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다시 시작합니다.나의 꿈 , 하나

[김태웅]

(이제 저는 한학기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졸업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관심이 없었다면 참으로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여러가지 경험들과생각들을 모아서 글들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과거의 글들이 다시 인용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이글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은 자아존중감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드리고 또한 젊은이와 함께한 7년의 기간을 통해  부모에게는 자식의 가치관을 알려드리고 또한 젊은이들에게는 부모님의 생각들을 전해드려 서로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가교의 역할을 해 드리고자 함이 저의 자그마한 바램입니다. ...성균관대 4학년 김태웅 드림.)

<대학교 1학년때 엠티가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ㅎㅎ>

나의 꿈

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칠한 얼굴에 빗물같은 땀이 흐른다. 흐르다 못해 범벅이 되어 순간 아찔, 어지럽다. 스틱을 잡고 연신 드럼을 두드리던 손목에는 아직 방금 전의 짜릿한 진동이 남아있다. 이 느낌을 수식할 형용사가 마땅히 없어 고민을 하던 찰나에 우연히 고개를 들어보니 왠 모과같은 못생긴 중년의 늙은이가 더위먹은 수캐마냥 헐떡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못난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보다가 씨익 웃어보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꿈을 내뱉는다. ‘그래, 멋진 딴따라가 되는거야.’

내 나이 54살, 이제 막 학부 4학년이 된 대학생 스케쥴과 출판사 사장 노릇을 병행해야 하는 생활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나의 도전은 두 평 남짓 드럼 연습실을 땀내음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드럼을 치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 지금 난, 진심으로 이것이 좋다. 여기에는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사건이 있었다.

사건 1.

초등학교 교사이던 아버님을 일찍 여의게 되어 갑자기 생활고에 허덕이던 무렵, 거할 곳 없는 우리 가족은 그 시절 여느 가난한 서민들처럼 경기도 구리시의 철로주변 야산에 작은 공터를 깎아 만든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이름하여 ‘새마을 달동네’. 말이 집이지 판자로 얼컹설컹 만든 골자 위에 비닐로 하늘만 덮은, 전형적인 꼬방동네의 꼬막집이다. 겨울철 바깥공기가 너무 차가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 동생들의 추위를 덜어주려다가, 물먹은 신문지로 막아 놓은 틈에 공기가 통하지 않아 한겨울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적도 있다. 다행히도 일을 하고 늦게 돌아오신 어머님덕에 목숨은 건졌지만 이렇게 매일이 아프고, 고단했던 날의 연속이였다.

6살, 10살짜리 동생을 둔 그 시절의 나는 13살 형아로서의 책임을 다해야만 했다. 어머님이 안계시는 시간에는 엄연히 내가 가장이였다. 초라한 반찬가지를 여며 밥상위에 올려놓고, 동생들 입으로 밥이 꾸역꾸역 들어가는걸 지켜보고 난 뒤면 바로 헤진 이부자리를 깔았다. 전기세를 아끼려면 조금이라도 어둑해질때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 쌔근거리며 잠든 동생들을 눕혀두고 까막한 공간의 호흡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열세살 소년의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상념들을 그렇게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댔다. 그 끝없는 상념들을 먼지 털어내듯 머리 속에서 싸악 걷어내던 소리가 바로 아코디언 소리였다. 어둠의 적막함을 뚫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코디언 소리. 누구의 연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동네 골목골목을 휘어감는 아코디언 멜로디가 어린 나의 머릿속을 새로이 채워주었다. 아픈 날이 언젠가는 쾌유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고단한 마음이 조만간 편히 쉴 수 있으리라는 확신... 그 시절, ‘섬집 아기’를 연주하던 그 아코디언의 멜로디는 내게 음악이 ‘희망’이라는 증거가 되어 주었다.

사건 2.

희망의 소리 아코디언을 꼭 내 힘으로 연주하겠노라고 결심했던 어린날의 꿈은, 인생의 중년에 접어드니 어느새 세월의 잔재에 묻혀 있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느즈막히 용기를 내어 보았지만, 아무래도 아코디언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를 먼저 배움이 나을 듯 싶어 전자 오르간을 구입하고 학원 수강증을 끊었다. 두 달만에 그만 두기로 선생님과 합의를 하였다. 물고기가 유영하듯 자유로이 건반위에서 뛰어 놀아야 할 손가락은 50해가 넘도록 규칙적으로만 움직여야 했던 세월의 흐름에 깊게 길들여져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레슨 선생님 말씀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배우는 것 보다는 한계가 있다고 하셨다. 젊음의 에너지는 그들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발산되고 표현되는 특권이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증가하는 신체적 한계는 혼신을 다한 나의 노력과 결과를 그저 유지시킬 뿐이라는 생각에 잠시 또 속이 쓰렸다. 아픈 교훈을 얻은 뒤, 고민 끝에 건반을 그만두고 색소폰 연주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테너 색소폰! 케니 지와 데이브 코즈의 연주를 귀가 닳듯 들으며 삼년이라는 시간동안 열정을 다했다. 틈만 나면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의 연주에 매료되기 위해 음악에 취하듯 살았다. 연습의 효과가 있어 군부대 공연 연주자로 나서거나, 학교 축제에 초대 되기도 하고, 많은 행사에서 불러준 덕에 많은 이들 앞에서 연주자로 활동을 했다. 그 중에서도 노인 복지관의 행사에 초대되어 노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던 봉사는 생애 잊을 수 없는 보람으로 남아있다.

사건 3.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치아교정 사건이였다. 과거 나의 치아는 축구선수 이청룡의 덧니와 거의 비슷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치아교정 전문의로 있는 후배를 사석에서 만나 상담을 받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 풍치가 될 수 있으니 덧니 치아교정을 받으라는 말에 덜컥 대공사를 시작했는데, 뼈의 생성이 더딘 나이의 치아 교열공사는 내게 최악의 상황을 안겨주었다. 중년나이에 시작한 치아교정은 5년이나 걸렸고, 잇몸이 약해지고 치아 전체가 흔들리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색소폰 리드를 치아로 살짝 물고 입술로 바람구멍을 막아 관을 통해 소리를 만들던 나의 연주는 더 이상 악기를 부는 것 조차 힘이 들어졌고, 3년을 넘게 공들여 노력한 투자가 참으로 아쉽고 아까웠지만 색소폰은 이렇게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항로는 바뀔지언정 포기란 있을 수 없는 법, 내게 적합한 악기에 대한 조언을 얻어 드럼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고 다시 음악을 시작했다. 나이가 먹으면 운동신경의 저하로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이미 피아노레슨을 통해 배웠지만, 그래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함께 레슨을 받는 젊은이들을 쉽게 따라갈 수 없음은 당연했다. 이를 악물고 더 많은 시간을 연습에 몰입하였다. TV를 보면서, 가족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리고 식사를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끊임없이 스틱을 두드리는 일을 반복하였다. 길거리를 다닐 때도 기구를 들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팔목 강화훈련을 했다. 가끔 버스안에서 혼자 팔목을 흔들면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 민망했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두들겼다. 대학축제의 무대에 올랐고, 모교 동문행사와 군 위문공연에 출연하여 3년 전의 내가 색소폰으로 느꼈던 감동과 환희를 다시금 느꼈다. 동료들과의 협연을 통해, 그리고 관중들의 열띤 박수를 통해 나는 어느새 ‘작은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이제 나의 꿈을 펼칠 시간이 다가온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우리 아들의 아빠로서, 그리고 출판사의 CEO로서의 모습으로 - 일에, 사랑에 관하여 꿈꿔오던 나의 모습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선, 마침내 궁극적으로 내가 꼭 이루고 싶었던 일생의 숙원을 코앞에 남겨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연주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니, 나의 음악과 나의 사람들이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해 공동체의 화합과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을 들려주는 것, 그들의 머슴이 되는 것이다. 연주를 위한 모든 장비는 완벽히 구비를 끝냈다. 남은 일생을 딴따라로 살겠노라는 다짐도 마쳤다. 이제 드럼 스틱을 잡고, 호흡을 가다듬을 일만 남았다.

원, 투, 쓰리,

인생의 연주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