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배우일수록 '무대는 항상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우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도 역시 무대다. 서울문화재단 유인촌 대표. 그가 거창한 직함을 잠시 내려두고 2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9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한 극단 유의 '어느 말의 이야기-홀스또메르'. 낯익은 작품이다. 지난 97년 첫선을 보인 뒤 2001, 2003년에 이어 4번째로 팬들을 만난다.
녹슬지않은 관록의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준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2년간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아 눈코뜰새 없이 바빴어요. 통 무대에 서질 못했습니다."
아무리 대배우라도 감이 떨어지면 쉽게 도전할 수 없는 곳이 무대다. 약간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해를 넘기면 아예 다시는 연기를 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까지 털어놓는다. 그래서 지난 두달간 낮에는 문화재단에서 일하고 밤에 연습장에서 땀을 흘리는 '주경야독'을 거듭해왔다. '홀스또메르'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음악극이라 노래와 춤이 들어있고, 의인화된 말(馬)이 주인공이라 말 흉내를 내야한다. 유대표가 연기하는 주인공 '홀스또메르'는 체력 부담도 크다.
"여러번 했지만 쉽지 않아요. 하지만 '유인촌은 역시 연기하는게 보기 좋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가십니다."
죽음을 앞둔 늙은 말 홀스또메르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말의 눈을 통해 인간세상을 우화적으로 풍자한다.
4번이나 공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유대표는 이 작품에 애착이 많다. 연극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탄탄한 텍스트라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절묘한 이중구조에 서사극적인 요소를 가미해 흥미롭게 보면서 진지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늙잖아요. 어떻게 늙어야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2년간의 서울문화재단 대표 활동에 대해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고 요약한 그는 내년에 임기가 끝나면 교환교수로 1년간 연수를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홀스또메르'는 18일까지. (02)515-0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