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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포럼 61회 고든 맥도날드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독후감
이름 : 곽은서
제출일 : 21년 3월 11일 (목)
* 고든 맥도날드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읽고 느낀 점을 정리했습니다.
감사의 글
감사의 글을 통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과 용어의 개념을 정리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삶과 그 삶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빚진 자의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을 따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추구하며 주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
축복받는다는 경험! 그것은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고, 최초의 남자와 여자를 지을 당시에 의도하셨던 인간성과 역량으로 그들을 이끄시는 사건(들)을 뜻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나라의 사자(使者)가 되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는 사건을 뜻한다(12쪽).
바로 영혼의 차원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의 열쇠를 찾게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면, 영혼에 접근하라.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분의 비밀을 속삭여 주시고 확신을 심어 주시고 영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기에 가장 적합한 곳인 ‘내적 공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이 사건에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다면 영혼이야말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다른 곳은 없다(12~13쪽).
영혼이란 우리 모두에게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춰진, 상당히 깊은 부분이다. 영혼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에 가장 적합한 고요한 곳이다. 그 깊은 곳에 영적 세계의 고요함이 있으며 천국과의 대화가 있고, 회개와 찬양과 경배가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이는 내가 즐겨 쓰는 표현이다가 되게 하는, 생명과 지식에 대한 의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성경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13쪽).
이 영혼,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인생을 가장 극적으로 축복하시는 곳이 되는가가 바로 내가 쓰고 싶은 바다(17쪽). 나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은 영혼으로 사는 삶을 통해 나타난다고 믿는다. 영혼으로 산다는 것은 창조주를 가까이 하는 것이고, 영원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며, 불안정한 시기에도 최대한 온전히 사는 것이다. 이 책은 영혼으로 살기를 원하는 이들 즉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부분과 만나고 싶은 이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임재를 경험하려는 이들을 위해 쓴인 것이다(19쪽).
이 책은 나일즈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거지들에게 빵이 있는 곳을 말해주고 싶어 하는 또 한 사람의 거지가 쓴 것이다(19쪽).
서문_ 이 책의 진행 방향은?
시작은 좋았으나 비참하게 끝난 이야기 : 페르소나 호
배를 만들고 항해한 어느 바보 이야기를 통해 수면 아래보다는 수면 위를 추구하는 헛된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바보는 배를 만들 때 수면 위는 화려하고 멋지게 짓고 수면 아래는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항해 능력에 자만했습니다. 그 결과 조잡한 설계와 눈먼 교만으로 인해 해상에서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께서 들려주신 비유, 모래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남은 생애동안 수면 아래의 삶에 충실하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 반석위에 집을 짓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을 추구하겠습니다.
1. 해상의 실종 : 영혼이 가벼울 때는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저자는 요트 항해가 마이클 플랜트의 실종 이야기와 그와 상담을 했던 어떤 부부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수면위의 삶이 아니라 수면 아래의 삶이 중요함을 가르쳐줍니다. 만약 우리가 수면 아래의 삶은 없고 오직 육체의 소욕을 이루고 성공하여 다른 사람의 칭찬과 부러움을 사기위해 수면위의 삶을 살면 어느 순간 삶에 폭풍이 찾아왔을 때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삶은 영혼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고 신뢰하고 하나님으로 사는 삶입니다. 삶의 정황이 어떠하던지 날마다 수면 아래의 삶에 충실하도록 더욱 깨어 훈련하겠습니다.
2. 폭풍은 찾아온다 : 영혼이 시험받는 힘겨운 순간은 떠오르는 해만큼이나 확실하다
실생활 속에서도 폭풍은 찾아오기에 저자는 계속해서 수면 위의 삶과 수면 아래의 삶을 구분하고 우리에게 수면 아래의 삶을 살도록 권합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수면 아래의 삶을 영적인 스승들과 이사야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설명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삶에 충실하도록 권합니다(요 2:25, 눅 12:15).
3. 폭풍, 그리고 깨어지는 순간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상황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 주제를 묵상하며 깨어지는 순간과 깨어있는 시간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저자는 인생의 폭풍 경험을 깨어지는 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저자는 깨어지는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으로 깊이와 성장을 추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날마다 깨어 근신하길 소원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전한 신부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이 주제를 통해 “선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하나님의 말씀과 고전 15장 10절 말씀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함께하셔야만 우리는 날마다 영성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수면 아래쪽에 있는 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해주는 깨어지는 순간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1) 위기-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것
(2) 경이-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
(3) 노화-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과정
(4) 영적 훈련-우리 대부분이 하지 않으려 하는 것
4. 영혼의 질 : 영적인 피상성과 진실성, 그 차이를 알라
저자는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진정한 영성(아브라함)과 공약에 가까운 영적 체험(롯)의 차이를 분별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영성과 영적 체험, 이 둘은 너무나 별개의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가 말하는 영적 체험이란 영혼보다는 감정이나 마음에 더 치중하는 것으로서 임시변통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자는 아내와의 아침 식사를 통해 영적 체험과 영성의 실상을 좀더 잘 보여줍니다. 그는 맛을 택했고 그의 아내는 영양을 택했습니다. 맛은 영적 체험을, 영양은 영성의 실상을 비유합니다.
저자가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부류의 영적 체험은 세 가지 인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체험은 자신의 과거에 일어났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품고 있는 강한 후회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영적 체험은 현재에 대해 품고 있는 깊은 황홀감을 바탕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종종 이런 감정은 음악, 설득적인 말, 집단에 대한 의리, 또는 이미 일어난 불상사에 관한 충격 발언 등에 의해 자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영적 체험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각오나 결심의 감정에 이끌려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계속해서 영적 체험의 특징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첫째, 영적 체험은 영혼의 훈련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둘째, 영적 체험은 거의 언제나 감정의 문제입니다. 셋째, 대개가 아주 잠깐뿐이라는 점입니다. 넷째, 그것이 체험자 자신에게 잘못된 영광과 칭찬을 가져오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영적 체험의 직후에는 몇 가지 다른 특징들도 설명합니다. 영적 체험이 많은 경우 결국에는 사람을 공허하고 피곤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공허와 피곤은 사람을 연약하게 만들어 유혹과 죄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 체험에는 두 가지 특징이 더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임재를 통한 하나님의 진정한 접근에 처음에는 냉소적으로 나중에는 반항적으로 반응하게 합니다.
고든 맥도날드가 들려준 가르침을 묵상하며 더욱 영적인 사람과 혼적인 사람에 대해 학습하고 바르게 분별해야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깊이 있는 영성인이 되기 위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영적 체험이 아닌 오직 주님을 목적하고 주님을 구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요 6장).
5. 영성을 찾아서 : 깊은 영성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영성은 영적 체험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가 영성을 보기 드문 것은 그것이 종종 침묵과 복종의 정황 속에서 빚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참된 침묵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이 주제를 묵상하며 더욱 주님을 묻고 주님과 소통하며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 테이야르 드 샤르뎅 :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다”
6. 뱀의 눈빛 : 거기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찾으려면?
포로 혹은 노예 상태-뱀의 눈빛 아래 사는 삶-는 인간의 삶에서 준엄한 경험입니다. 그것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중독 유형, 습관, 기분, 감정 등의 포로 상태로 식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망, 욕심과 정욕, 쾌락, 물건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이상한 욕망에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일회적 회심과 계속적 회심, 이것은 사람의 수면 아래쪽으로 내려가 변화의 의미와 중요성을 찾으려 할 때 열쇠가 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이 회심이라는 한 순간에 관심을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따라는 평생 동안 지속되어야 할 과정-지속적인 회심의 과정-의 중요성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수가 많았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사도 바울에게는 하루하루가 수면 아래쪽을 지어야 하고 변화의 과정을 완성해야 하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이 주제를 통해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일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에 더욱 힘써야겠다고 뜻을 정했습니다. 무심코 행하거나 부지중에 육신으로 행하는 모습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복된 신앙인이 되도록 더욱 추구하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영성인으로 세워지는 데에 더욱 집중하고자 합니다.
7.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 ‘축복’의 추구는 어디서 끝날 것인가?
저자는 노인의 좋은 모델로서 갈렙을 이야기합니다. 그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온전히’입니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그것은 수면 차원의 물음입니다. 이 질문은 성품과 인격 그리고 존재양식과 관련된 것입니다.
8. 사명을 따라 사는 영혼 : 영혼을 이끌어 갈 바른 방향
우리가 사용하는 사명이라는 단어는 인생 전체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근본 목표를 뜻합니다. 잘 규정된 사명은 평생 동안 길잡이가 될 뿐 아니라 선택과 가치관의 근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저자는 이에 대한 좋은 예로 에스라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스 7:10) 에스라의 세 가지 사명-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은 에스라의 인생의 골자였습니다.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은 이 세 가지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9. 아름다운 영혼 :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옛 영적 스승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어딘가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영적인 삶은 덧셈보다는 뺄셈과 더 많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수면 아래쪽, 곧 영혼의 기록 보관소 안으로 과감히 내려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질문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1) 나는 진정 누구를 기쁘게 하려고 하는가?
(2) 나는 어떤 필요들을 채우려 하며 어떤 불안 요소들을 내버려두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감정들을 쌓아 두고 있는가?
(3) 나의 경쟁 상대는 누구(무엇)인가?
(4) 나는 어떤 보상을 구하는가?
(5) 나는 어떤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감추고 있는가?
10. 어디에 계시겠나이까? : 영혼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기
예수님을 닮은 그런 교제의 시간에 우리가 수면 아래쪽에 쌓아가는 무게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집요한 열망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분의 본질, 그분의 능하신 행사, 그분의 뜻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계획 등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실은 이런 연습이 바로 신학-하나님 및 그분의 뜻에 대한 공부-입니다.
11. 확신은 특수한 토양에서 자란다 : 무게 있는 영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영혼은 무엇인가가 자라는 데 이상적인 공간입니다. 그 무엇을 저자는 확신이라고 부릅니다. 좀더 현대적인 용어로 하면 가치관이 될 것입니다. 확신은 신앙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나는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확신과 성품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성품이란 한 사람의 태도를 통틀어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 영혼이라는 환경 속에서 확신은 어떻게 자라는가?
(1) 확신이 처음에는 대개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2) 확신의 두 번째 원천은 우리가 듣는 이야기들입니다.
(3) 나이가 들면서는 추상적인 원리들을 통해 확신을 배우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4) 기독교의 원천인 성경에 나오는 원리가 확신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5) 때로 확신이란 만인의 상호 유익을 위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살기로 맹약한 영적인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6) 우리는 또한 확신이 실패의 결과로 형성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실패를 미래의 성품을 위한 교사로 삼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배움과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7) 확신은 꾸준한 자기 점검을 바탕으로 형성됩니다.
* 성품을 빚은 확신들은 한순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평생의 경험과 고통 그리고 그리스도와 가까이 동행함으로써 형성된 것입니다. 그것은 무겁디무거운 수면 아래쪽의 중량입니다.
* 제대로 빚어진 확신은 고결한 성품을 지닌 인간-그리스도를 닮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입니다.
12. 영혼의 대화 : 하나님과의 대화
(1) 영혼의 대화 즉 진정한 대화는 외적 방해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거의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2) 영혼의 대화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3) 영혼의 대화에는 내가 앞에서 영적 스승이라 불렀던 일군의 성인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4) 마지막으로 영혼의 대화에 필요한 요소는 인내입니다.
오늘날에는 침묵, 시간, 영적 선진들과의 접촉, 일기를 통한 자기 노출, 인내 등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늘 마음이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깊이 없이 단어, 공허한 상투어, 임기응변적인 의견, 종교적 독백 등의 형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곳이며, 인간이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성향과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는 곳입니다. 또한 창조 세계와 그 세계의 잠재 가능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예배하게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보낸 순간순간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곳입니다.
13.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는 도전 앞에서 새 힘을 얻는 방법은?
하나님이 축북하시는 삶에 대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그 근원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이 수면 아래쪽의 영혼에 들어오게 되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첫째, 성령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가정 곧 하늘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시작하십니다. 둘째, 우리가 새로 소속된 가정에 어울리는 성품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성령의 열매). 성품이 가정의 일원이 되는 것과 상관있다면 은사는 만왕의 왕을 섬기는 것과 상관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의 간구를 통해 성령이 영혼 깊은 곳에 임하시게 되면 능력이라는 세 번째 가능성을 공급받게 됩니다(성령의 능력).
후기 :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 보기 전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야 한다 : 크리스토스 호
하나님께서 저의 남은 생애를 축복해주셔서 끝까지 복된 영성인으로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한결같이 순수하게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추구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수면 아래의 삶에 충실하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복된 영성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똑바로 보고 싶어요> 복음성가 가사로 독후감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당신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