ 37) |
1991.3~1994.2 | 한국외국어대학교 | 이란어 | 학사 | (38 ~ 41) |
2000.3~2002.8 | 아주대 정보통신대학원 | C4I | 석사 | (47 ~ 49) |
2008.8~2009.8 | 한영신학대학교 | 사회복지학 | 학사 | (55 ~ 56) |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남대학교는 33세에, 한국외국어대학교는 38세에 입 학하였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주간 위탁으로 젊은 학생들 틈에 끼어 40대 가 되어 공부하면서 줄 곳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