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 상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상동교육 산실은 중학교졸업 후 고교 진학할 때 6회 여학생들은 경기여고, 이화여고, 숙명여고, 진명여고, 수도여고, 강릉사범, 춘천사범 그후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등 유학하였고, 내 기억으로는 상동 중학교 남학생 5회 6회 7회 졸업생들이 서울대학교 2명 한양대학교 8명, 연세대학교 5명, 고려대학교 12명, 서라벌예술대학 1명 등등 합격하여 유학하는 등, 상동중고등학교는 일류학교에 합격하게 되는 관문으로 고마운 스승님들, 고마운 모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중학교 때 질 높은 교육시스템과 다양한 체험학습 덕분에 본인도 강릉사범에 합격하게 되었고 교단에서도 43년 6개월은 가장 빛나는 유능한 선생님으로 활약했으며, 교장 정년퇴임 전에도 후에도 작곡활동과 어린이들을 동반한 뮤지컬 (KBS출연) 각종행사 기획 출연, 10년간 애향의노래 작곡 발표회, 인성교육 등등을 할 수 있었고, 인천교육대학, 인하대학교 석사학위,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상동중학교 교육의 힘이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해 구래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상동중고교 동문회 마당에서 그때 제가 박사학위 받은 기념으로 인하대학교 박사 가운 30개를 교수님께 사정사정하여 빌려 가지고 6회 친구들에게 입히고 제가 동창회장 박사로서 박사모를 쓴 채 선두로 6회기를 들고 입장하였지요. 아직도 그 때를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드라구요. 획기적 이었다나요?
변전소 소장 이용경 아버님께서 기관장 회의에서 다녀오셔서 5학년 둘째딸 정란이와 중학생인 큰딸 광자 저를 보고 성당에 나가라고 하셨지요. 불교를 믿으셨던 아버님어머님의 신세대로 열린 마음이셨어요.
우리는 너무 좋아 겅중겅중 뛰면서 그때부터 성당엘 다니게 되었지요. 신부님과의 어린 소녀시절 추억이 떠 오르네요.
청솔 새닢같이 청순하고 풋풋한 열셋 열넷 열다섯 청순한 소년소녀시절,꼴뚜바우 상동에서 하느님과 성모님을 만나게해 주신 잊지못할 신부님,이영섭 방지거 신부님~ 그립습니다. 이제 저 고희를 훌쩍 넘은 이 나이에, 늘 마음속의 그리운 첫 신부님을 이제야 꺼내어 나지막하게 불러봅니다.
청청한 깃발 나부끼며 태백산 함백산 백운산 정기받아 씩씩하게 자라던 우리 소녀쩍 시절 첫 신부님이셨던 이영섭 신부님을 어찌 잊을 수 가 있겠습니까?
도계성당 연탄신부님 김영진 바르나바 신부님께서 집필하신 동시집 *연탄님* 과 수필집 *연탄일기*를 밤새워 읽다가 신부님을 존경하고 사모하시는 그 분 마음에서 신부님과의 옛 추억 그리움이 되살아나게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 야야, 우리 상동 그때 그 우리 첫 신부님 알지?”
물었더니 이용길(네오)가 첫 마디에 “어~ 알아, 이영섭 방지거신부니임~ 키쪼고마하니 싱그싱글 웃으시고 눈을 껌뻑껌뻑 안경테를 자주 만지시고 좌우를 둘러러보시면서 두팔을 활개치듯 바쁘게 씩씩하게 경쾌하게 걸으시던 신부님 모습이 눈에 선해. 헤어스타일은 가름마없이 리젠트머리를 하시고 ...”
우리 6회 동창 총무 친구 이용길 네오, 김승길 율리오, 7회 유병환 빌리보드 등등 신부님을 잘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대앞쪽에서 신자들을 보며 미사를 드리시는데 예전 신부님들께서는 큰 십자가 고상쪽을 향하여 미사를 드리셨지요.
고교시절 고호명이를 따라 성당에 가게 되었던 한 친구는 제의를 입으신 신부님의 모습과 성당의 천정 둥근 돔에 음향이 울려퍼지는 성가가 천상의 음악으로 들렸답니다. 그때는 신부님께서 복사들과 라틴어로 주고 받으시며 미사 집전하시는데 너무 엄숙하고 성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미사 끝나고 사제관으로 신부님을 찾아뵈었더니
1.「 교부들의 신앙」 :카톨릭의 역사와 프로테스턴트(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역사)
2. 「돈보스코 성인님전」 : 이태리 뒷골목 불우 청소년들을 모아 기술교육을 시켜 자립할 수 있도록 함(살레시오회를 설립하여 세계각국으로 진출해 청소년교육 전문수도회로 발전시킴) 책 두권을 주셨는데 밤 새워 읽은 그 동창 친구는 감동 감화되어 천주교에 입문하게 되었고, 율리오 세레명을 받으며 신부님이 되고싶어 그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신부님! 우리는 신부님을 62년 이나 잊고 살아왔지만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어요
우리들 마음속에 축복인 하느님 사랑을 일깨워주신 분이니까요.
신부님은 제게 큰 나무 같으셨어요 항상 웃음띄신 다정모습으로 일일이 저희들 손잡아 주시며 성경말씀 들려주시던 아버지 같으시고 따뜻하시며 자애로우신 분 어린소녀소년들 마음속에 사랑 심어주신분이시니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유난히 사랑을 주셨던 우리 신부님을 모두 다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자상하시고 살갑게 대해주시고 밝으시고 발랄하셨으며,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시고 빨리 빨리 걸으셨지요( 하시고자 하는 일 너무 많으셔서 그랬나봐 )
신부님! 무슨일이든 재빠르게 하신 것 같았어요. 강론 말씀도 쩌렁쩌렁하게 잘 하셔서 천상의 말씀 하느님 말씀 같았어요.제가 신부님을 만나게 된 인연이 생각납니다. 성당이 없어 공소였던 시절 우리는 영월 본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곤 했지요. 또 신부님께서 상동공소를 자주 찾아오신던 날들도 잊을 수 없어요. 오실 때 마다 눈깔사탕 꼭 가지고 오셔서 입에 넣어주실때 우리들이 장난으로 “주님의 몸 아멘~” 하고 말하며 사탕 받아 먹을량이면 우리에게 주먹으로 안 아픈 꿀밤을 주셨고 꿀밤 맞고 낄낄대며 달아나기 일쑤였고, 신부님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어주셨지요. 1957년 겨울 1958년겨울인가요
추운 겨울 함박눈이 펑펑 내려쌓이는 성탄절 날 쓰리코타(작은트럭) 타고 S코스 꼬불꼬불 스라리재를 넘어가는데 모두 어지럽고 빙빙돌아 멀미가 나서 토하니 차에서 내리라고 하여 눈밭에 드러누워 두팔 옆으로 펼치고 눈위에 누운 채 몸으로 사진 찍기~하며, 하늘 보고 심호흡 여러번하고 또 하고나서 정신이 맑아졌었지요.
김재봉 아오스팅 오빠, 이재봉 디도 오빠 생각나네요. 우리 동생 정란이와 나의 한해 후배 김길자 루시아, 전승희 등등... 눈밭에서 쉬었다가 겨우 영월 본당에 도착해보니 빵도 주시고 달콤한 생강 물도 주시며 애썼다 애썼다 하셨어요. 우리는 잠시 정신을 차려 몸을 추슬러 성탄축하 행사 무대 위에서 올라가 성가합창과 준비해간 성극도하고 무용도 했지요. 성당의 전등불 다 끄게 한 뒤 하얀드레스입고 흰 저고리치마 입고 양손에 촛불 들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가에 맞춰 촛불 무용(구래국교 김귀순선생님 지도)을 해서 박수 갈채를 받았지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성탄절 밤이었어요.
1958년 우리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특히 사랑하셔서 늘 챙겨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성탄 촛불 무용은 조금씩 안무 바꿔서 계속하라 하셨던 것 같아요 너무나 성스러웠거든요. 신부님께서 엄지척! 하시고 센베이 과자를 봉지 봉지 주셔서 크리스마스 과자 파티가 더욱 풍성했어요. 지금도 그 추억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성탄 때 먹는답니다.
지금 생각하니 신부님께서 참으로 수수하시고 검소하셨던 것 같아요. 옷도 미군바지 입으시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많이 많이 나눠 주셨지요.
신부님께서 자신보다 우리 생각만 하시는 것 같았어요. 맛있는 건 잡수시지도 않으시고 저희만 주셨던걸로 기억해요 신부님 잡수세요 하면 많이 먹었으니 너희나 먹어라 하시며 도로 주시곤 하셨지요.
오늘 김영진바르나바 연탄신부님의 동시집*연탄님* & *연탄일기*수필집을 접하고
더욱 이영섭 신부님이 그리워졌어요. 신부님은 우리마음에 잊혀지지않는 영원한 신부님으로 남아있어요. 왜냐구요 주신 사랑 너무 많았구요. 우리 뇌리에서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많으시고 인자하신 첫 신부님이셨기 때문이지요. 그때 당시 5학년이었던 꼬마 동생이정란(지금은 목사님)도 아직까지 신부님의 존함과 세례명을 기억하고 있네요. 와~놀랄 일이었어요.
현재 도계성당 김영진 바르나바신부님께서 이영섭 방지거신부님을 너무나 존경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김영진신부님은 탄광촌에서 이웃사랑으로 자신을 불태우시며 연탄처럼 사시는 거 아시지요? 그래서 저는 연탄신부님이라고 하네요. 천국에서 보시고 계시지요? 김영진신부님 수필속에서 이영섭방지거 신부님 존경의 마음을 대하고 보니 더욱 새삼 신부님이 그리워졌습니다. 하느님 품안에서 늘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신부님께서 상동성당 지으시고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 만항재 걸어 그 먼 길 다니시며 사목 선교하시던 그 산길은 훌쩍 자란 키다리 아람드리 나무와 예쁜 들꽃들이 길가에 그리 무성(茂盛)할텐데...
그 길을 순례하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