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책 소개.hwp
위의 책 저자는 카렌 암스트롱입니다. 두껍습니다. 하지만 흥미진진합니다.
좋은 자료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종교철학자 이정배교수의 강의를 정리한 글을 찾아서 올립니다.
고통의 시대에 탄생한 위대한 정신
출처 : http://www.nanum.com/site/156360
인류의 창조적 영감이 빛나던 때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BC 900년에서 200년까지 600여 년 동안
각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유의 창조적 혁명, 새로운 종교적 영성이 출현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묵자∙노자,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자이나교∙붓다,
그리스에서는 소포클레스∙소크라테스∙플라톤,
이스라엘에서는 이사야∙예레미아∙호세아 등의 예언자 그룹이 등장했지요.
이 시기를 역사학자들은‘축軸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인류 역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눌만한 거대한 전환이 일어난,
정신적 힘의 시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결실로서 4대 종교가 탄생했습니다.
3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류는 한번도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할 만큼
우리는 그 정신적 유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답 또한 그 속에 빛나고 있습니다.
고통과 모순이 극에 달할수록
‘축의 시대’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전쟁과 약탈,
급격한 도시화와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
폭정과 궁핍으로 고통과 모순이 극에 달한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절망과 비탄에 차 있었습니다.
아리아인의 점령과 억압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있던 인도인들은
내면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묻고,
나의 고통을 뛰어넘어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보편성과 일치성으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정신입니다.
대우주(브라만)와 자신(아트만)이 일체라는 것이지요.
자신 속에서 우주를 보는 자기성찰의 종교, 힌두교는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공자의 유교 또한, 천명天命과 예법과 모든 절대적인 근간이 무너진
야만의 춘추전국시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자는 '인仁'을 통해 새 질서를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인의 정신은 '네 자신을 헤아리는 그 마음으로 네 이웃도 헤아려라,
네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아라'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의 예언자’로부터 예수까지
그 당시, 이스라엘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국가와 하느님의 법마저 빼앗긴 상황이었습니다.
외세의 불의한 권력에 의존해 거짓 평화를 누리는 이들이 많았지요.
예언자 예레미아는 타락한 자신의 민족을 향해 먼저 회개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원래 회개는 ‘삶의 과녁이 잘못 맞춰졌으니 방향을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자 예레미아는 눈물로 자기 백성들의 나라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그가 ‘눈물의 예언자’로 불리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회개의 종교가 이후 예수에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스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잔혹한 전쟁이 끝없이 벌어진 상처투성이 공간.
그 속에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비극’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아픔을 정화시키고,
타자와 더불어 눈물 흘릴 수 있는 힘을 선사하고자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질문은 ‘너 자신을 알라’
무지無知를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설파했습니다.
‘무지의 지’를 통해 옳은 행동의 길을 제시하고, 삶의 깊은 신비를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삶의 단순성과 창조력을 회복하기
‘축의 시대’는 극단적 고통의 한계 속에서 인간의 내면성을 발견한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역사의 질곡과 삶의 고통을 진실되게 직면하는 것.
그리고 인간은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고 타인들의 고통 또한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러한 내 삶이 곧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돈과 힘이 진리가 된 ‘물신物神’의 시대를 살고 있고
자연은 우리 시대 새로운 가난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종교도 이미 자본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본디 종교와 욕망은 반비례하는 것인데, 종교와 욕망이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통과 맞설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필요합니다.
먼저 ‘삶의 단순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살아가려면 ‘손의 창조력’을 되살려야 합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합니다.
시간과 능력, 생명까지 돈으로 사려고 합니다.
인간은 물질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물질로 살고자 노력할 때,
그 물질은 물질이 아닌 정신이 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나의 본성을 찾아
‘사자후獅子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을 잃은 사자새끼가 양의 우리에 갇혀 자라면서 양처럼 먹고 양처럼 울게 되었습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사자는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포효했는데,
이 울부짖는 소리가 바로 사자후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자새끼는 잃어 버렸던 사자의 본성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축의 시대의 현인들은 지금 우리에게 ‘사자후’를 던지고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있는 신이, 고통을 견뎌내고 이웃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이,
그런 본성이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매일이 좌절인 줄 알면서도,
옳은 길을 계속 걸어나가는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길 없는 시대에 스스로 길이 되었던 현자들의 삶을 따라,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 가슴의 빛을 밝혀나가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교수신문에 나왔던 책소개도 파일로 올립니다.
첫댓글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시간 내어 읽어보겠습니다. ..^^