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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內部) 공간구성에 있어서는 내부 고주없이 중앙불단을 뒤로 후퇴하여 설치함으로서 예불공간을 크게 확보하였다. 즉 고대의 탑(塔)중심의 의식에서 불상(佛像)의 등장으로 인한 법당중심의 가람(伽藍)이 구성되어 근세(近世)에서는 법당내부에서 불상(佛像)에 직접적인 의식과 예불이 많아졌다. 깊이가 깊은 예불공간의 구성(構成)은 의식(儀式)의 원활성과 많은 불자(佛子)들이 들어올 수 있는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대웅전은 내부공간이 예불중심의 공간으로 전환된 조선말(朝鮮末)후기의 사찰(寺刹)의 특징을 대변하는데 봉원사(奉元寺)대웅전 내부구조(構造)가 좋은 실례(實例)이다. 이 건물은 영조(英祖) 24년(1748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이건(移建)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고 외9포 내11포 위에 5량 5포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대웅전에는 영조대와의 하사품인 "대웅전" 현판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1991년~ 1993년 도화주로 김혜경 스님과 대중스님들의 원력으로 재건하였다. 법당안의 보물급 탱화들은 그때 소실되었으며 지금의 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고 법당안의 범종(梵鐘)은 충남 덕산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시대 억불정책(抑佛政策)을 수행하던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고 그때 타지 않고 있던 종을 옮긴 것이다. 대웅전 건물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68호로 지정되었다 |
삼천불전(三千佛殿)
1945년 화주 김기월 스님과 화주 김운파 스님의 연력과 전 사부대중이 원력을 합하여 46간(間) 대규모의 광복기념관으로 건립한 바 있으나 불행히도 1950년 9월 25일 6.25사변중 한강 도하작전대 소실되었다. 이때 영조의 친필 "봉원사" 친필을 비롯한 "이동인, 김옥균"의 유물 등 중요 문적(文籍)이 소실되었다. 1986년 주지 조일봉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건물허가 및 준비 과정을 거쳐 1988년 삼천불전의 복원불사가 시작되었고 주지 김성월스님, 주지 김혜경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을 합하여 단일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의 (210평) 건물로 9년여만에 완성하였다. 대들보 무게 7톤으로 알라스카산 수령 227년된 나무들을 사용하였고,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과 삼천불을 봉안하였다.
종각(鐘閣)
이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대방건물 이건시기와 같으며 그당시 제 1의 목수인 이광규씨에 의해 건립 되었고 종각은 단칸 건물로 팔삭지붕 형태로 짜여져 있고 종의 아래에는 단지가 묻혀있는데 이것은 소리의 공명정도를 길게 하고자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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