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추수감사절에
감사는 추수를 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추수하였나요? 추수를 하였으나 추수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추수한 후에 자신이 노력한 것보다 적게 추수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추수에 대한 속상함이 있을 뿐 감사함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추수를 할 때 하늘을 보지 않고 옆 사람의 추수한 양을 본다면 감사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추수를통하여 사람이 하늘의 은혜를 받았는데, 우리가 그 은혜 받은자를 쳐다보고 은혜받은 자의 자격을 분석한다면 은혜가 아니라 은혜를 담은 그릇의 크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위하여 내리는 단비보다 그 단비를 담은 그릇의 크기에 집중한다면 은혜를 잃어버리고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의 근원되시는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가 옆사람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축복을 받을 때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비난할 것이며, 반면 본인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성취를 한다면 당연히 노력으로 열매를 거두었다고 생각하여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2022년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살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여도 살아있음에 상실을 넘어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 부활도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여 부활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감사의 주제를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늘 선물을 많이 받았구나' 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잠깐 머물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며 머물 때, 안식이 있으며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이번 가을에 파란 하늘을 보며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을 풍성히 받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별학교
https://m.cafe.daum.net/bochamchurch/9oZ/63?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