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장군에 관한 역사 이야기)
신숭겸장군 유적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고,면적은 7,804㎡이다.
이 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927)은 평산 신씨의 시조로서, 태봉의 기장으로 있으면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년)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 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한다.
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조선 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으며,후에 이 서원에 사액을 내려 관리하였다. 고종 8년(1871)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지자, 후손들이 표충재를 새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표충사 앞쪽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라지는 고개를 왕건의 정예군이 크게 패하였던 고개라 하여 파군재라 부르고, 파군재 남쪽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 산은 왕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외에도 대구에는 이 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18.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